120화. 유능한 수하를 얻다.
“하하하! 자, 다들 앉거라.”
이야기를 듣기 위해 가족들이 한자리에 앉았다.
“이 할애비는 궁금한 것이 너무 많구나. 그동안 큰아이 너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큰손자를 바라보는 노가주의 시선은 한껏 기대에 차 있었다. 그건 숙부도, 두 아우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무탈히 돌아오기만 소망했을 뿐이었다. 한데 막상 돌아온 모습은 소망을 훌쩍 뛰어넘어 있었다.
“형님, 조직을 만들어버리신 건가요?”
“부하가 어쩌다가 남궁세가의 대공자인 건지요? 남궁 형님이 큰 형님을 두목이라고 불러버리다니요?”
“이 할애비는 영물이 궁금해 못 참겠구나. 분명 색황조 같던걸. 노래를 그렇게 잘할 줄은 몰랐다.”
이것저것 빨리 듣고 싶은지 다들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익숙하고,
자주 봤던 모습이어서,
후공은 웃고 말았다.
‘이렇게 마주하니 어제 보고 오늘 또 보는 것 같구나.’
길다면 긴 여정이었는데 시간이 흐르지 않은 듯 천화서고는 그대로였다. 특별한 일이 없었는지는 아직 묻지 않았지만, 물어볼 것도 없이 별 탈 없이 보낸 듯하여 마음이 놓였다.
“두루 여러 일들이 있었습니다.”
후공은 알아서 좋을 내용을 위주로 하여 전하고, 모르는 것이 약이 되는 말들은 대수롭지 않게 축소해 전했다.
그럼에도 충분히 놀랄 만한 일들이 한가득이었기에 다들 탄성을 터뜨렸다가 마른침을 삼켰다가 난리도 아니었다. 고작 두어 달 사이에 벌어진 일들이라곤 믿기 힘든 사건들이었다. 이야기가 마무리되면서는 아쉬워하는 한숨도 터져나왔다.
“아니, 주양 형님은 하필 의뢰를 해도 무극살부라는 곳에 하셨던 걸까요. 살인 청부가 끝이 없다니요. 후속조치로 천공단과 멸살단을 조직하신 걸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막장이라고 해야 할지.”
“부몽, 그야 잘 마무리될 테지. 그보다 난 서문세가가 더 살 떨린다.”
“네, 형님. 악연도 이런 악연이 없다 싶습니다. 큰형님께서 이번에 끊어내셨으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허허허, 다 잘되었으니 그걸로 되었다. 더 이야기할 것 있겠느냐.”
“네, 할아버지.”
*
열흘이 빠르게 지났다.
이 기간 후공은 당연히 해야 할 일정들을 소화해냈다.
서문세가를 따로 방문했고, 안휘 북부의 연맹과도 모임을 가졌다. 주 내용은 사황천의 혈음곡에 대한 것이었다. 무언가를 도모하진 않았다. 그저 연대가 공고함을 확인하였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차원이었다. 문제의 요소는 없었다.
또한 천화서고 내부를 점검했으며, 두 아우의 성취 여부를 확인한 후 가볍게 몽둥이찜질도 해 주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돌아본 천화서고는 뭔가 달라져 있었다. 어느 때보다 활기가 넘쳐났다. 아니, 활기뿐 아니라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가장 많이 웃은 건,
[까르르르르르르. 다들 그거 알아요? 소천개가 바보 멍청이란 거. 까르르르르르.]
색관조였다.
또 색관조 때문에 사람들이 웃었으며, 그렇게 모두의 관심사는 온통 색관조에게로 쏠렸다.
덕분에 화려하게 돌아온 천화서고 대공자는 빠른 속도로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돌아온 날, 대공자님을 뵙습니다! 라고 우렁차게 외쳤던 주제에, 아예 그런 적 없다는 식이었다.
그렇기에 후공은,
뚱해졌다.
“남궁 형.”
“네.”
“저 혹시 안 보이는 겁니까?”
“보입니다.”
“그래요? 난 또 투명해진 줄.”
“실은 저도 투명해졌습니다.”
남궁연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처음에는 ‘오오오, 남궁세가!’ 이랬다가 차츰 잊혀졌다.
동병상련.
두 사람은 투명하지도 않은데 투명해진 채 천화서고를 거닐었다.
“남궁 형.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네?”
남궁연이 살짝 긴장했다.
천화서고로 온 지도 어느덧 열흘째다. 딱히 하는 일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터라, 이쯤에서 돌아가라고 하는 건 아닐까 싶어 내심 불안해졌다.
“남궁 형에게 불만이 한 가지 있습니다.”
“어떤…….”
“남궁형은 혼이 없어요.”
“네? 호, 혼이 없다뇨? 제 혼이 어쩌다가…….”
남궁연이 영문을 몰라 하며 눈을 연신 깜박였다.
“거 있잖습니까. 저에게 두목이라고 부를 때. 혼이 없이 마지못해 하는 것처럼 보이던데, 제 착각입니까?”
“아, 하하……. 그거라면 혼은 싣는다고 실었는데…… 제가 해본 적이 없는 말이라서.”
그저 농담임을 알기에 남궁연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하하, 혼자 있을 때는 잘되는데…… 그게…….”
“연습, 연습! 노력해 주십시오.”
후공은 짐짓 부루퉁하니 말했다.
“다른 불만은 없으신지요?”
“저는 남궁 형이 그것만 잘해도 소원이 없겠습니다. 식사나 하러 갑시다.”
“넵.”
**
그 밤.
“따라오너라.”
[주인님, 드디어 오늘은 저와 놀아주시는 건가요? 까르르르르르. 너무 좋아. 근데 왜 밖으로 나가는 걸까요? 좀 무섭네.]
후공은 색관조를 불러 천화서고 밖으로 나갔다.
멀리 가진 않았다.
외부 진법 너머 산야에서 멈췄다.
“다른 건 아니고, 이쯤 되었으면 너와 나 사이에 서로를 알아갈 시간이 되었다 싶다.”
[까르르르르르. 맞아요. 저도 주인님이 궁금했어요. 얼른 이야기해 보세요. 저는 들을 준비가…….]
“너부터 하자.”
[그것도 좋아요. 까르르르르르.]
색관조가 주변을 빠른 속도로 날아다녔다.
여간 정신 사나운 것이 아니어서 후공이 미간을 찡그렸다.
“가만히 좀 앉아 있어라. 어떻게 해버리기 전에.”
[네…….]
색관조가 시무룩하니 후공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야단맞은 것이 기분 나빴는지 눈매가 새침해졌다. 어깨에 앉은 건 무섭게 노려봐도 알아차리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어깨 말고 앞에.”
색관조가 앞쪽으로 날아 땅에 앉았다.
[이렇게요? 까르르르르르.]
이젠 앞이라 보였기에 언제 노려봤냐는 듯 색관조의 눈빛에 담긴 건 생글생글이었다. 후공은 이미 어깨에서 쏘아봄을 알고 있었기에 칭찬해주었다.
“미소 좋고요.”
[까르르르르르르르르.]
색관조가 좋다고 그 자리에서 통통 뛰었다.
“너는 나와 연결된 걸 알고 있겠지?”
색관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연결이 끊어지는 지점도 알고 있느냐?”
[네, 맞아요. 벗어나면 끊어졌다가 들어오면 다시 이어져요. 전 그게 보여요. 까르르르르. 저 대단하지 않아요?]
“내가 더 대단해.”
[네…….]
“농담이고. 어쨌든 너와 나는 끊어지고 연결되는 지점을 서로 알 수 있으니, 그걸로 신호를 삼자.”
[와아, 재밌겠다. 까르르르르르.]
“기억해라. 경계면에서 오가면 끊어지고 이어질 테지. 그것이 일곱 번이면 네가 날 부르는 것이다.”
[일곱 번이면……. 하나, 둘, 셋, 넷…….]
색관조가 경계면을 오가듯 그 자리에서 일곱 번을 왔다 갔다 했다. 후공은 그걸 꼭 해봐야 하나 싶어 당황스러웠지만, 알아가는 단계라 넘어가주었다.
이어 다섯 번과 열 번을 따로 신호로 정했다.
“너는 또 무엇을 잘할 수 있지? 내가 모르는 것이 있다면 말해다오.”
[까르르르르. 주인님, 저는 싸움을 잘해요. 까르르르르르. 제가 이야기했죠, 백년지주 죽인 거. 까르르르르르.]
“또?”
[까르르르르르. 그리고 전 또 싸움을 잘해요. 검은 깃털 매를 제가 후려갈겼던 거 기억하시죠? 까르르르르르.]
“죽여버린다.”
색관조가 시무룩해졌다.
후공이 짐짓 미간을 좁혔다.
“농담 아니야.”
[……네. 까르.]
“말해 봐.”
[저는 멀리서도 잘 보고, 또 잘 들을 수 있어요.]
“좋구나. 어느 정도인지 보자. 날아올라 봐라.”
[까르르르르르.]
날개를 한번 퍼득였다 싶은 순간 색관조가 하늘로 솟구쳤고, 이내 무향의 연계가 끊어졌다. 사백 장 너머였다. 기억하고 있었는지 그 언저리에서 일곱 번을 왔다 갔다 했다. 연계가 끊어졌다 이어졌다 했기에 후공은 그만 웃고 말았다.
풀을 뒤적여 개미 한 마리를 집어들었다.
물어보기도 전에 말이 나왔다.
[까르르르르르. 개미! 개미! 까르르르르르]
“오호!”
설마 했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안력만 보자면 거의 자신과 비교해도 떨어지는 수준이 아니었기에 후공은 순수하게 감탄하고 말았다. 까불어서 그렇지, 정녕 영물이라 할 만했다. 안력은 더 확인할 것도 없었다.
“이번엔 얼마나 소리를 잘 들을 수 있는지 보자꾸나.”
[네, 까르르르르르르!]
“…….”
후공이 입술을 달싹여 낮게 속삭였다.
[끽끽.]
색관조가 안 내던 소리를 내고는 땅에 내려와 화가 난다는 듯 발을 거칠게 굴렸다.
후공은 흡족히 고개를 끄덕였다.
“크흠, 들었나 보네. 훌륭하다. 참고로 너에게 한 말은 아니다.”
[주인님은 내게 했어. 틀림없어. 멍청한 놈이라고 했어! 너무 미워, 주인님은 나쁜 새끼예요.]
“…….”
[죄송합니다. 까르르르르르.]
후공은 입술을 깨물었다.
“재주가 이게 전부라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헉! 있어요. 다급히 생각났어요. 까르르르르르.]
“뭐냐? 다급히 들어보자.”
[제가 동화할 줄 알아요. 동화, 동화!]
“동화(同化)를?”
후공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만약 동화를 해낸다면 몇 번이고 머리를 쓰다듬어줄 수 있었다.
여태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색상의 화려함이었다. 보기는 좋아도 워낙 눈에 잘 띄니 활용도가 낮아지는 것이다.
하지만 주변 환경과 색의 동화를 이루어낼 수 있다면 그야말로 은신술이라 할 만했다.
[잘 보세요! 까르르르르르르르.]
잘 볼 것도 없었다. 색관조의 깃털 색이 어두워져 간다. 이내 검누렇게 변하여 밤의 흙색깔이 되니, 언뜻 보면 아예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하하하하, 가장 마음에 드는구나. 각오는 접어둬라.”
[휴우……. 살았어요.]
색관조가 한쪽 날개를 가슴팍으로 끌어오며 한숨을 내쉬었기에 후공은 또 웃고 말았다.
“잘할 수 있는 게 또 있는 거냐?”
[까르르르르르. 그럼요, 저는 목소리를 흉내낼 수 있어요.]
“그래? 어디 한번 들어보자. 소천개로.”
[기대하세요. 까르르르르르]
소천개가 팔딱팔딱 뛰더니 목소리를 냈다.
[형아, 밥 먹고 가자. 이러다 죽겠어. 응, 제바아아알.]
“하하하하!”
후공은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미묘한 차이는 있었지만 의식하지 않고 들었다면 소천개라고 착각했을 정도로 성대모사가 뛰어났다.
[어때요? 주인님. 똑같지 않아요?]
“소천개인 줄.”
후공이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를 들어보였다.
색관조가 파닥거렸다.
[까르르르르르르. 칭찬 들으니까 너무 좋아. 칭찬은 색관조를 춤추게 해. 까르르르르르르.]
“후후, 마음에 든다. 실컷 춰라.”
기대를 넘었다.
재주가 이리 많을 줄이야.
후공은 유능한 부하 하나를 얻은 기분이었다.
“은신이라는 말은 아느냐?”
[네, 알지요. 옛 주인도 무공을 익혔잖아요. 까르르르르르.]
“어, 그래. 을타진인이라고 했던가?”
[까르르르르. 맞아요. 높은 경지에 오르려고 늘 열심히 노력하셨어요. 목표가 천하제일인 후공을 뛰어넘는 것이었답니다. 전 그래서 웃었어요. 까르르르르르르르르.]
“왜?”
[웃기잖아요. 까르르르르르.]
“그니까 왜?”
[그 전에 넘어야 할 사람이 많을 것 같은데 건너뛰니까요. 까르르르르르르. 후공은 뚱뚱하다던데 돼지 뚱뚱보라서 얕보는 것 같아서 저는 웃겼……. 주인님? 주인님? 갑자기 어디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