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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화 서고 대공자-180화 (180/460)

180화. 화극 (1)

닷새가 지난 동굴 밖.

색관조와 금섬이 기다리고 있었다. 왜 이렇게 안 나와. 모두 어서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촤아악!

연못에서 금섬이 솟아올랐다.

입에 열양화리 한 마리를 문 채였다.

[좋고요!]

색관조가 칭찬했다.

금섬이 화리를 내려놓고는 좋다고 펄쩍펄쩍 뛰었다.

색관조가 화리를 날개로 찍어누르고 회를 뜨기 시작했다. 색관조의 발톱은 날카롭기가 말로 할 수 없어, 그으면 긋는 대로 두꺼운 껍질이 쩍쩍 갈라졌다.

[그윽.]

[구워 먹자고?]

[그윽.]

금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좋아.]

이내 불을 지피고 화리를 구워갔다.

이렇게 지내고 있었다. 닷새 동안 밖에서 보내며 동굴 쪽도 가봤다가 용암도 구경했다가 화리도 잡아먹으면서 두 영물은 주인을 기다렸다.

[이제 화리도 슬슬 물린다. 그치?]

[그으윽?]

금섬이 뭔 말이냐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 두꺼비님, 입맛이 꾸준하기도 하시지.]

[그윽, 그으윽. 그으으으윽.]

[하긴 그래. 우리가 또 언제 이걸 먹어 보겠어. 다 주인님 잘 만난 덕이지. 먹을 수 있을 때 양껏 먹어두자.]

한참을 먹다 금섬이 동굴 쪽을 바라봤다.

왜 아직이냐며 걱정스럽게 그윽거렸기에 색관조도 동굴 쪽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야, 걱정할 것 없어. 다 잘될 거야. 주인님은 특별한 분이시니까.]

[그윽.]

맞아, 라며 끄덕였다.

그래도 금섬은 걱정했다.

그건 걱정할 것 없다는 색관조도 마찬가지였다.

*

크게 걱정할 일은 없었다.

단지 하루하루가 지나갈 뿐이었다.

그래도 한 사람은 달랐다.

모산 장문인 허월만은 심각했다.

“장문인,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십니다.”

“어서 추스르시고 다시 도전하셔야지요!”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어느 순간 통각을 인내함에도 한계를 돌파할 수 있을 겁니다.”

“장문인, 얼른 모산으로 돌아가고 싶소이다!”

화정을 얻은 대가는 혹독했다.

모산 장로들의 권유가 끝이 없다. 열 번 찍으면 넘어간다고? 아니다. 허월은 닷새가 지난 지금까지 서른 번 넘게 도전했다. 매번 비명을 내질렀고, 벼락을 맞은 것처럼 몸부림치다 널브러졌다.

이러려고 화정을 얻은 게 아니었지만,

현실은 너덜너덜.

그래도 주저앉아 있을 순 없다.

격려하며 일으켜세우는 건 장로들뿐이 아닌 것이다.

천공단도 있다.

처음 화정을 얻을 때만 해도 예의를 차리고 경건하게 자리를 지켰던 천공단이 본색을 드러내 아가리를 쉴 새 없이 털어대니 허월은 오늘도 일어나야 했다. 도전해야 했다.

‘이제 제발 격려 좀 그만.’

격려가 싫어졌다. 그는 그저 제비를 잘 뽑았을 뿐이었다. 그때 허월은 운이 좋다고 여겼고, 팔장로는 시무룩했다. 인생사 새옹지마. 이제 보니 그때 제비를 잘 뽑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때 잘 안됐다면 자신도 격려를 하고 있었을 텐데…….

그래도 도전해야 한다.

나는 모산의 장문인.

물론 결과는 알고 있다.

이거 안 된다. 사람이 견뎌낼 수 있는 고통이 아니다.

닷새 내내 도전하며 알아낸 바가 그랬다.

반각(약 7분)을 기점으로 기둥의 열은 급상승한다. 허월이 가장 오래 버틴 최고 기록은 일각 반. 그 수준에 이르면 견딜 수 없었다. 그 너머 이각쯤의 고열은 어느 정도일지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하지만 도전해야 한다.

오늘도 장문인은 일어난다.

화정을 자신이 취했으니까. 제비를 잘 뽑았으니까.

“나는! 해내고야 만다! 결과를 만들어내고 말리라!”

크게 외치고,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으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각! 대, 대공자아아아아아! 살려주게에에에!”

비명을 질러대며 몸부림쳤다.

화정의 호응으로 허월은 접착되듯 붙기에, 늘 떼어주는 사람은 정해져 있었다.

후공은 허월을 떼어내주었다.

바닥에 널브러져 한 번씩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허월을 내려다봤다. 허월의 눈가는 이미 촉촉.

생각하게 된다.

“…….”

모자란 걸 떠나 가망이 없다. 이미 허월은 만신창이.

꾸준히 나서고 있는 것만도 대견할 지경이다.

이제 방향을 달리해야 할 때다.

여태 기다려준 건 모산이 해내길 바랐기 때문.

짐작컨대 불의 정화는 화정이 아니다.

열주라 불리는 기둥이 실체요, 화정은 교량 역할일 뿐이다. 화정의 기운이 열주에 호응하며 허월만 접착되는 것이 증명의 단면.

세월을 맞아 끊어져 들려오던 열폭존자의 생략된 말 중에는 분명 그러한 내용이 있었으리라. 화정을 품고 있는 자가 아니라 해도 반시진만 버티면 진정한 불의 정화를 얻게 될 것이다.

즉 화정은 조금 수월하게 얻기 위한 수단인 것.

한데 허월은 가망이 없다.

매번 기합을 넣고 있어도 손은 덜덜 떨었다.

모산의 장로들에게 시선을 옮겼다.

뚱하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장로님들.”

“…….”

“모산을 돕다가 저와 천공단이 낭패를 보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장로들은 쳐다보고 있다가 하나둘 시선을 회피했다.

맞는 말이고, 답도 없는 것이다.

“이제 불의 정화고 뭐고 장문인께만 의지할 수 없습니다. 제 생각에 누구든 반시진만 버티면 석실은 열릴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부터는 장로님들이 나서 주셔야겠습니다.”

불의 정화는 모산이 찾았다.

그렇기에 후공은 모산이 열매를 얻어가길 바랐다.

고통이 따르겠지만, 결실은 달 것이다.

장로들이 그 마음을 헤아리는 건 무리였다.

모자라니까. 또한 이미 장문인이 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것을 수차례 보았기에, 이리 강요해오는 천공단주가 원망스러웠다.

‘대공자가 하면 되잖아.’

뜨거워하지도 않는 모습을 보았기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입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 어디 고통이 없어서 뜨거워하지 않았을까. 그러니 해달라고 요구할 수 없다.

거기다 천공단의 성토도 터져나왔기에, 장로들이 주섬주섬 나섰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안 됐다.

불똥은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기회는 이제 천공단에게로 넘어갔다.

기회 같은 건 바란 적 없는 천공단은 바로 사색이 되었다.

“단주……. 사, 살려주게.”

“형님, 저희는 모산이 아니라 천공단입니다! 뜻을 거둬 주십시오!”

“형님, 저희에게 마음 상하신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두목, 맡겨 주십시오.”

“두목, 제가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형아, 문은 내가 열게. 걱정하지 마! 영웅이 될 테야!”

남궁연과 언교운, 젊은 세대는 기세가 등등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기세등등이고 뭐고 다를 건 없었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났다.

칠 일째.

해도 없고, 달도 없고, 창도 없는 석실.

하지만 후공은 엿새가 흘렀으며 지금은 칠 일째 정오가 되어 감을 알 수 있었다.

모두 널브러져 있다.

제갈혜와 설영도 예외가 아니었다.

화상 자국도 없이 열통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는 공평하게 주어졌고, 공평하게 널브러졌다.

‘앞으로 이틀.’

좌정한 채 후공은 이틀만 더 기회를 주자, 라고 생각했다. 그 안에 모산이 얻어가길 바랐다. 이상한 술법에 매진하는 모자란 놈들이 성취의 기쁨을 누릴 수 있길 바랐다.

벽곡단도 이제 몇 알 남지 않았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

바닥에서 진동이 전해졌다. 멀고 미약했다.

절로 눈이 가늘어졌다.

‘좋지 않네.’

진동이 깊고 묵직하다. 또한 그 범위가 넓었다.

스쳐 지나가는 진동이 아니다. 재해다.

진동은 곧 커졌다. 크르르르르르르르. 땅이 흔들리는 울림과 함께 석실 바닥 돌가루가 요동쳤다. 천장에 박혀 있던 야명주 하나가 떨어져 내린다.

“대, 대공자, 이게 무슨 일인가?”

허월이 벌떡 일어나 두리번거렸다. 이어 모두가 발 밑으로 전해져오는 거친 진동을 느끼고 당혹을 금치 못했다.

“허어…….”

“어찌 이런…….”

“형아, 이거 지진이야?”

“두목, 화산이 터지려나 봅니다.”

“그럼 우린 어떻게 되는 거야?”

지진일수도, 화산의 급작스러운 활동일 수도 있다.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위험하다는 것은 같으니.

크르르르르르르릉. 쿠웅, 크르르르르르.

지면의 요동침이 거칠어졌다. 이내 석실의 바닥이 쩍쩍 갈라져갔다.

“으허억!”

“미, 밑에 용암이 흘러!”

바닥이 갈라진 틈새로 멀리 붉은 용암물이 흐르고 있는 것이 드러났다.

불의 정화가 문제가 아니었다.

빠져나가야 한다. 후공은 몸을 일으켰다. 석문 앞으로 나아가며 우수를 내밀었다.

스릉, 척!

검령이 빠져나와 손아귀로 빨려들어왔다.

검강을 일으키자, 검령이 자줏빛으로 물들어가며 울부짖었다.

크아아아아앙!

석문에 검강이 작렬한 순간, 물컹하는 감각이 돌아왔다. 그건 마치 묽은 액체를 벤 듯한 감각이었다. 석실 내 진법의 묘용이었다.

검령을 거두고 손으로 석문을 만졌다. 당연히 액체 같은 질감이 아니다. 단단한 석벽일 뿐이다.

‘기에만 반응하는구나.’

검기든 검강이든 장력이든, 내력이 깃든 힘이 작용하면 액체와 같은 형태로 방어된다. 놀라운 진법의 묘용이나, 감탄할 시간은 없다.

후공의 시선은 흔들리는 천장을 보고, 벽면들을 바라봤다가 이어 잿빛 기둥에 닿았다.

‘반시진.’

바닥의 균열은 가속되고 있다. 용암의 붉은 물결은 그 균열 사이로 더욱 확연해졌다. 차오르며 뿜어지려 한다. 될까? 시간이 부족하진 않을까?

잿빛 기둥. 정해진 해답지.

느려 보이지만 가장 빠른 길일지도.

여러 시도 후에 다시 잿빛 기둥으로 돌아온다면 시간은 그만큼 더 줄어들 것이다.

후공은 잿빛 기둥 앞에 섰다.

좌우 장심을 가져간 순간, 극한 열기가 전해지며 반발.

반발을 흘리고 다시 손을 가져갔다.

“대공자!”

“단주!”

“형님!”

“두목!”

“형아!”

여러 호칭이 쏟아져나왔다.

호칭은 달랐지만 염려와 걱정은 같았다.

모산이든 천공단이든.

하지만 누구도 후공이라 부르는 이는 없다.

일각(15분)이 지나며 바닥의 균열은 극심해졌다. 무너지고 꺼져가면서 딛을 수 있는 지면은 점점 협소해져갔다.

이각(30분)이 되는 순간 기둥의 열기가 몇 배로 솟구쳤다. 모두가 그 모습을 지켜봤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반각이 지날 때마다 열기가 급상승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 벌써 네 번째 상승이다.

고통이 없을까.

그럴 리가. 어느 순간부터 대공자의 소맷자락이 미칠 듯 펄럭이고 있음이다. 한데 왜 살짝 찌뿌린 인상일 뿐인지는 알 수 없다.

삼각(45분)이 되면서 모습이 달라졌다.

대공자의 안광이 폭주했다. 눈에서 발산되는 자줏빛 광채가 얼마나 강렬하고 눈부신지, 빛으로 뒤덮여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동시에 잿빛 기둥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붉은 광채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여태 방출되지 않았던 열기도 방출된다. 갈라진 바닥 아래 용암물보다 더 뜨거운 열기였다.

그 와중 진동은 더욱 거칠어졌고, 균열은 더 심해졌다. 이제 딛고 설 수 있는 바닥은 두 곳에 불과했다. 천공단과 모산이 그중 한 곳에 모였고, 기둥 부근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무너지고 허물어져나간 지점에선 용암이 넘실거리며 빠르게 차올라왔다.

그렇게 반시진(1시간).

대공자의 머릿결까지 너풀거리는 가운데 그르르르릉, 석문이 열렸다.

모두가 석문 너머로 신형을 날렸다. 마지막으로 금적자가 도약한 직후, 딛고 서 있던 바닥이 무너져내렸다. 이제 석실 바닥은 거의 붉은 물결이었다. 남은 지반은 기둥 부근뿐. 그 아래 용암은 일장(3미터) 밑까지 차올랐다.

“대공자, 서두르세나!”

“단주, 얼른 오게!”

“형아, 이제 됐어. 빨리 와!”

한데 대공자가 이상하다. 여전히 기둥에 장심을 댄 채로 갸웃하고 있을 뿐이다.

“형님?”

“두목?”

“두목, 왜 그럽니까?”

“대공자, 무슨 일인가?”

“시간이 없네!”

“대공자…….”

후공은 갈 수 없었다.

용암의 물결이 일 장여 아래에서 머물러 있다.

제어하는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열주, 이 기둥의 붉은 열기가 작용하고 있었다. 방대한 기운으로 용암의 물결이 솟구쳐오르지 않도록 제어하고 있다.

손을 거두면 붉은 광채도 소멸.

그땐 용암이 강대한 기세로 솟아오를 것이다. 천공단과 모산이 딛고 있는 지점도 뒤덮게 된다. 엄청난 분출과 함께 일제히 붕괴될지도. 분화구 위로 빠져나갈 틈은 없다.

모두가 살아남는 행운 따위는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먼저 올라가십시오. 바로 뒤따라가겠습니다.”

“단주, 그게 무슨 말인가?”

모두 멍해진 가운데 금적자가 물었다.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금적선생께서 이끌고 가십시오. 저는 스스로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안 가! 절대 그럴 수 없네!”

그런 사람이 아니란 건 후공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직이 불렀다.

“금적자.”

일순 멍해진 금적자의 귀에 다음 말이 꽂혔다.

“지금 당장.”

“…….”

금적자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 감정이 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이 솟아났다.

예를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뒤돌아보는 여러 시선, 남궁연, 언교운, 소천개…… 모두. 그리고 제갈혜.

‘걱정할 것 없다.’

대공자, 단주, 형님, 두목, 형아.

누구도 후공이라 부르는 이가 없다.

괜찮다.

난 언제나 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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