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화 서고 대공자-165화 (165/460)

165화. 그들의 주인.

스르르릉.

방 안에 침입자는 없다. 이는 자신의 애검인 검령. 스스로 검집에서 빠져나오고 있다.

처음 검연이 시작되는가 싶을 때 이후로 종종 저런다. 제 멋대로고, 그러면서도 여태 진전은 없다. 오는 건 잘 오는데, 돌아가질 못한다. 모자란 놈이었다.

그래도 단 하나 마음에 드는 건,

포기를 모르는 검이라는 점.

이내 검령이 쇄도했다.

쇄애액!

방향은 왼쪽 귓가 쪽이다. 위치는 좋다. 오른쪽으로 지나가면 우수로 잡을 때 잡는 입장에서 모양이 조금 안 난다. 왼쪽이라 오른손을 사선으로 들어올리면 검병(검의 손잡이)을 잡기도 좋고, 자세도 나온다.

하지만,

‘난 잡지 않지.’

지나감에도 못 본 척 붙잡지 않았다.

우우웅?

검령이 왼쪽을 지나쳐가면서 당황해 진동했다. 이쯤에서 주인의 손에 잡혀야 하는데 손길이 없는 것이다.

결국, 속절없이 주인을 지나쳤다.

하지만 당황한 건 검령만이 아니었다. 곧바로 주인도 당황했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쿠웅, 하는 마땅히 들려야 할 벽에 박히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그대로 벽에 틀어박혀 파르르 떨고 있어야 하건만 이 상황은…….

도중에 멈췄다.

‘오호!’

스스로 멈추었음이다.

후공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도 검령의 상태를 본 듯이 알 수 있었다. 주인과 검은 의식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검연(劍聯)이다.

검연이 깊어지면 검은 주인을 알고, 주인은 검을 안다. 서로가 세밀한 감정까지 느끼고 공감한다. 주인의 분노에 검령은 분노할 것이고, 슬퍼하면 울 것이다. 기쁨도 마찬가지.

후공은 몸을 일으켜 검령을 바라봤다.

지이이잉!

검 끝이 벽에 닿기 직전의 상태로 멈춰, 보란 듯이 머물고 있었다. 마치 나 어떠냐고, 이 정도면 잘해낸 것 같지 않냐며 칭찬을 바라는 듯한 모습이었다.

웃기지도 않았지만,

“굉장하네.”

후공은 과장 없이 칭찬해주었다. 이는 왔다가 돌아가는 수준을 훌쩍 뛰어넘은 것이다. 검령은 칭찬 받을 자격이 충분했다.

우우우우우웅.

검령이 반응했다.

검신을 천천히 돌려 부드럽게 다가왔다. 후공은 검령을 쥐었다. 서로의 연계가 더 강렬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수행자에게 각성의 순간은 한순간에 찾아온다. 그처럼 검령도 그 순간을 맞은 셈이었다.

비로소 검연이 시작되었고, 시작과 동시에 성큼 두어 걸음 나아갔다. 스스로 멈추고, 스스로 나아간다. 이 수준에서 검집으로 돌아가는 일 따윈 아무것도 아니다.

어디 보자. 얼마나 매끄러운지.

“돌아가라.”

검령을 놓아주었다.

우우우우우웅.

검령이 응답했다. 허공 제자리에서 어지럽게 회전하다가 이어 검집 쪽으로 방향을 잡더니 쏘아져갔다.

쇄애애액.

순식간에 검집에 날아간 검령은 검집의 몸통 부위에 부딪혀 튕겨져서는 나뒹굴었다.

터엉, 텅, 텅.

검령이 죽은 듯 널브러졌기에 후공의 표정은,

‘…….’

이렇게 되었다.

이건 대체 뭘까?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오기도 잘 오고 멈추기도 하며 천천히 유영할 수 있는 상태인데, 검집에 돌아가지 못한다?

그럴 리가. 이건 그저 유희일 뿐이다.

느껴지기도 한다.

검령이 웃고 있다. 웃음을 참고 있다.

후공은 기가 막혔지만, 일단은 장단을 맞춰주기로 했다. 어떻게 나오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너 뭐하는 놈이야!”

호통을 내질러주었다.

우우우웅.

검령이 방바닥에서 울었다.

후공은 한 번 더 내질렀다.

“정신이 있는 놈이냐, 없는 놈이냐! 아니, 주인이 굉장한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모자랄 수 있단 말이냐!”

그러자 이쯤이면 되었다고 생각했나 보다.

검령이 통통 뛰었다. 퉁, 퉁, 퉁, 퉁, 투웅! 막 건져올린 생선같이, 마치 배를 움켜쥐고 바닥을 구르며 웃는 것처럼도 보였다.

생각하고 있었지만 퉁퉁 튕겨댈 줄은 몰랐던지라 후공은 그만 웃고 말았다.

자란 건가? 그럴지도. 처음엔 아기처럼 기었는데, 이젠 장난을 치고 있으니까.

천공단의 영향을 받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는 짓이 어째 영락없이 천공단이다.

스르르릉.

검령이 검신을 일으켰다. 주인의 웃음에 응답했다. 검 끝을 바닥으로 향한 채 일자로 섰다.

주인이 손을 뻗어 검을 쥐었다.

우우우우우웅!

기뻐, 검령이 반응했다. 주인은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검령, 어느 정도인지 보자. 이 밤을 날아보아라.’

주인과 검은 창을 넘어 신형을 날렸다. 한참을 지나 어둠에 잠긴 산을 올라갔다.

어느 이름 모를 봉우리.

주인이 달을 가리켰다.

“달을 베어라!”

검령이 달을 향해 쏘아져갔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앙!

밤을 찢어발기는 듯한 기음과 함께 순식간에 멀어지며 뻗어나갔다.

주인이 그 뒤를 따랐다. 신형을 하늘 높이 솟구쳐올렸다. 밤하늘 어느 지점 솟구치던 가속이 끝나고 멈출 수밖에 없는 순간, 하나의 환명을 허공에 그렸다.

그것은 허공에 생성된 동그랗고 투명한 디딤돌. 이를 디뎌 다시 위로 튕겨 올랐다. 그렇게 솟구쳐 다음 환명을 생성하고 디디며 다시 솟구쳐갔다. 하나의 환명, 하나의 디딤돌에 끝없이 밤의 하늘로 더 높이 올라갔다.

그렇게 솟아오르길 여섯 번.

검의 주인은 그제야 멈췄다.

여섯 번째 환명을 딛고 하늘 높이 떠올라 뒷짐을 진 채로 밤에 잠긴 세상을 내려다봤다. 작게 보이는 산봉우리와 마을들이 보인다.

머리 위쪽은 거의 닿을 듯 구름이다.

그 구름 너머로 달을 쪼갤 듯 뻗어나갔던 검령이 힘을 잃고 기절한 것처럼 추락하다, 주인의 의식 범위 안에 들어서며 정신을 차렸다.

우우우우웅!

주인의 몸 주위를 선회했다.

주인이 말한다.

“이 정도 높이면 학을 잡을 수 있으려나.”

크아아앙!

검령이 자신에게 맡겨달라고 하는 것 같았기에 후공은 코웃음 쳤다.

“흥! 네가? 전혀 믿음직스럽지 않아!”

그 말에 검령이 시무룩하니 추락했다.

**

한낮의 하늘.

새가 날았다. 구름 아래를 지날 때면 흰 새가 되었고, 구름이 없으면 파란 새가 되었다.

[학 녀석, 덩치도 엄청 컸는데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는 거야? 초조해지게.]

[…….]

[야, 왜 말이 없어?]

[…….]

색관조의 다그침에도 등에 올라타 있는 금섬은 묵묵부답이었다. 몇 번을 더 부르는 소리에 깃털을 꽉 붙잡은 채 자고 있던 금섬이 눈을 떴다.

[잤어?]

[그으으.]

[야, 지금 태평하게 잠이나 자고 있을 때가 아냐. 눈 안 부릅뜨냐!]

[그윽!]

금섬이 정신을 차리고 눈을 부리부리하게 떴다.

그러다,

[그윽, 그으윽!]

[출출해?]

[그윽.]

[따로 먹고 싶은 것 있어?]

[그으으윽.]

[잠자리? 요즘 소식하냐?]

[크크큭.]

금섬이 기이한 소리를 내며 웃었다.

색관조도 웃었다.

[까르르르르. 꽉 잡아! 잠자리 잡으러 갑니다요.]

색관조가 급강하했기에 거센 바람결에 금섬이 눈을 꼬옥 감았다. 그러는 가운데 들었다.

[금섬아, 찾았어! 적흑이야!]

[그윽?]

멀리 종남산이 보이는 지점이었다.

적흑. 검붉은 머리.

취생존자를 색관조가 보았다.

**

노인은 낭패한 몰골이었다. 머리는 산발에 옷은 피범벅. 옆구리는 타는 듯했다. 피는 좀처럼 멈추지 않는다. 지혈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살점이 통째로 떨어져나갔다. 그래도 지혈이 안 될 건 아니나, 기혈이 들끓고 있어서 바로 피가 터진다.

‘흐으음…… 크으윽…….’

노인은 태을진인.

구대문파 중 하나인 종남파.

그 가운데에서도 종남제일검이라 불리는 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도망치는 신세에 불과했다. 신음소리도 마음대로 낼 수 없어 입안으로 꾸역꾸역 삼켜야 한다.

하지만 알고 있다. 희망이 없음을. 곧 잡힐 것임을. 신음소리가 문제가 아니다. 머리가 문제다. 몽롱해져 온다. 그녀의 모습이 계속해서 떠오른다. 떨쳐내려 해도 떨쳐지지 않는 얼굴, 주근깨가 인상적인 여인의 모습.

그녀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끊임없다. 귀를 막아도 머리를 흔들어도 그 소리가 사라지지 않는다.

섭혼이다.

종남은 그 목소리 속에 빠졌다. 그녀의 눈빛에 빨려들어갔다. 고작 한 시진 만에 종남은 장악되었다. 장문 사제와 장로들, 수뇌부들은 잠식당했다.

종남이 약해서가 아니다. 섭혼의 공능이 상식을 초월한다. 섭혼에 버틴 건 자신과 종남오선뿐.

종남오선……. 나의 사제들.

죽었을 것이다. 섭혼에 이어 흡성, 내력을 빨아들이는 자가 뒤쫓았기에. 나를 벗어나게 하려 그들이 막아섰기에.

‘내가…… 내가 막아서야 했거늘.’

자신들은 곧 의식이 잠식당할 것이라며 화산파로 향하라 외쳤다. 그것만이 유일한 희망이라며. 하지만 화산파로 향할 것을 모를까. 그 방향으로 향하는 건 그물망으로 뛰어드는 꼴이다.

눈앞이 뿌옇게 변해가고, 다리는 풀려간다.

결국,

‘으읍!’

달리던 중 그대로 나뒹굴었다. 주저앉아 돌아봤다. 달려온 길에 핏자국이 선명하다. 웃음이 났다. 친절히 길 안내하며 도망치는 꼴이라니.

[저기요. 도와줄게요.]

‘누, 누구?’

갑작스런 목소리!

태을진인은 놀라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사람이 없다?

[여기예요.]

찾았다. 하지만 말하는 것이 새여서 태을진인은 더 놀라버렸다.

‘무, 무슨……?’

[어디 가지 말고 여기서 기다려요.]

**

“크흐흑…….”

‘신음소리?’

취생존자는 신형을 멈췄다. 신음소리는 옅고, 멀다. 하지만 분명했다. 쥐어짜는 듯한, 어떻게든 참아내려는 소리다. 조금씩 더 멀어져 간다.

방향은 좌측.

핏자국의 방향이 아니다.

‘그런가?’

핏자국은 속임수인가. 핏자국은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신음소리는 실체. 그림자를 쫓을 이유는 없다.

그래도 확인하자. 청력을 한껏 돋웠다.

들려왔다.

“섭혼…… 흡성…… 크으흑…… 검붉은 머리……. 어서 도움을…….”

그 뒷말은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더 들을 것도 없다. 검붉은 머리는 자신을 말함이 아닌가. 방향은 화산파 쪽이기도 하다. 이 순간에도 태을진인이 더 멀어지고 있다.

“핏자국은 속임수다. 이쪽으로!”

취생존자가 신형을 틀었고, 그 뒤를 종남의 세 장로가 살기 등등 따랐다.

**

색관조는 빠르다. 청력도 취생존자를 능가한다.

취생존자를 목소리로 유인하고도 금방 돌아왔다.

어떻게 유인했는지를 듣게 된 태을진인은 멍해지고 말았다.

‘…….’

이 정도면 사람 이상이다.

세상이 이상해진 것일까. 고작 한 시진 사이에 거짓말 같은, 믿기 힘든 일들을 연거푸 경험하고 있었다.

하지만 놀라움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윽.]

[응?]

[그으윽, 그윽.]

[아, 맞다. 너 그럴 수 있다고 했지?]

금두꺼비와 새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처럼 보여 태을진인은 마른침을 삼켰다.

새가 돌아섰다.

[내 친구가 상처를 아물게 하는 재주가 있어요. 새살이 돋아, 돋아!]

“상처를 말이냐?”

[네, 그러니까 놀라지 말아요. 물어야 하거든요.]

“그, 그래…….”

현실인가 꿈인가. 태을진인으 현실인 걸 알면서도 당혹스러움은 금할 길이 없다. 그럼에도 옆구리를 걷었다. 선택의 여지는 없다.

콰악!

금섬이 상처 주변을 물었다. 세 번이었다.

잠시 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상처가 아물어갔다. 그 과정이 눈에 보였다. 마치 시간을 빨리 돌린 것 같은, 보고 있으면서도 믿기 힘든 놀라운 광경이었다.

통증도 줄어들고, 몸에 청량한 기운마저 감돌면서 기운도 서서히 차오른다.

“이…… 이게 어떻게?”

[그윽.]

금섬이 활짝 눈웃음쳤다.

색관조가 말했다.

[놈들은 곧 다시 쫓아올 거예요. 지금 바로 움직여야 해요.]

“그, 그래.”

[안강 방향으로 가요. 그곳으로 가다보면 도움을 받을 수 있어요.]

“안강?”

색관조가 금섬을 등에 태웠다.

[네, 주인님이 도와주실 거예요.]

“네 주인이 누구기에?”

[강한 분.]

색관조가 바로 날개를 펄럭여 태을진인의 눈높이로 떠오르며 말을 이었다.

[천화서고 대공자. 우리의 주인님이에요.]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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