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화공신타.
색관조도 흑의 차림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주인님, 검은 옷도 근사해요. 까르르르르르.]
방을 깡충깡충 뛰면서 좋아했다.
“그자는 잠들었다고?”
[네, 술에 취하기도 했어요.]
“그래, 가보자. 하지만 그 전에 너에게 보여줄 것이 있다. 내가 모습을 바꿀 것이다.”
[까르르르르, 신기해. 저는 기대돼. 기대돼요.]
“넌 아마 겁먹을 거다.”
[제가요?]
색관조가 갸웃했다.
그러다 짐짓 목소리를 깔았다.
자존심이 상한 듯 보인다.
[주인님, 저 색관조예요. 나약한 새 아닌데요.]
“하하, 내가 그걸 모를까.”
[……?]
“자, 그럼 보아라.”
후공은 교릉을 운용했다.
뚜드드드드득!
즉시 뼈마디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모습이 변했다.
얼굴은 흉측해졌고, 등뼈가 옷을 뚫을 듯 돌출되었으며, 팔도 오그라들고 비틀렸다.
교릉은 본시 축골공.
후공은 작아지지 않고 그저 비슷한 체형을 유지한 채 끔찍한 모습으로 변했다.
그 변화에,
따다다다다닥.
색관조가 얼어붙어버렸다.
덜덜 떠느라 부리만 마구 딱딱거렸다.
“어떠냐? 무섭냐?”
목소리도 달라졌다. 거친 쇳소리였다.. 물어보며 바라보는 눈도 한쪽 눈은 옆으로 밀려나고, 다른 한쪽 눈은 코 쪽으로 틀어져 있었다. 게다가 말할 때마다 돌출된 광대뼈가 꿈틀대는 모습은 당장에라도 살을 뚫고 나올 것 같았기에,
따다다다다다다다닥.
색관조는 제대로 겁먹었다.
지진이 난 눈동자로 연신 부리를 딱딱거렸다.
[주, 주인님……. 어, 어째서…….]
“클클, 하지만 이렇게 하면 어떨까?”
뚜드드드드드득, 교릉을 거두며 바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 변화가 너무도 신속했기에 색관조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가 몇 번 깜박일 정도였다.
그러다 돌아온 모습이 좋았는지 팔랑팔랑 뛰었다.
[주인님이 돌아왔어. 주인님이 돌아왔어. 주인님, 멋져요!]
“하지만 또 이렇게 되면 어떨까?”
뚜드드드득, 교릉으로 다시 흉악한 모습이 되었다.
따다다다다다다다다닥.
다시 부리를 부딪혔다.
[주, 주인님. 무, 무서워요.]
“그럼 이렇게는?”
[꺄아, 너무 멋져요!]
“다시 이렇게는?”
[무…… 무서워요.]
“그럼 다시.”
[멋져요!]
“이렇게!”
[무서워요.]
“또.”
[멋짐.]
“이번엔.”
[무섭.]
“이.”
[멋.]
“다.”
[무.]
말이 극단적으로 짧아졌다.
“…….”
[…….]
주인과 새는 한동안 서로를 바라봤다.
“그만하자.”
[……네.]
여러 번 보면 귀신도 장사 없다.
무덤덤해지기 마련.
어련히 원래대로 돌아온다는 걸 깨닫고 적응한 색관조의 반응이 이젠 하품이라도 할 기세였다.
“너에게만 보여준 모습이니 운이 좋은 줄 알아라.”
[까르르르, 저는 운이 좋아요. 그리고 주인님은 신비해요.]
“하하, 가자.”
*어두운 방 안.
잠든 몸을 손길 하나가 쓸고 지나갔다.
괴이하게 뒤틀린 형태의 손이었다.
그럼에도 호열자는 알아차리지 못했고, 깨어나지 않았다.
그가 정신을 차린 건 음습한 쇳소리가 나온 후였다.
“넌 언제까지 처 잘 거냐?”
그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호열자가 튕기듯 몸을 일으켰다. 일순 진기를 운용해 주독을 날려버리고 취기에서 벗어난 그는, 방 안의 한 지점을 보고는 흠칫 몸을 떨었다.
“누, 누구?”
한쪽 구석의 탁자에 괴인이 앉아 있었다.
도대체 언제부터 있었던 걸까. 더군다나 괴인의 외모가 흉측하기 이를 데 없어, 호열자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클클클.”
“누, 누구냐고 물었다.”
“클클, 답해 주마. 난 친절한 사람이니까. 화공신타라고 한다.”
“화공신타?”
호열자가 미간을 찡그렸다.
들어본 적이 없는 것이다.
“신타, 날 찾은 용건은?”
“넌 천화서고 애송이와 재밌는 이야기를 나누더군.”
“뭐?”
호열자의 눈이 커졌다.
“그걸 들었다고?”
“물론.”
순간 호열자의 얼굴이 매섭게 변했다.
그의 우수가 투명해지는가 싶더니 이내 달아오르듯 붉어졌다. 마치 손에 용암을 쥔 듯했다.
“후후, 흉악한 괴물 놈이 쓸데없는 호기심으로 명을 재촉하는구나.”
괴인은 강할 것이다. 호열자도 안다. 만약 놈이 자신을 죽이려 했다면 기회는 충분했다. 외모만큼이나 경악스러운 자인 건 확실하다.
하지만 기척을 숨기는 재주에만 특화된 자라면?
맞서는 건 다른 영역.
‘넌 여지를 주지 말았어야 했다.’
서로의 거리는 고작 일 장여(3미터).
간격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또한 놈은 방심하고 있다. 여전히 앉아있고, 뒤틀린 손을 탁자 위에 올려놓은 채 한 번씩 두드리고 있을 뿐이다.
태워버리리라. 녹여버리리라. 호열자는 자신의 독문절기인 열화장을 순식간에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머뭇거림은 없다. 우수를 내뻗어갔다. 시간은 느려지고, 온 세상 중 호열자의 눈에 담긴 건 오로지 괴인의 모습뿐.
그 느려진 시간 속 괴인이 움직여갔다. 몸이 아니다. 입술이 움직이며 달싹인다. 호열자는 분명히 보았다. 그리고 들려온 괴인의 목소리는,
“정지.”
그 말에,
“흡!”
호열자가 멈췄다. 우수를 채 뻗지도 못한 채 석상처럼 굳어버렸다. 스스로의 의지로 멈춘 것이 결코 아니었던 탓에,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이, 이게…… 무슨?’
목 아래쪽으로 감각이 깨끗이 사라졌다. 마혈이 점혈당한 것과 같은 상태.
고작 괴인의 말 한마디다. 그것만으로 단전과 기맥이 차단되어 목 아래쪽으로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목소리가 들려왔다.
“클클, 주제 파악을 해야지.”
“너, 너는…… 대체 누구냐?”
“너? 쯧쯧, 미련한 놈이 건방지기까지 하구나. 당장 무릎 꿇어라.”
말이 안 되는 명령이었다. 꿇고 싶어도 우선 점혈이 풀려야 한다. 그렇게 꿇어질 수 없는 다리거늘, 호열자의 무릎은 맥없이 접혀나갔다.
털썩.
자신이 무릎을 꿇고도 믿을 수 없었기에 호열자의 동공은 미친 듯이 흔들렸다.
“어…… 어떻게?”
말하면 말하는 대로 된다고? 점혈로 마비된 몸이 꿇는 순간에는 일시적으로 풀렸고, 무릎이 스스로 접혔다. 그리고 다시 굳었다.
직접 겪지 않았다면 어떤 경우라도 믿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이다. 호열자는 강호에 이런 존재가 있다는 건 들어본 적도 없었다.
심지어 무형의 암공도 아니다.
뻗어오는 기운의 파장이 전무했으니까.
꿀꺽.
호열자는 경악과 불신에 매몰되어 갔다.
자신이 어찌해볼 수 있는 영역의 인물이 아닌 것이다.
후공은 그 반응을 흡족히 여겼다.
“클클클…….”
바라던 바다.
물론 말로 신체를 조정한 건 아니었다. 그저 그렇게 보여지길 바랐기에 미리 은외법으로 점혈해 두었던 터. 강호에서는 후혈이라고 칭해지는 점혈의 예약, 거기에 교릉 너머의 경지인 정첩까지 심어두어, 때를 맞춰 무릎 꿇게 걸어두었다.
공포를 심는 데는 이만한 것이 없다.
후공은 절룩거리며 다가가 호열자의 앞에 앉은 자세를 취하고는 눈높이를 맞췄다.
끔찍한 얼굴을 바로 앞에서 마주하게 된 호열자가 덜덜 떨었다.
후공이 쇳소리를 냈다.
“철혈검이라고 있었다.”
“……?”
“놈에게 말했다. 너의 심장을 꺼내 씹어먹어라.”
“……!”
“먹었다. 그리고 죽었지.”
“…….”
호열자가 마른침을 삼켰다.
“내가 너에게 같은 말을 하게 하지 마라.”
“무, 물론입니다.”
정지하라고 하여 정지했고, 꿇으라고 하여 꿇었다. 심장이라고 다를까. 철혈검이 누군지는 몰라도, 더 이상 허풍으로 들리지 않았기에 호열자는 진정성을 담아 답했다.
“상월자라고?”
“호, 호열자입니다.”
후공이 씨익 웃었다.
당연히 끔찍한 웃음으로 드러났다.
“똑똑하구나. 방금 ‘네’라고 답했다면 너의 오른팔을 뜯어버릴 참이었거든.”
“아, 아는 대로 거……거, 거짓 없이 답하겠습니다.”
마주한 얼굴조차 너무 두려워 호열자가 치아를 딱딱거렸다.
“너를 보낸 사람은?”
“서, 성숙노조입니다.”
“성숙노괴?”
후공의 눈이 가늘어졌다.
예상보다 거물이 튀어나온 것이다.
성숙노괴는 중원칠괴 중 일인.
과거의 자신이라면 장난감에 불과했지만, 지금의 경지로는 승부를 장담하기 어려운 수준의 인물. 목령자보다 한 수 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잠시 생각에 잠겨있자니 그 모습을 호열자가 오해했다.
“사, 사실입니다. 제가 왜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조용.”
“…….”
성숙노괴는 뭘 얻으려 함인가.
궁금해진다.
세상에는 수많은 암호들이 있다.
연인간에 주고 받는 약속된 사랑의 언어, 약왕문주가 남긴 암호 속 보물, 또는 승리를 위한 전략전술이 암호화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류는 아닐 것이다.
성숙노괴가 관심을 가졌다는 건 문서의 해독 결과물이 보통 물건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리고 호열자는 듣지 못했을 테지.
“짐작 가는 건 무엇이냐?”
“네, 말씀하신 대로 듣지는 못하였으나 저……저는 시, 신비한 영초거나 영물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왜지?”
“암호 문건이 가리키는 곳이 특정한 산의 지형을 뜻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순간 후공은 탄성을 터뜨렸다.
“아! 누가 이미 문서에 접근하여 풀었구나.”
“영명하십니다. 천금서고의…… 선우진에게 먼저 의뢰하였고, 다시금 천화서고 대공자를 찾은 건…….”
“교차검증?”
“네.”
후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 듣고 나니 상황이 일목요연하게 이해되었다.
천금서고는 삼대서고 중 하나.
천화서고, 난화서원, 천금서고다.
먼 과거의 일이 아닐 테니, 아마도 난화서원의 묵영과 자신이 약왕문과 천룡대전을 거치는 기간이었다면 천금서고에 접근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선우진 또한 천재.
녀석이 암호를 다 풀지 못한 것인가?
아니면 풀지 못한 척하는 것인가?
혹은 고의적으로 오류를 냈을지도.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 모든 걸 해석해내는 순간 죽음을 당한다고 생각했을 가능성도 크다.
“성숙노괴가 머물고 있는 지역은?”
“섬서 남서에 있는…… 운주입니다.”
“운주라.”
운주를 거점으로 두었음은, 운주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해당 지점이 있다는 뜻이다.
“선우진을 돌려보낼 생각은 없을 테지?”
“…….”
호열자의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후공은 멍해졌다.
이는 답을 들은 것이나 다름없음이다.
“죽였구나.”
“……네.”
한순간 후공의 눈이 깊이 가라앉았다.
삐뚤어진 눈에 담긴 눈동자가 심연처럼 무심해졌기에 호열자가 두려움에 질려 이를 꽉 물었다. 양 뺨이 부들부들 위태롭게 움직였다.
“너냐?”
“저, 저는 아닙니다.”
더 물을 것도 없었다.
후공은 몸을 일으켜 방 안을 천천히 걸었다. 그렇게 움직이다가 호열자의 등 뒤에 섰다.
손을 뻗어 뒷목을 쥐었다.
천향이 남겨졌다. 그 상태로 목을 주물렀다.
“호열자.”
음산하고 살기가 깃든 목소리.
거기에, 잡힌 뒷목을 서서히 주무르는 손길의 감각에 호열자의 얼굴은 백짓장처럼 창백해졌다. 당장이라도 목이 꺾여나갈 것 같았다.
“난화서원에도 누가 간 것이냐?”
“아…… 아닙니다.”
“후후, 재밌군. 차례 차례인가.”
“사, 살려주십시오.”
“살려준다. 돌아가라.”
“가, 감사합니다.”
“천화서고 대공자는 포기해라. 내가 쓸 일이 있다.”
“무, 물론입니다.”
후공은 창가로 걸음을 옮겼다.
뒤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그리고 성숙노괴에게 전해라. 조만간 화공신타가 찾아간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