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화 서고 대공자-135화 (135/460)

135화. 소요파 장문인이 웃는다.

‘내가 죽였다고?’

추락하며 목령자는 마음으로 반문했다.

죽이는 마당에 천화서고 대공자는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가.

모를 일이다.

모든 것이 꿈같다.

천산신녀, 산동악가주, 천공단.

그리고, 천화서고 대공자.

순식간에 당했다.

정녕 모든 것이 꿈같다.

하지만 꿈은 아니겠지.

터무니없이 하강해가는 이 느낌.

거센 바람에 미칠 듯이 파라락거리는 옷자락 소리.

절벽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들까지.

어느샌가 천화서고 대공자 곁으로 모두가 나란히 선 채 내려다보고 있다. 시야가 흐릿해진다. 그들의 모습이 희미해져 간다.

왜 모두가 대공자의 편에 서 있는 것일까.

그 물음을 떠올린 순간,

‘어디, 두고 봅시다. 목령자, 화령자. 그대 두 분이 나서면서 소요파가 본격적으로 천화서고 대공자를 척살하려 하는 듯한데, 본 가주는 결과가 심히 궁금해지는구려.’

하북팽가 가주의 말.

그도 그랬다. 다들 왜 그렇게…….

툭.

끊어지듯 목령자의 의식이 날아갔다.

....절벽 아래쪽에서는 입이 쩍 벌어졌다.

“와아, 시발! 진짜 던져버렸어!”

“워어어, 말이 안 나오네.”

낭인왕과 하오문의 대운루 루주였다.

루주에게 금적자가 다녀갔을 때, 낭인왕은 함께 있다가 나도 껴주면 안 되냐고 졸랐던 터였다.

“천공단주, 정말 뭐하는 놈이냐고!”

“낭인왕, 잡을 순 있겠소?”

“뭐라는 거야. 나 낭인왕이야! 생매장당했다고 사람 무시하네.”

“하긴, 이걸 못 잡으면 혀 깨물고 죽어야지.”

“그건 그래.”

절벽 아래 넓게 펼쳐 놓은 그물은 삼중.

이미 준비는 어제 오후로 마쳐 놓은 상태였다.

빙글빙글 곤두박질치던 목령자가 두 개의 그물을 찢고 떨어지면서 속도가 줄었다. 그 아래쪽 마지막 그물에서는 출렁하고 튕겨올랐다.

낭인왕은 신형을 날려 목령자의 몸을 붙들고 지면에 내려섰다. 낭인왕이 목령자를 내려놓을 때, 루주가 곁으로 다가와 헛웃음을 터뜨렸다.

피로 물든 옷이며, 혈색까지 목령자 상태가 말이 아닌 것이다.

“아주 아작을 내버렸네. 살아있는 건 맞소?”

“보기보단 멀쩡한데?”

낭인왕이 어깨를 으쓱했다.

진기를 둘러 살피니 중상까진 아니었다.

“그렇소?”

“뭐 아주 멀쩡하다는 건 아니고.”

“여기.”

루주가 낭인왕에게 영단을 건넸다.

낭인왕이 받아들고 씨익 웃었다.

“캬아, 천산의 신유기황단이라. 이걸 남에게 먹여야 하다니 아깝네. 그냥 내가 먹으면 안 될까?”

“드시오. 문제될 게 있겠소.”

“아, 농담 좀 받아줘!”

“하하하!”

낭인왕이 목령자의 입안에 영단을 밀어넣었다.

“어디로 오라고 했지?”

“왕소산.”

**

목령자는 목소리를 들었다.

“아니, 멧돼지 잡으러 간다고 해놓고 왜 다들 꾸물거리는 거야.”

이 목소리는?

개방의 어린 거지 같다.

소천개라고 했던가.

멧돼지를 잡으러 간다고? 아니, 그보다 내가 왜 살아있…….

생각은 이어지지 않았다.

목령자의 의식은 잠깐 사이에 끊어졌다.

다시 의식이 돌아왔을 땐,

“누나, 맛이 끝내주지 않아? 우린 멧돼지 사냥 이번이 두 번째야.”

“첫 번째는?”

“약왕문에서. 역시 돼지는 멧돼지가 최고야.”

“약왕문은 어떤 곳이야?”

“약이 많아.”

“하하하!”

멧돼지 사냥을 마쳤나 보다.

고기 냄새, 그리고 시끌벅적하게 떠드는 천공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어떻게 된 것일까?

‘분명 난 절벽에서 떨어졌…….’

목령자의 의식은 다시 사라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주인님, 뭐라고 쓰여 있어요?]

“어디 보자.”

[궁금해. 궁금해. 까르르르르르.]

“크흠…… 이건 읽을 만하구나.”

[아우우우, 궁금해!]

“사랑하는 그대여. 그대와 입맞춤하던 그날의 기억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구려. 그대의 입술은 이 세상에서 가장 부드럽고 감미로우며…….”

이건 천화서고 대공자의 목소리인데.

뭘 읽고 있는 건가.

목령자는 울화가 치밀었다.

사람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 그대의 입술이라니.

“이번 전서는 재밌구나.”

[까르르르르르, 그대의 입술! 그대의 입술!]

“이건 다 봤으니 이 전서구는 돌려보내도록 하고, 넌 또 다른 놈을 잡아와라.”

[네, 주인님!]

색관조가 옆에 비둘기를 노려봤다.

[야, 너 이제 가던 길 가 봐. 하늘에서 조심히 다녀. 새가 말하면 그게 나야. 알겠냐? 대답 안 해?]

…….

[아, 넌 말 못하지. 깜박했네. 까르르르르. 어쨌든 나 보면 인사 잘하고. 알았냐? 대답은 안 해도 돼. 까르르르르르.]

색관조가 납치해 온 비둘기에게 따끔하게 훈계했다. 비둘기는 움찔 움찔거리다 다시 발목에 연서를 매달고, 가던 방향으로 날아올랐다.

이어 색관조도 날았다.

주인님께서 새로운 전서구를 잡아오라고 했기에 서둘렀다.

물론 귀만 열려있는 목령자가 알 길은 없었다.

하지만,

‘말하는 새를 데리고 다니고 있었다니.’

놀라움은 컸다.

게다가, 하늘에서 조심히 다니라고 한다.

제 주인을 닮은 건지 오만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의식은 이내 다시 끊어졌다.

다시 정신이 돌아왔을 땐 이전보다 의식이 조금은 더 명료해졌다.

“이틀이나 지났는데 왜 아직도 안 깨어나는 거야?”

“그러게. 천산의 영단까지 먹어놓고 너무하네. 민망해서 그냥 누워 있는 건 아니겠지?”

“그런 성격은 아니야.”

“하긴.”

천산의 영단이라면?

설마 신유기황단을 내게 복용시켰다고?

병주고 약주고다.

당혹스러워져 목령자는 내심 헛웃음이 났다.

천공단의 대화가 이어졌다.

“야, 남궁신입!”

“네?”

“너 인마, 너 때문이잖아. 옆구리를 그렇게 깊게 베면 어떡해. 형님이 죽지 않을 만큼만 손쓰라고 몇 번을 이야기했냐.”

“아니 저도 저인데 두 분 쌍웅께서는 비수로 복부를 몇 번이나…….”

“야, 그건 그냥 피만 나게 한 거야.”

“아니던데요?”

“와아, 이 자식 막 대드는 것 봐. 아주 천공단 다 됐네.”

목령자는 살아있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바로 소천개가 입을 열었다.

“다 틀렸어.”

“뭔 소리야?”

“내가 볼 땐 이건 천산의 할머니 탓이야. 난 할머니가 허공을 때리길래 왜 그러나 했는데, 등짝을 후려갈겨버려서 얼마나 놀랬다고. 그게 너무 강력했던 거야.”

“하, 할머니?”

천산신녀가 아름다운 얼굴로 더듬거렸다.

목령자는 볼 수 없었지만 어떤 표정일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할머니 맞잖아요. 예쁜 할머니.”

“그래. 좋다. 그러므로 오늘부터 개방은 천산의 적이다.”

“하하하, 천산신녀 누나도 참. 장난이잖아요, 장난.”

“호호호호!”

천산신녀가 원래 저런 성격이었나.

이어 목령자는 천공단이 한참이나 웃고 떠드는 소리를 들었다.

두 번째 삶.

들려오는 목소리들이 태평하기 짝이 없다.

의식은 끊어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꿈을 꾸었다.

복운산 회인봉.

꿈 속에서는 다시 그 장소에 있었다.

꿈은 현실과 달랐다.

천화서고 대공자를 비롯한 모두와 자신이 산 정상에서 빙 둘러앉았다.

무산쌍웅이 말한다.

“어르신, 우리가 살아가는 강호는 언제나 간교하고 비열한 곳입니다. 주변을 늘 살펴야 합니다. 정면승부? 그런 게 세상에 어딨습니까.”

그럴 리 없는데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꿈이 확실하다.

삐리리~~ 삐이삐~~.

금적자가 그렇다는 듯 금피리를 불었다.

“맞아요. 우리 개방은 구걸하면서도 사람 죽이고 그러는걸. 당하는 사람이 나쁜 거잖아. 아무도 탓할 수 없어.”

소천개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남궁세가의 후계가 진지한 표정으로 그 뒤를 이었다.

“어르신, 생각해 보십시오. 두목이 맹약서를 쓴 다음 곧바로 깨뜨린 것을 보셨잖습니까. 필요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면 그만입니다. 저는 그렇게 배워가는 중입니다. 그리고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장문인의 대제자 염화평이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 건 정말 모르셨습니까? 왜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나요? 제약 때문입니까? 장문인이 내정에는 관여하지 말라고 하던가요?”

“생사결이라고 무턱대고 여길 혼자 오시면 어떻게 합니까. 함정은 늘 생각하셔야죠. 아니, 도리어 함정을 파야죠. 소요파의 고수들을 외곽에 숨겨놓고 천라지망이라도 걸어두면 얼마나 좋은가요. 그것도 아니면 최소한 사제분이라도 데리고 오시든가요.”

꿈 속에서 천공단은 비웃지 않았다.

말마다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목령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원래 천화서고 대공자가, 그리고 천공단이 하려고 했던 말은 이런 것이었을까.

“비기의 존재 유무는 확인해 보셨어야 했습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비기니까요. 천공단주를 죽이는 것이 문제가 아니잖습니까. 부주를 고문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고요.”

“장문영부니 뭐니 무슨 의미입니까. 우리 천공단 보십시오. 사람이 권위이지, 어디 물건에서 권위가 나오나요?”

“그리고 비기는 애초에 없어요.”

“월령자의 짓입니다. 월령자가 무극살부 부주에게 살인 청부한 겁니다.”

거기까지 들었다.

꿈 속에서 자신이 몸을 일으켰을 땐 아무도 없었다.

산 정상에서 사방을 둘러봤다.

바람이 스치고 지날 뿐, 그저 홀로 서 있었다.

‘분명 꿈인데…….’

깨질 않는다.

절벽 쪽으로 걸었다.

이곳이었다. 던져진 곳.

절벽 끝자락에서 내려다봤다. 흐르는 안개 사이로 끝을 알 수 없는 높이였다.

여기에서 자신이 물었다.

- 정녕…… 월령자의 짓이냐?

대답은 들려오지 않는다.

꿈에서 깨어나자.

목령자는 훌쩍 뛰어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들려온 목소리.

“묵언아, 뭘 그렇게 중얼거려?”

[주인님께서 잊지 않게 연습하랬어.]

“형아가?”

[응, 들려줘야 하니까.]

“그럼 제대로 연습해 봐. 내가 들어줄게.”

[좋아, 멍청한 소천개야.]

“하하하, 난 사형이 말한 줄.”

[진짜 은앙개 같았지?]

“어. 흐흐…….”

목령자는 지금 이 소리가 소천개와 말하는 새의 대화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새는 놀랍게도 다른 사람의 목소리도 똑같이 따라할 수 있었다.

[잘 들어봐.]

“응.”

[월령자, 지금 나를 겁주는 건가?]

[무…… 무슨. 전음으로 하라.]

[월령자, 당신 우습구만.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지 벌써 잊은 건가? 살인 청부한 것이 당신이란 걸 목령자와 화령자가 알면 어떻게 될까?]

[내, 내가 실언했다. 더 이상은 입을…….]

[말을 할 땐 예의를 갖춰. 소요파의 비기? 후후, 참 그럴싸해 보이긴 해. 그렇지?]

[아…… 알겠으니 전음으로 하자.]

[쯧쯧, 겁먹긴. 이 외친 암자에서 도대체 누가 듣는다고.]

[…….]

[월령자, 예정해둔 시일이 다가오고 있어. 이건 바뀌지 않아. 그 안에 천화서고 대공자를 정리해야 할 것이다.]

[그, 그리하겠다.]

“이야, 감쪽같은걸. 나 진짜 월령자 옆에 있는 줄 알았어.”

[굉장하지? 까르르르르르. 내가 이렇게! 이렇게! 졸음을 못 이기는 척하면서 들었잖아.]

“이렇게! 이렇게?”

[응, 고개를 이렇게! 이렇게! 까르르르르르르.]

목령자는 이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웃음이 날 뿐.

천화서고 대공자의 말대로였다.

월령자의 짓이 아니었다.

‘나였구나.’

내가 아무 것도 보려하지 않았구나.

웃음이 입 밖으로 터져나왔지만 참을 수 없었다.

“하하하, 하하하하하! 으하하하하하하!”

흐느낌이 섞여 나오려 했기에,

목령자는 웃음 속에 묻으려 더 크게 웃었다.

그 주변에서 웃음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천공단도 웃었다.

천화서고 대공자가 말한다.

“목령자가 죽었군.”

모두 알아들었다.

목령자가 죽고,

소요파의 새로운 장문인이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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