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화 서고 대공자-121화 (121/460)

121화. 흉악한 방문자들.

둘은 밤이 깊도록 이야기를 나눴다.

대부분 주인은 물었으며, 수하는 답했다. 후공은 색관조에 대해 더 많은 걸 알게 되었고, 색관조는 주인에 대해 알게 된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색관조는 좋아했다.

새로운 주인이 마음에 들었고, 새로운 주인이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좋았다.

[형님, 안녕히 주무십시오.]

색관조는 묘빙빙의 목소리를 따라하고는 창 너머로 날았다.

까르르르 웃음소리가 뒤따랐고, 옅어졌다.

‘정신 나간 놈.’

후공은 피식 웃었다.

목소리를 들어서인지 한동안 묘빙빙이 떠올랐다.

천화서고로 돌아온 날, 빙빙은 그날 바로 백화장으로 돌아갔었다. 그날 이후, 아직 소식은 없다.

어쩌면,

‘어른이 되었음인가.’

***

다음 날.

색관조는 사라졌다.

동이 틀 무렵이면 아침을 알리던 색관조의 까르르르 소리도 들을 수 없었고, 천화서고 이곳저곳을 날아다니던 활기찬 모습도 볼 수 없었다.

다들 어떻게 된 일이냐면서 어리둥절을 금치 못했고, 소천개는 더 그랬기에,

“형아, 형아! 큰일 났어.”

득달같이 찾아왔다.

“큰일이라니?”

“묵언이가 안 보여. 어제 잠들 때까지만 해도 곁에 있었는데 눈 떠 보니까 없는 거야. 도대체 무슨 일이지? 떠나버린 걸까?”

“그럴 리 없다.”

“하지만 진짜 어디에도 없는걸?”

“잘 찾아봐라. 천화서고는 멋대로 들어오고 나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오후에 또 소천개가 찾아왔다가 한바탕 호소를 하고 돌아갔다. 어떻게 이렇게 태평할 수 있냐며, 같이 찾아보자고 징징거렸다.

저녁에도 왔는데, 그땐 달랐다.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색관조와 함께 왔다.

“하하하하, 형아! 묵언이가 장난쳤던 거였어. 숨바꼭질 말이야. 이 녀석 아주 웃긴다니까. 난 그런 줄도 모르고. 근데 어떻게 숨었는 줄 알아? 묵언이가 깃털 색을 바꿀 수 있어. 굉장하지 않아? 그치?”

“크흠……, 굉장하구나.”

“하하하하, 나 이제 갈게. 놀아야 하니까.”

“가 봐라.”

그 밤,

후공은 색관조를 데리고 밖을 나섰다.

“오늘은 수고했다.”

[주인님, 매우 힘든 날이었어요.]

색관조가 고개를 절레거렸다.

주인의 명을 받아 은신 상태로 반나절을 보낸 것인데, 이렇듯 장시간 주변의 색과 동화한 것은 여태 처음이었다.

“그랬을 테지.”

후공도 이해했다.

어떤 능력이라도 한계선이 있기 마련이다.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지점에 오면 지치는 건 당연했다.

을타인지 갑타인지 옛 주인과는 심산유곡에서 함께 지냈었다니 동화를 활용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고, 동화를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을 측정해 보는 건 생각조차 않았으리라.

[주인님, 근데 꼭 이렇게까지 노력해야 하나요?]

“지금보다 더 나아가는 건 기쁜 일이다.”

[주인님도 혹시 후공이 목표인 건 아니시겠죠?]

“넌 아직 모르나 보구나.”

[뭘요?]

“이미 내가 후공이다만.”

[까르르르르. 그런 게 어딨어. 주인님은 한 번씩 웃겨. 까르르르르르르르.]

색관조는 날개로 후공의 어깨를 두드렸다.

“크흠……. 어쨌든 강호를 거닐어야 한다면 넌 너의 능력을 더 갈고 닦을 필요가 있다.”

[왜요? 왜 그래야 해요? 주인님이 저를 지켜주실 거잖아요.]

“이 강호에 나보다 강한 사람이 없을까?”

[많아요?]

“아직은. 기운은 회복되었느냐?”

[하수오 덕분에요. 힘이 넘쳐난다아아아아~~~. 색관조, 나가신다.]

“후후후.”

후공은 웃고 말았다.

아직 다 회복되진 않았을 텐데 녀석의 너스레가 대단하다.

“자, 그럼 이쯤에서 강호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려주마. 비수를 날릴 것이다. 네 스스로 안전하다 싶은 지점까지 날아오른 후 그곳에 머물러 봐라.”

[비수요? 하늘인데 그게 위험할 리가요. 까르르르르르르르.]

색관조가 높이 솟구쳐 날아오르면서 순식간에 무향의 연계가 끊어졌다. 색관조는 그 지점에서 잠시 머무는가 싶다가, 혹시 모른다 싶은 마음이 들었는지 더 위로 날아올라 멈췄다.

후공은 준비해온 비수를 손에 쥐었다.

“그 지점에서 절대 움직이면 안 된다.”

[네! 까르르르르르.]

후공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색관조는 들을 수 있었다.

“셋을 세면 발출하마.”

[네!]

“하나…… 둘…….”

색관조도 대비했다.

파란 눈을 빛내며 안력을 돋웠다. 거리는 멀다. 이 정도 높이라면 날아오는 비수는 느리게 보일 정도요, 눈을 감고도 피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절대 움직이지 말라니, 주인은 생각보다 걱정이 많은 사람이…….

생각은 거기에서 멈췄다.

쌔앵!

뭔가가 머리 옆을 스쳐 지나간 것이다.

셋이라는 말을 들었다 싶은 순간, 거의 동시에 머리깃털이 흩날렸기에 색관조는 추워졌다. 무엇이 지나간 걸까. 물론 알고 있다. 그런데 아예 보질 못했다. 빛이 번쩍였다 싶은 순간 이미 비수는 스쳐 지나쳐간 뒤였다.

만약 주인의 말을 무시했다면?

우측으로 조금이라도 움직였다면?

죽었다.

머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없어졌을 것이다. 옛 주인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그래서,

꿀꺽. 다짐했다.

말을 잘 들어야겠다고. 적당히 까불어야겠다고.

“뭐하냐? 내려와라.”

[네! 까르르르르르르르르.]

이내 어깨에 내려앉았다.

웃으며 내려와 놓고는 말이 없어졌다.

떨고 있기도 해서, 그 떨림은 고스란히 후공에게 전해졌다.

“날이 춥지?”

[밤이라서 그런가? 오들오들 추워요.]

“하긴 여름밤이 춥긴 하지.”

[…….]

**

나흘 후에는 묘빙빙이 찾아왔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부터 시작해서 거지들과 요란스럽게 떠들었다. 이어 해가 질 무렵, 후공은 묘빙빙과 단둘만의 시간을 가졌다.

전망 좋은 풍화정에서였다.

저물어가는 석양을 한참 바라보다 묘빙빙이 입을 열었다.

“형님, 잠시 천공단을 떠나 한동안 수행에 들까 합니다.”

후공은 잠시 물끄러미 바라봤다.

짐작은 하고 있었다. 어른스러워졌을지도 모른다 싶었는데 맞았다.

남궁세가에서 보낸 그날, 그 밤은 이미 죽음이었기에 스스로 돌아볼 기회가 되었으리라. 가족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밤이요, 그 와중 자신의 한계도 극명히 보았을 테지.

“갑자기?”

짐짓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갸웃해주었다.

묘빙빙이 웃는다.

알면서 모른 척한다는 것쯤은 이제 묘빙빙도 알고 있는 것이다.

“내내 고마웠고, 즐거웠습니다.”

“영영 작별인가.”

“그럴 리가요.”

“천공단의 군사 자리는…….”

“그건 언제까지나 제 겁니다.”

“하긴, 유일하게 생각을 하는 사람이니.”

“하하하하.”

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서는 길,

은앙개, 소천개, 남궁연, 색관조가 함께 배웅했다.

떠들썩하게 인사를 나눈 후, 묘빙빙은 홀로 산을 내려갔다.

소천개의 말이 떠올라 그녀의 입꼬리는 저절로 올라갔다.

“누나, 지금도 센데 얼마나 강해지려고 그러는 거야?”

“엄청날걸.”

이어 천공단주의 말도 떠올랐다.

“빙빙.”

“…….”

그 말에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잠시 멍해지고 말았다.

여태까지 호칭은 ‘묘 소저’였지. 빙빙이라 불린 건 처음이었다. 그런데 그 말이 왜 그리도 듣기가 좋은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또 보자.”

“또요?”

“그래.”

또 보자, 라는 말이 다르게 들렸다.

분명 청년의 목소리인데 마치 어른의 목소리처럼, 널 아끼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또 봐요.’

**

오늘은 일이 일찍 끝났다.

술 한잔? 해가 길다. 태평표국의 표두인 그는 곧장 집으로 들어가기에는 이르다 싶었다.

적당히 취했다. 너무 취하는 건 좋지 않다. 내일도 해야 할 일은 한 가득이다. 나는 관리의 화신이지. 혼자 말하고 혼자 웃었다.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날이 서서히 어두워지고 있을 때였다.

“어이, 거기.”

표두는 목소리를 쫓아 돌아봤다가 움찔했다.

“누, 누구?”

그는 어지간해서는 위축되는 사람이 아니었다. 표두라는 직책은 거저 얻은 것이 아니니까. 하지만 지금은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두 놈이다.

두 놈 모두 얼굴이 흉악스럽기 이를 데 없었다.

두 놈이 다가왔기에 표두는 주춤 뒷걸음질쳤다. 하지만 그런 건 의미 없었다. 두 걸음을 떼기도 전에 어느샌가 두 놈은 앞쪽과 뒤쪽에 서 있었다.

‘죽는 건가? 왜 나를?’

표두는 식은땀에 등이 흥건해졌다. 움직임만으로도 충분히 인지했다. 자신이 어찌해볼 수 있는 자들이 아니었다.

두 놈이 말한다.

“클클, 웃긴 놈이네. 뭔데 겁먹고 그래? 누가 죽인대?”

“너 표두지?”

표두는 자신의 옷을 내려다봤다.

누가 봐도 표두다.

“……그, 그렇소만.”

“하나만 묻자.”

“뭘 말입니까?”

“천화서고는 어디로 가면 되지?”

“저, 저는…… 그게…….”

두 놈 중에 하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생각 잘해. 모른다는 말이 나오면 곤란해.”

***

두웅! 두웅! 두웅!

천화서고에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두웅! 두웅!

세 번을 지나, 다섯 번에서 멈췄다.

세 번은 환기요, 다섯 번은 실질적인 위협을 뜻하는 경고음이다. 외부의 적이 출현했다는 뜻.

호위대에 비상이 걸렸고, 윤과 부몽이 상대를 파악했다.

윤은 진법을 개진할 수도 있기에 남았고, 부몽을 큰 형님께로 보냈다.

좌정하고 있던 후공도 경고음을 들은 터.

호흡을 가다듬고 좌정을 거두어들인 후, 몸을 일으켰다.

허겁지겁 달려오는 발소리가 부몽이었기에 먼저 나가 맞이했다.

“부몽, 무슨 일이냐?”

“혀, 형님, 흉악한 자들이 나타났습니다. 그, 그자들이 큰형님을 만나러 왔다면서 문을 열어달라고 하고 있습니다.”

“부몽, 진정해라. 숨 쉬어.”

부몽은 헐떡이다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그래, 그들은 누구라고 하며 나를 찾더냐?”

“쌍웅, 네! 무산쌍웅이라고 했습니다. 천공단이며, 형님의 수하라고 말했습니다.”

“……?”

“큰형님. 쌍웅이면 두 영웅이라는 건데, 어떻게 봐도 그자들은 영웅의 용모가 아닙니다. 그런 자들이 천공단일 리가 없는데 천공단은 또 어떻게 알고 천공단 행세를 하며 들이닥치려 하는지, 이 아우는…….”

“내 수하들이다.”

“네?”

부몽이 멍해져 눈을 깜박였다.

후공은 웃어주었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면 곤란하지만, 그놈들은 나쁜 얼굴이 틀림없으니 뭐 어쩔 수 없지. 하지만 나쁜 놈들은 아니다.”

“그러니까요. 그게 나쁘지 않을 수가 없는 인상…….”

“둘뿐이더냐? 다른 이들도 있을 텐데? 피리 부는 노인이라든지, 세 명의 얼간이라든지.”

“네, 둘뿐이었습니다.”

“그래?”

후공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가 생겼나 보구나. 안으로 들이고 내게 데려와라.”

**

이내 후공은 무산쌍웅을 맞이했다.

무산쌍웅은 극진히 예를 갖추고 인사를 건넸다.

“형님,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저희가 많이 늦었습니다.”

후공은 자리를 권하며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쌍웅만 온 걸 보면 일이 틀어진 모양이군요. 무극살부 부주의 목이 그렇게 단단하던가요?”

그럴 리가 없을 텐데, 라며 물음을 던졌다.

“형님, 그게 상황이 묘하게 되었습니다.”

“……?”

“주양 공자가 인질로 잡혔습니다.”

후공이 미간을 찡그렸다.

즉시 머리에 의문 부호가 떠올랐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만박자가 곁에 있었을 텐데,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만박자의 무공 수준은 금적자와 견줄 만하다. 무극살부 부주가 제법 한 수를 지니고 있다 해도 대단할 것이 있겠는가. 고작 살수 중의 우두머리일 뿐이거늘.

“만박자도 잡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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