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금섬
허공을 딛고 선 지점은 바로 동굴 앞.
그 모습에 색관조가 놀라 소리쳤다.
[주, 주인님! 하늘에 왜 떠 있는 것이에요?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후후, 잠깐 발판을 만들어둔 것뿐이다.”
[신기해. 신기해. 너무 신기해! 주인님이 아지랑이를 딛고 서 계셔! 까르르르르르르르!]
“들어가 보자.”
후공은 미소를 지어 보이곤 동굴로 신형을 옮겼다.
동굴의 깊이는 십여 장.
내부는 어두웠지만 후공에겐 햇살 아래와 차이가 없었다.
동굴 안에 특별함은 보이지 않는다.
진법이나 기관이 설치된 것도 아니며, 길게 통로가 이어져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막혀 있다.
의미를 부여할 만한 건 오직 하나.
격렬한 싸움의 흔적으로 왼쪽 벽이 무너져내리고 천장의 일부가 파여 있다. 바닥에는 진각을 밟으며 생긴 발자국들이 남아 있다.
그리고 오른쪽 벽 앞에 두 구의 유골이다.
사이좋게 엉켜있으니 동귀어진.
이 중 한 명은 음양노괴.
다른 한 명의 이름은 색관조가 들었던 대화 속에는 언급되지 않았다.
후공은 유골을 내려다보며, 색관조가 들었다는 말을 떠올렸다
- 음양노괴, 어찌 내게 이럴 수 있느냐!
- 하하하하! 나를 책망하다니 우습구나. 탓하려거든 너의 어리석음을 탓해야 마땅한 일. 너는 뛰어난 두뇌를 지녔어도 사람의 욕망을 헤아리지 못하니, 그저 어리석은 자일 뿐이다.
- 정녕 다 가지겠다는 것이냐?
- 물론. 공청석유도, 너의 목숨도.
- …….
- 그리고 내 절학 또한 완성되겠지.
- 내가 공청석유를 포기하겠다면?
- 달라지는 건 없다.
그렇게 시작되어,
그 결과는 누구도 웃지 못했다.
자신만만했던 음양노괴는 아마 최후의 순간 당혹을 금치 못했으리라. 그의 목에 용편린이 뚫고 지나갔을 때 후회하는 마음이 들었겠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일.
후공은 당시 상황을 본 듯 알 수 있었다.
사람은 죽었지만, 남겨진 유품이 말한다.
용의 비늘같은 용편린이 말을 전하고 있다.
용편린은 귀곡자의 독문병기.
유골의 목뼈를 파고들고 휘돌아 머리까지 저어버렸다. 그 결과 음양노괴의 머리뼈는 숭숭 구멍이 나 있는 상태.
하지만 귀곡자에게도 그것이 마지막 한 수였을 터.
그렇게 둘은 누구도 공청석유를 얻지 못하고, 아무도 찾지 않는 이곳에서 죽음을 맞았다.
‘그럼 공청석유는?’
이곳은 아니다.
하지만 부근에 있을 것이다.
둘의 대화로 유추해보자면, 이미 공청석유의 위치는 두 사람 모두 인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배신의 순간은 오로지 확실할 때.
확신에 차 있을 때다.
음양노괴는 그곳으로 가기 전, 귀곡자를 이곳으로 유인했을 것이다.
방법은?
단순하다. 잠깐만 이곳도 특이한데?
이 정도면 된다.
그렇게 한참이나 유골을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을, 색관조가 오해했다.
[주인님, 죄송해요. 실망하셨죠?]
무심히 바라보는 시선을 실망하는 것으로 보았나 보다. 이제 또 어떻게 찾나 걱정하는 것도 같고. 그렇게 눈치를 보는 모습이 재밌어서 후공은 짐짓 침음성을 흘려주었다.
“크흐음…….”
[…….]
색관조가 의기소침해졌다.
후공은 지그시 바라봤다.
색관조가 고개를 들어 마주보았기에, 담담한 어조로 말해주었다.
“넌 최고다.”
[네?]
“후후, 들었을 텐데.”
씨익 웃어주자, 진심이란 걸 안 색관조가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까르르르르르! 주인님이 내가 최고래! 난 최고야, 최고로 멋진 새야! 까르르르르르!]
후공은 충분히 광분하도록 두었다.
하루 종일 까르르거려도 지켜봐줄 용의가 있을 정도였다.
유골 속에서 귀곡자의 용편린을 수습했다.
사용하기 위함은 아니었다.
이는 유품.
건네주어야 할 사람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는 좋아할까, 슬퍼할까.
분노하겠지.
동굴의 입구 쪽으로 걸어가 섰다.
이곳은 절벽 위에서 내려오게 되는 경우 첫 번째 맞이하는 동굴.
‘찾아보자.’
천향삼주를 운용했다.
천향의 공법은 삼주에서도 이제 극.
검결지를 맺어 허공의 한 지점을 점혈하듯 찍었다.
파앙.
물에 파문이 번지듯 점혈된 지점이 번져갔고, 이어 퍼져나갔다. 수백 개의 천향의 선이 좌측과 우측 그리고 아래쪽으로 뻗어나갔다.
눈에 보이는 건 아니다.
그저 자신만이 볼 수 있는 선들.
천향의 공법 중 하나인 취향(取香)!
선들이 지나쳐가며 범위 내 모든 향을 취합한다.
취합 거리는 사방 이백여 장.
후공은 눈을 감은 채 의식을 집중했다.
잠깐 사이에 엄청난 향의 정보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바람의 내음, 절벽의 습기, 절벽에서 튀어나와 자라고 있는 나무와 그 잎사귀의 내음, 천향의 선들이 뻗어나가며 지나가고 닿고 더듬어가고 관통하면서 채취한 향이 의식을 통해 들어왔다.
후공은 의식 속에서 향을 분류해, 의미 없는 향은 단절시켜가면서 의식의 집중도를 높였다.
그러던 한순간,
‘개구리? 두꺼비? 습기…….’
그런 건 중요치 않다.
그다음, 그다음.
후공의 양쪽 입꼬리가 스윽 올라갔다.
‘찾았다.’
이전 생에서 공청석유는 한차례 복용한 적이 있었기에 그 향은 잘 알고 있다. 향이 없지만 향이 있다. 머금는 순간만 느낄 수 있는 청량함.
그걸 천향이 구별해냈다.
취합의 선들을 모두 끊어내고, 공청석유에 닿은 하나만 남겨두었다.
위치는 아래쪽으로 육십여 장의 동굴.
곧바로 신형을 던졌다.
[주, 주인님, 어디 가세요?]
동굴 안을 휘저으며 날던 색관조의 다급한 목소리는 이내 곁에서 들렸다.
[서, 설마 찾으신 거예요?]
과연 속도가 빠른 녀석이다.
“다 왔다.”
[우와와아!]
후공은 처음과 같은 방식으로 환명을 밑에 그려 허공에 발판을 만들어 딛고 섰다. 허공에 뜬 채로 가만히 동굴을 바라봤다.
천향삼주의 선에 끌려오는 향이 말로 할 수 없이 강렬해져 있는 상태.
그와 함께 또 다른 강렬함도 찾아왔다.
‘살기?’
진득한 살기가 동굴 안쪽에서 뻗어온다.
어찌나 지독한지 살기가 말을 건네오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들어오면 죽는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주인님.]
색관조도 느낀 듯 목소리에 긴장이 묻어났다.
후공도 잠시 진입을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신중해지는 이유는 단 하나.
이 안에 사람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건 달리 말하자면 두 가지 경우다.
자신의 능력을 뛰어넘은 경지를 지닌 자이거나,
사람이 아니거나.
확인해 보자.
공청석유와 연결된 천향의 선을 의식으로 움직였다. 천향의 취합의 선이 동굴을 쓸어담듯 휘젓고 천장과 벽과 바닥까지 부딪혀가면서 세밀한 정보를 가져다주었다.
그 결과,
후공은 갸웃해지고 말았다.
“……?”
사람이 아니다.
살기를 뿜어내고 있는 건,
[그으으으으윽.]
위협적인 목소리를 내며 서서히 움직인다.
동굴의 왼쪽 구석에 있던 놈이 중앙 쪽으로 이동해오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바짝 엎드린 채,
기괴한 소리를 내면서,
빛을 뿜어내듯 살기 띤 눈을 빛내며 마주보고 있는 건.
두꺼비.
“…….”
금색이다. 그러니까 금두꺼비다.
크기는 손바닥만 한데 기세가 실로 대단해, 그 표정이 말하고 있었다.
여기까지다, 라고.
들어오면 죽인다, 라고.
[그으으으으윽.]
소리를 냈기에 후공은 뚱해지고 말았다.
본시 희귀한 영초나 영약이 있는 곳에는 영물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금두꺼비를 보게 될 것이라곤 후공으로서도 상상조차 못한 일이었다.
“혹시 아는 녀석이냐?”
[주인님, 저도 금섬은 처음 봤어요.]
무시하는 감정을 읽었음인가.
금섬이 입을 벌려 포효했다.
[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가라는데요?]
“그게 아니잖아.”
‘가’는 소리일 뿐, 금섬의 입에서 검은 독무가 뿜어져 나왔다. 매캐한 냄새를 동반한 채 쏘아지듯 흘러나온다.
“재밌는 녀석이네.”
후공은 독무를 향해 우수를 들어 손목을 휘젓듯 돌렸다. 뻗어오는 독무가 펼친 손아귀로 급속도로 빨려들어왔다.
삼악을 이룬 자, 그리고 천향의 주인을 독무 따위가 해칠 수는 없는 일. 거기에 천향삼주의 공법을 더해, 퍼져가는 독무를 손아귀로 빨아들인 후 쥐었다. 그것으로 소멸.
독무의 기운을 삼악이 기분 좋게 포식한 탓에, 기분 좋은 나른함이 전신에 퍼져간다.
훌쩍 뛰어 동굴 안으로 들어섰다. 이미 금섬의 표정은 두꺼비의 표정이 아니었다. 독무는 온데간데없어지고, 동굴 안의 공기는 세상 쾌청.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그래도 포기할 순 없는지,
[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만해!”
[…….]
“한 번만 더 하면 죽여버린다.”
다시 독무를 쏟아냈다가 소멸당하자 금섬이 멍청해졌다.
그제야 색관조가 들어섰다.
독무에 화들짝 놀라 뒤로 날아 물러났던 색관조는 제 주인의 위대함에 기세가 양양해졌다.
[너 이 새끼, 두꺼비 주제에 감히 누구한테 독을 뿜어!]
[그으으으으.]
[응?]
색관조가 갸웃했고, 금섬의 표정은 어느샌가 진중해져 있었다.
[그으으으으.]
[그래, 맞아. 사람 가려가면서 대해야지. 니가 잘못한 거야.]
[그으윽, 그으으으윽.]
[그건 안 되겠는데?]
[그으으으으으으.]
[아, 그랬어?]
[그으으으으으.]
[근데 그건 니 사정이지.]
[그으으으으으으으으.]
[까르르르. 닥쳐, 어디서 개수작이야. 두꺼비 주제에.]
이것들 뭐하는 것인가.
후공은 뚱해지고 말았다.
돌아가는 모양새가 마치 둘이 대화를 하고 있는 듯 보이는 것이다.
금두꺼비의 표정이 시시각각 달라지고, 슬퍼했다가 비장해졌다가 좌절했다가 지금은 당장 울 것 같이 변한다. 영물이어서인가. 두꺼비 주제에 표정이 풍부한 놈이었다.
“말이 통하나 보구나.”
[네, 주인님. 이놈이 글쎄 공청석유를 줄 수 없대요.]
“왜?”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게 육각망이래요.]
“……”
순간 무슨 말인가 했다가 후공은 어이가 없어 웃고 말았다.
묵영의 서신 내용과 일치했다.
성체가 되기 전 어린 육각망이 공청석유를 먹으며 자라고 성체가 되는 터라, 지금 이곳의 공청석유는 금섬이 육각망을 유인해 잡아먹기 위한 미끼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무슨 그으으, 하는데 대화가 이렇게 정교한가 싶긴 하지만 내용이 정확하고 그럴싸한 탓에 기가 막혀 나오느니 헛웃음이었다.
영물들은 영물들인가 보다.
색관조야 말할 것도 없고, 금섬은 백대 영물 중 하나인 육각망을 잡아먹는 놈이니 어디 보통 영물일까.
“금섬아.”
후공은 말을 걸어보았다.
색관조의 말을 알아들었으니 자신의 말도 알아들으리라.
과연 답하듯 금섬이 짧게 소리냈다.
[그윽.]
“공청석유 걱정할 때가 아니다.”
[그으윽?]
[주인님, 왜 그러냐는데요?]
“니 걱정을 해야지. 너도 내 손에 들어왔지 않느냐.”
[까르르르르르르. 까르르르르르, 난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색관조가 난리법석으로 웃음을 터뜨렸지만, 금섬은 주춤하며 혈색이 달라졌다. 그냥 그렇게 보인 것이 아니라, 금두꺼비가 창백하게 흰두꺼비가 되어 있었다.
너도 잡아먹는다.
이 말이다.
상대는 자신의 독무를 손짓 하나에 소멸시키는 자.
그리고 색관조가 모시는 자.
[…….]
“알아들었나 보구나.”
[그으으으윽.]
금섬이 뒷걸음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