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화 서고 대공자-123화 (123/460)

123화. 열두 개의 시선 중에.

후공과 천공단은 안휘를 넘은 후에는 산맥을 타고 이동했다. 하남성과 산동성의 경계를 지나 하북성 남단을 관통하여 소요파가 있는 산서의 동쪽 승곡으로 향하였다.

거의 도착할 쯤,

천공단 4인, 금적자와 항마삼협은 멸살단 4인과 함께 있었다.

소요파가 보이는 낮은 언덕이었다.

멸살단이 처음부터 네 사람뿐인 건 물론 아니었다.

처음에는 많았다. 150명을 상회했다.

천공단이야 생성 목적이 ‘천화서고 대공자’의 호위 임무인 탓에 처음부터 소수의 인원이었지만, 멸살단의 목적은 무극살부의 섬멸인 탓에 처음에만 해도 다수가 가동되었다.

단지 시간이 지나는 과정 속에서 숫자가 줄어갔다. 살수들에게 목숨을 잃어서는 아니었다. 만박자는 살수들이 줄어들면 멸살단도 그에 맞춰 줄여나간 것이다.

주양이 돈이 아까워 그러냐고 신경질을 내며 물었을 때, 만박자는 번잡스러움을 피하고 효과적으로 움직이기 위해서라고 답해주었다.

그리하여 최종적으로 남은 멸살단은 넷.

노래하는 불평진인.

산발머리에 야수의 눈을 지닌 낭인왕.

녹림 서열 8위, 신풍채주.

그리고 절정의 미청년 추혼검 설영이었다.

끝까지 남은 만큼 강한 자들이고, 또 의미를 지닌 자들임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

천공단의 정예와 멸살단의 정예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삐리리리리~~~ 삐리삐삐~~~~ 삐리리~~~

“랄랄라~~~ 라랄라~~ 랄라라~~~.”

금적자는 피리를 불었고,

그 곁에서 불평진인은 노래를 흥얼거렸다.

다른 이들은 별 생각 없었다. 그러든가 말든가였다. 금적자와 불평진인의 무공이 높은 것도 하나의 이유였지만, 근본적으로는 딱히 다른 할 일이 없는 것이다.

닭 쫓던 개 신세이니까.

주양과 만박자는 잡혀있으니까, 피리든 노래든 해도 대수로울 것이 없었다.

노래는 전염되었다.

녹림 서열 8위 신풍채주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다 흥얼대기 시작했다.

“흐응~~ 흐으으응~~~ 날은 맑고~~ 새는 멋지게 나는데~~ 멸살단주는 잡혀가고, 천공단주는 오질 않네~~. 흐으응~~ 흐으으응~~~. 좆같아, 아주 좆같아, 흐으으응~~~~.”

그 곁에서 야수의 눈을 지닌 낭인왕이 코웃음쳤다.

“흥, 천공단주가 뭐라고! 그가 온다고 달라질 일이 있으려나.”

삐리리~~~ 삐삑~~~ 삐리리리~~~

천공단주를 비하하는 말에 심기가 불편해진 금적자가 삑사리를 냈다. 반면 항마삼협은 대놓고 감정을 드러냈다.

“낭인 놈아! 방금 어디서 개새끼 한 마리가 짖은 것 같은데 못 들었나?”

항마삼협의 눈길이 서늘하게 낭인왕에게 날아들었다. 낭인왕은 야수의 눈을 빛내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후후, 누가 뭐랬나? 발작하긴. 천공단주 이야기만 나오면 여지없군. 뭐 일단 천공단주를 기다려준다는 약속은 했으니 그건 지킨다. 하지만 계획이 내 성에 차지 않으면 그땐 각오해둬라.”

“그냥 넌 기다리지 마라.”

“오호, 그래?”

항마삼협과 낭인왕의 기세가 변하면서 살기를 띠니 이내 주변 공기가 서늘해졌다.

순간,

금적자의 피리 소리가 높아졌다.

불평진인의 노랫소리도 커졌다.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항마삼협과 낭인왕 양측은 이내 기세를 누그러뜨렸다.

다시 평온이 찾아왔다. 겉돌고 어색한 평온이었다.

하지만 그 평온함도 오래가진 않았다.

한순간 피리 소리와 노랫소리가 뚝 그친 것이다.

금적자와 불평진인이 시선을 갸웃하며 우측을 향했기에 모두 그 방향을 바라봤다. 무엇인가, 누구인가, 다가오고 있다는 뜻인 것이다.

이내 기척이 들렸고, 빠르게 가까워졌으며, 한순간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무산쌍웅이었다.

“클클클, 형님께서 오십니다.”

“요오오!”

“오셨구나!”

금적자와 항마삼협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멸살단 4인도 주섬주섬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어 느긋하게 후공과 일행이 도착했다.

“하하하, 단주! 이게 대체 얼마만인가!”

“형님, 오셨습니까?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금적자가 한껏 웃음을 터뜨렸고, 항마삼협이 환한 얼굴로 일제히 머리를 숙였다.

“다들 이렇게 다시 보니 좋군요.”

너무 반가워하니 후공도 너털거리고 말았다.

떨어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몇 년 만에 보는 것도 아니어서 별로 반가울 것도 없는데, 막장 놈들이 이 순간만 기다린 것처럼 좋아하는 모습이라니.

이내 금적자와 항마삼협은 거지들과 재회의 기쁨을 나누며 소란을 떨었고, 천공단 신입도 그 소란 속에 휘말렸다. 묘빙빙 어디 갔냐고 떠들고, 신입의 가문도 묻고 난리가 났다.

그 사이 후공은 멀리 시선을 두었다.

자령안을 은은히 밝힌 채로 의식은 더 멀리 두었다.

지켜보는 눈들.

‘하나…… 둘…… 셋이라. 흐음…… 기묘하군.’

이곳에 도착한 순간,

자신을 향해 쏟아져 온 시선은 열두 개.

다섯은 별 볼 일 없었고,

넷은 멸살단이었다.

신경 쓰이는 건 나머지 세 개의 시선이었다.

정확한 위치를 가늠할 수 없었다. 경지가 예측이 안 되는 자들. 생각하던 것과 달라 갸웃해졌다. 숫자가 다르다. 왜 셋인가? 이는 승기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후후, 무섭네.’

이내 의식을 거두고, 네 명의 멸살단을 바라봤다.

이들이 멸살단인 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오는 길에 무산쌍웅에게 들었던 터.

‘형님, 현재 멸살단은 넷만 남아 있습니다. 그 면면은…….’

멸살단 중 둘은 후공도 익히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불평진인과 신풍채주.

둘 다 모자란 놈들이었다.

그렇게 멸살단을 바라보고 있자니 무산쌍웅이 눈치 빠르게 나섰다.

“형님, 말씀드린 멸살단입니다. 이쪽은…….”

무산쌍웅이 소개했고, 서로 인사를 주고받았다.

“랄랄라~~~, 난 불평진인이라고 하네. 랄라라라~~.”

“녹림 서열 8위 신풍채주일세.”

이래서 모자란 놈들이다.

인사하는데 노래하는 모자란 놈, 그리고 서열이 뭐라고 아무 관심도 없는데 꼭 등수를 밝히며 자신을 소개하는 모자란 놈.

이어 낭인왕과 추혼검이 나섰다.

“난 낭인왕이다. 반갑다.”

“추혼검 설영입니다.”

“반갑습니다. 오는 길에 두 분의 말씀도 많이 들었습니다.”

후공도 마주 인사했고, 이 두 놈도 모자라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낭인왕은 야수의 눈빛을 했지만 모자라 보였고, 추혼검 설영은 빼어난 외모를 지녔지만 모자랐다.

둘 다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백중지세였지만 추혼검 설영이 더 그래 보였다. 어떻게 봐도 그녀는 남장을 한 여인인 것이다.

오는 길에 무산쌍웅이 말하길, 모두가 남장여인이란 걸 알고 있는데 설영 혼자만 아직까지 완벽히 속이고 있다고 믿고 있어서 다들 차마 아는 척을 못하는 중이라고 했다.

과연 멸살단이요, 과연 만박자의 안목이었다.

미친 새끼 같으니라고.

‘뭐 그건 그렇다 치고.’

후공은 멸살단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이렇듯 멸살단의 정예분들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여기서 이야기를 나누기보단, 다들 식전이실 테니 자리를 옮겨 말씀을 이어가는 건 어떻습니까.”

식사 때가 되기도 했지만, 이야기를 나누기에 이곳은 적절치 않다.

“랄랄라~~~.”

“그러지.”

“그럽시다.”

“좋아요.”

멸살단이 응하면서 함께 걸음을 옮겼다.

뒤처져 걸으며 후공은 다시 의식을 퍼뜨려 멀리까지 훑었다.

두 시선은 남았고, 하나의 시선은 사라졌다.

후공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거지. 소요파의 귀신은 둘일 뿐이야.’

비로소 숫자가 맞다.

귀신이 셋인 건 버겁다. 둘도 사실 장담할 수 없으니.

그래서 다행이었다.

그럼 나머지 하나는 누구인가?’

짐작 가는 바라면 한 사람이 있긴 하다.

후공은 앞을 걷는 남장여인 설영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저 녀석을 따라온 건가. 하긴, 정예와 거리가 먼 아이이긴 하지.’

**

식사 자리에서는 가벼운 대화가 오갔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장소를 옮겨 손님이 거의 없는 한가한 주루에 앉았을 때였다.

기다렸다는 듯 낭인왕이 먼저 입을 열었다.

“천공단주, 그대의 계획을 듣고 싶군.”

“계획이라……. 그런 건 따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만.”

“그게 무슨 뜻이지?”

낭인왕이 눈을 빛냈다.

후공이 갸웃했다.

“들으신 대로입니다.”

“여기까지 달려와 놓고 아무 계획이 없다고? 주공자와 만박자를 구해내고, 소요파를 응징한 다음에는 무극살부 부주의 보물을 손에 넣어야 마땅한데, 아무 생각이 없다고? 그게 지금 할 소리인가!”

천재라더니 헛된 명성일 뿐이었냐며 말을 마쳤는데, 거의 호통이었다.

곁에 앉은 천공단은 발작하지 않았다. 그냥 실실 웃고 있을 뿐이었다. 자신들이 나설 필요가 없다는 것쯤은 다들 경험하여 아는 것이다. 때가 되어 어떻게 하라고 지시가 떨어지면 그때 비로소 하라는 대로 하면 그만이었다.

그래도 소천개만은 배려심을 보였다.

“야수 아저씨, 목소리 낮춰요. 그러다 죽어요.”

“뭐가 어째!”

낭인왕이 매섭게 쏘아보자, 소천개가 얼른 딴청을 피웠다.

후공은 뚱하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낭인왕께서 말씀하신 계획은 잘 들었습니다. 너무 원대한 것이, 저와는 생각이 크게 다르군요.”

“그러니까 그 다른 생각이란 걸 말해보라는 것 아니냐!”

“크흠…….”

후공은 침음성을 흘리며 턱을 매만졌다.

화가 많은 놈이었다.

화가 날 때마다 노래를 부르면 화가 줄어드는데 지금 알려줄까 하다가 일단 미뤄두었다.

“사실 너무 단순하여 생각이랄 것도 없습니다. 저는 꽤 많이 생각해 봤습니다만 어떻게 해도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상대가 산서제일파요, 구대문파는 아니어도 십이대문파라 칭한다면 그 안에 들고도 남을 소요파가 아닙니까. 소요파가 원하는 대로 해야지 다른 수가 없습니다. 무극살부와의 일은 이쯤에서 매듭짓는 것으로 잘 이야기한 후 주양과 만박선생을 데리고 나올 겁니다.”

“뭐?”

“화내실 것 없습니다. 만박선생이 풀려나면 낭인왕께선 이후 멸살단과 의기투합하여 소요파를 치든 보물을 빼앗든 원하는 대로 하시면 됩니다. 저는 곧바로 줄행랑을 칠 것이니 너무 나무라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하하하하!”

낭인왕이 웃음을 터뜨렸다.

“내 예상대로군. 역시 기다리나 마나였어.”

“기대를 많이 하셨나 봅니다. 제가 기괴한 묘수라도 펼칠 줄 알았습니까.”

“당연하지. 천재라고 떠들썩해서 기대했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더니만 딱 그짝이 아니냐!”

이어 낭인왕이 천공단을 향해 소리를 높였다.

“천공단 생각은 어떠한가. 설마 함께 줄행랑을 친다는 소리를 하진 않겠지?”

“줄행랑일세. 무서워.”

“아무렴, 무조건 줄행랑이지.”

“클클, 우린 뒤도 안 돌아볼 참인데?”

“맞아, 무조건 무조건이야!”

“저도 그렇습니다.”

금적자부터 시작해서 남궁연까지 모두가 줄줄이 거부하자 낭인왕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어처구니가 없군. 금적선생? 항마? 무산? 여태 우리가 나누었던 말들은 다 잊었소? 함께 있는 내내 소요파를 다 쓸어버린다고, 무극살부 부주의 목은 무슨 일이 있어도 따버린다고 그대들이 떠들어놓고, 이제 와서 뭐라고?”

항마삼협 중 이열이 어깨를 으쓱했다.

“멍청아, 그거야 형님이 목을 따오라시니까 그랬던 것 아니냐! 근데 지금처럼 형님 생각이 바뀌었으면 바뀐 길로 가는 게 우리 길인데, 뭔 옛날이야기를 떠들고 있어!”

낭인왕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사내대장부들이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다들 아무 데도 못 가! 천공단주도, 천공단도!”

후공이 뚱하니 올려다봤다.

생각을 아예 안 하는 놈이었다. 그럼 가르쳐주는 수밖에.

“낭인왕께선 뭔가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무슨 착각?”

“이 자리에 천공단은 모두 제 말 한마디면 일제히 그쪽을 향해 공격을 가할 텐데, 안 무섭습니까?”

“……?”

“아니면 혹시 멸살단을 믿고 이러는 겁니까?”

“당연하지!”

“그것도 착각입니다.”

“……응?

”멸살단은 낭인왕의 편이 아닙니다. 불평진인께선 만박선생과 친분이 있어 만박선생을 구하는 게 먼저이기에 제가 반드시 필요하고, 신풍채주께선 녹림왕이 소 키우며 살라고 해서 돈 벌어보겠다고 여기 앉아 있는 것뿐이며, 추혼검은 남장 여인일 뿐이라 사내대장부들 어쩌고하고는 거리가 멉니다.”

“…….”

낭인왕이 하나씩 되새기는 듯 멸살단을 둘러봤다.

불평진인이 박장대소를 하다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신풍채주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으며, 추혼검은 남장여인이란 걸 들켜버렸다면서 혼자 놀라 연신 콜록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낭인왕이 낭패한 얼굴이 되었을 때,

천공단주가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넌 이제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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