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화 서고 대공자-144화 (144/460)

144화. 허공을 딛고 서다.

송화가 바느질에 한창일 때였다.

“송화, 넌 뭘 그리 열심히 하는 것이냐.”

“우리 송화가 바느질 솜씨도 끝내주나 보네.”

지나던 윤과 부몽이 걸음을 멈추고 송화 곁에 걸터앉았다. 송화가 배시시 웃었다.

“공자님께서 옷을 준비하라 하셔서요.”

“큰형님이?”

“네.”

“흐음, 그러고 보니 옷이 좀 특이한걸.”

윤과 부몽이 옷을 보며 갸웃갸웃했다.

안감은 검은색, 겉감은 흰색이었기 때문이었다. 특이한 건 어느 쪽이든 바느질 마감이 깔끔해, 어디가 안감이고 어디가 바깥인지 구별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네, 이 옷은 아무 쪽으로나 입을 수 있어요. 뒤집어 입으면 흑의가 백의가 되고, 백의가 흑의가 되는 거죠.”

“우와~ 그건가? 형님, 그거잖아요.”

“뭐?”

“큰형님이 깃털 색 바꾸는 색관조 능력이랑 비슷해지는 거잖아요.”

부몽의 말에 윤도 그럴싸한지 웃음을 터뜨렸다.

송화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 없잖아요. 하지만 저는 의미를 알 것 같아요.”

“그래? 뭘 것 같으냐?”

“어제 공자님께서 만날 사람이 생겼다 하시며, 제게 먼저 올라가라 하셨거든요.”

“그런데?”

“그러곤 오늘 옷을 말씀하셨으니, 이건 멋을 부리시는 거예요. 아마도 어떤 소저분과 좋은 만남을 갖고 계시는 것이 틀림없어요.”

윤과 부몽의 입이 쩍 벌어졌다.

“우와아, 그거였네. 옷이 중요하긴 하지. 답은 형수님이었어!”

“송화, 너는 짐작 가는 분이 있느냐?”

“글쎄요. 하지만 마음으로 바라는 분이 있긴 해요.”

“누구?”

“남궁세가의 소예 아가씨면 좋겠어요.”

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남궁 소저가 우리 형수님이 된다고? 그래도 되나?”

“형님도 참! 큰형님이 아깝지, 무슨 말씀을 그리 하시나요. 남궁 형님도 큰형님께 두목님이라고 하는 판에.”

“남궁 형님이야 그런가 보다 하는데, 소예 형수님은 미모가 천하에서 첫 번째냐, 두 번째냐를 따질 정도니까 하는 소리지.”

소예 아가씨에 대한 희망사항이 두 공자님에게 어느샌가 형수님으로 확정되고 당장이라도 조카 이름을 지을 기세였기에, 송화가 진화에 나섰다.

“저기, 공자님들? 부디 진정하세요. 근데 어디 가시던 길 아니셨어요?”

“아, 맞다!”

“이런, 깜박했네. 큰형님께 몽둥이로 맞으러 가는 길이었는데.”

송화가 갸웃했다.

맞으러 간다는 사람치곤 두 사람의 표정이 너무 밝은 것이다.

“근데 기분이 좋아요?”

“당연히 좋지.”

“왜요?”

“큰 형님이 안 계시면 맞을 수가 없잖아.”

계시니까,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함께 있는 것이니까. 그게 좋다면서 윤과 부몽이 멀어졌다.

송화는 잠시 멍해졌지만 그것도 잠시, 배시시 웃고 말았다.

**

그날 오후.

“꺄아아아아아아!”

객방을 청소하기 위해 들어서던 여인이 비명을 내지르며 자지러졌다.

“여기, 사람이! 사람이…… 사람이 죽었어요오오오오!”

객잔의 주인이며 점소이가 득달같이 달려왔다.

그리고 보았다.

“어, 어떻게 이런 끔찍한 일이…….”

“사람을 어찌…….”

참혹한 주검 앞에 말을 잇지 못했다.

지난 밤 투숙했던 중년사내였다. 죽어 있었다. 그것도 목이 돌아간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누군가 목을 돌려버린 것이다.

호열자였다.

하지만 살아있었다.

그래서,

“나 안 죽었어.”

“허억!”

“으어헉!”

“꺄아아아아아아아!”

주인과 점소이며 여인이 기겁해 몇 걸음 물러났다.

목이 돌아갔는데 말을 해버린 것이다.

호열자가 안심시켰다.

“진정해. 모가지가 좀 많이 돌아간 것뿐이야. 천장 문양 다 외웠네.”

차분한 목소리였기에, 주인은 그제야 귀신은 아닌갑다 하고 다가갔다.

“시발, 놀랬소. 근데 왜 그러고 있는 거요?”

“몸이 안 움직여.”

“목은?”

“돌아갔어. 저절로.”

“뭔 소리야?”

주인이 황당하다는 듯 외쳤지만, 호열자는 이미 제대로 답을 했기에 두 번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성질이 날 뿐이다.

그러니까 지난 밤.

꼽추 화공신타가 창 너머로 신형을 날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접힌 무릎이 퍼졌다. 얼씨구나 좋다 했는데 아니었다. 대신 뚜드드드득, 목이 돌아가버렸다.

다행이라면 백팔십도가 아니라는 점.

그랬다면 목뼈가 부러져나가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최대한 뒤를 돌아보는 수준이었고, 마혈은 풀리지 않았기에 그대로 널브러져 지금까지 온 것이다.

처음엔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건지 경악에 찬 나머지 숨도 못 쉬었다. 그저 엎드린 채 천장을 보며 침만 꼴깍거렸다.

그러다, 그러다,

오후까지 이러고 계속 있게 되자 성질이 끓어올랐다.

- 살려준다, 돌아가라.

이래놓고 사람 목을 왜 안 돌려놓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유야 어떻든, 갑시다.”

주인장이 영차하며 호열자를 들쳐 업었다. 좋은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호열자는 주인장의 뒤통수를 볼 수 없었다. 딴 데를 보며 물었다.

“어딜?”

“어디긴, 의원이지.”

“안 가. 내려 놔.”

“응?”

“안 간다고.”

“목이 돌아갔는데?”

“안 간다고, 시발놈아!”

“뭐야? 욕을 해버린다고? 에잇!”

주인장이 바로 내동댕이쳐버렸다.

그래도 좋은 사람이었다. 바닥이 아니라 침상 위로 던졌다.

“챙겨줬더니 욕을 해버리는 경우가 어딨냐!”

“미안한데, 이거 그렇게 해결되는 거 아냐. 물이나 좀 가져다주라.”

“그럼 어떻게 해야 해결되는데? 엎어졌는데 천장을 보고 있는 주제에 당신 너무 태연하잖아!”

“그런 게 있어. 시발, 나도 미치겠다.”

“점혈? 이게 그 점혈인가? 청월문 장문인 모셔올까?”

“안돼! 퀄퀄이는 절대 안 돼!”

“왜?”

“그런 수준이 아니라고! 손을 아무도 안 대야 해! 뭔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시발놈아!”

“또 욕이네.”

“미안하다. 사과하마. 나한테 너무 잘해주지 말고 그냥 내버려둬. 너흰 날 이렇게 만든 사람을 몰라서 그래.”

“그냥 두면 돼?”

“그래. 물만 줘. 목말라.”

“돈은 있지?”

“어.”

“기다려.”

주인장은 좋은 사람이었다.

물을 가져와 먹여주었다.

호열자는 목이 돌아갔는데도 꼴깍꼴깍 잘 마셨다.

너무 맛있어서 울었기에 주인장은 눈물을 닦아 주었다.

“돈 있지?”

**

그렇게 열흘.

뚜드드득!

후공이 교릉을 펼쳤다.

옷은 흑의였고, 순식간에 흉측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화공신타!”

색관조가 날개를 가슴으로 와락 모았다.

[무섭.]

후공은 옷을 뒤집어 입고 백의가 겉으로 오게 했다. 이내 본래의 모습으로 순식간에 돌아왔다.

“천공단주!”

이번엔 색관조가 날개를 활짝 펼쳤다.

[멋짐.]

“하하하하!”

[까르르르르르!]

주인과 새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떠날 때였다.

열흘째가 되었으니 호열자의 마혈은 풀릴 터였다.

물론 목에 걸어둔 정첩은 반년 동안 유지된다. 그동안은 뒤돌아보는 남자로 살게 될 것이다.

그렇게 점검 차원에서 옷을 뒤집어 입어보고 있으려니, 바깥에서 송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자님, 공자님!”

“들어와라.”

안으로 들어선 송화의 얼굴은 화색이 만연했다.

“기쁜 소식이 왔어요!”

“기쁜 소식? 오늘 먹을 점심 요리가 특별한 거냐?”

“하하하, 그건 물론이구요. 이것 좀 보세요. 난화서원에서 묵 공자님의 서신이 왔어요.”

물론 후공은 손에 든 서신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난화서원이란 말에는 눈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아! 묵영이 답을 찾았나 보구나.’

“당장 보자.”

환히 웃으며 바로 펼쳤다.

과연이었다.

놀랍게도 육각망의 양분에 대한 답이 적혀 있었다.

풍열에 이은 삼악의 두 번째 양분.

하지만,

- …… 지금 이 글을 적으면서도 생각이 많아집니다. 과연 이걸 찾았다고 해야 할지, 찾지 못했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육각망의 양분은 공청석유입니다. 성체가 되기 전…….

“무, 무슨 말도 안되는…….”

황당한 나머지 말을 잇지 못했다.

“왜, 왜 그러세요? 공자님?”

“육각망이 왜 공청석유를 먹는단 말이냐!”

“네?”

어린 육각망은 특별한 양분을 흡수하여야만 비로소 성체화되는데, 그 양분이 공청석유라는 것이었다. 성체가 된 후의 먹이는 잡식이며 따로 구별이 없다고 적어놓았다.

즉 육각망의 기운을 북돋는 것은 공청석유.

문제는 공청석유를 어디서 찾느냐였다.

공청석유라는 것이 시장에서 파는 물건도 아니고 어느 지역의 특산물도 아니다. 몇백 년을 찾아도 근처에도 못 갈 정도다.

그런 까닭에 묵영의 서신 속에는 찾아놓고도 난감해하고 미안해하는 문장이 절반이 넘었다. 그러면서 영약초의 양분에 관하여도 조속한 시일 내에 알아내 보겠다는 말을 남겨두었다.

“하아아, 고맙긴 하다만. 공청석유라니?”

이보다 막막할 수 없어 나오느니 한숨이었다.

한숨 속에 방 안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송화가 바삐 눈치를 살폈다.

여기 있어선 안될 것 같아 또르르 눈동자를 굴리다가 슬금슬금 움직여서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소리도 안나게 문을 닫은 다음 쏜살같이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색관조는 아니었다.

어째서인지 눈이 부리부리해졌다.

[주인님?]

“왜?”

[공청석유가 필요하신 거예요?]

“그렇지.”

[제가 알아요.]

“…….”

후공이 멍해져 색관조를 바라봤다.

색관조의 눈은 더욱 부리부리해졌다.

“…….”

[…….]

“확실해?”

[들었어요.]

“무슨 말을?”

[공청석유를 서로 차지하려고 싸우는 소리요. 근데 둘 다 죽었어요. 그 부근에 있는 거예요.]

“어디냐?”

[……?]

색관조가 갸웃하고는 한쪽 날개를 들어 머리를 긁었다.

[산 이름은 모르는데요.]

“하하하하하하하하! 하긴 그럴 수 있지.”

주인이 비로소 크게 웃음을 터뜨렸기에 색관조도 비로소 방을 날면서 웃어댔다.

[까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가자!”

**

호열자는 마혈이 풀렸다.

기다렸다 밤을 틈 타 객잔을 나섰다.

객잔 사람들이 배웅했다. 좋은 사람들이었다. 떠나는 호열자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주인장이며 점소이, 여인까지.

호열자는 모가지가 돌아간 채로 미소 띠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잘 안 된 탓에 인상을 찡그려야만 했다.

신형의 속도는 평소와 같지 않았다.

뒤를 보고 있는 상태라, 앞을 보고 달리기가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뒷걸음질로 뛰어봤는데 그것도 영 아니어서 몸을 옆으로 튼 채 꽃게처럼 달렸는데, 그것이 삿대질을 불러왔다.

“저 새끼 뭐하는 새끼야!”

“왜 옆으로 뛰어!”

“왜 뒤돌아보면서 뛰냐고!”

“상놈의 새끼야, 앞을 보고 다녀야지!”

사람들이며, 마을 양아치들이며 보는 족족 놀라 고함을 질러댔다.

그래도 호열자는 꿋꿋이 뛰었다.

욕한다고 다 처죽이자니, 저 말들이 모두 사실이니까. 앞을 안 보고 뛰는 게 틀림없으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

근데 눈물이 왜 나냐.

**

섬서의 청우산 만연봉.

절벽 끝자락에 후공이 섰다.

이 절벽을 타고 내려가다 보면 동굴이 나온다.

색관조는 이곳을 날면서 들었다고 했다.

[주인님, 밧줄을 가져올 걸 그랬나 봐요.]

어깨 위에서 색관조가 말했다.

“밧줄은 무슨. 같이 가자.”

[네?]

색관조가 갸웃할 때, 후공은 훌쩍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헉! 주인님!]

놀라 소리친 색관조도 빠르게 절벽 아래로 날았다. 날갯짓 한 번에 주인님 곁에 이르러 소리쳤다.

[주인님, 어떻게 하시려고요? 날개 없으시잖아요!]

파라라라라락!

머리를 아래로 향한 채 옷자락이 미친 듯이 휘날리는 속에서 후공이 빙긋 미소지었다.

“염려 마라.”

[주인님, 이제 다 와 가요! 이제 숨겨놓은 날개가 있으시면 펼치셔야 해요! 제발요!]

“하하, 그러자.”

후공도 보았다.

조금 아래 쪽으로 절벽의 동굴이 보인다.

후공은 우수를 밑으로 향했다.

검결지를 맺은 손으로 아래 쪽에 둥그렇게 환명의 원을 그렸다.

투명한 기의 늪이다. 허공에 그려진 순간, 휘리릭 신형을 현란하게 뒤집어 몸을 바로 세웠다.

이내 발로 환명의 지점을 디뎠다.

출렁.

발이 허공에 펼쳐진 늪에 빠져간다.

부드럽게 느려졌다가 그대로 멈췄다.

후공은 그렇게 환명을 딛고 섰다.

허공에 둥실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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