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화. 주인이 돌아왔다!
머리가 발에 짓이겨진다.
압력이 점점 커져 갔다. 금취객은 당장이라도 머리가 터져나갈 것 같았다.
하지만 터지기 전에 청해야 한다. 답을 들어야 한다.
눈동자를 굴려 간절함을 담아 바라봤다.
‘부디…… 저 하나로만.’
그 간절함이 통한 걸까.
발이 떨어졌다.
하지만 이내 복부가 화끈해졌다.
퍼억!
발길질이었다.
금취객은 주르륵 밀려가 배와 목을 움켜쥐고 꺽꺽거렸다.
‘숨이…….’
숨이 쉬어지지 않아서 입만 벌리고 뻐끔거렸다.
그 상태로 두 발이 보였다. 어느샌가 여우는 곁에 와 있었다. 누운 채로 여우의 발을 보고 있자니, 들려왔다.
“무덤을 파헤쳐? 관을 열어?”
죽여주십시오, 라고 말하려 했지만 금취객은 아직 호흡을 찾지 못해 버둥거리기만 했다.
“무흔신투!”
“네!”
무흔신투가 한달음에 달려와 머리를 조아렸다.
“묻는다.”
“네, 무엇이든 물으십시오!”
“땅을 파라.”
“네? ……네.”
무슨 소린가 싶어 갸웃하던 무흔신투가 겨우 이해했다. 이건 그거다. 생매장이다. 이해한 탓에 신투는 안색이 창백해졌다. 하지만 머뭇거릴 수 없다. 함께 묻히는 수가 있다.
두리번거리며 삽을 찾다가 ‘아, 여기 산이지?’ 하고는 손으로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다.
‘날…… 생매장시킨다고?’
금취객은 두려움에 질렸다.
자신의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상대가 생각보다 잔혹하니 아들도 무사할 수 없을 것 같아 두려워졌다.
그때 몸이 감싸였다.
어떤 기운.
기운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휘감는가 싶더니 몸이 떠올랐다. 누운 채로 수평으로 떠올랐다가 이내 머리가 위로, 다리가 아래로 향하며 돌아갔다.
그렇게 떠오른 채 금취객은 여우를 마주 보게 되었다.
발은 땅에 닿지 않는다. 그렇게 서로의 눈높이가 맞춰졌기에 금취객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소, 소문이…….’
여우는 천화서고 대공자.
금취객도 대공자의 소문은 들었다.
하지만 뒷짐을 진 채로 허공섭물의 모용으로 자신을 부드럽게 둥실 띄우고 있는 경지라니…….
소문이 잘못되었다.
어떤 경지에 이르러 있는 건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최소 화경의 극.
하지만 하는 데까진 해봐야 한다.
“아들은 살려주십시오. 운학의 스승은 무당의 청진자…….”
말을 이어지지 못했다.
대공자의 손이 머리에 얹혀진 탓이었다.
“……?”
의문을 띤 순간,
정수리 백회혈을 타고 일곱 기운이 뻗어나가며 내부에 깃들었다. 울렁울렁, 당장이라도 질주하려는 듯 기운이 꿈틀거린다. 금취객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것이 움직이면 얼마나 끔찍해질지 알 수 있었다.
금취객의 눈동자가 미친 듯이 요동쳤다.
‘안돼…….’
마음 속으로 외친 순간, 교릉이 질주했다.
우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득!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비명과 함께 팔다리가 꺾이고 허리가 접히고 고개를 젖혔다가 앞으로 숙였다가 천천히 드드드드, 쳐들었다가 하면서 오그라들었다.
“으어어헉!”
무흔신투가 그 광경에 놀라 자지러졌다.
순식간에 땅을 파내고 구덩이에서 막 기어나오던 때였다.
금취객이 둥실 떠오른 채로 구겨져 가는 것을 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 원래 곱추여서 더 이상 구겨질 것이 없을 것 같은데도 이미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그 상태로 미친 듯이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이내 대공자가 소매를 떨쳤다.
구겨져가던 금취객의 몸은 날아가 구덩이에 처박혔다.
대공자의 시선이 닿았기에 무흔신투는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 이해했다.
“흙을…… 흙을 덮겠습니다.”
바로 흙을 퍼부어 구덩이를 메꾸기 시작했다. 잘 되진 않았다. 금취객이 미친 듯이 꿈틀거리는 탓에 흙이 사방으로 튀어올랐다. 그 모습이 너무도 끔찍해, 무흔신투는 흙을 덮다가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울면서 흙을 덮었다.
평평하게 될 정도로 덮었다. 그럼에도 땅이 들썩인다. 도대체 얼마나 처절하게 꿈틀거리고 있는 것인가. 그 생각에 이르자 무흔신투가 울면서 땅을 두드렸다.
“얼른 죽어 이 새끼야, 얼른. 그냥 빨리 죽으라고! 흑흑흑…….”
대공자가 늘 허허거리고 미소 짓고 있어서 몰랐다.
자신도 도망쳤다가 잡혔으면 이처럼 되었을 것 같아 안도되는 한편으로, 끔찍하게 죽어가는 금취객이 불쌍해 흐느껴 울었다.
그건 아니다.
대공자는 후공.
무덤을 파헤친 대가를 치르게 하고 있을 뿐.
그리고…….
기회.
*
밤이 되었다.
무덤은 해질 무렵부터 잠잠해졌다.
그래서 알 수 없다.
‘왜?’
무흔신투는 대공자가 왜 떠나지 않고 이 밤이 되기까지 머무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무서워 물어볼 엄두는 안 난다.
천공단 놈들이 얼마나 대단한지도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이미 겪어서 알 텐데, 이런 대공자 앞에서 시시덕거리는 놈들이라니.
‘후공보다 더 무서워.’
후공도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는다.
깔끔한 성격이시다.
아닌가? 생각해보니 후공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어 머리를 긁적였다.
‘하긴, 난 인간 전서구였을 뿐이라 정보 전달하기 바빴지. 천공단의 색관조처럼…….’
그렇게 생각하니 우울해져 시무룩져 있을 때였다.
푸욱!
“응? 으어어어어억!”
무흔신투는 소리가 난 곳으로 눈을 돌렸다가 이내 소스라쳤다. 무덤에서 손이 튀어나온 것이다.
“설마…… 살았……?”
그 말에 응답하듯 흙을 헤집고 금취객이 빠져나왔다.
구겨졌던 몸은 어느샌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야이, 시발놈아아아아아!”
무흔신투가 달려가 금취객을 끌어안았다. 몸이 닿은 탓에 금취객의 몸이 덜덜 떨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난…… 괜찮아.”
금취객이 부축하려는 무흔신투의 손을 떼내고는 저만치 바위 위에 앉아 있는 낯선 청년, 대공자를 바라봤다.
자신에게 눈길도 주지 않지만 이제는 안다.
오그라들고 뒤틀리는 지옥같은 고통은 영원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 멈췄고, 몸은 천천히 되돌아왔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는 알 수 없었다.
기운을 회복하며 많은 생각을 했고, 또 짐작할 수도 있었다.
대공자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그래서 이건 자비이자 마지막 기회라고.
혼자 걷는다.
그래야 한다.
금취객은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겨 대공자 앞에 무릎 꿇었다.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회가 될지, 또 다른 시작이 될지는 아직이다.”
“네.”
“운학에게 물었다.”
“…….”
“너에게 아버지는 어떤 의미냐고.”
땅에 이마를 대고 있던 금취객이 고개를 들어 올려다봤다. 무심한 시선이 기다리고 있었다. 말이 이어졌다.
“좋은 아버지라고 하더군.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눈빛을 보면 마음의 깊이를 알게 된다. 마음의 소리도 들리게 된다.”
대답 없이 금취객의 눈이 젖어갔다.
아들의 눈빛이 떠오르면 어쩔 수 없었다.
“널 죽이면 운학의 칼이 내게 향할 것이다. 그럼 운학은 폐인이 되거나 내 손에 죽는다.”
“…….”
폐인이란 말에 결국 금취객은 눈물을 흘렸따.
“그다음은 무당의 청진자. 운학을 끔찍이 아끼더군. 하지만 그는 내가 이미 곁에 두었다. 화경의 극에 이르렀다 해도 그를 처리하는 건 일도 아니다.”
“네!”
눈물을 떨구면서도 금취객은 씩씩하게 답했다.
“물론 내가 아는 무당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겠지만, 사람의 정(情)은 모르는 것이지. 자, 그러니 이제 선택해라. 너의 마음을 들어보자.”
대답은 뻔하다.
흙더미에 묻혀 있는 동안 금취객은 생각을 정리했다.
그러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건 서로가 아는 사실.
지금은 확언의 순간.
금취객이 입을 열었다.
“모든 보물을 최선을 다해 되돌려놓겠습니다. 불어난 재산도 처분하겠습니다. 어릴 적 마음에 품었던 문장도 온전히 지우겠습니다. 새로운 문장을 소중히 하겠습니다. 보물은 하나만 있으면 됩니다.”
바뀐 문장.
보물은 더 이상 금이 아니다.
보물은 운학. 강선.
그것이면 된다. 그것이면 천하를 가진 것과 같다.
입으로 내뱉으며 깊이 새겼다.
“강유, 너의 문장이 마음에 든다.”
“……다.”
흐르는 눈물 탓에 금취객은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응얼거렸다.
금취객이라고 부르지 않는 의미도 이해했다.
금취객은 죽었다.
강유만 남았다.
“네가 금취객이었던 사실은 오늘로 영원히 비밀이 된다. 네가 밝히지 않는 한 운학도 청진자도, 무당도, 다른 누구도 널 모르게 될 것이다.”
“감사……합니다.”
비밀로 간직해주겠다는 뜻.
분명 어린 나이임에도 말의 무게가 남다르게 다가와, 강유는 머리를 조아렸다.
“너는 세 자루 검 중 어느 걸 취했느냐?”
“단검입니다.”
번쾌친 중 친.
“남은 두 자루는?”
“지귀객이 가져갔습니다.”
“그 외 관여한 자는?”
“없습니다.”
“모조품에 관련된 자들은?”
강유의 눈이 흔들렸다.
이는 무림맹으로 찾아가 확인까지 마쳤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정녕 틈이 없는 사람이었다.
“맹의…… 시, 시녀를 매수해 형태와 질감을 들었습니다. 시녀는 모조품을 들고 다니고 싶어 하는 사람 정도로 여겼습니다. 대장간은 아예 천하제일인의 검을 본 적이 없어 어떤 의문도 품지 않았습니다.”
“그래, 그랬을 테지.”
후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관련된 자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제 친을 보자.”
“네?”
친을 보자니?
강유는 물론이고, 무흔신투도 무슨 소린가 싶어 갸웃했다.
번쾌친, 검의 이름을 알 리 없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크흠, 신검을 가져와라.”
“대공자님, 혹시 단검의 이름이 친인가요?”
“벌써 친한 척 굴지 마라.”
“……네.”
한소리 들은 강유가 시무룩해졌다.
하지만 그 전에 말해야 할 것이 있어 머뭇거렸다.
“저, 저기…… 대공자님.”
그저 지그시 바라보기에 강유가 말을 이었다.
“죄송합니다만 아셔야 할 듯하여 말씀드립니다. 천하제일인의 신검에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
“네, 쇠도 두부처럼 잘라냅니다만, 기이하게도 내력이 먹히지 않습니다. 검기가 형성되지 않습니다.”
강유가 한두 번 시도해본 것이 아니었다.
검의 날카로움은 놀랍지만 그래도 내력이 닿아야 진정한 위력을 드러낼 텐데, 기운을 불어넣으면 매번 흩어져버렸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하나.
천하제일인이 연성한 보물은 천하제일인의 손에서만 빛난다.
누가 쥐더라도 신검이 될 수 없다.
그 사실을 깨닫자 강유는 후공이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했고, 한편으로 얼마나 실망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들려온 목소리는,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네.”
맞는 말이었다.
대공자는 그저 회수자.
무림맹이 인지하고 있으니 무림맹으로 돌려보낼 테지.
그리 생각하며 강유가 은신처로 들었다.
단검을 잡았다. 손가락끝에서 손목까지 정도 되는 길이의 단검을 한동안 바라봤다.
‘이제 안녕이구나.’
작별을 고한 후 입구로 향했다.
입구에서 진식을 해제했다.
서서히 진식이 스러져갈 때,
우우우우우우우우웅.
검이 울기 시작했다.
흠칫 놀란 강유는 하마터면 검을 떨어뜨릴 뻔했다.
쥐고 있던 손이 흔들릴 정도였고, 어떻게 된 일인지 검집의 틈새에서 자줏빛 광채가 사방으로 뻗어나려는 듯 새어나왔다.
“시, 신검이 왜 이러지……?”
강유는 힘을 주어 검집을 움켜쥐었다.
수중에 넣은 이래 여태 단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기에,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강유가 놀라 입을 다물지도 못하고 있을 때,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진식이 모두 해제된 순간, 자줏빛 덩어리가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크르르르르릉!
천둥이 치는 소리가 동반되었다.
강유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니 검집뿐이었다.
‘어……?’
그런 다음 고개를 들어 바라보다가 몸을 휘청였다.
‘뭐, 뭐지……. 왜?’
신검이 자줏빛 광채로 화해 대공자 주위를 휘돌고 있었다. 얼마나 맹렬하고 광채가 밝은지, 그 안에 서 있는 대공자가 자줏빛으로 번져 보일 정도였다.
의문은 커져만 갔다.
대공자가 미소 짓고 있는 것이다.
이럴 줄 알고 있었다는 듯, 당연하다는 듯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어찌 흐뭇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후공은 오랜만에 다시 만난 친이 그저 귀여울 뿐.
검연으로 이어져 오래 연성되어 서로 감응하기에 들리는 듯하다.
주인이 왔다.
주인이 돌아왔다.
내가 주인을 죽인 것이 아니야!
‘이제 닿아 보자.’
후공이 우수를 내밀었다.
휘돌던 친이 휘감기듯 손으로 빨려들었다.
우우우우우우우우웅!
기쁜 소리를 냈다.
‘그래, 너였겠지.’
환혼 후 범항이 잡은 건 친이었을 터.
친을 잡고 목을 그었을 것이다.
친은 거부하지도 못하고 절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서로가 찾았다.
크르르르르르릉!
친이 손에서 벼락치는 소리를 냈다.
날고 싶어했기에 후공은 밤하늘로 날려보냈다.
친이 순식간에 하늘 높이 날아오르며 자줏빛 선을 짙게 남겼다.
다시 돌아와 몸을 한 바퀴 휘돌았다.
검령이 반응했다.
검령도 안다.
주인의 기뻐하는 마음. 그리고 자신과 같은 기운.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친이 쏘아져 오를 때 검령도 빛을 뿌리며 친을 뒤따랐다.
두 개의 자줏빛이 휘감으며 올라가니, 마치 자줏빛 용이 승천하는 듯했다.
그 모습에,
‘이게 뭐여. 안된다며……?’
무흔신투가 현기증을 일으키며 휘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