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화 서고 대공자-208화 (208/460)

208화. 무당파 이인자.

어느덧 출발한 날로부터 이십여 일.

매일매일 극한까지 몰아가 한계지점과 마주한 덕분에 천공단의 성취는 확연히 상승했다.

운용 가능한 진기가 바닥을 드러내면 그때마다 흡수되지 못한 3할의 공청석유가 작용했고, 그로 인해 비로소 온전히 흡수된 공청석유의 공능은 각자에게 경지 상승이라는 짜릿함으로 돌아왔다.

그런 성취만으로 보상은 충분했지만, 천공단에겐 또 다른 보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저기 우뚝 솟은 나무 한 그루가 보입니까?”

이름 모를 산의 언덕에서 후공이 먼 지점을 가리켰다.

천공단의 시선이 날아가 그곳을 눈에 담았다.

바로 탄성이 터져나왔다.

“와아, 형아! 풍경 끝내준다!”

“형님, 그림입니다. 완전 그림이에요.”

“두목, 뭐 저런 곳이 다 있는 건가요?”

“너무 멋지잖아!”

사방이 평야인 곳, 주변은 싱그러운 꽃밭이었다. 그 한가운데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그림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누구라도 저 곁을 지난다면 발걸음이 저절로 옮겨져 나무 그늘 아래 쉬고 싶을 풍경이었다. 안력을 돋워 바라보니 지금도 열댓 명 정도의 사람이 그 그늘에서 쉬고 있기도 했다.

“지금까지의 강행군은 저곳에서 끝내는 것으로 하죠. 앞으로는 잠도 충분히 청하고 식사도 제때 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와아아아아!”

“만세에에에에!”

“밥이다!”

“잠이다!”

“고기다아아아!”

무려 이십여 일을 쪽잠에 벽곡단으로 연명했던 천공단이었기에 환호성이 말로 할 수 없었다.

그건 무흔신투도 같았다.

쪽잠을 왜 돌아가면서 내 등에서 자냐며, 나는 언제 자냐고 하소연하던 그였기에 환호성만이 아니라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시발, 드디어 끝났어어어어어! 이제 낙원이야아아아아!”

천공단과 함께 감격의 어깨동무를 하며 방방 뛰었다.

천공단주에게 맞아죽기 전에 과로사하기 직전이어서, 그의 기쁨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었다.

“가자!”

“달려어어어어!”

그렇게 모두가 신형을 날리는 가운데, 후공은 색관조에게 한 가지 임무를 맡겼다.

“넌 사냥을 다녀오너라.”

[주인님, 멧돼지로 잡아올까요?]

“그게 좋겠다. 가는 김에 잠자리도 잡아오고.”

[그으으으으윽……. 극!]

금섬이 입을 쩍 벌렸다가 이내 모로 쓰러졌다.

[까르르르르! 주인님, 금섬이 좋아서 기절했어요.]

“후후, 다녀와라.”

[넵! 엄청 실한 놈으로 잡아올게요! 까르르르르르르!]

*

멋들어진 나무 아래에 도착해서는 원래 그곳에 머물고 있던 이들과 천공단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미안하게 왜들 가려고 해!”

“우리 돼지 잡아먹을 건데 같이 먹으면 좋잖아!”

“그러지 말고 같이 먹어요.”

천공단을 본 일반인들이 기겁하여 다들 갈 길 가겠다며 주섬주섬 일어나는 탓에 천공단이 만류하는 상황.

말린다고 말려지진 않는다.

천공단에 멀쩡하게 보이는 사람도 있지만, 일단 무산쌍웅의 얼굴을 보게 되면 누구라도 지리게 되는 법.

“우……, 우린 딱 이쯤에서 가려던 참이었다오.”

“한참을 여기에서 쉬었더니 너무도 지겹구려.”

“그쪽들이나 편히 쉬다 가시오.”

가려던 것도 아니었고, 전혀 지겨움 따위 없었지만 무서워져 누구 할 것 없이 슬슬 뒷걸음쳤다.

무산쌍웅이 성질을 냈다.

“다들 진짜 그러기야? 돼지 한 마리는 우리가 다 못 먹는다니까. 이것도 인연이잖아. 같이 먹자고!”

성질을 내면서 말해봐야 도망치고 싶을 뿐.

그리고 또 돼지는 언제 잡고 언제 손질한단 말인가.

“그게…… 돼지도 안 보이는데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 어?”

한 중년인이 돼지 핑계를 대다가 서쪽 하늘에서 이상한 것을 보고는 놀라 말을 멈췄다. 모두의 시선도 그 방향으로 향했다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 뭐야?”

“왜 돼지가……?”

“날아??”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돼지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

꾸에에에에엑!

울음소리와 함께 돼지가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돼지 위로 한 마리 새가 돼지를 운반하고 있다는 것까진 시야에 들어오지 않아, 저건 하늘을 나는 돼지였다.

“봐! 돼지는 저기 오고 있잖아.”

“손질도 금방 한다니까!”

그래봤자 더 무서워졌다.

머물던 이들은 점잖게 사양하는 것도 잊고 먼지를 일으키며 도망쳐버렸다.

그리하여 명소는 천공단의 독차지.

멧돼지를 손질하고 고기를 굽는 동안에도 몇몇이 다가왔지만 가까이 와서는 멈췄고, 이리 와서 같이 먹자고 천공단이 손짓하며 부르면 뒤돌아 줄행랑쳤다.

“왜 다들 도망가는 거야. 이거 언제 다 먹어.”

“너 다 먹을 거잖아.”

“헤헤, 맞아.”

남궁연의 직격에 소천개가 헤실거렸다.

“배터지게 먹고 금취객 잡으러 가야지. 생각만 해도 신나.”

“형님, 근데 금취객은 진짜 금에 미친 사람일까요?”

언교운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남궁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장원을 금원장으로 명명할 정도면 금에 미쳤다고 봐야지.”

이미 금취객의 거취는 두목에게 들은 터였다.

광서성 남단의 금원장(金願莊).

별호는 금을 취하는 밤 손님이란 뜻으로 금취객이고, 장원의 이름은 금을 원한다, 라는 금원이면 금에 미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또한 도둑놈인 주제에 태연히 금원장의 장주로 지내고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

“형아, 금취객의 집은 담벼락이며 지붕이며 금으로 발라져있으려나?”

“그렇게 멍청했다면 진작 죽었겠지. 분명 보물을 숨겨놓은 장소도 따로 있을 거야.”

“하하, 하긴. 그래도 어쨌든 금덩어리도 이제 다 우리 거야.”

“조용.”

나직이 들려온 단주의 음성에 모두 입을 다물었다.

누구도 이유를 묻지 않았다. 의미는 짐작된다. 하루 이틀 함께 다녔던가. 애초에 단주는 뭐라고 떠들든 신경 쓰는 성향이 아니다.

시끄럽다는 뜻일 리 없다.

누군가 오고 있다.

그것도, 멀리서도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절세고수일 터.

시선을 돌려 멀리 사방을 바라봤다.

확 트인 풍경 속에 보였다. 북쪽 방향에서 두 사람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노인과 청년으로 신법이 경쾌하기 이를 데 없었다.

“여어~~, 도사님들이시구만. 근데 어느 문파지?”

순식간에 가까워지며 의복이 눈에 들어왔다.

도사 복장을 한 데다 오른쪽 어깨 부위에 태극이 수놓아져 있었기에,

“어…… 두목, 무당파야. 근데 누구인지는 모르겠네.”

은앙개가 혼자 묻고 스스로 답했다.

후공에겐 하등 쓸데없는 말이었다.

이미 무당파인 것도, 노인이 누구인지도 알아봤다.

‘청진자.’

청진자는 무당의 최고 배분이자 무당검존이라 불리는 청허자의 사제. 무공의 경지는 드높아 화경의 극에 이른 이.

또한 청허자가 대내외적인 활동이 드문 반면, 청진자는 무당의 대소사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다.

기억 속 청진자는…….

‘흐음……. 기억이랄 게 없네.’

딱히 인상적인 장면이 떠오르지 않았다.

후공이 주로 접한 건 검존 청허자와 무당파 장문인.

청진자가 무당의 이인자라지만 그거야 강호인들에게나 큰 울림이 될 뿐이지, 후공 입장에서 감흥을 느끼기엔 무리였다.

그래도 애써 떠올려본 성향이라면, 도사답지 않게 무당파에 대한 자부심이 유별나다는 정도.

그때 천공단의 외침이 터져나왔다.

“도사님들! 어서 오세요오오오!”

“천공단이 무당파를 환영합니다아아아아!”

“하하, 같이 돼지 먹읍시다!”

세상 낙천적이고 성격 좋은 천공단이 환영의 말을 쏟아냈다.

이윽고 눈앞에 당도한 청진자가 껄껄거렸다.

“허허, 이 노도는 이처럼 여러분께 큰 환대를 받게 될 줄은 몰랐소이다.”

청진자는 멀리서도 고기를 굽고 있는 면면을 보았지만 이곳을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 양해를 구할 참이었는데, 뜻밖에도 열렬한 환영을 받으니 얼떨떨할 정도였다.

“소개하리다. 노도는 무당의 청진자이고, 이쪽은 내 제자 운학이라오.”

그 곁에서 선 운학이 공손히 예를 갖췄다.

반듯한 외모에 검미는 날카롭고 오른쪽 입술 끝에 붉은 반점이 인상적이었다.

그 소개에 천공단이 눈에 띄게 동요했다.

운학 때문은 아니었다.

오로지 청진자.

강호에 몸담고 있는 이들 중 무당 청진자의 명성을 모르는 이가 누가 있을 것인가.

화경 중기의 경지에 오른 중원 칠괴 중 한 명인 철혈노괴를 단 백여 합만에 무릎 꿇린 이가 무당의 청진자였다.

화경 중기의 경지를 칭하는 중과 후기를 칭하는 극의 경지가 그만큼 큰 차이란 점을 새삼 깨닫게 해 준 이가 눈앞에 있었다.

“우와아아아아, 굉장해. 뭐 이런 영광이 다 있지?”

“우워워, 오늘 완전히 계 탔네.”

“무당의 절세고수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영광입니다. 고기도 함께 드시고 편히 쉬다 가십시오.”

천공단의 반응이 누구 할 것 없이 뜨거우니 청진자가 다시금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도 안다.

최근의 강호 명성만을 놓고 보자면 천화서고 대공자와 천공단이 휩쓸고 있는 형국.

그런 천공단과 조우했으니 궁금한 것이 많았다.

물론 가장 궁금한 이는 천화서고 대공자.

청진자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젊은 서생 쪽으로 옮겨졌다.

“그대가 명성이 자자한 천화서고 대공자로군.”

“네, 허황된 명성만 쌓고 있는 중입니다.”

“하하, 그럴 리가 있나.”

그럴 리 없다면서도 자신 앞에서 몸을 낮추는 모습에 청진자는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다들 앉지.”

그렇게 자리하여 말이 오갔다.

주로 물은 건 청진자.

북교산의 일을 묻고, 한동안 어디에 있었는지를 물었고, 또 지금은 어디로 가는 길인지도 물었다.

그때마다 천공단은 강호에 이미 알려진 내용은 답하고, 알려지지 않은 내용은 말을 삼갔으며,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선 유람도 할 겸 천하를 제패하는 중이라고 떠벌렸다.

유쾌함에 가려진 탓에 청진자가 의문을 품기는 쉽지 않았다.

그 가운데 고요히 스승의 곁을 지키는 운학의 시선은 천화서고 대공자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자신과 비슷한 연배의 대공자가 천공단의 화려한 면면을 휘하에 두고 있다는 것이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시기심이 솟아난 탓이었다.

정녕 천화서고 대공자의 모습은 자신이 꿈꿔온 모습.

그렇기에 떠오르는 마음은,

‘명성만큼 대단해 보이지 않는데…….’

후기지수 중 인정하는 인물은 오직 한 사람.

화산신룡 현조뿐.

무당신룡으로 불리는 자신과 더불어 현조만이 강호의 두 마리의 용이라 칭할 수 있다고 여겼거늘, 여기에 갑작스레 새로운 용이 나타나 강호를 뒤흔들고 있으니 의문도 들고 곱게 보이지 않는다.

- 사부님.

- 왜 그러느냐?

제자의 전음에 청진자가 돌아봤다.

- 이 제자 대공자에게 비무를 청해보려 합니다.

- 응?

- 어떤 자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제 위치를 확인해보고 싶습니다.

- 넌 항마삼협이나 낭인왕이 어떤 이들인지 들어본 적이 없더냐?

운학이라고 왜 듣지 못하였겠는가.

사부의 말뜻도 이해했다.

항마삼협이 누군가의 말을 고분고분하게 따를 사람도 아니고, 낭인왕은 낭인들에게 있어 우상 같은 존재로 숭배의 대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그들이 형님이라 칭하는 이가 천화서고 대공자이니 확인하고 말고 할 일이 아니라는 의미.

-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하가 된다는 것이 꼭 무공이 더 뛰어나다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구나. 나 또한 미심쩍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나, 천공단주는 네가 견줄 수 있는 이가 아니다.

- …….

운학이 의기소침해져 고개를 떨궜다.

그런 모습에 청진자가 웃으며 제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지만 운학은 위로가 되지 않는다.

스승의 안목이다.

이는 비무를 치러보기도 전에 이미 패배한 셈.

그때 들려왔다.

“혹여 운학 도장께선 언짢은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말을 걸어온 건 천화서고 대공자.

“언짢은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혹시라도 저희로 인해 언짢으셨다면 마음 푸십시오. 무당에 신룡이 있다 하였고, 그 도호가 운학이라고 들었습니다. 오늘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저는 큰 영광입니다. 가문에서도 크게 영광으로 여기고 있을 테지요.”

“하하, 과찬이십니다. 도리어 제가 영광입니다.”

운학은 내심을 숨기고 애써 웃어보였다.

상대가 자신을 인정해주니 기분도 조금 풀어졌다.

“어떤 가문이기에 운학 도장 같은 유능한 분이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운학의 시선이 남궁연과 언교운 그리고 모용진을 훑었다.

천룡의 세가들의 자제.

하지만 자신의 가문도 그에 못지않다.

비록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을 뿐.

“제 가문은 금원장입니다. 뜻으로만 보자면 금을 원한다는 의미입니다만, 저의 부친께선 주변에 많이 베풀고 계시지요.”

“……?”

천공단이 누구할 것 없이 동작을 멈추고 멍해졌다.

‘그, 금원장이라고?’

‘어?’

‘뭐야?’

‘……!’

천공단의 놀란 시선이 운학에게 쏟아졌다.

금원장.

금원장주 금취객.

그의 아들이 눈앞에 있었다.

두목이 왜 자꾸 가문을 물었는지 비로소 이해했다.

확인이었고, 천공단 모두에게 알려주려는 의미.

“하하하, 왜들 그리 놀라십니까?”

운학이 밝게 웃어 천공단도 따라 웃었다.

조금은 멋쩍게.

이쯤이면 상대가 바뀐 것이다.

금취객이 아니라 무당파.

어쩌면 이제 청진자와 맞서게 될 지도.

무당과 맞서야 할지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