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화 서고 대공자-133화 (133/460)

133화. 넌 오늘 내 손에 죽는다.

색관조의 웃음소리에 소천개가 허겁지겁 뛰쳐나가, 두 팔을 벌리고 맞이했다.

“나의 묵언이가 왔구나~ 하하하하! 왜 이제야 온 거야. 묵언아~. 이 형아에게로…….”

[꺼져!]

“…….”

색관조는 곧바로 주인에게로 향했다.

창문으로 들어가 좌정한 주인 앞에 다소곳하게 내려앉았다.

“어서와라.”

제법 다소곳하다.

그 모습이 꽤 신선해 후공은 절로 미소를 짓고 말았다.

얌전히 내려앉은 색관조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두 날개를 가슴께로 접어서 모으더니 천천히 머리를 숙였다.

[주인님. 그간 격조했습니다. 그동안 어찌 지내셨는지요?]

“…….”

언제 시끄럽게 날아왔나 싶을 정도로 태도가 정중하고 교양 넘쳤다. 누가 보더라도 충실한 심복의 모습이요, 거의 사람이었다. 어디서 이상한 걸 보고 배운 모양이었다.

“크흠…….”

[…….]

주인과 심복은 미동도 없었다.

진지하게 서로를 바라봤다.

이윽고,

“평소 하던 대로 해라.”

[네?]

“들었을 텐데.”

[까르르르르. 그럴까요?]

“그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색관조가 방 안을 정신 사납게 날아다녔다.

[까르르르! 주인님, 좀 어색했죠? 저도 사실 이러는 게 더 좋답니다. 괜히 해가지고는. 까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색관조는 한참을 날아다녔다.

또 내려앉아서도 팔딱대면서 춤까지 췄다.

거의 덩실덩실이었다.

후공은 차분히 기다려주었다.

다들 이곳 휴양지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이 소란스럽고 시끄러운 수하는 침묵을 지키며 홀로 고군분투한 것이다. 더 춤을 춘다 해도 괜찮았다.

[주인님, 그러니까요…….]

잠시 후 색관조는 보고 들은 바를 말하기 시작했다.

색관조는 열과 성을 다했다. 주인님께 칭찬 받는 것이 지상최대의 목표이기 때문이었다.

[……제가 이렇게! 이렇게! 고개를 막 떨구면서 졸음을 못 이기는 척하면서요. 주인님, 방금 좀 쩔었죠?]

행동 재현은 물론이거니와 월령자와 무극살부 부주의 대화를 성대모사로 설명하였기에, 후공은 마치 그 장소에서 둘의 대화를 듣고 있는 듯했다.

월령자의 살인청부.

빈정거리는 무극살부 부주의 말투.

비굴하게 더듬거리며 창백해진 월령자의 모습까지 머리에 그려질 정도였다.

큰 감흥은 없었다.

그저 확인이 되었다는 점에서 만족했다.

도리어 감흥이라면 색관조의 노력이었다.

“훌륭한 성과였다. 이 세상에서 네가 아니라면 그 누가 할 수 있었을까. 나는 너를 얻어서 좋다. 다섯 바퀴 날아라!”

색관조는 미친 새처럼 광분하다 겨우 진정했다.

“그 외 이야기를 들어보자.”

[네, 또 있었어요. 월령자가 두 노인과 함께 만나서는, 제약을 풀 테니 천화서고 대공자를 처리하라고 하지 뭐겠어요. 겁이 없는 거여요. 처리당해버릴 거면서. 까르르르르르르르.]

“후후후.....”

이어 몇몇 내용이 흘러나왔고, 더 이상 들을 내용은 없었다. 하나하나가 세밀하였기에 후공이 흡족히 여긴 건 당연했다.

“너의 공로가 적지 않으니 네게 상을 내려야겠다. 원하는 것이 있느냐?”

[와아, 너무 신나! 주인님, 전 아무거나 좋아요! 까르르르르르르!]

“흐음…… 혹시 바닷물고기를 좋아하느냐?”

[오오! 꿀이죠. 주인님, 저 없어서 못 먹어요.]

“…….”

잡아놓은 물고기는 싱싱한 상태로 아직 많았다.

쌍웅에게 가보라며 보낸 다음, 후공은 다시 좌정에 들었다. 운기행공은 아니었다. 생각을 정리했다.

어렵고 복잡한 건 없다.

사실 관계가 명확해졌으니 이미 끝난 일이었다.

소요파의 일은 소요파가 정리한다.

그것이 최선이다.

...한 시진 후.

후공은 모두를 불러모은 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색관조에 대한 찬사가 잠깐 나왔고, 이후에는 탄식과 한숨이 터져나왔다.

“하아……, 이 무슨…… 청부 대상이 어찌하여…….”

“정녕 생각지도 못한 일이로군요.”

“쯧쯧,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구만.”

악가주와 천산신녀, 금적자를 비롯 남궁연 등이 고개를 절레거렸다. 호전적이고 성격 급한 항마삼협과 무산쌍웅은 크게 소리를 지르며 분노를 토했다.

“아니, 말이 안 나오네! 진짜 그게 사람 새끼인가!”

“형님, 당장에 소요파로 쳐들어가 진상을 밝히고 월령자 그 놈의 목을 따야겠습니다!”

벌써부터 진득하게 피 냄새를 흘렸다. 다섯 놈의 표정만 봐서는 이미 목을 따고 있는 중이었다.

“대공자,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인가?”

악가주가 물었다.

간단하다면 간단히 끝낼 수 있는 일인데 따로 염두해 둔 계획이 있느냐는 물음이었다.

후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소요파의 일이니 소요파 스스로 마무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이렇게 하려 합니다.”

향후 계획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말이었는지, 이야기가 끝난 뒤에는 모두 멍하니 눈만 깜박여댔다.

후공은 미소를 짓고 천공단을 둘러봤다.

그것이 물음이었기에, 답이 돌아왔다.

“단주, 난 좋네. 멋져.”

“형님, 최선의 선택이십니다.”

“백번 옳은 말씀이십니다!”

“두목이 가는 길은 진리야! 아무렴.”

“하하하, 맞아!”

“두목께서 가시는 길이 제 길입니다.”

금적자부터 남궁연까지 모두 한 목소리를 냈다.

지금에 이르러 천공단의, 단주에 대한 믿음은 거의 절대적인 상황. 이미 지나온 길이 증명해 보였으니 단주가 팥을 심고 콩이 나온다고 하면 콩이 나올 것이라 믿는 지경이었다.

만약 막상 팥이 나와버렸다 해도 콩이라고 우길 준비가 되어 있었다.

후공은 이번엔 산동악가의 가주를 바라봤다.

악가주는 고개를 주억거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어 천산신녀는 천화서고 대공자의 눈길이 자신에게로 향하였기에 그 눈을 마주봤다.

그녀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입을 열었다.

“대공자,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요?”

“그리 정했습니다.”

후공도 미소로 응하며 말을 이었다.

“혹여 신녀께서 부담을 느끼신다면, 좋은 인연으로 마음에 새긴 후 이쯤에서 각자의 길을 가도 좋겠습니다.”

“하하하! 이거 무서워서 말을 못하겠군요.”

천산신녀가 크게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궁금했을 따름이에요. 그대가 소요파와 깊은 인연이 있을 리 없거늘, 큰 뜻을 두고 있으니 말이에요.”

웃으며 축객령을 내릴 줄은 생각지도 못한 터라 천산신녀는 조금 샐쭉해졌다.

‘어찌된 게 보면 볼수록 커보이는 걸까.’

대공자가 편안한 어조로 말했음에도 그만 가보라는 식이라 괜히 서운한 마음이 드니 기분이 묘해지는 천산신녀였다.

후공은 그녀의 표정을 읽었기에,

풀어주고 싶었다.

“다행입니다. 떠나실까 조마조마하였습니다.”

천산신녀가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그 곁에서 설영만 퀭하니 무슨 뜻인지를 몰라 거의 울 듯 앉아 있을 뿐이었다.

**

제약은 풀렸다.

천화서고 대공자를 척살한다.

빠른 시간에.

목령자와 화령자는 그동안의 경과를 검토하며 천화서고 대공자가 숨어 있을 만한 곳을 간추렸다.

천화서고는 아니다.

이미 보고가 있었다.

대공자며 천공단이 흘러들어간 흔적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리하여 눈에 띄는 곳은 세 곳.

즉각적으로 반발했던 산서제일가인 진주언가와 하북팽가, 그리고 산동악가였다.

먼저 진주언가를 찾았다.

진주언가의 서신은 인상적이었다.

회신은 빨랐으며, 소요파를 적이라고 명시했다.

만약 천화서고 대공자가 숨어있다면 진주언가일 가능성이 가장 컸다.

그와 같은 추궁에,

“하하하하하하하하!”

돌아온 것은 진주언가 가주의 통쾌한 웃음소리였다. 웃음의 끝자락에서 가주는 고개를 갸웃했다.

“두 분은 큰 착각을 하고 있군요.”

“착각?”

목령자는 담담히 기다렸지만, 화령자는 날선 반응을 보였다. 언가주의 표정이 우는 듯 웃는 듯 변했다.

“소요파는 정녕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가주께선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오!”

“본가가 천화서고 대공자를 보호하고 있냐고 물으니 하는 말입니다.”

“…….”

“미안합니다만 잘못 짚었습니다. 그는 보호를 받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하하, 천화서고 대공자가 누굴 보호하고 있는 것이냐 물었다면 이 노부도 관심이 생겼을 터인데, 두 분 말씀은 재밌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러면서 언가주는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목령자와 화령자가 진주언가에서 얻은 건 당혹스러움뿐이었다.

그다음 찾은 곳은 하북팽가.

놀랍게도 반응은 진주언가보다 더 극렬했다.

“들어보시오. 이 강호에서 소요파를 무시하는 이들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지만 천화서고 대공자가 소요파를 무시하고 있다면 무시받아 마땅한 상황이 틀림없습니다. 그를 숨겨두었냐고 물었습니까. 허허, 본가가 그를 왜 숨겨두어야 하오?”

“……?”

“그가 본가에 왔다면 자랑을 해야 할 일입니다. 어디, 두고 봅시다. 목령자, 화령자. 그대 두 분이 나서면서 소요파가 본격적으로 천화서고 대공자를 척살하려 하는 듯한데, 본 가주는 결과가 심히 궁금해지는구려.”

연거푸 생각지도 못한 반응이다.

도대체 무엇인가.

진주언가든 하북팽가든 밑도 끝도 없는 신뢰였다.

목령자와 화령자는 거기서 멈췄다.

산동성의 산동악가까지 가려던 생각을 접고 돌아왔다. 관점을 달리 보며 새로운 방향성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돌아왔을 때는 찾을 필요가 없어졌다.

장문인 월령자가 두 사람을 급히 청했다.

“장문인, 생사결이라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생사결.

누구 하나는 죽어야 끝난다.

“누가 말입니까?”

“천화서고 대공자입니다.”

“무, 무슨?”

“놈이 보내온 서신입니다. 직접 보십시오.”

목령자가 서신을 받아 펼쳤다.

- 소요파여.

그대들이 나를 찾느라 분주한 것을 알고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무극살부 부주로 시작된 일,

시일이 지날수록 거추장스럽다.

이제 나는 시간을 끌 생각이 없다.

내 강호의 친구들이 말했다.

소요파에 무공의 경지가 드높은 자가 있노라고.

그가 목령자라고 하였다.

소요파에 청한다.

목령자에게 청한다.

나와 그대 일전을 벌여 마무리 짓도록 하자.

내가 죽는다면 소요파는 평온할 것이다.

나 또한 목령자를 처리하고 나면 소요파를 두려워할 일이 없다.

이후 무극살부 부주의 보물과 그의 목숨을 취할 것이다.

이미 강호의 친구들에게도 전하였다.

모두 이 결과에 승복할 것이다.

장소와 시일은…….

“허허, 광오한 자가 아닌가.”

목령자가 너털거렸다.

정녕 뜻밖이었다. 어린 나이라고 하였거늘, 접할수록 기이하고 행보를 종잡을 수 없었다.

“사형께서 나서 주시겠습니까?”

월령자가 근심스럽게 물었다.

답을 해야 하는가.

목령자에겐 당연한 일이었다.

“장문인, 어찌하여 근심하십니까.”

“이 장문인은 근심이 됩니다. 그자의 무공을 두려워해서가 아닙니다. 그자는 세 치 혀를 놀리는 재주가 뛰어나고, 사람을 현혹하기 때문입니다.”

목령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혹하는 자라. 저 또한 세가를 둘러보며 느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형께서 그자를 만나시거든 필히 주의하셔야 합니다. 그자가 무슨 말로 중상모략을 하든 흘려들으셔야 합니다.”

“하하하, 염려 놓으십시오. 장문인.”

월령자의 걱정 근심의 실체를 모르는 목령자가 그저 넉넉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사형,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화령자였다.

목령자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이는 약속이다.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면 천하가 비웃을 것이다. 또한 그럴 리 없겠으나 만에 하나 그자가 실로 놀라운 무위를 보여 나를 몰아세운다면 분명 네가 나서게 될 테니, 옳은 승부라고 볼 수 없다.”

단호한 목소리였다.

또 옳았기에 화령자는 더 이상 말하지 못했다.

**

복운산 회인봉.

산의 정상에 한 청년이 서 있었다.

고작 스물 남짓.

뒷짐을 진 채 산 아래 풍광을 눈에 담고 있었다. 멀리 창공을 가로지르며 하얀 새가 날아와 청년의 어깨 위에 앉았다.

[…….]

새가 작게 속삭였다.

혼자 오고 있다고 하였다. 후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새는 다시 날아올랐다.

후공은 무심한 시선으로 그 방향을 바라봤다.

‘목령자, 넌 오늘 내 손에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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