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화. 너희가 빛나고자 한다면.
금적자가 전음을 발했다.
- 단주, 모산파네.
- 그렇습니까?
- 모르나 보군. 술법의 모산이라 부르지.
후공이 모를 리가.
한눈에 알아봤다. 모산파의 팔괘가 수놓아진 의복은 화산파의 매화만큼이나 그들을 대표한다.
무엇보다 모산파 장문인 허월이 보인다.
허월과 함께 여덟 명의 노인은 모산의 팔장로. 지도부가 모두 이곳으로 나와 있는 상황이다.
‘모자란 놈들인데, 대체 뭘 하려는 것인가?’
회도진까지 설치해 외부의 접근을 차단하기까지 했으니 그만큼 중요한 사안이란 뜻이겠지.
‘보물이라도 찾은 건가?’
모산파는 밀교를 떠올리게 한다. 밀교와 성향이 비슷하다. 늘 뭔가 진지했다. 진지하게 이상한 술법에 매달렸다. 예를 들어 구름을 불러온다든지, 마른 하늘에 천둥이 치게 한다든지, 그 천둥을 가두려 한다든지, 쏟아지는 비를 그치게 하는 것들이었다.
부적이 동원되고, 진법을 연구하며 매진했다.
잘 안됐다.
언젠가 한번은 허월이 이런 말을 했었다.
- 후공, 산 초입에서 산봉우리로 두 개의 진법을 통해 순간 이동할 수 있다면 대단하지 않겠습니까?
- 그거 대단하구만.
인정해주며 진척이 있냐고 묻자, 쑥스러워하며 될 듯 말 듯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게 문제다. 안 되는 것이다. 후공은 모산의 전대 장문인으로부터도 같은 말을 들었었다.
그때도 될 듯 말 듯이었다.
지금 대체 몇 년째 될 듯 말 듯인가.
밀교를 떠올리게 하는 놈들,
모자란 놈들.
모산이 그 시간에 다른 쪽으로 정진했다면 구대 문파에 육박하는 문파로 커졌을 텐데, 대체 왜 신기한 것만 쫓는지 알 수 없다.
- 형님, 모산파가 보물이라도 찾았나 봅니다.
- 그래 보이는군요.
- 빼앗을까요?
삼협 중 이열이 탐욕을 드러냈다.
웃는 얼굴이었다.
-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군요.
- 으헤헤헤.
이열을 포함한 삼협이 헤실대면서 좋아 죽었다.
그들은 이래서 좋은 것이다.
천공단주가 좋은 것이다. 말과는 늘 반대인 사람. 어떤 사람인지는 여태 걸어온 길에서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형님으로 부를 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그런 가운데 모산파 쪽도 바삐 전음이 오갔다.
- 저자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겁니까?
- 기도 안 차구려. 낚시를 하러 왔다니…….
고개를 들어 분화구 위쪽을 바라보는 모산의 빛나는 안광에는 경각심이 솟구쳐 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다.
한밤중이다. 밤낚시도 이해가 안 되는데…….
여기 산이다.
심지어 휴화산.
분화구 위에서 낚시하러 왔다고 말해버리면, 경각심이 말도 못하게 치솟아버릴 수밖에 없다.
더불어 천변회도진을 없는 취급하며 그대로 질주해 온 자들이 아닌가. 헤매거나 머뭇거림 따위는 없었다. 이미 천변회도진을 알고 있거나 파훼법을 숙련하고 온 것이 분명했다.
물론 의아함도 따라온다.
천변회도진은 말 그대로 천변(千變). 끝도 없이 변화하는 진법의 파훼법을 숙련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하지만 결과를 보면 할 말이 없다. 상대는 해낸 것이다. 그리하여 모습을 드러냈으니 당장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근심이 차오른다.
이쯤이면 작정하고 온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 화정(火精)에 대해 알고 왔다고 봐야겠군요.
- …….
대답은 없다. 굳이 대답할 의미가 없음이다.
그저 동감할 뿐.
화정.
불의 정기(精氣).
어렵게 장소를 찾아냈다.
모산은 보물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런데 난데없는 경쟁자의 출현이라니.
격전은 피할 수 없을 터. 보물 앞에서는 비록 형제일지라도 칼부림이 나기 일쑤다. 하물며 생면부지의 강호인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모산의 장문인과 장로들은 각오를 다졌다. 상대는 천변회도진을 순식간에 돌파한 자. 이 싸움은 쉽지 않으리라. 그렇게 기운을 끌어올리려는데,
“저희는 진짜 낚시하러 왔습니다.”
“…….”
모산의 지도부가 주춤했다.
목소리가 맑다. 그런 맑은 목소리로 다시금 낚시하러 왔다고 또랑또랑 당당하게 말해버리니 전의가 일순 사그라들었다.
이어,
“내려가겠습니다.”
신형이 쏟아져내렸다.
네 인영이 분화구 암벽을 타고 미끄러지듯 내려온다. 그 신법이 눈부실 정도로 뛰어나 모산의 지도부의 눈매는 절로 가늘어졌다.
근데 한 놈은 아직 그 자리에 있었다.
목소리를 낸 젊은이었다. 왜 안 내려오는가?
더욱 눈이 가늘어져 바라볼 때,
휘릭!
훌쩍 몸을 던지는 모습이 보였다.
“어?”
높이는 실로 까마득하다. 오 층 전각 지붕에서 뛰어내리는 그런 수준이 아니다. 전각으로 따져 보자면 거의 삼십 층은 될 높이였기에, 가늘어져 있던 모산은 눈을 부릅떴다.
‘어쩌려고?’
‘수단이 있는 것인가?’
떨어져내리는 가운데 청년의 얼굴이 선명해졌다. 준수한 외모에 평온한 미소가 맺혀있다. 옷자락이 파라락 나부끼는 가운데 표정만 봐선 정녕 낚시하러 온 사람 같다만, 아니 그보단 다리가 버틸 수 있는 것인가?
어느샌가 청년이 지면에 닿아갔다.
지면 위에서 한 뼘.
순간 멈췄다. 둥실.
청년의 몸이 지면 위에서 잠시 부유.
쿠웅 소리 따위 없이 그렇게 멈췄기에, 모산의 지도부의 눈은 급기야 왕방울만 해졌다.
이내 계단 하나 내려서듯 지면을 디디니 모산의 지도부가 놀라 반걸음 물러났다.
‘지금 뭘 본 건가?’
‘도대체 뭘 딛은 건가?’
‘술법인가?’
분명 듣게 된다면 ‘쿠웅’이었는데 ‘부웅’이다.
아까 전의가 조금 꺾여나갔는데 이제 크게 꺾였다.
근심은 커졌다. 이런 신법을 구사하는 자라니. 절대적으로 낚시하러 온 것일 리 없다.
후공은 그러거나 말거나였다.
예를 갖췄다.
“천공단주가 모산의 영웅들을 뵙습니다.”
뒤이어 곁에 선 금적자와 항마삼협도 예를 갖추며 소개를 마쳤다.
“천공단주? 천공단?”
모산 장문인 허월의 눈이 커졌다.
장로들도 뜻밖이었다.
그들도 소식은 접했다.
천공단주라면 최근 강호에 명성이 진동하고 있는 이, 천화서고 대공자다. 천룡대전에 불어닥친 큰 위기를 홀로 막아냈다고 했다. 그리고 소요파 장문인을 갈아치운 자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북교산의 일은 아직 듣지 못한 그들이었다.
그렇다 해도 놀라기엔 충분하다. 천공단의 면면 중 금적자와 항마삼협이 있다는 것도 들었던 터.
“나는 모산의 장문인 허월일세. 천화서고의 천재를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군. 어느 고인이 진법을 손쉽게 파훼하나 했더니 천화서고라니 비로소 이해가 되네. 한데…….”
장문인 허월이 형형히 안광을 빛냈다.
잠시의 침묵 후 말을 이었다.
“이곳에 온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낚…….”
“닥치시게!”
낚자만 꺼냈는데 허월이 분노를 토해냈다.
그러나 이쪽도 만만치 않다. 호전적이면서 상식이 없는 천공단이다. 얌전히 있던 금적자와 항마삼협이 즉시 발작을 일으켰다.
“모산은 누굴 보고 닥치라는 것인가아아아아아아!”
“우리 진짜 낚시터 살펴보러 왔다고!”
“낚시대도 사놨어. 도대체 형님이 몇 번을 말해야 하는 거냐!”
“너희들 다 파묻어버린다!”
급기야 금적자가 니들 몇 살이냐고 따져 묻는 지경에 이르렀기에, 후공은 손을 들어 자제시켰다.
발작이 뚝 그쳤다.
후공은 담백한 시선으로 모산의 지도부를 둘러봤다.
다들 어느샌가 퀭해져 있다.
모산의 마음을 모르겠는가.
회도진까지 설치하고 이곳에 있음은 틀림없이 모산에겐 소중한 일이라는 뜻. 반드시 얻고 싶은 보물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해된다. 이들에게 천공단은 훼방꾼에 불과하다.
밀교와 비슷한 놈들.
쓸데없이 진지한 놈들.
도울 수 있다면 도움을 주고 싶다.
모자란 놈들이니까.
끙끙대고 있는 듯하니.
“장문인, 모산은 보물을 찾고 있는 중일 테지요?”
“……?”
“저희가 알고 온 건 아닙니다. 모양새가 그러하니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보물은 저희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그 보물이 심지어 공청석유라 해도 관심이 없습니다. 빼앗을 일도 방해할 생각도 없습니다. 그저 이것도 인연…….”
허월의 얼굴에 의문이 짙어진다.
후공은 말을 이었다.
“원하시면 대가 없이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천공단주 이전에 천화서고 대공자. 회도진을 돌파하는 것으로 이미 증명해 보였으니 도움이 될 것입니다.”
너희가 빛나고자 한다면,
기꺼이 어둠이 되어 더욱 반짝이게 해 주겠다.
아무 대가 없이.
후공은 그렇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됐네.”
차가운 목소리가 돌아왔다.
후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거절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의 범주다.
“그렇습니까?”
“도움 따윈 필요없네.”
멍청한 놈들이 아주 복을 걷어찬다며, 곁에서 항마삼협이 작은 소리로 빈정거렸다.
“알겠습니다. 그럼 언제쯤이면 끝나십니까? 모산이 일을 마치고 떠나시면 그때 오겠습니다.”
“말해줄 수 없네.”
“혹시 기약이 없는 겁니까?”
“…….”
대답이 없다.
말해줄 의사도 없고, 기약도 없는 모양이었다.
분명 난관에 부딪힌 것이리라.
그럼 나아갈 길은 하나뿐.
열양화리는 나중으로 미룬다.
북해빙궁에서 돌아오는 길에 다시 찾으면 되는 일. 그때까지는 모산도 답을 찾을 테지.
“이해했습니다. 그럼 저희는 물러나겠습니다. 부디 모산이 원하는 바를 이루길 바랍니다.”
포권을 취하고 돌아서려 할 때였다.
“그대는 갈 수 없다.”
장문인 허월이었다.
말투가 바뀌었다. 얼굴도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후공이 갸웃했다.
“무슨 뜻입니까?”
“말한 대로.”
비밀을 알고 있으니 순순히 보내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럼 저희는 이제 죽게 됩니까?”
“죽이진 않는다. 말은 새어나가기 마련. 우리가 결과를 얻을 때까지 이곳에 머물러 주어야겠다.”
몇 마디가 생략되어 있다.
포박된 채라든지, 혈도가 짚힌 채라든지 정도.
세상 진지한 모습이었기에 후공은 그만 웃고 말았다. 그건 금적자와 항마삼협도 마찬가지였다. 뭔 소린가 싶어 멍해졌던 것도 잠시, 이내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하하하, 모산이 이렇게 재밌었던 거야?”
“하하하하, 웃겨 뒈지겠네. 죽이지는 않는다니.”
“으하하하하하하, 최근 들어본 말 중에 제일 웃겨!”
“아니 시발, 왜 니들이 죽는다는 생각은 안 하는 건데!”
원래도 강한 금적자와 항마삼협이었다.
구대문파의 장로급에 이르는 실력자들. 거기에 얼마 전 금섬을 통해 공청석유의 공능을 받아들인 후로는 경지가 급상승했다.
금적자는 화경의 중에 다다랐고, 항마삼협은 각기 화경의 초입인 예에 이르렀다. 거기다 자신들의 두목인 천공단주는 도대체 어느 경지인지 가늠도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화가 나야 하는데 웃음이 나온다.
평소 실력을 드러내지 않는 단주가 신법을 통해 굳이 경지를 드러낸 건 이야기를 쉽게 풀기 위함인데 그걸 보고도 협박을 하고 있다니, 답이 없는 놈들이었다.
하지만 후공은 한 번 더 기회를 주기로 했다.
“부탁드립니다. 그냥 저희를 보내주십시오. 외부에 결코 발설하지 않겠습니다. 믿어주십시오.”
금적자와 항마삼협이 옅게 미소지었다.
내심 모산파를 응원했다. 거절해라, 거절해라. 이 얼빠진 놈들아. 천공단주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그 마음의 울림이 전해졌음인가.
허월이 준엄히 외쳤다.
“장로들은 팔괘금쇄진을 펼쳐라!”
즉시 팔장로가 흩어져 원형으로 자리를 잡았다. 장문인 허월은 물러나 그 중심에 위치했다.
후공은 뚱해지고 말았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대체 보물이 무엇이길래…….’
우우우우웅.
검령이 나서겠다고 뜻을 비친다.
“진정해라. 모자란 녀석아.”
검령에게도, 모산에게도 말했다.
검령은 얌전해졌지만, 모산은 안광을 더욱 형형히 빛낸다.
후공이 웃음을 머금었다.
“저도 여러분들을 죽이진 않겠습니다.”
즉각 모산이 분노를 드러냈지만, 금적자와 항마삼협은 알아들었다. 자신들에게 하는 말이었다.
죽이는 거 아니라고. 그냥 패는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