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화 서고 대공자-139화 (139/460)

139화. 합격.

그 밤.

진주언가에서는 작은 연회가 열렸다.

“하하하, 함께 하여 좋은 이들이 모였으니 우리 모두 잔을 듭시다!”

진주언가 가주가 잔을 높이 들어올렸다.

모두가 호응하여 잔을 비웠다.

“크으~ 술맛 좋다. 싸우고 마시고, 이게 강호지!”

“캬아~. 소요파와 맞설 때만 해도 오늘과 같은 술자리를 갖게 될 것이라고 누가 짐작이나 했겠냐고.”

“이 소천개 님은 소요파가 너무 좋아. 덕분에 바다에도 가고, 고기도 잡고 아주 최고였잖아!”

“취하기 좋은 밤이며, 취하고 싶은 밤이로고.”

천공단은 소란스러웠고, 멋대로 흐트러졌다.

금적자의 피리 음률도 밤을 휘감고, 깔깔대는 웃음소리도 끊이지 않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목령자도 잔을 비워 갔다.

여기 오는 내내 생각이 많았다.

이곳에 도착하면 천화서고 대공자에게 여러 가지를 묻고 싶었다.

[주인님, 제가 노래를 불러도 될까요?]

“물론이다. 모두에게 들려주렴.”

[신나! 까르르르르르르르.]

답을 다 들을 수는 없을지라도, 왜 자신을 위해 그토록 공을 들였는가는 꼭 대답을 듣고 싶었다.

[낮에는 파란 하늘, 새하얀 구름 아래 새들은 팔랑팔랑, 밤에는 달빛에 물든 노란 하늘! 까마귀가 깍깍. 낮도 좋아, 밤도 좋아! 구름 위에서 걸을까요, 까마귀를 타고 밤하늘을 날까요. 낮도 좋아, 밤도 좋아, 구름 위에서 걸을까요…….]

“하하, 까마귀 타는 것 보고 싶다.”

“구름 위는 어떻게 걷는 거야.”

“꾀꼬리야, 색관조야!”

그런데 이곳에 앉아 있자니 생각이 바뀌어 간다. 한 사람 한 사람 떠드는 소리에, 기울이는 술잔이 쌓여가면서, 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헛웃음이 난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고 있거늘,

아무도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거늘,

자신만 붙들고 있는 듯하다.

공 들인 것이 뭐냐는 듯,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그저 웃고 마시면 그만이지 않느냐고 말하는 것 같다.

그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냐 말하는 듯하다.

‘보이는 것이 전부…….’

그렇게 목령자는 이미 답을 들은 듯했기에,

“대공자, 잔이 비었군. 한 잔 받게나.”

“고맙습니다.”

물음을 비우고 잔을 채웠다.

색관조가 내려앉았다.

[저도 한 잔 주세요.]

“허허, 그러마.”

[영광입니다. 장문인.]

“하하하!”

색관조가 주인의 목소리를 따라했기에 목령자를 비롯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취하기 좋은 밤이,

취할수록 좋은 밤이,

술잔과 웃음 속에 깊어져 갔다.

....하지만 모두가 웃은 건 아니었다.

연회가 끝난 후, 한 사람만은 덩그런히 홀로 남았다.

‘망했다.’

언교운이었다.

웃고 떠드는 분위기 속에서 천공단 입단에 관하여 말할 기회를 놓친 것이다. 정확히는, 놓쳤다기보단 엄두를 못 냈다는 표현이 옳으리라.

대공자는 천산신녀며 소요파 장문인, 산동악가 가주를 비롯한 강호의 거물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성벽처럼 둘러싸여 있었던 터.

문제는 대공자가 내일 오전 중으로 떠난다는 점이었다. 내일도 부산스러울 것이 뻔해, 이대로면 망하는 건 확정이었다.

‘천공단이…… 날아간다…….’

“거기서 혼자 뭐하냐?”

불쑥 들려온 목소리에 돌아보니 남궁 형님이었다. 언교운은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달려가 반겼다.

“형님, 안 주무시고 어찌 나오셨습니까.”

“몸이 더워 바람 좀 쐬려 한다. 한데 넌 뭘 그리 혼자 중얼중얼거리는 거냐?”

“저…… 그게 다름이 아니라…….”

언교운이 천공단에 들고 싶다는 의중을 밝히고 도움을 구했다. 아버지께도 이미 허락을 받았노라는 말도 덧붙였다.

“흐음……. 그렇구나.”

남궁연이 미간을 좁히며 침음성을 흘렸다.

“너에겐 미안한 말이다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구나. 너도 알다시피 나도 신입인지라 눈치 보기 바빠서…….”

“아……. 네.”

언교운이 시무룩하니 수긍했다.

남궁 형님도 겨우 붙어있는구나 싶으니 가망성이 점점 희박해보였다.

“교운아.”

“네.”

“네가 천공단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아서 말한다만, 천공단이 늘 웃고 떠들고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다. 적응하기 쉬운 곳도 아니고 말이지.”

“어떤 점이 그렇습니까?”

“흠, 듣고 대답해봐라.”

“네.”

“만약에 길을 걷는다 치자.”

“네.”

“두목이 갑자기 아무나 지목하고는 저 사람 목을 따오라면 천공단은 목을 따야 한다. 그 사람이 두목도 처음 보는 사람이고, 그냥 심심풀이로 죽이는 상황이라도. 넌 어떠냐? 따올 수 있겠냐?”

“전 땁니다. 따야죠.”

언교운의 대답에 망설임 따위 없었다.

“왜?”

언교운이 어깨를 으쓱했다.

“모르죠. 그냥 따야 하지 않을까요?”

“어…… 그래? 뭔가 대단하네. 그럼 하나만 더 묻자.”

“네.”

“두목 곁에 천공단이 늘 함께 있는 건 아니거든. 딱히 할 일이 없을 수도 있고, 또 말도 안 되는 지시를 할 수도 있어. 예를 들어 무인도에 몇 달 살다 오라든가. 동굴에 들어가 살라든가. 어떠냐? 넌 할 수 있을 것 같으냐?”

“해야죠. 네, 저는 합니다.”

“왜?”

“그냥 해야 하지 않을까요?”

언교운이 다시 어깨를 으쓱했다.

남궁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뭔가 자꾸 대단하네.”

“하하, 뭐 그 정도로.”

“잘해 봐라. 난 그럼 이만 자러 가련다. 수고하고.”

헤실대며 머리를 긁적이던 언교운이 멍해졌다.

결론이 ‘수고하고’로 끝나버리면 멍해질 수 밖에 없다.

‘아니 무슨 조언이라도 해주셔야…….’

그렇게 허망하게 뒷모습을 바라볼 때였다.

남궁연이 돌아섰다.

“아! 맞다. 네게 전할 말이 있었는데 깜박했구나.”

“……?”

“두목이 내일 떠날 준비하라더라.”

“네?”

남궁연이 빙긋 웃었다.

“축하한다.”

**

다음 날 오전.

천공단이 한 노인을 끌고 왔다.

무극살부 부주였다.

후공은 탁자에 앉아 찻잔을 기울이며 무릎 꿇려진 부주를 바라봤다. 부주의 나이는 육십 대 초반 정도요, 큰 키에 부드러운 인상이었다.

부주의 상태는 양호했다.

소요파는 부주를 전혀 건드리지 않았다.

후공은 이것이 목령자의 배려임을 이해했다.

처리를 맡기겠다는 뜻이리라.

한데,

막상 보니 별 감흥이 일지 않았다.

한번 청부는 영원한 청부라는 발상을 지닌 놈이자, 월령자를 겁박한 놈인지라 어떤 면상인가 궁금했는데 그저 그랬다.

부주가 그 표정을 읽었다.

표정만으로 이미 사형선고가 떨어진 듯했기에 발작하듯 외쳤다.

“처, 천공단주시여! 사, 살려주십시오. 제, 제가 그동안 모아둔 보물들이 많습니다. 금궤며 귀한 도자기며 금전들이 한가득입니다. 모두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 늙은 몸은 남은 생을 산야에서 밭갈고 약초를 캐며 조용히 여생을 보내겠습니다. 부디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하하하하하!”

“이 새끼 또 수작 부리네.”

“지금 누구 앞에서 입을 터는 거냐.”

주위에 있던 천공단이 깔깔거렸다.

부주는 포기하지 않았다.

바짝 엎드려 이마를 바닥에 쿵쿵 찧어댔다.

“천공단주시여, 믿어주십시오. 이번엔 정말입니다. 없는 걸 제가 어찌 있다고 고하겠습니까. 제가 직접 안내하겠습니다. 그럼 되지 않습니까. 고작 며칠 더 살겠다고 제가 거짓말을 할 리 없지 않습니까.”

부주는 흐느끼며 필사적으로 고했다.

그도 안다.

결정권자는 천공단주다.

소요파 장문인도 아니고, 진주언가의 가주도 아니며, 천산신녀도 아니다. 생사여탈권을 지닌 이는 탁자에 앉아 심드렁하니 찻잔을 기울이는 젊은 서생인 것이다.

하지만,

“넌 혀가 길구나. 길어도 너무 길어.”

전혀 먹히질 않았기에 부주는 다시 쿵쿵 머리를 박았다.

“부디 확인만 해주십시오. 제가 머물던 처소 바닥 밑에 있습니다. 청석판 밑에 지하 통로를 따라 비고를 만들어두었습니다. 그런 곳이 있다는 건 이 세상 누구도 모르는 저만의 비밀입니다. 또한 기관장치로 열 수 있기에 제가 직접 가서 열어야 합니다. 과거에는 제 것이었으나 지금부터는 천공단주께서 주인입니다.”

즉시 천공단의 비웃음이 쏟아졌다.

“와아, 이놈 도대체 얼마나 연습을 한 거야. 말이 거침이 없네.”

“하긴, 없는 소요파 비기도 만들어낸 놈이 뭔 소리를 못할까.”

“형님, 더 들을 것도 없습니다. 저희가 당장 데려가 죽이겠습니다.”

대답 대신 후공은 무극살부 부주를 바라봤다.

“부주.”

“네, 말씀하십시오.”

“거짓은 아니겠지?”

천공단이 갸웃했고, 부주도 잘못 들었나 싶어 멍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살았다!’

내심 쾌재를 외쳤다.

“물론입니다. 거짓으로 밝혀지면 그 자리에서 갈가리 찢겨나갈 텐데 어찌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틀림없는 진실입니다.”

“좋다. 인도해라. 함께 간다.”

“천공단주시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무극살부 부주가 감격에 겨워 머리를 찧어댔다.

“네 말대로 보물이 있다면 살려주마.”

“천공단주시여, 감사합니다. 영생복락 누리소서. 이 은혜 죽어서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영생복락은 무슨.”

후공은 손짓하여 부주를 내보내라고 한 후, 천공단을 다시 불렀다.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천공단이 깔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다음으로 후공은 낭인왕을 불렀다.

방 안에는 두 사람뿐.

“낭인왕께서 제게 할 말이 있으시다고요?”

“감히 청하건대 천공단에 입단하고 싶습니다. 허락해주십시오.”

낭인왕이 야수의 눈을 빛내며 말했다.

“이유가 따로 있을까요?”

“이번 소요파의 일로 감복하였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건 그쪽 사정이고 제가 그래야 할 이유가 있느냐고 물은 겁니다.”

“어…….”

낭인왕이 멍해져 눈만 깜박였다.

후공이 입을 열었다.

“저로선 갑자기 친한 척이라 당황스럽습니다만…… 우리 그런 사이 아니잖습니까.”

“그러지 말고 그냥 거둬 주시면 안 됩니까! 그래도 되잖습니까!”

낭인왕이 역정을 냈다.

거둬 달라는 놈이 신경질을 내버렸기에 후공은 그만 뚱해지고 말았다. 방 안에 둘만 있어서 다행이지, 천공단이 함께 있었다면 질질 끌려갔을 것이다.

낭인왕의 말이 이어졌다.

“뭐든 시키면 시키는 대로 다 하겠습니다. 솔직히 항마삼협이나 무산쌍웅같은 막장도 천공단인데 제가 왜 안 됩니까!”

말이야 맞는 말이다만, 이놈 왜 이리 절박한가?

“그래요?”

“네, 저도 형님으로 모시고 뭐든 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무엇이든?”

“네.”

“그럼 짖어 보십시오.”

“네?”

바로 이해하지 못한 낭인왕이 갸웃했다.

후공은 손으로 탁자를 톡톡 치며 미소를 머금었다.

“낭인왕, 개처럼 짖어 보세요.”

후공으로선 ‘이래도?’였다.

관둡시다, 라는 말이 나올 테고 이후 각자 갈 길 가면 그만이었다.

“하하하하하하!”

낭인왕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그렇지, 후공도 피식했다. 어이가 없을 것이다.

한데,

“하하하하하하, 왈왈, 크르르르 왈왈. 왈왈왈~~~. 크르르르르르~~ 왈왈왈왈~~ 왈왈왈. 크르르르르, 왈왈왈. 크르르르르.”

“…….”

바로 짖어버렸기에 후공이 어이가 나가버렸다.

단지 짖는 것만이 아니다. 사방팔방 방 안을 강아지처럼 활기차게 뛰어다니고 있다. 이놈 신났다. 멈출 줄을 모른다.

“왈왈, 크르르르 왈왈. 왈왈왈~~~. 크르르르르르~~ 왈왈왈왈~~ 왈왈왈. 크르르르, 왈왈왈…….왈왈, 크르르르 왈왈. 왈왈왈~~~. 크르르르르르~~ 왈왈왈왈~~ 왈왈왈~~~.”

‘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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