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화공신타, 밤을 질주.
후공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잠시 생각했다.
현 시점에서 필요한 건 정보를 모으는 것이며, 판세의 파악이다. 누가 벌린 판이고, 판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내야 한다.
물론 조급할 건 없다.
결과물은 이미 선취했으니까.
정보를 취득할 수 있는 곳은 세 곳.
첫째는 성숙노괴.
나머지 두 곳은 북교산과 청우산이다.
그 두 곳은 천공단이 맡으면 되는 일. 그러려면 천공단을 둘로 나누어야 한다.
거기까지 생각을 정리한 후공은 여섯 사람을 차례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일단 금적선생과 삼협, 낭인왕과 언 형께선 북교산으로 가십시오.”
“그럼세.”
“네!”
호명된 이들이 일제히 답했다.
하지만 전체 천공단 중 몇은 왜 굳이 북교산으로 가라는 지시를 내리는지 이해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눈동자에 의문이 떠올라 있었다.
정확히는 언교운과 설영이 의아해했고, 반면 젊은 세대라도 남궁연과 두 거지 녀석들은 크게 고개를 끄덕인 터. 거지들이야 강호의 경험치가 남다르니 그러려니 했지만, 남궁연이 눈치 빠르게 이해한 모습은 후공으로서도 인상적이었다.
남궁연을 불렀다.
“네, 두목.”
“왜 천공단 일부가 북교산으로 가야 하는지 그 이유를 이야기해 보십시오.”
“모두 헤아린 것은 아닙니다만 제가 이해한 부분에 관하여 말씀드리자면, 수많은 강호인들이 공청석유를 찾아 북교산으로 모여드는 상황에서 여러 혼란이 야기될 터. 그 속에서 북교산이 틀림없다며 확정적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이나 혹은 교묘한 말로 선동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이야말로 요주의 인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크흠.”
“……?”
침음성에 남궁연이 ‘틀렸구나’ 싶어 당혹스러워할 때, 후공은 웃으며 엄지를 들어 보였다.
“최고!”
천공단이 웃음을 터뜨렸고, 남궁연은 쑥스러움에 머리를 긁적였다. 당연하게도 그 대화를 통해 언교운과 설영은 비로소 상황을 이해하여 연신 고개를 끄덕여댔다.
후공이 입을 열었다.
“북교산 쪽은 금적선생의 지시를 따르고, 청우산 쪽은 쌍웅이 주도합니다. 북교산은 혼란에 혼란을 더하도록 하고, 청우산 쪽은 주로 관망합니다. 서로 간에 하루 한 차례 정보를 교환하는 걸 잊지 말고, 상황이 변하면 변하는 대로 유연하게 대처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네.”
“무엇보다 양쪽 모두 무리한 충돌은 없어야 합니다. 솔직히 무리할 필요도, 충돌할 이유도 우리에겐 없습니다. 이미 공청석유는 우리가 차지했으니까요.”
“아하하하하하!”
“으하하하하하!”
“맞아. 으헤헤헤!”
“하하하! 두목이 이미 해치웠지!”
“클클클클!”
천공단이 누구 할 것 없이 통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천공단이 동굴을 떠난 다음, 후공은 금섬에게 일을 시켰다.
금적자가 가져온 다섯 개의 옥병에 공청석유를 한 방울씩 담게 하였는데, 마지막 다섯 번째 옥병에는 두 방울이 담기도록 했다.
[그으윽, 그으으으윽, 그윽!]
일을 마친 금섬이 폴짝폴짝 뛰며 무슨 말인가를 했고, 색관조가 바로 해석본을 내놓았다.
[주인님, 바닥에 있는 걸 최대한 끌어모으면 한 방울은 더 나올 수 있대요.]
후공은 빙긋 미소 지었다.
“알고 있다.”
[아! 조금은 남겨 두시게요?]
“그럴 리가. 소중한 이에게 쓰려고 남겨 놓은 것이다.”
[까르르르르. 소중한 이. 소중한 이. 그건 누구일까요? 궁금해. 궁금해요.]
“너.”
[저, 저요?]
색관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래, 너도 천공단이 아니냐. 소중하기도 하고.”
[주, 주인님…….]
색관조가 일순 멍해졌다가 이내 눈물을 그렁거렸다. 언감생심,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던 터라 색관조는 날개를 끌어와 두 눈을 가렸다. 몸도 들썩이는 것이 복받치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는 모습이었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새인데…….
공청석유가 귀하다는 걸 알고, 남는다고 척척 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것도 알기에 색관조는 주인님이 그만큼 자신을 아낀다 싶으니 흐느낌을 멈추지 못했다.
“크흠, 그만 울어라.”
[하지만…… 하지만…… 소중하다고…….]
“적당히 해. 누가 보면 널 구워먹으려고 하는 줄 알겠다.”
[여기 누가 있다고요. 주인님은…… 웃겨요.]
색관조가 웃으며 날개로 눈물을 훔쳤다.
이윽고 금섬이 공청석유를 샅샅이 빨아들이고는 색관조를 깨물었다.
벼락같은 충격이 지난 후, 색관조가 축 처졌다. 죽은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오색찬란한 깃털이 서서히 빛나기 시작하더니 이내 번쩍번쩍 눈이 부실 정도로 빛나기 시작했다. 이어 서서히 눈을 뜨는데, 원래도 새파란 보석 같던 두 눈이 더욱 더 반짝이면서 형형한 광채를 사방으로 뿌려댔다.
한순간 색관조가 날개를 활짝 펼치며 울부짖었다.
[우워워어어어어어어어어!]
[크윽.]
그 소리가 마치 천둥치는 듯하니, 금섬이 겁을 먹고 후공의 등 뒤로 숨었다.
색관조의 울부짖음이 이어졌다.
[힘이~ 넘쳐난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우워워워어어어어어어!]
그러면서 고개를 이리 저리 돌려대는데, 그 방향을 따라 안광이 뻗어나가니 아주 장관이었다. 그러면서 연신 울부짖어 가는 모습이, 좀처럼 끝낼 기세가 아니었다.
[우워워워어어어어어, 주인님 전 이제 천하제일조(天下第一鳥)입니다아아아아! 무서운 게 없습니다아아아아!]
“언제까지 할 거냐?”
[우워워워어어어어어~ 좀 더요!]
“그만해.”
[넵.]
이내 언제 그랬냐 싶게 반짝거리는 채로 팔랑팔랑 뛰기 시작했다.
[주인님, 감사하고 감사하고 또 감사해요. 정말이지 다른 말은 생각이 나질 않아요.]
“성취를 보자. 깃털 색을 바꿔 보아라.”
[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깃털색이 청, 홍, 흑, 백, 황, 자색으로 순식간에 바뀌었다가 다시 오색찬란한 본래 색으로 돌아왔다. 거의 여섯 번의 변색이 눈 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졌다. 그뿐 아니라 동굴의 바닥 색과 일순 동화되기까지 하니, 거의 투명이었다.
“오호!”
후공은 기대 이상이라 흡족함을 금할 길이 없었다.
성취가 몇 배냐를 따지는 것이 의미가 없을 정도의 발전이었다. 다른 부분을 굳이 확인할 것도 없었다. 활공 능력과 청력과 안력, 그리고 전반적인 힘까지 모두 크게 나아졌으리라.
“맘껏 날다 오너라. 기운을 돌려주면 더 좋을 게다.”
[네, 주인님! 금섬도 같이 가도 될까요?]
“아니다. 금섬은 따로 할 일이 있다.”
[네.]
따라 나서려던 금섬이 갸웃했다.
[그윽?]
맹한 표정이 귀엽기 짝이 없었다.
“금섬아, 넌 맑은 물을 입에 담아 오너라.”
[그윽.]
금방 돌아온 금섬이 공청석유 자리에 물을 흘려놓았다. 후공은 양이 많다 싶어 덜어내고는, 천향삼주를 운용해 공청석유 특유의 향을 발현해 손가락을 물에 담갔다.
“흐음, 공청석유의 향은 됐고…… 이제 색을 내야 하는데.”
진짜인 것처럼.
비취색과 우윳빛이 어우러져야 한다.
어떻게 하나 고민할 때였다.
금섬이 그윽? 했다.
“응?”
[그윽?]
“왜?”
[그윽.]
“혹시 색을 낼 수 있는 거냐?”
[그윽, 그윽.]
금섬이 고개를 끄덕였기에 후공은 한 생각이 머리를 스치면서 탄성을 터뜨렸다.
“아! 육각망.”
바로 이해했다. 공청석유가 없는 경우 공청석유가 있는 것처럼 꾸며내 육각망을 유인하는 방식인 것이다. 성체가 되기 전의 육각망 중 걸려드는 놈들이 있나 보다.
“하하, 이런 사기꾼 같은 놈을 봤나. 어디 해봐라.”
금섬이 폴짝폴짝 뛰며 웃더니 물에 독무를 뿜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비취색 속에 우윳빛이 감돌면서 영락없는 공청석유가 되었다.
금섬이 잘했지 않냐며 눈앞에서 생글거렸다.
잘했다마다.
“입 벌려라.”
[그윽?]
“육각망 들어간다.”
[크크크크.]
기이하게 웃으며 금섬이 입을 벌렸다. 후공은 손가락 끝에 삼악 중 육각망의 진액만 추출해 한 방울 떨궈 주었다.
금섬의 눈이 뒤집어졌다.
**
후공은 운주로 향했다.
성숙노괴를 찾기 위함이었다.
성숙노괴는 운주에 있을 것인가?
그럴 리가.
이미 떠나고 없을 터.
호열자는 자백 당시 성숙노괴가 운주에 머물고 있다고 말하였지만, 그때와 지금의 상황은 백팔십도 달라졌다.
- 성숙노괴가 공청석유의 위치를 알고 있다.
이 말이 강호에 퍼졌기에, 이미 성숙노괴는 모두의 표적.
강호인들의 눈에 성숙노괴는 더 이상 성숙노괴가 아니라 공청석유로 보일 뿐이다.
성숙노괴는 운주를 벗어나 어딘가로 숨어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후공이 운주로 향한 건 호열자를 찾기 위함이었다.
강호에서 동료나 주종 간에 흔히 약속되는 것이 다음 은신처다.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를 대비해 미리 장소를 약속해둔다. 그렇게 흩어졌다 다시 모여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다.
운주에 도착했을 땐 밤이었다.
천향삼주를 운용해 운주를 샅샅이 살폈다. 하지만 호열자에게 남겨놓은 무향은 감지되지 않았다.
‘아직 오지 않은 것인가, 아니면 왔다가 떠난 것인가.’
모가지가 돌아간 상태라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지만, 무리해서 달렸다면 이미 다녀갔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운주 부근까지 왔다가 돌아간 것이라면?
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소문을 먼저 접했다면 호열자로선 굳이 운주에 발을 딛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운주에 면해 있는 사방을 훑어갔다.
천향삼주와 함께 의식을 확장해 청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밤의 거처, 사람들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였다.
호열자의 외모는 특이해진 상태. 어제와 다름없는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 ‘목이 돌아간 남자’를 본 목격담은 좋은 이야깃거리다. 일단 봤다 하면 계속해서 희한하다며 떠들게 되어 있다.
한순간 들려왔다.
운주의 동쪽 운암현이었다.
“그건 틀림없이 귀신이야. 두 말할 것도 없지.”
“목 돌아간 귀신?”
“그래, 목이 돌아간 채로 어찌나 잘 뛰던지. 발이 안 보이더라니까. 사람이면 목이 돌아간 채 그렇게 빨리 달려갈 수 없지.”
이동 방향이 잡히자, 그 방향을 따라 목격담은 이어졌다.
“어머님, 저녁 무렵에 괴상한 사람을 보았습니다.”
“괴상한 사람이라니?”
“목이 꺾인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말이죠.”
“이런, 안됐구나. 넌 바라보며 웃지 않았겠지?”
“그럼요. 언제고 몸이 건강해지길 마음으로 빌어주었습니다.”
“그래, 착하구나. 곧 그도 좋아질 테지.”
‘효자로구만.’
후공은 계속해서 소리를 쫓았다.
목 돌아간 괴인에 대한 이야기는 운성, 운학현까지 이어졌다.
“내가 소리쳤네.”
“뭐라고?”
“야, 이 새끼야! 앞을 보고 다녀야지!”
반시진 전에 보았다는 내용.
자정이 넘어가는 시점, 성큼 가까워진 셈이었다. 이 기세대로면 천향의 범위 안에도 곧 들어오게 될 터.
뚜드드드드득.
후공은 교릉을 시전했다.
뼈마디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모습이 바뀌었고, 백의는 흑의가 되었다.
검은 검집째로 밤하늘로 쏘아보냈다.
척!
하늘 위에서 색관조가 날아든 검을 발톱으로 움켜잡았다.
[화공신타!]
[그윽?]
색관조의 등에 올라타 있던 금섬이 물었다.
[지금부터 주인님은 화공신타야.]
[그윽???]
[까르르르르르.]
화공신타가 밤을 질주했다.
“호열자를 잡을 기회가 우리에게까지 올까?”
“안 오겠지. 하지만 행운이란 건 시도하지 않는 자에겐 결코 미소 짓지 않아.”
질주 속에 새로운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강호인들이 호열자를 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