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화 서고 대공자-147화 (147/460)

147화. 뛰는 놈 위에.

공청석유의 출현.

가히 강호를 뒤흔들기에 충분하다.

무공을 익힌 이들에겐 꿈같은 보물인 것이다.

그럼에도 천공단이 한가하게 고기나 구워먹고 있는 이유는, 강호 경험이 많은 쪽은 고였기 때문이고, 젊은 세대는 신중한 성향이었기 때문이다. 소문이 돈다고 혹해서 달려들 만큼 단순하지도 호락호락하지도 않았다.

본시 강호의 생리가 그렇다.

빈 수레가 요란스러운 법이며, 소문은 숨겨진 함정을 품고 있을 때가 많으니까.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다름 아닌 천공단 소속이란 점.

“사형. 만약에 진짜 공청석유가 있는 게 확실하다면, 형아랑 함께 뛰어다니면서 공청석유 쟁탈전 벌이면 끝내줄 것 같지 않아?”

“야, 말이라고 하냐. 두목이 나서면 우리 쪽이 승산이 있지. 뭐 공청석유가 있다는 전제이긴 해도.”

“아서라, 거지새끼들아. 형님 하루 이틀 겪냐. 분명 공청석유 이야기 듣자마자 코웃음 치실 거다.”

“그래도 형아에게 알리긴 할 거죠?”

“그거야 당연하지.”

빈 수레든 아니든, 호기심만은 모두가 컸다.

왜 관심이 없겠는가.

무려 공청석유인데.

하지만 멋대로 행동하지 않은 건, 먼저 단주에게 알리고 그다음 나아가야 할 방향을 들으면 출발이 늦어도 더 빨리 도착할 수 있음을 이미 여러 경험을 통해 학습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단주의 입에서 그딴 거 신경 쓰지 말라는 말이 나온다면 바로 신경을 끌 준비가 되어 있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식사가 끝나면 소식을 전하러 항마삼협과 언교운이 천화서고로 출발하기로 한 터.

“쌍웅, 형님 집이 그렇게 근사하다며?”

“캬아, 삼협! 말도 마십시오. 천화서고 끝내주게 멋집니다. 처음 입구부터 굉장하지요. 낭떠러지가 스스스슷 바뀌는데, 너무 놀라 뒤로 우린 세 걸음이나 물러나버렸지 뭐겠습니까.”

“하하하, 그거 기대되네. 근데 말씀이야. 또 하필 이때 딱 맞춰서 색관조가 날아오면 구경은 물 건너가는 건데, 그럴 일은 없겠지?”

그때였다.

하늘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왔는데? 까르르르르르.]

천공단이 모두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얀 새가 깔깔대고 있었다.

천화서고 구경 갈 생각에 들떠 있던 언교운과 항마삼협의 얼굴이 있는 대로 구겨졌다.

**

아삭.

후공은 과일을 베어 물었다. 달콤한 과즙이 입안에서 터져 나왔다. 맛을 음미하느라 후공은 지그시 눈을 감았고, 미소를 떠올렸다.

“금섬아. 맛이 좋구나.”

[그윽, 그윽.]

금섬이 제자리에서 좋다고 폴짝폴짝 뛰었다.

“후후.”

후공은 그 모습을 보며 또 웃었다.

모자란 녀석이다.

있는 것 없는 것 다 털리고, 과일까지 갖다 바치고는 이러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다. 물어보니 색관조랑 같이 자기도 따라다니고 싶단다. 물론 말을 한 건 아니었다. 도토리랑 열매를 가져다놓은 걸 보고 넌지시 그런 의미냐고 물었더니 금섬이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모자란 놈이다.

또 영물치곤 단순한 놈이다.

하지만 그게 또 귀여운 면모이기도 했다.

뭐, 색관조가 똑똑하니 괜찮을지도.

“금섬아, 노래 한번 해봐라.”

[그으으윽, 그으으윽, 그으으으으으, 그으으윽…….]

음조고 뭐고 없이 그윽거릴 뿐이었다.

이건 노래가 아니었다.

“그만.”

[…….]

“그래도 노래를 했으니 선물을 주마.”

[그윽?]

후공은 노란 열매를 집어 금섬에게 내밀었다.

금섬이 웃으며 좋아 팔딱팔딱 뛰었다.

제놈이 따온 주제에 좋아하는 건 모자라서는 아니었다. 집어 건네는 와중에 후공이 삼악의 향취를 액화하여 열매에 묻혀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동굴 안에 매혹적인 향이 가득 번지고,

아삭. 아삭. 아삭.

금섬은 열매를 베어물며 황홀한 표정이 되었다. 금섬에겐 육각망보다 더한 별미였다.

“왔구나.”

[그윽?]

금섬이 갑자기 뭔 소리인가 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동굴 입구로 뛰어갔다. 잠시 후 색관조가 날아들자, 금섬이 반갑다고 또 폴짝거렸다.

[주인님, 제가 다녀왔어요.]

“어서 오너라. 수고했다.”

이내 천공단이 절벽을 올라오는 기척이 들렸다.

이 동굴은 위에서 내려오는 것보다 아래에서 올라오는 것이 훨씬 수월해 그리 하라고 말해둔 탓에, 다들 벽공장을 이용해 절벽을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제일 먼저 올라선 건 금적자였다.

그윽한 향에 놀라 잠시 음미했다가 이내 의문을 토해냈다.

“단주, 진짜 여기 있었구만. 여긴 언제 온 건가? 아니 왜 여기에 있는 거여? 금두꺼비는 뭐고?”

연이어 항마삼협과 무산쌍웅 등이 올라오면서 같은 의문을 발했다. 낭인왕에 거지들이며 남궁연, 마지막으로 언교운까지 올라와 어리둥절해하며 눈을 깜박이기 바빴다.

후공은 무시하고 설영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설 소저, 어찌 천공단과 함께 있습니까?”

“그게…… 그러니까…… 스승님께서 저를 두고 사라지셔서…… 반년 후에 보자고 하시는 바람에…… 죄, 죄송합니다.”

차기 천산신녀가 난처해하며 어쩔 줄 몰라 했기에, 후공은 그만 웃고 말았다. 현 천산신녀가 안강에 함께 갔다가, 천공단과 지내라며 떨구고 가버린 모양이었다.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의도했다 해도 인연. 이어가 봅시다. 그리고 다들 이곳이 궁금하실 테지요. 이곳은…….”

후공은 의아해하는 천공단을 쭈욱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공청석유가 있는 곳입니다.”

“으응?”

“네에에?”

“그, 그게 무슨?”

“혀, 형님…….”

“형아?”

“두목??”

모두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

황당해 말문이 막혔다.

안휘 북부 천화서고에 있어야 할 천공단주가 섬서에 와 있는 것도 놀라운데, 지금 발 딛고 선 이곳이 공청석유가 있는 장소라니.

여긴 북교산도 아닌데?

청우산이잖아??

...하지만 사실이었다.

이를 확인하고는 모두가 얼이 나가버렸다.

공청석유를 찾겠다고 강호가 난리인데, 천공단주는 이미 공청석유를 떡하니 차지하고는 자신들을 이곳에 부른 것이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대체 뭐하는 사람인가.

그 결과,

“단주, 이 은혜 잊지 않겠네.”

“형님! 평생 이 한 몸 바쳐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형아, 흐흐흐흑!”

“감사합니다. 저에게 있어 기연은 두목을 만난 것입니다.”

“흑흑, 내가 짖길 잘했지. 안 짖었어 봐. 흑흑흑…….”

“흑흑흑, 형님…… 어찌 저희에게까지…….”

모두가 엎드려 감사의 예를 표했다.

충성을 다짐하고 목숨을 바친다고 했다가 감정이 복받치는지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후공은 미간을 찡그렸다.

인원이 많기도 하여 소란하기가 말로 할 수 없었다.

안 그래도 하루하루 나이가 들어가면서 번잡스러운 것이 싫어지거늘, 고함치듯 울어대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칠 때까지 놔두면 하루 종일이라도 이러고 있을 듯하여,

“조용, 조용!”

“…….”

“…….”

“…….”

누구의 말이라고 안 듣겠는가.

모두가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후공이 말했다.

“제가 큰 은혜를 베푼 것도 맞고, 여러분들이 충성할 것도 알고 있으니 적당히 했으면 좋겠군요. 애초에 목숨 바치라고 주는 건데, 그걸 모를까 봐 계속 이야기하는 겁니까?”

쯧쯧, 혀까지 차며 말을 마친 탓에 엎드린 천공단은 울컥하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 세상 천지에 공청석유를 앞에 두고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얼마나 큰 사람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공청석유는 값을 매길 수조차 없는 보물 중의 보물이 아닌가 말이다.

아까 남궁연이 외친 말이 모두의 마음에 떠올랐다.

그 말대로다.

기연은 공청석유가 아니다.

천공단주를 만난 것이 기연이었다.

지나온 길이 말해주고 있고, 지금 이 순간이 말해주고 있었다.

천공단주의 음성이 이어졌다.

“자, 이제부터 어떻게 공청석유를 받게 되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전에 여러분들께 금두꺼비를 소개해야겠군요.”

*금섬은 후공에게 했던 방식대로 똑같이 이행했다.

그렇게 천공단 모두는 공청석유를 받아들였고, 물리는 과정에서 벼락에 맞는 충격을 겪었다.

하지만 그깟 충격이었다.

운기를 마친 천공단이 하나둘 좌정을 마쳤다.

하루하고도 반나절이 지난 시점이었다.

모두가 진일보한 자신의 경지에 격정을 감추지 못해 또 감사를 표하고,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런 한편에서,

“소문이 돌고 있다?”

후공은 가장 빨리 운기를 마친 금적자의 보고를 받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금적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그래서 더 놀랐던 걸세. 소문 속에는 성숙노괴가 공청석유의 정확한 위치를 알고 있고, 그 장소도 이곳 청우산이 아니라 북교산으로 회자되고 있거든.”

한데 단주는 어찌 이곳을 알게 된 것이냐며 금적자가 물어왔다.

후공은 턱을 쓰다듬었다.

“흐음, 성숙노괴라……. 묘하구나.”

금적자의 눈이 커졌다.

단주의 반말 때문은 아니었다. 원래 단주는 한 번씩 뜬금없이 누구에게라도 말을 놓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 해도 금적자로서는 상관없는 일이기도 했다.

단지 놀란 건,

“단주, 성숙노괴를 알고 있는 것인가?”

“네, 저를 찾아왔었습니다. 물론 그의 수하였습니다만…….”

“으잉?”

어느샌가 주변으로 천공단 모두가 모여들어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중에 대화가 이어졌다.

“제가 이곳을 찾게 된 건 성숙노괴 쪽의 정보를 통해서는 아닙니다. 성숙노괴의 정보도 명확한 것은 없었습니다만…… 이곳에 오게 되면서, 제가 찾고자 한 것이 성숙노괴가 찾고 있는 것과 같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어찌 말인가?”

“금적선생께선 귀곡자를 아십니까?”

금적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다마다. 단주와 같은 부류네. 천재요, 뛰어난 인물이지. 맹주 후공조차 그 재주를 아꼈다면 이해되려나? 그리고 귀곡자는 성숙노괴의 친동생이네.”

그렇다.

후공도 알고 있다.

귀곡자는 성숙노괴의 아우다.

그렇기에, 음양노괴와 귀곡자가 공청석유를 앞에 두고 위쪽 동굴에서 동귀어진한 정황을 인지한 순간 후공은 성숙노괴가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성숙노괴가 풀어내고자 한 암호문서의 출처를 깨닫게 되었다.

귀곡자.

귀곡자가 남긴 것이다.

그러니까 성숙노괴가 찾고자 한 건,

암호 해독을 통해서 공청석유 이전에 아우의 행방을 찾으려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 와중 변수가 발생했다.

소문이 돈 것.

소문은 누가 퍼뜨린 것인가?

누가 공청석유를 세상에 드러낸 것인가?

누가 성숙노괴의 이름을 전면에 띄워 혼란을 일으키는가?

성숙노괴의 측근인 호열자조차 모르고 있는 걸 누가?

이쯤 되면 한 사람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천금서고…… 선우진.’

녀석은 살아있을 가능성이 크다.

호열자는 속아넘어간 것일지도.

이 부분은 확실히 되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선우진이 살아있다면 상황은 역전된다.

성숙노괴가 선우진에게 접근한 것이 아니라, 선우진이 의도적으로 접근을 유도했으리라.

어떻게?

혼자는 아닐 테지.

이 작업들에는 여러 사람의 손길이 필수.

그렇기에 배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후공은 정리된 생각을 천공단에게 설명했다.

자신을 찾아온 호열자.

호열자를 통해 알아낸 사실들.

그리고 색관조가 우연히 듣게 된 절벽 동굴의 대화.

색관조가 들었던 절벽 위쪽의 대화는, 쓸데없는 의문을 줄이기 위해 각색하여 들려주었다. 색관조가 음양노괴와 귀곡자의 이름을 모두 들은 것으로 바꾸었다.

더불어 성숙노괴와 귀곡자의 관계까지.

이야기를 들으며 천공단은 여러 차례 탄성을 터뜨렸다.

전체 상황을 듣게 되자,

성숙노괴가 작업당한 모양새인 것이다.

또한 소문이란 형태로 강호도 작업당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그보다 더 놀라운 건 천공단주.

눈앞의 천공단주는 이미 공청석유를 작업해버렸고, 더 나아가 역으로 상대를 쫓으려고 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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