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접근.
미친 손속이었다.
대공자의 손은 눈보다 빨랐다.
성숙노괴는 처맞으며 알 수 있었다. 터져나가는 피는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대공자는 준비된 피를 뿌렸을 뿐이다.
손은 빨랐고, 절묘했다.
강호인들의 시선은 따라올 수 없었다.
그리고,
할 만했다.
암벽에 처박는 건 이미 약속되어 있었으니까. 그래서 그건 박치기에 불과했다.
물론 머리로 암벽을 깨부수는 짓을 하게 될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지만, 문제될 건 없었다. 나름 할 만한걸, 박치기도 쓸 만한걸, 따위를 생각했었다.
하지만 마지막쯤에 가선,
미친 새끼인 줄 알았다.
죽어버렸네, 라고 말하곤 또 처박을 것이라곤 상상조차 못했으니까. 굳이 그럴 것까지 없던 상황이라서 재미가 들렸나 싶었고, 진짜 미친 새끼인 줄 알았다.
왜 굳이 이렇게 잔혹하게, 이렇게까지 미치광이처럼 굴 필요가 있냐고 내심 소리치다가 문득 깨달았다.
쿠웅, 쿵!
암벽에 부딪히며 ‘그런 건가’라고 중얼거리고 말았다.
처절할수록 강호는 겁먹을 것이기에,
잔혹할수록 사람들은 미련을 버리고 떠날 것이기에,
서로 칼을 겨누는 대신에 갑자기 등장한 미치광이를 욕하기 바쁠 테니까.
그래서 하마터면 웃을 뻔했다.
박치기를 하면서 기괴하게 실행된 대공자의 ‘의와 인’에 대해 생각하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
“대공자, 자네도 화공신타를 봤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구만.”
들려온 말로 인해 성숙노괴는 상념에서 벗어났다.
만박자였다.
북교산에서 천공단과 함께 줄행랑을 쳤던 만박자는 그 후에도 내내 함께하고 있던 터.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제대로 미치광이라고 하더군요.”
“그래, 아주 미친 작자였네. 자네도 만나지 않도록 조심하게. 성숙노괴를 아작 내는데 나 오줌 지릴 뻔했잖아. 천하의 이 만박자가 말일세. 하하하하!”
만박자는 껄껄 웃다가 소요파 이야기를 물으며 왜 그때 자신을 끼워주지 않았느냐며 떠들고, 또 요즘엔 세상 돌아가는 게 너무 빨라 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 자신조차 따라가기 바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다 물었다.
“그래서, 보자고 한 용건은 뭔가? 그리고 여기 너구리 한 마리는 또 누구고? 왜 중간에 들어와서 말없이 앉아 있어? 사람 긴장되게.”
“최근에 새로 사귄 친구입니다. 가면은 못 생겨서 그렇습니다.”
“어디 봐?”
만박자가 바라보자, 성숙노괴가 너구리 가면을 벗었다.
추악한 외모가 드러났다.
만박자는 시큰둥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화공신타 후유증인가. 이상하네. 잘생겨 보여.”
“맛이 갔군요.”
“하하하, 그런 셈이지. 뭐 어쨌든 그래서 자네가 궁금한 건 뭔가?”
“음양노괴에 대해 물으려 합니다.”
“음양노괴?”
만박자가 갸웃했다.
생각지도 못한 뜬금없는 물음이었다.
“정확히는 음양노괴의 이름이 궁금합니다.”
“음양노괴가 음양노괴지.”
하긴 그렇다. 강호를 살아감에 있어서는 본명보다는 별호로 불리니, 심지어 강호인들은 자기 자신조차 이름을 잊게 된다. 어처구니없게도 ‘뭐였지?’ 하다가 떠올린다. 구대문파든, 개방이든, 강호에서 명성을 얻든, 어디에 소속되든 별호가 이름을 대신한다.
그러다 보면 가까운 친구조차 어느 날 문득 ‘이름이?’ 이런 식이 되고 만다.
하지만 눈앞에 앉아 있는 이는 모르는 게 없다는 만박자다.
후공은 가만히 대답을 기다렸다.
만박자가 머리를 긁적였다.
“글쌔. 기억이 날 듯 말 듯하네.”
“…….”
“흐흐, 왜 궁금한지 이유를 말해주면 어째서인지 기억이 날 것도 같고.”
그러면서 만박자가 호기심 어린 눈동자를 빛냈다.
답을 안다는 의미였기에 후공은 미소를 머금었다.
나직히 재촉했다.
“이름.”
“이유.”
만박자도 지지 않았다.
“이름.”
“이유!”
“이름.”
“이유!”
“이름.”
“이유!”
둘이 하는 짓이 가관이었다.
계속한다.
결국 곁에 있던 성숙노괴가 참지 못하고 울화통을 터뜨렸다.
“그냥 가위바위보 해!”
후공과 만박자가 동시에 멍해져 너구리를 바라봤다.
그러곤,
“그 생각을 못했네.”
“그거 좋구만.”
빠르게 동의했다.
“삼판이승.”
“오판삼승.”
“가죠. 오판삼승.”
성숙노괴는 가면 속에서 웃었다.
승부는 볼 것도 없다.
대공자는 미친 손속.
대공자의 손은 눈보다 빠르다.
이미 처맞으면서 알게 된 터.
손과 손이 동시에 내밀어졌다.
동시인 것처럼 보이나 달랐다. 늦게 내밀어도 대공자의 손은 먼저 나갔고, 이미 졌어도 손의 형태가 달라지면서 이겼다. 만박자는 그 변화를 보지 못했다.
“뭐여……. 도신이야?”
대공자의 내리 삼연승.
만박자의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그리고 말했다.
“선우강.”
‘선우……?’
후공은 짐작하고 물었던 터라 확인에 불과하여 담담했지만, 너구리는 달랐다. 가면 속 성숙노괴는 듣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아우인 귀곡자가 동귀어진한 상대가 음양노괴임을 이미 들었으므로, 또한 의도적으로 접근한 천재의 이름이 선우진이므로.
**
태왕객잔의 별채.
객주는 낮잠을 청하고 있었다.
그가 깨어난 건 개 짖는 소리 때문이었다. 베개로 귀를 틀어막아 봤지만 그래도 소용이 없었다. 너무 컸다. 그는 결국 일어나 고함쳤다.
“어디 집 개새끼가 이렇게 시끄럽냐! 개소리 좀 안 나게 해라! 밖에 아무도 없…….”
고함치다 멈췄다.
어째서인가…….
개가 방 안에 있었다.
방 안을 뛰어다니며 짖고 있었다.
“왈왈, 크르르르르, 왈왈왈왈, 크르르르, 왈왈왈왈, 와르르르르…….”
개인 줄 알았는데 칼 차고 있는 사람이었기에 객주는 눈이 커져버렸다. 뭐하는 새끼야. 그러다 벼락같이 한 사람을 떠올렸다.
“낭인왕?”
낭인왕이 그제야 멈췄다.
“어, 일어났네? 안 일어나길래 깨우느라. 다 잤어? 자려면 더 자. 또 짖게.”
“염병하네.”
객주가 짜증을 내자, 낭인왕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난 이래서 하오문이 좋더라. 예전에 형님 만나기 전에는 진짜 하오문이 괜찮은 줄 몰랐거든.”
“뭐가 말이오?”
“겁도 없이 말을 함부로 하잖아.”
객주가 바로 콧방귀를 뀌었다.
“흥! 우리도 사람 봐가면서 해. 당신이 천공단 아니었어 봐. 웬 미친놈인가 생각하면서 이미 공손히 무릎 꿇고 있었을걸?”
“하하하!”
다시 낭인왕이 터져나갔다.
“근데 천공단주 앞에서나 짖지, 왜 나한테까지 와서 짖는 거요?”
“그런 일이 있어. 내가 여태 살면서 제일 잘한 게 형님 앞에서 짖은 일이란 생각이 떠나질 않아서 말이지. 요새 한 번씩 떠오르면 짖곤 해.”
“하긴 뭐 천화서고 대공자라면야.”
모르긴 몰라도 근사했겠거니 생각하며 객주도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파음문 때문에 천공단이 올 때 되었다 했소.”
“파음문도 있고, 사람 하나 찾아 줘.”
“누구?”
“선우진.”
말하며 낭인왕이 초상화를 건넸다.
선우진의 얼굴을 아는 성숙노괴를 통해 작업된 초상화였다.
객주는 누구냐고 캐묻지 않았다.
낭인왕이 설명을 덧붙였다.
“형님과 선우진이 만나야 해. 자연스럽게.”
“접수.”
“좋네. 파음문은?”
“멸문. 다 죽었소.”
“응?”
“중간책을 찾다가 더 가보자 해서 위쪽까지 갔는데, 모조리…….”
객주가 손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와우, 무섭네.”
“웃으면서 무섭다고 하기 있기 없기?”
“하하, 그럼 또 보자고.”
낭인왕이 방을 나섰다.
뒤통수로 객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밥이나 먹고 가지?”
“다음에.”
**
성숙노괴의 죽음은 강호 일대에 빠르게 퍼졌다.
화공신타의 위명이 진동하니, 모두가 입만 열면 화공신타에 대해 떠들기 바빴다.
그런 탓에 호열자도 들었다.
“화공신타, 개새끼! 그럴 줄은 몰랐다. 안 그럴 것 같더니만 어떻게 그럴 수 있냐. 흑흑흑…… 주군, 주군을 어떻게 그렇게 참혹하게…… 흑흑흑…….”
엉엉 울었다.
북교산 용두봉에도 올라가 참혹한 현장을 눈으로 직접 봤기에 술은 부어도 부어도 취하지 않았고, 또 계속 들어갔다.
“여기 술! 술 더 가져와라!”
“네, 손님.”
늦은 밤.
손님 없는 낡은 객잔에서 홀로 슬픔에 잠겼다.
그 소리를 밖에서 동물들이 듣고 있었다.
- 노조, 꽤 괜찮은 사람이었나 봅니다? 울어주는 사람도 있고.
객잔 문 앞에서 여우가 전음을 발했다.
너구리가 답했다.
- 호열자 하나일세. 그보다 자넨 호열자가 여기 있는 걸 어떻게 알았나?
- 제가 귀가 밝습니다.
물론 후공으로선 예전에 남겨놓았던 천향을 이 부근에서 우연히 감지한 덕분에 찾은 것이지만, 굳이 말할 이유는 없었다.
- 흥!
너구리가 콧방귀를 뀌고는 객잔 안으로 들어가자 여우도 바로 뒤따랐다.
호열자가 엉엉 울다 술을 마시다가 두 사람을 본 건 한참 뒤였다. 한 번씩 가면 쓴 놈들이 힐끗거리니 신경이 쓰였고, 화풀이를 하고 싶어졌다.
“거기 동물 새끼들, 사람 처음 보냐?”
“…….”
여우와 너구리는 답이 없었다.
“왜 말을 안 해!”
“동물이라서…….”
여우가 조심스럽게 답했다.
호열자는 멍해졌다가 이내 피식 웃고 말았다.
“귀여운 놈이네. 그래. 쳐다보지 말고 얌전히 처먹다 가라. 나 오늘 기분 별로야. 진짜 누구 하나 죽일 것 같거든.”
술잔을 들어 확 꺾어 마시고는 다시 쳐다봤다가 호열자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우가 없다.
너구리만 앉아 있었다.
‘뭐지?’
술을 너무 마셨나. 혹시 잘못 봤나 싶어 눈을 질끈 감고 떴지만 역시 너구리뿐이었다.
“여우는?”
“여기.”
등 뒤에서 들린 소리에 뒤돌아본 순간, 여우의 손이 뻗어왔다.
순간 암전.
쿵!
호열자는 의식을 잃고 그대로 탁자에 머리를 박았다.
여우가 전음을 발했다.
- 노조, 혹시 데려가고 싶습니까?
- …….
너구리의 대답은 바로 나오지 않는다.
원래 이야기되기론 혹시 모르니 얼굴만 추악하게 바꿔놓고 간다, 였다. 아직은 화를 당할 수도 있기에.
한데 너구리는 고민했다.
호열자의 울먹이는 소리를 들었기에 잠시 갈등되었다.
결국,
- 원래 하려던 대로 하지.
여우가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그러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 데리고 가죠.
- …….
**
성숙노괴가 죽었다.
누군가에겐 ‘그게 누군데?’ 정도의 소식이었고,
또 누군가에겐 ‘말도 안 돼!’라는 경악스러운 소식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선우진에겐,
대낮에 마음 편히 외출할 수 있는 작은 여유가 되었다.
“여기 소면 한 그릇. 차갑게.”
“네, 손님.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더 이상 성숙노괴를 만나게 될까 두려워할 이유가 없어졌다.
이제 아무도 날 알아보지 못할 테지.
호열자도 나다니는 건 쉽지 않을 테니까.
‘후후후.’
곧 소면이 나왔다.
아직도 머리가 깨질 것 같다. 머리는 여전히 뜨겁다. 식지 않아. 소면이 차가워서 다행이야. 머리가 식었으면 좋겠어. 공청석유를 찾았으면 좋겠어.
그때 들려왔다.
“짜증나 죽겠네.”
“왜 그래?”
“내가 더 나은데 시발.”
“알아듣게 말을 해. 자, 젓가락 받아.”
“아니 그러니까 주루에 웬 서생 놈이 들어오더라고. 천화서고 대공자라나 뭐라나.”
“천화서고? 그건 또 뭐야?”
“몰라. 아무튼 반반하게 생긴 데다 별 시답잖은 시 한 수 읊었을 뿐인데 기녀들이 아주 환장하고 난리인 거야. 생긴 건 솔직히 내가 더 나아.”
“거울 없냐? 호수에라도 한 번씩 얼굴 좀 비추고 살아라.”
“닥쳐.”
그쯤,
선우진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히죽 웃음 지었다.
‘머리가 식어. 비를 맞아도 식지 않던 머리가…… 가라앉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