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화 서고 대공자-150화 (150/460)

150화. 호수에 비친 내 모습.

“화, 화공신타…….”

알아보며 더듬거리는 목소리.

순간 화공신타의 시선이 호열자를 쏘아봤다.

그 시선에는 노기가 서려 있었다.

‘헉! 내가 뭘 잘못했지?’

호열자는 잠시 영문을 몰라 당황했다. 하지만 바로 감을 잡았다.

‘설마 이건가?’

침을 꿀꺽 삼킨 후 마치 말을 덜 끝낸 것처럼 한마디를 추가했다.

“……님.”

그제야 화공신타가 흡족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엄지를 들어보였다.

“클클, 호열자! 다시 보니 반갑구나.”

“네. 저, 저도…….”

“흥!”

화공신타는 콧방귀를 뀌고는 마승과 염라수 쪽을 향해 돌아섰다.

마주보는 마승과 염라수의 눈매는 심히 가늘어져 있었다. 상대의 신법이 놀랍고 생긴 것도 놀라워서, 절로 눈이 가늘어질 수밖에 없었다.

화공신타가 입을 열었다.

“아까 듣자하니 마승과 염라수, 너희 둘이 동맹을 맺었다고?”

“그래서?”

염라수가 고개를 삐닥하게 기울였다.

더불어 마승의 염주는 당장이라도 발출될 듯 손목에서 서서히 돌기 시작했다.

“클클클클…….”

화공신타가 끔찍하게 웃기 시작했다.

몸을 숙이고 고개를 살짝 쳐든 채로 웃는데, 눈이 희번덕거리고 굽은 등이 웃음소리에 맞춰 오르락내리락거리는 것이 기괴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나도 끼워 줘.”

“…….”

생각지도 못한 말에 염라수와 마승의 눈매는 더 가늘어졌다.

한편 지켜보는 이들은,

‘하아…….’

누구 할 것 없이 내심 탄식을 터뜨렸다. 심장이 아파온다. 혹시 모르는 일이라며 기대하고 있었다. 한데 끼워 달라니. 사람을 외모만으로 평가하면 안 된다며 한줄기 희망을 품고 있었거늘, 외모가 전부였다.

“왜 말이 없냐? 싫어?”

화공신타의 얼굴이 딱딱해졌다.

염라수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 가운데 은밀히 마승을 향해 전음을 발했다.

- 마승, 바로 손을 씁시다.

- 조금 더 봅시다. 간단히 볼 수 있는 자가 아니오.

- 흐음.

염라수가 침음성을 흘렸다.

마승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납득 못 할 바는 아니었다. 구겨지고 비뚤어진 몸으로 펼쳐낸 신타의 신법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것이었고, 휘도는 음성 또한 기이하기 짝이 없으니 조금 더 상대를 파악하여 기회를 엿보는 것도 나쁠 건 없었다.

“화공신타.”

“말해.”

“난 당신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고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거늘, 그대를 어찌 믿고 함께할 수 있겠는가?”

“너희 둘은 믿냐? 너희도 서로 안 믿잖아!”

화공신타가 눈을 부라리며 역정을 냈다.

그러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발을 쿵쿵 굴렀다. 경력이 가득 실린 탓에 땅이 지진이 난 듯 흔들렸다. 지켜보는 이들은 자신의 몸이 들썩일 정도라 새삼 놀라운 눈빛이 되었다.

“설마 내 외모 때문이냐? 창피해서 그래?”

“그럴 리가.”

“확실해?”

“외모는 중요치 않다.”

“아니. 외모는 중요해.”

“응?”

“솔직히 말하자면 여자들이 나 좋아해. 나를 보고 여자들이 줄을 서. 사실이야.”

“…….”

염라수의 눈에 살기가 떠올랐다.

미친 새끼다 싶은 것이다.

다른 한편으론 도대체 얼마나 무공에 자신이 있으면 태연히 이런 헛소리를 하나 싶기도 하니, 제대로 손속을 겨뤄보고 싶은 충동도 솟구쳤다.

상황이 급변할 것 같았기에 마승이 너털거리며 관여했다.

“허허, 나무관세음보살. 화공신타, 그대는 거울이 없는 겁니까?”

농담조로 말을 건넸다.

“없어.”

“허허, 나무관세음보살.”

“하지만…….”

“하지만?”

마승이 갸웃했다.

“호수에는 비춰봤지.”

“그랬더니 어땠소?”

“호수에 비친 내 모습…… 너무 멋져.”

“…….”

상상도 못한 답에 마승이 순간 멍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참을 수 없다는 듯 껄껄대면서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건 지켜보는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점이라면, 웃을 분위기도 처지도 아닌 탓에 소리를 내기가 뭐해서 이를 악물고 참고 있다는 점 정도. 어떻게든 안 웃으려고 하다 보니 뺨이 미친 듯이 실룩거렸다.

호열자라고 다를 건 없었다.

호수에 비친 내 모습이라니, 이를 아주 꽉 물어야 했다.

물론 마음 한편에선 경외감이 피어나고 있기도 했다.

‘도대체 이 여유는 뭔가.’

그는 이미 화공신타를 겪어본 터.

- 정지.

이 한마디는 아직도 생생하다. 너무 충격적이어서 한동안 꿈에서도 그 말이 들렸을 정도였다. 게다가 신타가 남긴 마지막 말은 어떠했는가.

- 성숙노괴에게 전해라. 조만간 화공신타가 찾아간다고.

자기 목숨도 아니고 성숙노괴의 목숨이거늘, 마치 맡겨두었던 물건 찾으러 간다는 식이었다.

당시 보인 절대적인 존재감과 지금 모습이 다르긴 하지만 한 가지는 같다.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화공신타는 마승과 염라수 따위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화공신타의 시선이 염라수에게 향했다.

표정은 어느새 악독해져 있었다.

“너.”

“……?”

“넌 왜 안 웃어?”

혼자만 차게 식어있던 염라수가 그 말에는 어이가 없어 웃고 말았다.

“꼽추놈이 죽고 싶은 게로구나.”

“웃었으면 됐어.”

“하하하하하!”

염라수는 결국 파안대소하고 말았다.

그 곁에서 마승도 껄껄대며 다시금 웃음을 터뜨렸다.

그 가운데,

화공신타, 아니 후공은 때가 되었음을 알아차렸다.

이놈들 이상한 버릇이 있는 것이다.

호북사흉을 죽일 때도 저렇게 웃다가 갑자기 손을 쓰더니,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웃고 있는 와중에 염라수의 기운이 급격히 차오르고, 마승의 염주도 마찬가지로 경력이 빠르게 스며드는 상태.

하지만 기다리던 바다.

도리어 늦은 감이 있다.

이전 생에서 죽이지 않고 살려두었던 터라, 많이 늦었다.

마승의 경우가 특히 그렇다. 당시 유령곡의 유령대제를 쫓느라 경고로 그쳤던 터.

- 소식이 들리거나 눈에 띄면 그땐 죽는다.

멀리서 외쳐주었다. 그 후로 죽은 듯 지내는지, 어디서 보았다는 말조차 들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제 눈에 띄었다.

그러니 약속을 지켜야 할 때.

차르륵,

붉은 염주가 스치는 듯하더니 쏘아져왔다.

슈웅, 슝! 슈우웅!

‘우습군.’

공청석유와 융화한 삼악의 기운은 5성 후기를 넘보는 경지를 선사했다. 그 경지 속 자령안에 비친 염주알은 느렸고, 방향까지 예측된다.

머리 쪽으로 둘, 가슴과 상체를 향해 셋. 그리고 나머지 세 개의 염주알은 우회하여 등과 옆구리를 노리고 짓쳐들고 있었다.

동시에 후공은 염라수의 모습도 두 눈에 담았다. 염라수의 시선은 위쪽을 향해 있다. 유일하게 회피할 방향이 위쪽으로 솟구치는 것이라 예측하고 있는 모습.

하지만 후공은 제자리에서 옷자락을 나부끼며 맴돌았다. 맴도는 신형 속에서 검결지를 맺은 손으로 허공을 휘저었다. 그건 어떻게 봐도 의미없는 모습으로 보일 테지만,

“멈춰라!”

환명을 펼쳐내며 쇳소리를 내주었다.

투명한 여섯 개의 환명의 늪이 사방을 뒤덮으니, 짓쳐들던 염주알이 늪에 빠져 그대로 멈췄다.

더 이상 나아가지도 못하고 돌아가지도 못한 채 허공에 머물며 꿈틀거린다.

“이, 이게 무슨…….”

“어, 어떻게…….”

“머, 멈췄어.”

“말도 안돼!”

그 광경에 모두가 눈을 부릅떴다.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멈추란다고 멈춰버린 염주들.

여덟 개의 염주는 화공신타의 바로 눈앞에 떠 있었고, 또 가슴 앞에 머물렀으며, 등 뒤와 옆구리 직전에 멈춰선 채 느리게 회전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꼽추의 몸에 투명한 보호막이 둘러쳐진 것 같기도 하고, 정녕 멈추라는 지시에 따라 멈춘 것처럼도 보였다.

하지만 누구보다 놀란 건 마승이었다.

그는 이미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창백하다 못해 혼이 나간 듯 질린 얼굴로 굳어버린 터. 상대와의 거리는 고작 5장여(약 15미터). 눈앞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지라 염주를 발출하는 순간 이미 끝났다고 생각했거늘, 허공에 멈춰버렸을 뿐만 아니라 회수조차 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놀람도 잠시, 뭔가가 보였다.

‘검은 안개?’

시커먼 연기가 휘몰아친다 싶은 순간, 훅 하고 꺼지듯 연기가 사라지며 얼굴 하나가 눈앞에 나타났다. 화공신타였다.

거기에 뻗어오는 손을 낚아채려 했을 땐 늦었다. 어느샌가 목의 맥문이 틀어잡히며 기운이 쑥 빠졌다.

“커억!”

목을 조여오는 손아귀가 쇳덩이 같아 당장이라도 목이 부러져나갈 듯했다. 그 상태로 들어올려짐에도 마승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걷어내고 치워보려 했지만 자신의 손길에는 더 이상 기운이 담기지 않으니, 그저 허우적거림이 전부가 되었다.

도대체 어떻게 움직였고, 어느 틈에 손이 뻗어온 것인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 가운데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에 띄지 말라고 했지 않느냐.”

“그, 그게 무슨.”

마승의 핏발 선 눈에 의문이 가득 떠올랐다.

그로선 오늘 처음 보았고, 여태 들어본 적도 없는 것이다.

“이제 죽어라.”

“……?”

마승의 눈이 커졌다. 하지만 희망은 남았다. 그의 눈동자에 염라수의 모습이 보였다. 자신의 목을 붙들고 있는 탓에 화공신타는 염라수에게 등을 보이고 있는 터.

무방비다.

이미 염라수의 권강이 화공신타의 등을 강타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왜?

왜 이자는 무방비인가? 왜 염라수를 신경 쓰지 않는 것인가? 찰나간 마승의 머리로 의문이 떠올랐다.

그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상황이 너무 빠르게 변해 다 본 건 아니었지만, 염라수의 권강에 신타는 허무하게 노출되어 있었다.

“신타!”

어째서인지 응원하게 되고 만 호열자가 소리쳤다.

경고는 늦었다. 이미 염라수의 권강이 화공신타의 등에 격중된 상황.

파아앙!

“크흡!”

급히 숨을 들이쉰 듯한 기괴한 신음을 내지르며 마승의 목이 날아가버렸다.

후공의 삼대 호신기 중 하나인 통격!

기의 전이(轉移)다.

염라수의 권강은 후공의 몸을 타고 흘러, 마승을 붙든 후공의 손을 지나 고스란히 마승에게 전이되었다. 이는 염라수가 권강으로 마승의 목을 날려버린 격이었다.

하지만 그걸 염라수가 이해하는 건 무리.

씨익.

태연히 돌아선 화공신타가 웃음을 머금고 있으니 염라수는 당혹을 금치 못했다. 더욱 당혹스러운 건 가슴 쪽이었다. 염라수가 시선을 내려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봤다.

‘어, 어떻게…….’

어떻게 된 일인가. 왜 화공신타의 손이 자신의 가슴, 그것도 심장에 파고들어간 채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언제 몸을 뚫고 들어왔고, 왜 고통은 이제야 느껴지는가? 왜 내 심장이 남의 손아귀에 잡혀 있는가?

내가 본 것이 뒤늦은 잔상이었다고?

‘이 사람은…… 누구……?’

상념은 길지 않았다.

꽉.

심장이 조여오는 느낌이 든 순간, 뭔가가 몸 안에서 터져나갔다. 그것이 심장인지, 전신경맥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아득히 의식이 흐려지며 죽어감을 인지할 뿐.

털썩.

화공신타가 손을 빼내자, 염라수의 몸이 허망하게 나뒹굴었다.

“……?”

“……?”

“……?”

깊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모두가 보고 있음에도 믿을 수 없어 멍하니 입만 벌리는 것이 전부였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무위. 그리고 한 번도 눈을 뗀 적이 없는데 제대로 본 것이 하나도 없었다.

꿈인가. 아니다. 혈향은 짙어 생생하고, 목이 날아간 마승의 몸은 아직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미세하게 꿈틀대고 있었다.

화공신타가 돌아섰다.

“클클클…….”

모두가 끔찍한 외모의 화공신타를 눈에 담았다. 이제 화공신타의 손에 죽는 것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이 강호에서 이 정도의 무위를 지닌 이에게 죽는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은 최후라는 생각. 누구에게 그런 소리를 들었다면 스스로도 어이없어 했을 테지만, 두 눈으로 본 터라 그런 황당한 생각조차 떠오르고 말았다.

화공신타의 입이 열렸다.

“너희들은…….”

“……?”

화공신타의 잔혹한 미소가 짙어졌다.

“이제 어떻게 될까?”

스산한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