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화 서고 대공자-131화 (131/460)

131화. 모든 것을 되돌릴 때다.

어부가 되었다.

작살을 들고 잠수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그물을 펼쳐 고기잡이에 나섰다. 그물은 배 위에서 던져도 되는데, 그런 식은 성의가 없다는 말에 물속에서 그물질을 했다.

고된 시간이었다.

천공단이 닦달을 하는 터라 해적들에게 쉴 틈 따윈 없었다.

“잡았습니다, 제가 잡았습니다!”

잠영했던 해적 하나가 물고기를 들어올리며 환호성을 내지르며 성과를 과시했다. 한데 물고기가 손바닥만 했다.

“너 이 새끼 정신 안 차리냐! 작은 것 말고 아까처럼 큰 걸 잡으란 말이다!”

“저…… 그게 아니라 이게 작긴 해도 비싸고 맛도 좋은 고급 횟감입니다.”

“그래?”

“네, 이런 게 진짜배기입니다.”

“그럼 이제 모두 그것만 잡아라!”

“…….”

해적들은 시무룩해졌다.

이거 잘 안 잡히는 고기인 것이다. 신경 쓴다고 썼다가 일감만 늘었다. 비참했다. 이러려고 해적이 된 게 아니었기에 해적들의 자괴감은 말로 할 수 없었다.

해적왕은 더 비참했다.

그는 회를 뜨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얼굴에 불만의 기색을 드러내진 않았다.

비참함보다는 두려움이 몇십 배나 컸기에, 젊은 서생을 향해 생글생글 미소 지었다.

“저기, 이거 한번 드셔 보십시오. 이 부위가 보기와 달리 가장 맛이 좋습니다. 쫄깃한 식감에 뒷맛은 고소한 향이 번지는데, 그 향이 일품입니다.”

젊은 서생이 이 무리 중 서열 1위인 걸 해적왕은 인지한 상태. 초장에 모두 두들겨 맞고 이미 크게 목청을 높여 인사도 했던 터다.

‘천공단주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해적단이 천공단주께 인사 올립니다!’

‘천공단주시여! 천천세, 만만세!’

뭘 알고 외친 건 아니다.

불러주는 대로 따라서 소리쳤을 뿐.

어째서인지 젊은 서생이 뚱하니 바라보는 모습이 목청이 작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천천세 만만세를 외칠 때는 목이 터져나갈 정도로 외쳤다.

해적왕은 이어 서생과 함께 앉아 있는 노인과 신비한 분위기의 아름다운 여인에게도 회를 떠 곱게 갖다 바쳤다.

천산신녀가 감탄했다.

“오호! 정녕 맛이 일품이군요. 대공자와 가주 덕분에 본녀가 이런 호사를 누리게 됩니다.”

“허허, 노부 또한 이런 맛은 처음입니다. 하지만 신녀께서 말씀하신 ‘덕분에’라는 말을 놓고 보자면, 노부보다는 소요파가 들어가야 적절해 보입니다.”

맛이 좋다는 말에 해적왕이 헤실거렸다.

악가주는 그런 해적왕을 보며 껄껄 웃고는 천화서고 대공자를 바라봤다.

“대공자, 한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네만.”

“편히 말씀하십시오.”

“소요파에 관해서일세. 노부가 짐작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자네가 들어보고, 틀린 부분이 있다면 이야기를 해줬으면 싶네.”

“네.”

“소요파 장문인 월령자는 무극살부를 통해 모종의 살인 청부를 하였고, 그 일이 약점이 되어 무극살부 부주에게 끌려다니는 중이다. 어떠한가?”

“맞습니다.”

후공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특별할 것 없는 추론이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누구라도 그런 생각에 이를 수밖에 없다. 이런 짐작은 소요파 내부에서도 은밀히 흘러나오고 있으리라.

천산신녀도 그저 회 한 점을 집어들 뿐이었다.

당연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악가주의 말이 이어졌다.

“월령자가 부주를 죽여 없애면 간단히 마무리될 일이지만, 무극살부 부주는 그리 녹록한 인물은 아니었을 테지. 아마도 보물이라 함은, 과거 그 살인청부의 증거나 정황 요소들을 따로 보관해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네. 부주에게 있어 그것은 자신의 목숨을 지킬 수 있는 보물이 틀림없겠지.”

후공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소요파에 관해 자세한 이야기를 나눈 것도 아니거늘 악가주가 명쾌하게 상황을 이해하고 있었기에, 후공은 과연 한 가문의 수장답다고 여겼다.

보물은 보물이 아니다.

그건 오직 무극살부 부주에게만 보물일 뿐이다.

월령자에겐 보물일 수도 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그건 독이다. 어떻게든 치워 없애야 할 고약한 오물일 터.

거기에 천산신녀가 말을 보탰다.

“아마도 현재 무극살부 부주는 외부에 조력자를 두고 있거나, 특정 표국을 통해 발송 기한을 예정해 두었나 보군요. 만약 자신이 살아서 돌아가지 못할 경우, 혹은 기한 내에 연락이 없다면 그 증거와 정황을 기록한 서신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도록 말이죠. 제 추론은 어떤가요, 대공자?”

“훌륭하십니다.”

그럴 것이다.

서신이 날아갈 장소는 한곳이 아닐 것이다. 무림맹, 구대문파, 혹은 어떤 명망가, 소요파로도 날아들게 예정해 두었다면 월령자가 숨기고 싶어 하는 행적은 만천하에 공개될 것이다. 그 결과는 파멸이다.

설령 그것이 공갈협박이라도 월령자로서는 확인할 길이 없으니 당장 무극살부 부주를 죽일 수 없는 것이다.

그쯤에 악가주가 미간을 좁혔다.

“난 여기까지네. 하지만 이제 궁금한 건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청부를 자행했기에 월령자가 그토록 휘둘리는가 하는 점이네. 그리고…….”

말을 멈춘 악가주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었다.

“난 어째서인지 자네가 그 답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

“호호, 저도 그렇답니다.”

천산신녀까지 궁금하다는 듯, 어서 말을 해보라는 듯 빤히 바라보았기에 후공은 너털거리고 말았다.

물론 알고 있다.

짐작이라고 해야 옳을지도.

그래도 거의 확신이다.

처음 소요파가 무극살부 부주를 비호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순간 떠올랐다. 과거의 의문이 조각처럼 맞춰졌다.

하지만,

“그럴 리 있습니까. 두 분은 저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하시는군요. 저로 말할 것 같으면 이번에 소요파 장문인 앞에서 숨도 못쉬고 바짝 엎드렸다가 나온 사람이지 않습니까.”

후공은 말해줄 생각이 없었다.

아직 말할 때는 아니다.

확인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주절주절 떠들고 싶은 내용도 아니다.

또한 말을 하고 나면 출처를 밝혀야 하니 이후 둘러대야 하는 번거로움도 따라온다. 어차피 시끄러운 수하가 돌아오면 알게 될 일이기도 하다.

“흐음, 그런가.”

“하긴…….”

너무 나갔다 싶은 모양인지 두 사람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둘 다 완전히 수긍한 표정은 아니었다.

후공은 분위기를 바꾸고 싶었다.

해적왕을 바라봤다.

“해적왕.”

“네.”

“넌 회 뜨는 솜씨가 좋구나.”

“감사합니다.”

새파랗게 젊은 놈이 반말을 했지만 해적왕은 조심스러웠다. 기분이 나쁜 것도 아니었다. 이 사람의 말 한마디면 바로 수장당하는 것이다.

“너의 수하들이 고기를 잘 잡고 넌 회를 잘 뜨니, 이참에 아예 다들 어부가 되는 건 어떠냐? 또 넌 가게를 차려도 장사가 잘 해낼 수 있겠다 싶다. 해적루, 뭐 이런 걸로 말이다.”

“…….”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어버렸기에 해적왕은 입을 꾹 닫았다. 그것이 화를 불러왔다.

“아니, 이 새끼가 형님이 말씀하시는데 대답을 안 해버린다고?”

“당장 네! 라고 대답 안 하냐!”

수영 잘하고 돌아온 무산쌍웅이 윽박질렀다.

둘은 생긴 것도 해적 이상이어서 해적왕이 움찔했다.

“새, 생각해 보겠습니다.”

“생각만 하면 안 돼!”

“바로 오늘부터 가게 알아봐!”

“……네.”

해적왕이 침울하게 답했다.

하지만 또 대답 소리가 작다고 무산쌍웅이 길길이 날뛰었다.

그 광경에 악가주와 천산신녀가 웃음을 터뜨렸다. 두 사람도 해적왕에게 장사를 권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것이다. 대공자가 말하는 걸 들어보면 한 번씩 엉뚱하기 짝이 없었다.

신녀가 악가주를 보며 입을 열었다.

“가주, 방금 제가 대공자와 해적왕을 보고 누구누구를 떠올렸는지 알아맞춰 보시겠습니까.”

“하하, 신녀께선 갑자기 문제십니다. 흐음…… 누굴까요?”

“조금 언질을 드리자면 여긴 바다고, 그쪽은 산이랍니다.”

갸웃하던 악가주가 이내 대폭소했다.

“하하하하, 알겠습니다.”

맹주 후공은 녹림왕에게 소를 키우라고 하고 소고기를 굽게 했는데, 천화서고 대공자는 해적왕에게 물고기를 잡고 회를 뜨라고 하고 있다면서 악가주가 박장대소했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이었기에,

후공은 뚱해졌다.

*목응자.

소요파의 전대 장문인이다.

그리고 그에겐 세 명의 제자가 있었다.

목령자, 화령자, 월령자.

제자 중 둘은 비슷했고, 하나는 달랐다.

목령자와 화령자가 성품이 차분하고 고요하며 말수가 없이 우직한 면모를 지녔다면, 월령자는 성격이 활달하여 여러 친구들을 두었고, 두루 사람들과의 관계 면에서 뛰어났다.

무공의 성취 측면에서는 목령자가 월등했다.

스승이 건재한 시기에 이미 그는 스승의 경지에 근접해 있었다.

그다음이 화령자였다.

월령자의 성취는 나쁘지 않았지만 위의 두 사형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모두가 차기 장문인은 목령자가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또 당연하게도 목응자는 첫째 목령자를 내정하기도 했다.

그건 후공도 마찬가지였다.

목령자는 후공이 볼 때도 흠이 없었고, 존경하는 강호의 선배인 목응자와 닮은 면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문제가 생겼다.

목응자의 천수가 다해가던 시기, 임종이 임박할 쯤 목령자의 부모와 가족이 강도를 당해 하루아침에 몰살당한 것이다.

목령자의 부모와 가족은 촌락에서 논밭을 가꾸며 살아가는 평범한 집안이었다.

목령자가 받은 충격은 말로 할 수 없었다. 그날 이후 목령자는 슬픔에 젖었고, 한편으로 강도들을 찾아 헤맸지만 찾지 못했다. 방황과 절망의 시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게 목령자가 떠도는 사이, 장문인의 위는 월령자에게로 넘어갔다.

둘째인 화령자가 이어받지 못한 건, 목령자가 떠도는 길에 화령자가 내내 그와 함께하며 곁을 지켰기 때문이었다.

화령자는 그런 사람이었다.

대사형의 불운을 타고 자신이 장문인이 되는 건 온당치 않다고 여겼고, 또 곁에 함께 있어주어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이었다.

친족 몰살에 월령자를 의심하는 이는 없었다.

당시 후공도 그랬다.

이유는 단순하다.

사람이면 그럴 수 없는 것이다.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함께 자라고 배운 사형제 지간이 아닌가.

또 다른 이유도 있다.

그 촌락에서 몰살당한 집안이 비단 목령자의 집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총 세 집안이 강도를 당했고, 살해당했다.

또한 월령자가 꾸민 짓이라는 의심이 생기려면 둘째 사형인 화령자의 집안까지 화를 당해야 한다. 그랬다면 의구심이 따라왔을 것이다. 한데 화령자의 집안은 아무 일도 없었다.

그렇기에 당시에는 불운이 덮쳤다고만 생각했을 뿐이다.

모두가, 그리고 후공도.

‘분명 그때까지는…….’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제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무극살부 부주가 월령자의 비호를 받는 순간, 당시에 벌어진 갑작스러운 불운이 이해되었다.

촌락에서 세 집안을 몰살시킨 것은 살인 청부라는 의심의 여지를 남기지 않으려는 것이었으리라.

월령자가 화령자의 집안을 건드리지 않은 건, 화령자라는 인물을 잘 알기 때문일 터. 응당 장문인의 위를 거절하고 목령자의 곁을 지킬 것이 예상되었기 때문이리라.

무극살부 부주는 보물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만약 목령자가 알아볼 수 있는 것이라면, 월령자는 숨을 쉬기 힘들 것이다. 그것이 만약 목령자의 어머니가 지니고 있던 비녀라면…….

후공은 먼 바다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소요파를 지키는 혼.

소요파의 귀신들.

‘목령자, 화령자…….’

어그러진 과거가 월령자를 덮쳤으니,

이제 모든 것을 되돌릴 때였다.

소요파의 귀신이 진정한 장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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