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화. 빙궁의 지옥.
카앙, 카앙, 카아아앙!
밤이 깊었는데 소음이 하염없다.
사흘 내내다.
빙궁은 뭐하는 자들이냐며 불평이 늘었지만, 소녀는 달랐다. 관심이 없었다.
빙벽을 본 날 이후로 처소를 떠나지 않았다.
멍하니 앉아있을 때가 많았고, 가끔 눈물을 흘렸다.
왜 눈물이 나는지는 소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빙벽 안에 있는 여인을 떠올릴 때면 슬퍼졌고 저절로 눈물이 흘러나왔다. 주체하기가 어려웠다.
눈물이 다하면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들.
그런 소녀도 가끔은 웃었다.
그녀 곁에서 한시도 떠나지 않고 있는 새와 두꺼비 때문이었다.
[자, 날아갑니다요~~~.]
[그윽, 극극극!]
색관조가 방 안을 멋지게 날다가 한순간 균형을 잃고 추락했다. 바닥에 나뒹굴어 신음을 흘리다가 죽었다.
[크오오! 나 죽음.]
[그으으으으으…….]
두 영물은 죽는시늉을 하면서 실눈을 뜨고 소녀의 표정을 살폈다.
소녀가 미소를 짓자, 색관조와 금섬이 벌떡 일어났다.
[웃었다. 웃었어! 까르르르르르!]
[그윽, 극극극!]
소녀가 고개를 내저었다.
“둘 다 그만해. 내가 웃어주는 거야.”
[그윽?]
금섬이 그런 거냐며 갸웃했다.
그러다 갑자기 벽에 돌진했다. 쿵, 하고 벽에 머리를 박고는 나뒹굴었다.
그 모습에는 소녀도 참지 못했다.
“하하하하하!”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웃겨서도 그랬지만, 이렇게까지 하는 것이 고맙기도 했다.
[거봐, 웃으니까 좋잖아. 웃으니까 예쁘잖아. 어쨌든 오늘도 성공이야!]
“뭐가?”
[크게 웃었잖아. 분명 주인님께서 칭찬해주실 거야.]
[그윽, 극극극!]
색관조가 까르르거리고, 금섬도 폴짝 폴짝 공중제비를 돌았다.
소녀는 천화서고 오라버니가 떠올랐다.
하루에 한 번은 크게 웃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나 보다.
왜 자신을 아껴주는 걸까.
그냥 좋은 사람이어서?
그렇겠지.
[어?]
그때 색관조가 창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끝났나 봐. 오고 있어.]
[그윽, 그윽.]
소녀도 이해했다.
어느샌가 카앙, 카앙 소리가 그쳤다. 천공단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게. 오늘은 일찍 끝났네.”
이윽고 천공단이 왁자지껄 방으로 들이닥쳤다.
왜 각자의 처소로 가지 않고 이곳으로 오는 건지는 알 수 없다.
“와아, 이게 안 되네. 이제 포기!”
“나이 많은 내가 피리 소리로 부수지 못하면 어쩔 수 없지!”
“신비야, 시끄러웠지? 이제 우리 안 하기로 했다.”
“카앙, 카앙! 이게 얼음인지 쇳덩이인지.”
“뭔 소리야. 쇳덩이면 진작 먼지 됐지.”
“애초에 안 되는 거였어요. 아마도 천 년이 지나고 만년 이 지나도 깰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남궁연이 질렸다는 듯 진저리를 쳤다.
내내 가만히 듣고 있던 소녀가 그 말에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작게 중얼거렸다.
“천 년…… 만 년…….”
그 모습에 천공단이 화들짝 놀라, 남궁연에게 도끼눈을 뜨며 성질을 냈다.
“남궁 형아는 왜 말을 그렇게 해!”
“형님 때문에 신비가 울잖습니까!”
“남궁이 넌 천 년이 얼마나 긴 세월인지 알긴 하냐!”
“남궁이 니가 사람새끼냐!”
“처 돌았냐아아아!”
“아니…… 그러니까 저는…….”
쏟아지는 타박에 남궁연이 머리를 긁적였다.
이어 당장 사과하라는 말이 쏟아졌기에 남궁연이 소녀에게 다가갔다.
“신비야.”
“오라버니……, 난 괜찮아.”
“아니, 내가 말이 심했다. 넌 빙벽 안의 여인이 천 년 동안 갇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안타까운 것이겠지?”
“……응.”
그러자 포기를 선언했던 천공단이 다시 의욕을 불태웠다.
“내일 다시!”
“천공단이 물러설 리가!”
“카앙, 카앙, 카아아아앙! 해낼 때까지!”
“끝까지 해보는 거야아아아아!”
“아, 근데 우리 내일 할 일 있지 않아요?”
소천개의 말에 천공단의 외침이 뚝 그쳤다.
그러다 하나둘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할 건 해야지.”
“아무렴.”
“그건 그냥 넘길 수 없지.”
[내일 뭐하는데?]
[그윽?]
색관조와 금섬이 물었다.
소녀도 궁금해 눈물이 그렁거리는 눈으로 바라봤다.
***
다음 날,
천공단은 사냥에 나섰다.
빙벽에는 가지 않으려 했던 소녀도 이번에는 함께 나섰다. 천화서고 대공자의 손을 잡고 걸었다.
빙궁을 나섰고, 길 안내로 붙은 건 현유신녀의 제자 한유예.
한유예의 안색은 안 좋았다.
안 좋을 수밖에 없다. 빙벽을 부순다고 사흘 내내 소란을 피운 천공단이 오늘은 갑자기 사냥길에 나선 것이다.
당신들 도대체 뭐하는 사람들이냐며 한소리 내뱉고 싶은 충동이 솟구치지만, 그녀는 그럴 수 없다.
왜인지 스승께서 모든 요구사항을 들어주고 계시기 때문.
‘다 생각이 있으시겠지.’
그 깊고 높은 뜻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곰이다!”
“야, 거기 서!”
“거기 안 서냐!”
“잡아아아아!”
천공단이 곰을 발견하고는 난리법석을 떨며 신형을 날렸기에 한유예는 입술을 앙다물었다.
‘다 생각이…… 있으실 거야.’
곰은 결국 붙잡혔고, 속절없이 구워지기 시작했다. 한유예는 감탄하며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봤다. 이 사람들, 전문가다. 대체 얼마나 많이 사냥을 다니며 이것저것 구워먹은 건지, 잡고 굽기까지 일사천리였다.
미리 준비해온 장작이 활활 타오를 때, 한유예가 주변을 둘러보다가 갸웃했다.
두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천공단주와 소녀.
분명 곰을 잡으러 달려갈 때까지만 해도 함께 있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 마치 연기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도대체 언제 어떻게 사라진 것일까?
“언 공자, 단주께서는 어디로 가신 건가요?”
곁에 있는 언교운에게 묻자, 언교운이 미간을 찡그렸다.
“한 소저, 그게 지금 중요합니까? 고기가 앞에 있는데!”
“…….”
한유예가 멍해졌다.
단주의 행방을 묻는 말에 성질을 내버릴 것이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명문가인 진주언가의 공자가 원래 이런 자였단 말인가.
말이 통하지 않는다 싶어, 이번에는 남궁세가의 후계자에게 물었다.
하지만,
“바쁩니다, 바빠요. 한가한 한 소저께서 찾아보십시오.”
그러면서 ‘잘 익어야 할 텐데’ 같은 소리를 내뱉으며 남궁연은 장작불에 관심을 쏟는다.
“…….”
이게 뭔가? 어이가 없어 이번엔 천산의 후인 설영과 제갈 군사에게 물었다.
“너무 걱정 마세요. 곧 돌아오시겠죠.”
“대공자께선 잠시 주변을 둘러보는 것일 테니,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
대답이 태평하기 그지없었다.
예의를 갖추었을 뿐 설영과 제갈 군사도 대수롭지 않아 한다.
하지만 이쯤이면 알게 된다.
바보가 아니어서 그제야 한유예는 이해했다.
‘아…… 모두 알고 있구나.’
대공자와 소녀가 사라진 것도, 사라진 이유도. 알고 있지 않고서야 이렇게 태연할 리 없다. 애초에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단주의 의중을 이미 알고 있음이었다.
그렇다는 건,
사냥이 목적이 아니라는 뜻이다.
한유예는 시선을 돌려 사방을 둘러봤다. 끝없는 눈밭과 눈의 언덕 어디에도 대공자와 소녀는 보이지 않는다.
‘대공자와 천공단……. 뭘 하려는 거지?’
***
후공은 호수 앞에 있었다.
소녀를 낚아올린 그 호수였다.
나란히 앉은 가운데, 얼어붙은 호수에 시선을 두며 후공이 물었다.
“너는 여전히 빙벽 속 여인이 안타까운 것이겠지?”
“……응.”
소녀는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빙벽 속 여인이란 말을 듣자마자 소녀의 눈시울은 어느샌가 붉어졌다.
“이유는?”
“모르겠어.”
“안타까워할 일이 아니다.”
“왜?”
“사연을 알게 되면 안타까움 같은 건 사라지게 되거든.”
“들려줘. 나도 알고 싶어.”
“그럴까? 좋다. 그녀의 이름은 현이…….”
그렇게 후공은 현이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현이.
90년 전 설산파 장문인의 딸.
극음지체를 타고났다.
그 특별함에 아버지는 꿈을 꾸었다. 딸을 통해 빙궁의 무학을 훔쳐낸다. 빙궁의 모든 것을 취한다. 딸이 빙궁의 궁주가 되면 더할 나위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설산이 빙궁을 집어삼킨다.
그 달콜한 꿈 속에서 아이의 존재는 비밀이 되었다.
그리고 고작 세 살 무렵.
아이는 버려졌다.
그 아이를 발견하고 거둔 이는 당시 북해빙궁의 궁주 한극신녀. 아이가 극음지체를 지녔음을 알아본 한극신녀가 뛸 듯 기뻐한 건 당연했다.
스승과 제자의 만남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우연으로 보였지만, 그 우연은 계획된 것이었다.
아이는 총명하기 이를 데 없어 아버지의 소망을 마음에 새긴 채였다. 한극신녀의 제자가 되어 ‘현이’라는 이름을 받은 뒤에도 아버지의 소망을 잊지 않았다.
빙궁의 모든 걸 빼앗는다.
설산이 빙궁 위에 선다.
도저히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북해의 주인이 된다.
그 꿈을 향해 나아갔다.
순조로웠다. 극음지체를 타고난 아이의 성취는 눈부셨고, 이십 세 무렵에는 스승의 경지를 넘어섰다.
“차기 북해빙궁의 궁주는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지. 대사저인 현이 아래 두 사매는 그녀와 비견될 수 없었어. 물론 나이 차도 많았고. 당시 둘째 현음은 여덟 살. 지금의 너 정도의 나이였고, 막내 현유는 고작 네 살. 어린 나이에 막 입문했을 때였지.”
“근데?”
“비밀은 영원하지 않아.”
“아…….”
한극신녀가 자신의 삶이 길지 않음을 느끼고 대제자 현이에게 궁주의 위(位)를 계승하려 할 때, 이 모든 전말이 드러났다.
대제자 현이가 설산 장문인의 딸임을 알게 되고 아버지와 딸의 추악한 욕망이 드러난 순간, 빙궁은 분노했다.
빙궁은 분노를 감추고 발 빠르게 움직였다.
칼날을 미소로 감췄다.
그 미소 속에 설산 장문인이 초대되었다.
빙궁의 미소 뒤에 날카로운 칼날이 번뜩이고 있음을 장문인이 알 길은 없었다.
그저 오랜만에 딸의 얼굴을 보게 될 것을 기뻐하다 손쉽게 제압되었다. 딸이 본 건 무릎 꿇려진 아버지요, 목에 칼날이 겨누어진 아버지였다.
오래 꾸었던 설산의 꿈, 아버지와 딸의 계획은 그렇게 무너졌다.
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시작이었다.
지옥.
그날, 빙궁의 지옥이 열렸다.
현이는 홀로 빙궁과 맞섰다.
승부는 뻔해 보였다.
하지만 그녀의 성취는 놀랍게도 이미 아득한 경지.
숫자의 많음은 의미없었다. 빙궁의 누구도 그녀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극음지체를 타고 난 천재는 강할 뿐 아니라 빙궁의 모든 무학에 정통하니, 어떤 공격도 그녀를 어쩌지 못했다. 도리어 그녀의 위세를 감당할 수 없었다.
전각이 날아가고, 무너져내리는 가운데 스승인 궁주 한극신녀까지 부상당했다.
격전이 끝난 건, 설산 장문인의 죽음 때문.
빙궁은 현이를 멈추기 위해 목숨을 위협했고, 위협에 굴하지 않자 장문인의 목숨을 거뒀다.
그제야 현이가 멈췄다.
그런 현이를 빙궁은 누구 할 것 없이 두려움에 질려 바라보았다.
어린 현음와 현유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다.
현이가 빙궁을 피로 물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현이의 선택은 그보다 지독했다.
현이는 길고 긴 끔찍한 공포를 선사하길 택한다.
빙궁에 영원히 남기로 한다.
“그곳이…….”
소녀의 물음에 후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이는 스스로 빙벽을 두르고 그 안에 머물게 되지. 그녀가 남긴 마지막 말은…….”
- 언젠가 다시 보게 될 날을 기대한다.
그녀가 빙궁에 남긴 건 두려움.
그날이 오늘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 세월이 90년.
내내 지옥같은 공포를 달고 살아야 했고, 그리하여 빙궁의 숙원이 되었다.
빙벽은 깨지지 않는다.
강기로도 그 무엇으로도.
그것이 빙궁의 공포를 가중시켰다.
지옥과도 같은 대사저의 저주.
궁주 현음신녀는 자신의 대에서 이 저주를 마무리짓고 싶어 했다.
그리하여 수행……,
그러다가 반로환동……,
그리고 귀식대법.
기억까지 모조리 날아가버린 소녀.
“오라버니.”
소녀가 된 현음신녀의 목소리가 떨려나온다. 바라보자 소녀가 말을 이었다.
“그거…… 거짓말이야.”
후공은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넌 재밌는 말을 하는구나.”
“그럴리 없어.”
“왜 그렇게 생각하지?”
“모르겠어. 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 그건 잘못된 이야기야.”
후공도 같은 생각이었다.
이 이야기는 잘못되었다.
하지만 고개를 끄덕여줄 순 없다.
답을 찾아야 하는 건 눈앞의 소녀이므로.
그래서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난 길을 찾았다. 그리하여 오늘 밤.”
소녀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보며 후공은 말을 이었다.
“빙벽 속 현이를 죽인다. 늦었지만 빙궁의 숙원을 끝내줄 것이다.”
주륵.
말이 끝나자마자 소녀가 눈물을 쏟아냈다.
하지만 입은 굳게 다물어져 있다.
‘내가 그렇게 두지 않아.’
이런 결심이 엿보였기에 후공은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바라던 바다.
‘기대되는군. 현음신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