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화 서고 대공자-172화 (172/460)

172화. 웃겨어어어.

제갈세가의 밤.

혜는 뜰을 거닐었다. 그녀와 함께 걷고 있는 건 근심.

‘문제가 생긴 건 아니겠지?’

북교산의 그날로부터 열흘하고도 나흘째다.

혜는 곧장 세가로 돌아온 탓에, 이후 상황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

- 내일 밤 청우산 소연봉. 나는 널 홀로 맞이할 것이다.

그날 대공자는 그렇게 도발했다. 귓가에 아직 생생하다. 그 목소리도 계속 떠오른다.

그런 탓에,

‘만났을까? 일이 잘못된 건 아니겠지?’

걱정도 멈추지 않는다.

끝까지 함께 있겠다고 버틸 걸 그랬나.

떠나온 건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

남겠다고 했지만, 대공자에게 거절당했다.

몇 번이나 우겨봤지만 소용없었다. 통하지 않았다. 대공자는 그저 미소만 머금고 바라보다, 돌아가라 권했다.

세가로 돌아가 있으면 나중에 기별하겠다는 말이 따라왔다. 그렇게 돌아설 수밖에 없었거늘, 기별은 아직이고 청우산의 결과에 대해 강호의 소식은 추측만 무성할 따름이었다.

‘잘되었을 거야. 그는 특별한 사람이니까. 또 거짓말쟁이니까.’

화공신타도 천화서고 대공자였다고 하고, 공청석유도 이미 그의 손아귀에 있었다. 가짜 공청석유를 만들어놓은 것도, 천금서고의 선우진을 찾아 매듭지은 사람도 그였다.

그는 진실과 거짓을 뒤섞어 모든 상황을 통제했고, 일련의 상황들에 대한 대응은 눈이 부실 정도로 신속했다.

그리고,

‘나에게 날아온 사람…….’

왜 날개도 없으면서 높은 데서 뛰어내리냐고 했다. 여우가면을 쓰게 되면서 날 수 있게 되었다고도 했다. 순 거짓말쟁이다.

하지만 안다.

쏟아져오는 섬궁각의 강궁을 다가오지 않게 멈출 수 있으면서도 혹시 다칠까 염려했다. 그의 마음이 보였다. 빈틈이 생기지는 않을까 품으로 더 감싸 안았다. 그의 걱정을 느낄 수 있었다.

만약 온다면 백부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그건 누구도 올 수 없다는 의미였는데, 천화서고 대공자가 왔다.

그는 누구일까?

어떤 사람일까?

“아가씨, 날이 차요.”

갑자기 들려온 음성에 제갈혜의 상념은 흩어졌다.

돌아보니 시녀 청향이었다.

“날이…….”

늦여름이다.

청향은 땀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또 오늘은 유난히도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밤.

그저 청향은 밤이 깊어가니 이제 들어가시는 것이 어떻겠냐는 말을 기분 좋게 전하려는 것뿐이었다.

“외투는?”

“하하, 미처 준비 못 했어요. 들어가시면 되죠. 추워요, 어서요.”

“그래. 날이 추우니 따뜻한 차 한잔 준비해주렴.”

차는 뜨거웠다.

혜는 처소에서 차가 식길 기다렸다가 찻잔을 들어올렸다. 하지만 입술에 닿기 전 손을 멈췄다. 눈에 이상한 것이 보인 탓이었다. 탁자 위로 방금까지 없던 것이 보였다.

[그윽.]

그것은 금두꺼비. 멈출 이유로는 충분했다. 게다가 금두꺼비가 친근히 웃기까지 한다면야.

이어 목소리도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

이번엔 창가.

새다. 형형색색 눈이 부실정도로 아름다운 깃털을 가진 새였다.

“색황조?”

멍하니 중얼거리는 제갈혜를 향해 새가 정정해준다.

[저는 색관조인데요.]

“어…….”

[까르르르르. 제가 말을 해버리니까 놀라셨죠? 근데 놀라실 것 없어요. 주인님이 보내서 온 것이거든요.]

“주인? 네 주인이 누구길래?”

제갈혜는 색관조와 금섬에 대해 듣지 못했다. 또 북교산에서도 색관조가 곧바로 이령을 추적했기에 만나볼 기회가 없었다.

[주인님은 화공신타. 까르르르르. 무섭. 까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지가 말해놓고 지가 웃긴 모양. 한바탕 난리가 났다. 색관조가 깔깔대며 방 안을 날았다. 금섬도 웃긴지 방 안을 폴짝폴짝 정신사납게 뛰기 시작했다.

[화공신타, 무섭. 천화서고 대공자, 멋짐. 까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제갈혜도 웃고 말았다.

색관조와 금두꺼비가 웃고 떠드니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웃음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주인은 아무 일 없다고, 무사하다고.

대공자에게 문제가 생겼다면 이리 해맑을 리 없으니까, 어떤 큰 소리보다 더 큰 대답을 듣고 있는 셈이었다.

그래도 들어보고 싶다.

“청우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려줄 수 있겠니?”

[이령. 청우산에서 만나지 않았어요.]

“응?”

[주인님이 찾아가셨어요. 끝내셨어요. 으음, 하지만 저도 그 정도까지만 알아요. 그 이상 자세한 건 몰라요. 듣지 못했어요.]

“그래?”

[네.]

색관조는 날면서 답했다.

물론 사실은 아니다. 색관조는 자세히 알고 있었다. 그 누구보다 눈과 귀가 밝아 모두 보았고, 모든 대화를 들었다.

그렇지만 모른다고 해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주인이 따로 지시한 건 아니었지만 그날 오간 기묘한 대화, 그 밤 주인의 가라앉은 감정을 느꼈기에 그 일은 떠벌릴 일이 아니었다. 자신에겐 그런 권한이 없었다.

주인과의 유대는 하루가 다르게 깊어져가는 중.

마음과 마음이 연결되어 간다. 왜 그렇게 되는지는 색관조도 알 수 없었다. 주인의 향과 이어져 그런 걸 수도 있고, 주인이 특별한 분이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었다.

“그렇구나. 그래도 네 주인이 어딜 다치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까르르르르르. 아가씨는 웃겨요.]

“응?”

[주인님은 엄청 강한 분이에요. 까르르르르. 잘못 걸리면 다 죽어요. 그날 직접 보셨잖아요. 엄청나게 분노하신 날. 까르르르르르르르.]

“넌 다른 사람과 날 착각한 것 같구나.”

제갈혜가 웃었다.

그녀가 대공자를 본 건 두 번이 전부.

두 번 모두 대공자가 분노한 적은 없었다.

[착각 아닌데요.]

“아니, 내 앞에서 네 주인은 분노한 적이 없단다.”

[까르르르르.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그럼.”

[제갈 소저, 날개도 없으면서 왜 뛰어내린 겁니까? 깜짝 놀랐습니다.]

“……?”

제갈혜의 눈이 커졌다.

색관조는 천화서고 대공자가 분노한 때가 북교산의 그날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까르르르르. 저는 알 수 있어요. 여태 주인님이 그렇게까지 화가 나신 건 처음 봤어요. 그래서 검령이 그렇게 울었던 거예요. 크아아아아앙! 까르르르르르. 검령은 웃겨. 그리고 검령도 주인님의 마음을 알아요.]

“…….”

갑자기 쏘아져 학을 향해 날아가던 검. 검령이라는 이름인가 보다. 그녀도 검의 울부짖음을 들었다. 그런데 대공자가 분노하고 있었다고? 가면 속에서?

그럴 리가.

너무나 태연한 목소리였고, 대수롭지 않아 했다. 지나는 길에 우연히 들렸다는 식이었다. 그래서 자신조차 별일 아닌 것 같은 생각이 잠시 들었을 정도였거늘.

그 생각에 답하듯 들려온다.

[주인님이 그렇게 빨리 달리는 것도 처음 봤어요. 화공신타가 되셔서도 그렇지 않으셨는데 말이에요. 까르르르르르르. 아가씨가 주인님께 소중한 사람인가 봐요.]

“왜?”

[저야 모르죠. 아이 같아서 그러는 것 같기도 하고요. 까르르르르르르.]

“여자가 아니고?”

[네?]

“그렇게 놀랄 것까진 없지 않니?”

제갈혜는 괜히 새침해졌다.

그 모습에 색관조가 터져나갔다.

[웃겨어어어! 까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색관조가 미친 듯이 날면서 미친 듯이 웃었다. 제갈혜는 입술을 앙다물어야 했다.

이내 진정한 색관조가 사과했다.

[죄송해요. 예의가 아니었어요. 주인님께 혼날지도.]

“너무 웃긴 했어.”

[그게 왜 그랬냐면요, 주인님은 맨날맨날 연공만 하시거든요. 끝도 없어요. 잠도 거의 안 주무세요. 다른 건 관심이 없으신 걸요. 그래서 그냥 제 느낌이긴 하지만 소저는…… 그냥 요만한, 그냥 그냥…… 뭐 그래요. 까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제갈혜가 노려봤다. 방금 사과는 뭐였는지 색관조는 좀처럼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덩달아 금섬까지 크큭대면서 주위를 뛰어다녔다.

뭐라 탓할 순 없었다. 그녀도 느꼈던 터.

대공자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은 애를 대하는 식이다. 처음에는 원래 풍기는 기운이 어른스럽고 큰 사람이라서 그런 줄 알았는데, 이번에 거절당하면서 알았다. 미소를 지으며 돌아가라고 할 때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서운한 건 아니었다.

단지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가 없을 뿐.

고심한다고 알아지는 건 아닌 일. 제갈혜는 화제를 바꾸었다.

“또 전할 말이 있니?”

혜는 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있어요. 주인님께서 뵙고 싶다고 하셨어요. 모셔 오라고요.]

“그래?”

제갈혜가 반색했다.

[네, 손님들이 계속 찾아와 자리를 뜰 수가 없으니 오셨으면 좋겠다고, 이해해 달라는 말씀도 전하라 하셨어요. 안강이에요.]

“이해는 무슨. 당연히 내가 가야지.”

잘되었다. 경황 중에 고마운 마음도 다 표하지 못했던 터.

[어? 이제 거의 도착해요.]

“누구?”

[천공단요. 가는 길에 호위할 거예요.]

“어…….”

제갈혜는 다시 멍해졌다.

천공단을 호위로 보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최근 놀라는 일도, 멍해지는 날도 부쩍 많아졌다. 갑작스럽게 백부가 떠난 때 그랬다가, 다시 천화서고 대공자를 만나면서 그런 순간이 많아지고 있었다.

잠시 후, 제갈세가에 천공단이 도착했다.

무산쌍웅, 낭인왕, 남궁연, 천산의 후인 설영이었다.

다들 동물 가면을 하나씩 쓴 채였다.

요즘 가면이 강호의 최신 유행이었다.

**

안강에 남은 천공단은 구양수와 함께 있었다.

최근 쌍둥이를 얻은 이.

무림맹 섬서지부장 구양수는 천공단주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해 왔다가, 먼저 온 손님이 있어 대기 상태.

딱히 할 일이 없을 때면 고기를 구워먹는 것이 규정처럼 된 천공단과 함께 자리했다.

“다들 고맙습니다.”

구양수로선 고마울 수밖에 없다.

제갈혜를 유인해낸 것이 자신이고, 화산파도 자신이 끌어왔던 터. 만약 천공단주와 천공단이 개입해 막아주지 않았다면 어찌되었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한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섭혼에서 깨어나면서 천공단이 다녀간 것도 알게 되었다. 쌍둥이라는 이유로 천공단은 소 두 마리를 끌고 왔고, 여러 선물이며 금전까지 남기고 간 것도 알게 되었다.

조롱해도 할 말이 없는데 무슨 일이 있었냐는 식이니, 그에겐 큰 위로였다.

그런 탓에 구양수의 눈가가 붉어져오니 금적자가 혀를 찼다.

“고기 안 먹을 거야?”

“먹고 있습니다.”

“자, 입 벌려 봐.”

금적자가 젓가락으로 고기를 한 점 집어 내밀었다. 구양수가 웃으며 냉큼 받아먹었다.

그러자 이번엔 언교운이 다음 차례로 나섰다.

“잘 드셔야 해요. 그래야 정신이 또렷해지는 거여요. 자, 입 벌려 보세요!”

구양수가 피식 웃으며 또 받아먹었다.

그 다음은 은앙개였다.

“아~ 해 봐요.”

은앙개는 손으로 집어주었지만 구양수는 개의치 않았다. 꿀떡 잘도 받아먹었다.

“맛이 어때요?”

“캬아, 맛이 기가 막히구만. 이게 손맛이란 건가.”

“아, 이런. 아까 이 손으로 송충이 찍어 죽였는데, 이제 생각났네.”

“하하, 송충이 없어서 못 먹어.”

그러자 먹여주려 대기하고 있던 소천개가 한술 더 떴다.

“난 똥 싼 손인데 괜찮겠어요?”

선을 넘어버렸다.

하지만 괜찮다. 구양수는 망설임 없이 받아먹고는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그 모습에 소천개가 엄지를 추켜세웠다.

“합격.”

“뭐가 합격이야!”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합격이 뭔지는 모른다. 그런 건 상관없는 시간이었다.

.

.

후공도 방에서 밖의 소리를 들었다.

천공단, 구양수. 듣기 좋은 웃음소리. 미소가 저절로 떠올랐다.

마주앉아 있는 화산파 장로 능량의 말은 들리지도 않았다.

“대공자, 듣고 있나? 사숙이 자네에게 관심을 보인 건 큰 영광일세. 오늘 나와 함께 화산에 가는 거네. 알겠나?”

능량의 사숙.

도호는 자양. 하지만 다르게 불리는 이.

지고한 검공을 이뤄 화산 내에서조차 자양이란 도호보다 검선이라 불리는 이.

검선.

후공으로선 오랜만에 떠올려보는 이름이고 얼굴이지만, 지금 당장은 바깥의 웃음소리가 더 좋았다.

잠시 여운을 즐겼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