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화 서고 대공자-209화 (209/460)

209화. 누굴 걱정해!

후공은 운학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삶은 알 수 없다.

실로 공교롭다.

후공은 그런 생각을 하며 동정용왕을 떠올렸다.

그 밤 오갔던 전음.

- 금취객의 이름은 강유. 그의 아들은 강선입니다.

- 그래서?

- 강선은 이제 다르게 불립니다. 무당의 제자가 되어 무당신룡 운학이 되었습니다. 부디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동정용왕은 자신의 의형제인 금취객을 살려달라며 꺼낸 말 속에, 무당파와 갈등이 생길 수 있다는 암시를 던졌다. 이런데도 괜찮겠냐며.

대답은 같았다.

- 그래서?

그래서 어떻단 말인가.

말문이 막힌 동정용왕은 그저 눈동자만 요동쳤다.

- 장천.

- …….

-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

- 죄송합니다.

전음으로 오간 대화는 그렇게 매듭지어졌다.

무당파에 대해선 따로 생각하지 않았다. 금취객을 죽이든 상하게 하든, 그건 검을 회수한 후의 문제로 남겨놓았었다.

한데 오늘이다. 지금이다. 지금 눈 앞에 금취객의 아들이 나타났으니 삶이란 얼마나 공교로운가.

그리하여 이 상황은 오히려 잘된 일.

한꺼번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운학과 청진자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맞춰 대응해가면 된다.

순응한다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이고,

대적한다면 운학과 청진자는 문제를 겪게 될 것이다.

순응한다면 아들에게 책임을 물을 일은 아니다.

아들은 문제될 것이 없다.

그저 금취객은 아들이 자신과 같은 삶을 살게 하고 싶지 않았을 테지. 잘되길 바랐을 것이다. 운학에게 있어서만큼은 좋은 아버지였을 터.

“다들…… 왜 그리 놀라십니까?”

천공단이 누구 할 것 없이 입을 쩍 벌리고 눈이 커져 있었지만, 운학 입장에선 이해할 수 없었다.

금원장이 이름이 있다 한들 솔직히 남궁세가와 모용세가, 진주언가에 비할 바는 아닌 것이다. 그저 광서 남단에서 조금 명성이 있을 뿐이다.

‘한데 왜?’

그렇게 갸웃하고 있자니,

“운학 형아, 가문의 이름이 금을 원한다면 도대체 얼마나 부자인 거야? 도대체 형아는 얼마나 부귀영화를 타고 난 거냐고! 난 거지인데!”

“부럽다, 부러워. 내 꼴을 보라고. 집도 그저 그런데 문파도 개방이야. 인생이 뭐 이렇게 불공평하냐.”

두 거지가 탄식을 토해냈다.

그제야 그런 뜻이었냐며 운학이 웃음을 터뜨렸다.

후공이 그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운학 도장, 그대에게 아버지는 어떤 분이십니까?”

“어…….”

생각지도 못한 질문인 탓에 운학이 잠시 멍해졌다.

하지만 이내 마음이 유도되듯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라 의구심을 덮어버렸다.

‘아버지는 내게…….’

*

청진자와 운학이 먼저 떠났다.

천공단은 남아 뒷정리까지 깔끔하게 마친 다음 신법을 펼쳐 나아갔다.

다들 누구 할 것 없이 무거운 안색이었다.

‘다 같은 마음일 테지.’

모용진이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어쩌면 무당파, 그것도 무당파 무공 서열 두 번째인 청진자를 상대해야 할 수도 있다. 두목이 상대하기 버거운 이. 만약 일이 꼬이면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할지도 모른다.

어딘가 토로하고 싶은 마음에 모용진이 전음을 날렸다.

-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 그러게.

언교운의 전음도 무겁게 돌아왔다.

그러곤 전음이 멈췄다.

말을 꺼내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

먼저 침묵을 깬 건 언교운이었다.

- 어쩌면 청진자…… 죽을지도.

- ……?

모용진이 뭔 소린가 하고 흘깃 바라보는 사이, 언교운의 전음이 이어졌다.

- 무당파도 이제 끝인가. 멸망하는 건가.

- 뭐야? 너 무당 청진자 걱정하는 거였어?

- 그럼 넌?

언교운이 뚱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알았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 설마 너, 두목 걱정했던 거냐?

- 당연하지. 다들 그런 거 아니었어?

- 뭔 개소리야. 천공단이 두목 걱정을 왜 해!

- 아니 그래도 상대가…….

- 쯧쯧, 넌 멀었다. 언제까지 적응만 하고 있을 거냐. 소똥 같은 놈아.

- …….

모용진은 멍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곤 옆쪽이며 뒤쪽의 천공단을 돌아보았다. 여전히 다들 심각한 표정이었다.

한데 그 심각함이 다른 의미였다는 것이 곧 드러났다.

“무당파도 이제 끝인가 보네.”

“운학 형아, 사람 괜찮던데. 죽는 건가.”

“저항하면 어쩔 수 없지.”

한마디씩 처량하게 던지는 말을 듣자 명확해졌다.

- 교운아, 이 상황이 뭐냐? 다들 무당파 걱정하고 있었던 거야?

- 당연하지. 쯧쯧, 네가 소요파 귀신 목령자가 아작 나는 걸 봤어야 하는데.

- 그걸 넌 눈앞에서 본 거야?

- 아니. 난 그때 천공단 아니었어.

- 뭐라는 거야, 이 미친 새끼야!

“하하하하하!”

언교운이 전음도 잊고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좀 천공단 같아 보이네.”

“닥쳐! 넌 아주 나쁜 새끼야!”

**

그로부터 사흘.

청진자와 운학은 승룡반점에 들었다.

어느덧 광서성 북단.

간단히 주문을 한 후 자리하고 있으려니, 먼저 온 손님들의 대화 소리 속에 ‘천화서고 대공자’를 언급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단하다, 그럴 리 없다는 식의 대화.

운학은 자연스럽게 대공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마치 어른이 바라보듯 자신을 바라보던 그의 미소.

그리고 그의 물음.

그대에게 아버지는 어떤 분이십니까?

여느 아버지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라고 답했다.

하지만 마음속 대답은 달랐다.

훨씬 길었고, 진심이었다.

‘아버지는 곱추입니다. 추한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그런 아버지가 좋습니다. 아버지는 늘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제가 당신을 닮지 않아서 늘 다행이라고 하셨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닮아서 기뻐하시곤 했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기뻐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았지만, 설령 제가 아버지를 닮았다 해도 좋았겠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늘 아들이 잘되기만을 바랐던 아버지.

여덟 살 무렵, 지금의 스승과 연이 닿아 무당으로 가야 했을 때 울먹이던 아버지의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기만 하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모두 말하고 난 다음 대공자를 바라보니, 대공자는 여전히 미소 짓고 있었다.

모든 말을 끝내고 나니 여태껏 그가 보내온 미소가 따뜻한 것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비무를 치르기도 전에 패배한 것에 대한 감정은 눈 녹듯 사그라들었다.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그게 뭐라고 고마운지.

그가 물어주어 아버지를 떠올리게 되었기 때문일까.

아마 그럴지도.

어른스러운 느낌의 사람.

아니 그저 어른일지도 모르겠다.

그때서야 왜 천공단이 대공자를 따르는지 조금은 이해되었다. 그의 명성도.

“운학아, 무슨 생각을 그리하느냐?”

앞쪽에서 들려온 사부님의 음성에, 운학의 상념은 흩어졌다.

“재밌는 것이라도 떠오른 게냐?”

자신도 모르게 미소 짓고 있었나 보다.

“네, 사부님. 일전에 만난 천화서고 대공자와 천공단을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그래? 후후, 유쾌한 사람들이긴 하지. 이제 대공자와 비무를 해보겠다는 생각도 사라졌겠구나.”

“이 제자, 안목이 없었습니다.”

“흐음…… 그래. 그래야지.”

고개를 끄덕이는 사부의 모습에서 운학은 어쩐지 아쉬워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니겠지.’

하지만 사실이었다.

손님들의 입에서 천화서고 대공자가 언급되었을 때 청진자도 사흘 전 만남을 떠올리고 있었고, 내내 마음이 언짢아졌다.

분명 예의에 벗어나는 언행은 없었지만, 문제라면 운학을 바라보는 대공자의 시선이었다.

어린 친구가 운학을 어린아이 대하듯 하는 모습에 심기가 불편했다. 감히 누구 앞에서 어른 흉내인가.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흉내가 아니었다. 너무도 자연스러워 그 자연스러움에 마음이 더 언짢아졌다.

한데 제자는 도리어 그를 달리 보게 된 듯하니,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허어어엄…….”

마음의 불편함을 헛기침으로 털어낼 때였다.

왁자지껄 반점 앞쪽이 소란스러워졌다.

“이 집이 그렇게 맛집이라며! 나 어떡하지? 침이 막 흘러넘쳐.”

“침 흘리면 죽어!”

“쌍웅 아저씨들, 사부님한테 이를 거야.”

“흘려, 마음껏 흘려!”

“하하하하!”

낯익은 목소리.

‘천공단?’

청진자와 운학의 시선이 계단으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천공단이 우르르 이 층으로 올라왔다.

그때는 천공단도 보았다.

“운학 형아네?”

“여어~~ 여기 계셨습니까?”

“이런 인연이 다 있나. 또 뵙게 되니 반갑습니다.”

“친구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승룡반점이 외나무다리였네.”

말 속에 뼈가 있었지만, 사정을 모르는 무당파가 그 뼈다귀를 알아차릴 수는 없었다.

“허허, 이거 반갑구려.”

“모두 반갑습니다.”

그리 되자 자연스럽게 자리는 합석.

대거 단체 손님이 오자 삼십 대 중반의 여인이 살살거리며 주문을 받고는 사라졌다.

여인은 주방에 주문을 넣고는 사 층으로 올라갔다.

그곳 객실 중 하나의 문을 열고 들어간 여인이 펄쩍펄쩍 뛰었다.

객실 안에 있던 뚱뚱한 노인이 입술을 앙다물었다.

“왜 뛰는지 내가 납득을 못하면 머리를 구정물에 처박아버릴 줄 알아.”

- 점주님, 우리 대박나버렸어요.

- 응?

뚱보 노인이 갸웃했다.

대박이 대체 뭐길래 갑자기 전음으로 말하는 건지 궁금해졌다.

- 방금 막 우리 반점에 천공단이 왔어요.

“뭐가 어째!”

노인이 벌떡 일어났다.

- 전음, 전음.

- 어, 그렇지. 천화서고 대공자도?

- 당연한 걸 물으시네요. 인물이 아주 그냥 와우~~.

- 뭔 일이냐. 무당의 청진자에 천공단까지. 진짜 대박나버렸네.

승룡반점은 하오문이 운영하는 곳.

하오문에서 천공단의 면면을 모르는 이들은 없다.

그리고 내기도 많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천공단주가 자신들이 운영하는 곳에 오는가, 안 오는가로.

그러니 대박.

- 더 대박은 천공단이 무당의 청진자랑 합석했다는 거예요. 상대하는 사람들이 어째 다 거물이어요.

- 천공단주가 더 거물이라고 말해야지.

- 크큭, 맞습니다. 그렇게 말해야죠. 아무렴요.

- 주문하고 상관없이 음식 푸짐하게 건네도록 해. 술도 최고급으로 내놓고.

- 이미 그렇게 했습죠. 근데 저, 천공단주에게 서명받아도 되나요?

이내 뚱뚱한 노인이 울상을 지었다.

- 넌 왜 그러냐 대체. 안 된다는 거 알잖아. 그러다 문주 귀에 들어가면 내가 제 명에 못 살아.

- 장난이에요, 장난. 눈물 뚝!

- 뚝.

그러는 사이 이 층에선 음식이 푸짐하게 놓이기 시작했다.

천공단은 가끔 겪는 일이라 이 의미를 알고서 고맙다고 잘 먹겠다고 했지만, 운학과 청진자는 갸웃했다.

“이건 천공단 주문에 없었던 건데…….”

“운학 형아, 그냥 먹자. 승룡반점은 우리가 마음에 드나 봐.”

“마음에 들다니……. 여기 와본 거야?”

“처음이야.”

“…….”

그렇게 요리를 집어드는 가운데 청진자가 물었다.

“대공자, 행선지가 어디인가?”

“정처 없이 떠돌고 있습니다만, 최근 정했습니다. 광서성 남단 흠주입니다.”

“응?”

“설마 도장께서도?”

“허허, 그렇다네. 인연이 이어지는군. 제자의 가문인 금원장에 가는 길이지. 한데 자네는 흠주에 무슨 볼일이 생긴 건가?”

“그곳에 저희 물건이 하나 맡겨져 있다는 것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그걸 찾으러 가는 길입니다.”

“어떤 물건이기에?”

“검입니다.”

“허허, 보통 검이 아닐 것 같군. 견식할 수 있는 기회를 얻으면 좋겠네.”

“물론입니다.”

너털거리는 청진자를 향해 후공도 미소를 머금었다.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

색관조는 멀리 볼 수 있고,

청진자보다 빠르다.

곁에 두면 암수를 펼치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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