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화. 언제까지나 천공단.
[주인님, 너무 빠르세요오오오!]
달빛 아래, 지붕 위에서 시끌벅적 떠들던 천공단의 시선이 돌아간 건 색관조의 목소리가 들린 후였다.
스슷.
흐릿한 인영이 눈앞에 나타나 바라보니 천공단주였다.
“하하, 형아네!”
“형님!”
“오셨습니까!”
“두목!”
모두 예를 갖춰 맞이했다.
한쪽 구석에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 있던 무흔신투만 똥 씹은 표정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대공자, 이 어린놈은 볼수록 눈부시구나.’
무흔신투로서는 괜히 성질이 났다.
색관조가 말하기 전까지 대공자가 접근해오는 걸 전혀 감지해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강호에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도둑이 되기까지 경공술과 기척 감지만은 그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는다고 자부해왔거늘, 대공자가 바로 곁에 올 때까지도 몰랐기에 기분이 급 우울해졌다.
하지만 손아귀에서 벗어나려면 잘 보여야 한다는 것도 잊지 않고 있었다.
‘표정 관리. 표정 관리.’
마음을 다독이고 웃음 지었다.
“헤헤헤, 대공자 어서 오게.”
그 인사에 후공이 반응하기도 전에 천공단의 폭언이 쏟아졌다.
“이 도둑놈의 새끼야, 형님이 네 친구냐!”
“존댓말을 쓰란 말이다. 이 늙은 도적놈의 새끼야!”
“예법은 못 배웠냐? 확 팔다리를 잘라버릴라!”
“동정용왕, 쭈그리 된 거 봤냐 못 봤냐!”
무흔신투가 급 쪼그라들었다.
그저 친근함의 표시였는데 이놈들 너무하는 것이다. 곁에 있을 땐 없는 사람 취급하더니 이젠 잘 보이는지 잡아먹을 듯하니, 우울함이 말로 할 수 없었다.
후공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눈치를 보는 무흔신투의 표정은 묘하게도 언제봐도 즐거운 것이다. 잠시 그를 바라보던 후공이 이윽고 입을 열었다.
“금취객의 위치를 확보했습니다. 장소는 광소성 남단. 먼 길이 될 듯하고 서둘러야 하기에, 모두 동행하긴 어렵겠군요. 천공단은 안강으로 돌아가고, 경공이 뛰어난 무흔신투만 저와 함께합니다.”
천공단과 무흔신투가 동시에 멍해졌다.
각자에게 다른 의미로 청천벽력이었다.
누구는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 누구는 왜 자신이 함께 가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 넋이 나가버렸다.
“형아, 나 개방이야. 신법의 개방이잖아. 도둑 할아버지보단 우리가 낫지!”
“형님, 재고해주십시오. 도둑놈 때려잡으러 가는 길에 왜 도둑놈과 함께 가십니까.”
“저희도 함께 가게 해주십시오. 중간에 쉬지도 않고, 잠도 안 자겠습니다!”
모두가 동행을 청했지만, 무흔신투는 거의 다 죽어갔다.
“대, 대공자님, 저한테 왜 그러십니까?”
“무흔신투.”
“네? 네!”
“널 여기서 그냥 죽일까?”
“늘 함께하고 싶었습니다.”
“좋군.”
무흔신투의 빠른 태세전환에 천공단이 부러운 눈길을 보냈다.
하지만 눈치가 상급인 은앙개는 달랐다.
바로 철퍼덕 주저앉았다.
“난 안 돌아가! 두목을 따라갈 거야!”
원래라면 군소리가 없었겠지만, 두목과 함께 보낸 시간이 많다 보니 두목의 표정에서 은앙개는 여지를 본 것이다. 어쩐지 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은앙개의 모습에 천공단도 감을 잡았다. 은앙개가 눈치가 빠르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 즉시 은앙개를 따라 여기저기서 동조하는 말이 터져나왔다.
“두목, 저도 따라가겠습니다.”
“형님, 저희도 같습니다.”
“결코 폐가 되는 일이 없도록 전력질주하겠습니다.”
“가는 길에 밥도 안 먹고, 물도 안 마시고, 잠도 안 자겠습니다.”
눈을 빛내는 것이 다들 각오가 대단했다.
“그래요?”
갸웃하며 되묻자, 가능성이 있다고 봤는지 천공단이 너 나 할 것 없이 발작적으로 청해왔다.
그리하여 승낙.
“뭐 그렇다면야. 함께 가도록 하죠.”
“와아아아!”
“하하하, 우리도 간다아아아아!”
“야호오오오오!”
천공단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후공도 미소를 머금었다.
사실 바라던 바였다.
천공단의 경지를 조금 더 끌어올리고 싶었다.
천공단은 자신과는 다르다.
누구 할 것 없이 공청석유를 체내에 받아들였지만, 온전히 흡수한 건 아니었다. 공청석유의 흡수력이 남다르기에 복용 즉시 7할까지는 성취되었을 테지만, 남은 3할이 문제.
그 남은 3할이 녹아들면 3할의 정진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공청석유의 진가를 맛보게 된다.
빠른 흡수를 위해서는 진기를 한계까지 몰아붙일 필요가 있다. 전력으로 질주해 운용 가능한 진기를 모두 소진하고 회복, 다시 소진할 때까지 몰아붙였다가 회복의 과정을 거치는 가운데 공청석유는 온전히 유도될 터.
그 결과 천공단은 달라질 것이다.
강해질 것이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환호하던 천공단이 삽시간에 고요해졌다.
“따라오지 못하는 경우에는 천공단에서 제외됩니다. 그래도 좋다면 함께 가도록 하죠.”
순간 천공단이 주춤했다.
‘천공단에서 제외된다고?’
생각조차, 상상조차 못 한 말이었다.
또한 그럴 수도 있는 거구나 싶어져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이젠 천공단이 아닌 일상은 누구 할 것 없이 생각하기 싫은 것이다.
그냥 따라가지 말까 갈등이 일 때,
“형아, 아무 문제 없어! 가자고오오오!”
소천개가 기세 좋게 외쳤다.
최약체라 할 수 있는 소천개가 간다는데 다른 이들이 주춤거릴 순 없는 일.
“가자아아아아!”
“우리는 밤낮을 달리는 천공단!”
“도둑놈 잡으러 가자아아아아!”
“모두 좀 더 큰 목소리로!”
“쉬지 않고! 먹지 않고! 마시지 않고!”
모두가 기백을 드러냈다.
**
기백이 꺾이는 데 걸린 시간은 단 반나절.
오전 무렵,
제일 먼저 흐느적거린 건 기세를 올렸던 소천개였다.
“헉, 헉, 헉…….”
진기를 쥐어짤 대로 쥐어짠 탓에 얼굴이 샛노랗게 변해, 결국 멈춰 거칠게 숨을 토해냈다. 소천개는 저만치 앞쪽으로 빠르게 멀어져가는 천공단을 바라보다가 울음을 터뜨렸다.
“사형! 나 어떡해! 나 이제 어떻게 되는 거냐고!”
그 고함에 은앙개가 되돌아왔다.
“하하하, 너 안 뛰고 뭐하냐? 뛰어야지!”
“진기가 바닥났어. 다리가 떨어지지 않아.”
“하하하하, 천공단 첫 탈락자가 나왔구만. 자, 이제 거지새끼는 어서 집으로 돌아가시고요! 하하하하하!”
“야, 이 나쁜 사형 새끼야. 니가 사람이냐!”
은앙개는 그러거나 말거나였다.
“쯧쯧, 그러게 평소에 수련을 게을리하지 말았어야지. 늘 놀고 먹고 하니까 이 모양 아니냐. 거지야.”
“나 열두 살이라고!”
“난 스물한 살이라고오오오! 하하하하하하!”
“사형, 제발…… 나 장난 아니야.”
그러면서 펑펑 울자, 그제야 은앙개가 손을 잡았다.
“자, 가자. 내가 잡아줄게.”
손이 잡혔지만 소용없었다.
소천개는 겨우 다섯 걸음을 딛다가 멈췄다.
다리가 풀려 서 있는 것도 버거울 지경이어서 발을 뗄 수조차 없었다.
“뭐해?”
“안 돼. 못하겠어.”
“그런 게 어딨어!”
“진짜야. 나 끌지 말아줘. 건드리지 마.”
“힘을 내라고, 이 거지새끼야!”
“제발 좀 끌지 말라고! 지금 나 완전 무너져어어! 그러며어언!”
“헤헤헤, 그럼 뭐 어쩔 수 없네. 이제 넌 그냥 개방 거지야. 천공단의 거지가 아니고.”
“웃지 좀 마! 흑흑흑…….”
소천개가 서럽게 울고 있자니 천공단과 무흔신투까지 되돌아왔다.
“거지야, 왜 그래?”
“못 뛰겠어?”
무산쌍웅이 사형과는 다르게 다정하게 물어오자 소천개가 다시 펑펑 울었다.
남궁연이며 언교운, 모용진이 어찌할 바를 몰라 할 때 항마삼협이 험악한 기세로 무흔신투를 가리켰다.
“이게 다 저 도둑놈 때문이야!”
무흔신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가 뭘?”
“재수가 없잖아! 이거 어떡할 거야? 응?”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뭘 어쨌다고!”
“도둑놈은 원래 재수가 없어!”
“와아, 천공단 해도 해도 너무하네. 여기에서 내가 제일 불쌍한데 왜 나한테 난리야!”
“업어.”
“내가?”
“그럼 누가 업어.”
“니들이 업어야지. 같은 천공단이잖아! 이 상놈의 새끼들아!”
“욕하지 말고 좋은 말로 할 때 업어라. 너 아무짝에도 쓸모없잖아. 죽어도 별문제 없잖아. 도둑놈이니까. 그래, 안 그래?”
항마삼협이 장심에 기운을 일으켰다.
무섭기도 하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건 무흔신투 스스로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
“아까부터 업으려고 했어.”
“빨리 업어. 지금도 형님이 멀어지고 있다. 이러다 다 탈락이야. 우리 인생이 망가진다고!”
그렇게 소천개가 업혀 다시 천공단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눈물 자국은 그대로였지만 소천개는 기분이 좋아져 연신 깔깔거렸다.
“와아, 도둑 할아버지 엄청 빨라요. 어떻게 이렇게 경공이 뛰어날 수 있어요? 꼭 사부님 등에 업힌 것 같아. 물론 사부님보다는 좀 못하지만. 하하하하하!”
무흔신투는 좀 닥치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어린 거지의 스승이 개방 방주라는 것을 상기하고 입을 꾹 닫았다.
“소천개야, 떠들지 말고 운기해. 나 점점 힘들어진다. 너 다음엔 내 차례야.”
모용진의 말에 무흔신투가 화들짝 놀랐다.
“차례가 있었어? 내가 차례대로 한 명씩 업어야 하는 거여?”
“신투, 몰랐습니까? 진기가 바닥나는 순서대로 업히기로 이미 정해졌습니다. 업힌 채로 회복하고 뛰고 하는 겁니다.”
“그런 게 어딨어!”
“우린 말이 안 통하는 천공단입니다만.”
“지금 그게 자랑이냐아아아!”
**
그렇게 보름.
영원할 것 같던 무흔신투의 고난은 점차 줄어들었다.
‘뭐야, 이놈들 어떻게 된 거야?’
상식 밖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휴식도 없고, 먹는 것은 물과 벽곡단뿐이라 이쯤이면 나뒹굴고 최소한 날이 지날수록 진기의 회복 속도가 더뎌져야 정상인데, 어찌 된 게 그 반대였다.
천공단 하나하나가 기운이 왕성해지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
열흘째가 되면서부터는 어린 거지와 언교운, 모용진만 간간이 업힐 뿐이었다.
‘이 새끼들 도대체 뭘 처먹은 거야. 공청석유라도 먹은 거야?’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북교산에 공청석유가 있다는 소문이 떠들썩하게 돌았지만, 천공단이 차지했다는 말은 없었다.
누군가 차지했다면 그건 화공신타.
성숙노괴를 죽이고 배를 갈라야겠다는 화공신타가 그 뒤로 종적이 묘연한 걸 보면, 틀림없이 화공신타의 손에 공청석유가 들어갔을 것이다.
‘아니면 단체로 천년산삼이라도 먹은 거야? 그게 그렇게 많을 수가 있나?’
떠올려봐도 알 길 없는 무흔신투.
하지만 반대로 천공단은 알게 되었다. 이 질주의 의미를 깨달아갔다.
진기를 모두 소모하고 회복하고 반복하는 사이에 체내에 내력이 급격히 상승하는 것을 느끼게 되면 모를 수가 없다. 진기가 바닥을 드러낸 상황에서 청명한 기운이 스며드니, 공청석유가 흡수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세상에 아무 대가 없이 공청석유를 선물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지만 있다.
이미 건네주었고, 또 온전히 흡수되길 바라고 있다.
천공단주.
천화서고 대공자.
그가 저만치 앞장서서 유유히 나아가고 있다.
그리하여 마음에 떠오르는 다짐은 하나.
‘난 언제까지나 천공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