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화 서고 대공자-212화 (212/460)

212화. 분명 죽음의 사신이었는데.

놀란 무흔신투는 강유에게 달려가 전음을 발했다.

- 야, 이게 어떻게 된 거냐? 안 된다며?

- 그, 그게 분명 안 됐는데…….

강유도 정신이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 구라 깐 건 아니고?

- 아까 내 꼴 봤으면서 그러네.

- 어…… 그렇지.

무흔신투가 머리를 긁적였다.

맞는 말이었다. 끔찍하게 뒤틀리고 오그라들고 묻혀서까지 광란의 발작을 했던 강유가 거짓말을 할 수 있을 리가.

- 그럼 그건가? 화경의 경지부터는 가능한 건가?

- 그럴지도.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상한 점이 있어.

- 뭐가?

- 진식이 전부 해제되기도 전에 검이 먼저 반응했어. 광휘를 발산했거든.

- ……?

무흔신투는 더욱 아리송해져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두 자루의 검이 휘감기듯 휘도는 광경은 여전히 장관이었다. 그중 하나는 대공자의 검. 한데 왜 둘 다 자줏빛 광채를 띠고 있는 것인가.

기이한 건 또 있다.

- 야, 근데 말이다. 어째 신검이 대공자에게 친근하게 구는 것 같지 않든? 대공자도 흐뭇해하는 것 같고 말이야.

- 그러게. 혹시 신검이 원래 대공자 거였나?

- 아니 이 새끼가 파묻히더니 돌았나?

무흔신투가 때릴 듯 주먹을 들었다.

천하제일인의 신검이다.

후공이 청년일 때, 대공자는 태어날 기약조차 없었던 시기.

강유도 너무 나갔다 싶어 머리를 긁적였다.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한데 어떻게 대공자가 후공의 신검을 다루고, 신검은 왜 대공자를 따르는 것 같아 보이는 건가.

- 뭐 대공자가 원체 잘난 것이겠지.

- 아무리 잘나도 그렇지.

- 아냐. 내가 따라다녀 보니까, 대공자는 사람도 아니야. 진짜 정신이 하나도 없어.

- 그 정도야?

- 넌 그 지경으로 당하고도 아직 감이 안 오냐?

- ……하긴.

그렇게 둘이 답도 없는 대화를 전음으로 나눌 때, 후공의 시선은 밤하늘로 향해 있었다.

검령과 친을 보고 있는 건 아니었다.

한 마리 새.

흑청색을 띤 매였다.

매는 높이 떠서 배회하고 있었다.

이곳에 도착할 때 보았고, 한동안 사라졌는데 밤이 되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부근에 둥지가 있는 것인가,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인가. 후공은 의도를 지닌 배회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확인해보자.

“강유.”

“네!”

강유는 물론이고 무흔신투까지 다가왔다.

후공이 손을 내밀자, 강유가 공손히 두 손으로 검집을 내밀었다.

검집을 받아든 후공이 친을 향해 검집을 날려보냈다. 친이 반응했다. 선회하며 공중에서 날아드는 검집 안으로 쏙 들어간 후 그대로 방향을 틀어 주인에게로 향했다.

주인이 왼팔을 살짝 들어올렸다. 친은 그 의미를 안다. 너무나도 익숙한 보금자리. 집과 같이 그리웠던 곳. 빨려들듯 주인의 소맷자락 안으로 들어간 친은 주인의 팔 주위를 천천히 맴돌았다.

뒤따라온 검령도 자줏빛 광채로 날아와 검집으로 돌아갔다.

그 광경에 안 그래도 정신이 없던 강유와 무흔신투는 아주 멍청해져버렸다.

‘뭐, 뭔데 이렇게 자연스러워?’

‘집이여?’

아마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신검은 그야말로 집으로 귀가하듯 사라져버렸다. 대공자의 소맷자락 안으로 들어가는 모양새가 너무도 자연스럽다. 어디 그뿐인가. 소맷자락 안에 들어간 걸 봤는데도 도통 어느 부분에 있는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건 친이 한곳에 머물지 않기 때문.

주인의 움직임에 따라 소매 안에서 최적의 자리로 선회하는 탓에, 볼록 튀어나오거나 형태가 노출되지 않는다.

놀람도 잠시, 대공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강유.”

“네.”

“너의 경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보자.”

“네?”

“저 산이다. 전력을 다해 산봉우리를 찍고 돌아와라.”

“네!”

뭔 갑자기 경공인가 싶었지만, 토를 달 순 없는 일.

강유가 신형을 날렸다.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음에도 강유는 최선을 다했다.

후공의 시선은 다시 밤하늘을 선회하는 흑청색 매에게 향했다. 매는 그 자리에 머무르는가 싶더니, 한순간 강유가 나아간 방향으로 날아갔다.

강유가 돌아왔을 때, 흑청색 매도 따라 돌아왔다.

이로써 확인은 끝.

훈련된 매이고, 매의 표적은 강유.

최상의 결과다.

후공이 흑청색 매를 손으로 가리켰다.

“잡아라.”

“네?”

강유가 자신에게 하는 말로 착각했다.

하지만 색관조는 이미 주인의 의도를 알아들었다.

주인의 시선을 따라 날아가 흑청색 매의 곁에서 물었다.

[여어~ 어디서 오신 누구실까?]

목소리는 무산쌍웅을 흉내냈다.

건들거리며 협박하기에는 이보다 좋은 목소리가 없었다.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흑청색 매가 화들짝 놀라 날개를 퍼덕거리며 거리를 벌렸다.

그렇게 흑청색 매가 바라보니, 나타난 새의 크기가 자신보다 작았다. 등에 타고 있는 금빛 두꺼비도 그렇게 대단해 보이지 않았다.

[끼이이이이익!]

흑청색 매가 겁을 주려고 소리쳤다.

하지만 상대가 나쁘다. 영물들이다.

[까르르르르르르르르르! 끼이이이이익!]

[끼이잇! 큭큭큭!]

색관조와 금섬이 따라 하며 조롱했다.

흑청색 매는 ‘아니 이 새끼들이’ 같은 마음이었을까. 이내 더 크게 울었다.

[끼이이이이익! 끼이이이이익! 끼이……?]

그렇게 울다가 흑청색 매가 두리번거렸다.

눈앞에 있던 말하는 새가 어떻게 된 일인지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러다 들려왔다.

[야, 시끄럽다고!]

들려온 건 머리 위?

흑청색 매가 놀라 선회하려 할 때는 이미 늦었다. 색관조의 날개가 매의 머리를 후려갈겼다.

퍼억!

원래도 하늘에서 대적할 새가 없는 색관조는 주인 덕에 공청석유까지 흡수한 터라 날개 힘은 거의 장력급이고, 멧돼지도 솜털처럼 운반할 수 있었다.

스치듯 갈긴 한 방에 실신한 흑청색 매가 속절없이 떨어져내렸다. 색관조가 그런 흑청색 매를 낚아채고는 소리쳤다.

[주인님, 잡았어요오오오!]

칭찬을 바라는 모습에 후공은 팔을 올려 엄지를 들어 보였다.

[까르르르르르! 주인님이 엄지를 척 올리셨어! 신나아아아아!]

[그윽, 극극!]

그런 광경에 강유와 무흔신투는 퀭.

비단 색관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쯤 되면 모를 수 없다.

왜 대공자가 다른 산봉우리를 찍고 돌아오라고 한 건지 이해했다. 또한 흑청색 매가 추적의 임무를 띠고 있고 추적하는 대상도 누구인지 깨달았다.

그런 탓에,

‘나였구나. 또 누가 나를 쫓고 있는 거지? 설마…….’

강유는 움츠러들었고,

무흔신투는 대충 감을 잡았다.

- 강유야. 너 만리향에 당했나 보다.

- …….

강유는 믿고 싶지 않았지만, 드러난 상황만 보자면 부인할 수 없었다. 누구에게 당한 건지는 불 보듯 뻔했다.

그때 대공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금원장으로 가자.”

“네!”

강유가 바로 답하고 앞장섰다.

이유는 물을 것도 없었다.

신검은 세 자루.

아직 두 자루가 남았다.

대공자는 정보를 원한다.

**

금원장으로 들자, 장주가 돌아왔다는 보고를 접한 총관이 황급히 달려나왔다. 그냥 돌아온 것이 아니라 장주가 흙범벅이 되었다는 말이 덧붙여지면 그리되고 만다.

“장주, 오셨습니까?”

“어…… 그래.”

“……?”

과연 흙범벅이고 몹시 지쳐 보였다.

어디 그뿐인가. 표정이 주눅들어 있고 함께 온 이들의 눈치를 보는 듯했기에, 바로 전음을 발했다.

- 형님, 어떻게 된 일입니까?

- 아무 일도 아니다. 두 분을 별실로 모셔라. 나를 대하듯 극진히 모시고, 특히 청년에겐 더욱더 공손해야 한다.

- ……네.

금원장에서 강유의 실체를 아는 유일한 이는 총관 임요. 둘의 관계는 오래되었고 깊었다.

‘당한 것이 아니라 은인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총관이 웃음을 띠었다.

“두 분, 제가 모시겠습니다.”

.

.

.

자정을 넘긴 시각.

탁자 위에 찻잔의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흙범벅이었던 강유는 말끔해졌다.

하지만 그 덕분에 머리와 목이며 손까지 겉으로 보이는 피부마다, 교릉에 당한 후유증으로 시퍼런 멍 자국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너도 지귀객에게 만리향을 남겼겠지?”

찻잔 너머로 마주한 건 천화서고 대공자.

대공자의 말에는 많은 것이 생략되었지만 강유는 물음을 이해했다.

자신을 추적하는 매.

대공자는 지귀객이 만리향을 남겼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매의 주인은 지귀객일 것이라고. 그가 했는데 너도 그 정도쯤은 대비해두었지 않았겠느냐는 물음.

“죄송합니다. 제가 그를 믿기도 했고, 그가 땅속을 자유자재로 오가고, 머무는 곳도 땅속인지라 만리향을 남기는 일이 의미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래, 일리있는 말이다. 오른손을 탁자 위로 올려라.”

“네.”

강유가 순순히 그 말을 따랐다.

하루도 채 안 되었지만 겪은 바가 많다. 이제 대공자가 하는 말은 다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른 강유였다.

후공은 강유의 손목 안쪽에 검지를 가져갔다.

만리향이 남겨진 지점이었다.

만리향은 씻는다고 씻겨나가지 않는다.

특별히 제조된 탓에 향도 미약하다.

하지만 천향의 주인에겐 강렬할 향으로 다가올 뿐.

천향사주의 흡결로 만리향을 흡수해 뽑아낸 다음, 자신의 오른손 손목에 향을 남겼다.

그렇게 적의 표적을 강유에서 자신으로 바꾸었다.

강유로서는 알 수 없는 일.

그저 손이 옮겨 다니는 것을 보며 눈동자만 굴렸다.

“지귀객이 땅을 잘 판다고? 어느 정도지?”

“그게 그러니까…… 무공을 익히지 않는 평범한 사람이 평지를 달리는 수준으로 땅속을 활보할 수 있습니다.”

“지천 출신인가?”

“어…… 지, 지천을 알고 계십니까?”

강유가 놀라 더듬거렸다.

지천(地天).

강호 경험이 많은 자라도 지천에 대해 아는 자는 드물거늘, 대공자가 어떻게 알고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모르는 것이 도리어 이상한 일.

눈앞에 있는 이는 무림맹주.

강호의 수많은 조직을 꿰뚫고 있으며, 심지어 맹주가 되기 전에 이미 천하를 종횡하며 제패한 이.

“누군가에게 들었다. 지천이 그런 공능을 발휘한다고 하더군. 한데 삼십여 년 전 돌연 활동이 멈췄다고 하던데.”

“네, 말씀대로입니다. 지귀객은 지천의 당주였습니다. 활동이 멈춘 시기에 지천을 벗어났습니다.”

“활동이 멈춘 이유는?”

“지귀객이 말하길 지천의 천주에게 문제가 생겼다고 했습니다. 지천의 무학은 땅의 기운, 즉 오행 중 토기(土氣)를 받아들이는 것인데, 천주가 무학을 새롭게 정립하여 화경의 극에 도달하려다가 몸이 돌처럼 굳어갔다고 합니다.”

후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행은 서로 도와야지 하나의 기운에 치우치면 화를 당하게 된다.

강유의 말이 이어졌다.

“지천주 아래 다섯 각주도 같은 시도 속에 비슷한 증상을 겪게 되었고, 그로 인해 지천은 활동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결국 답이 없는 나날 속에서 지귀객은 지천을 이탈.

이후 지천의 공능으로 삼대 대도 중 하나가 되었다.

“아까 했던 말로 돌아가 보자. 넌 지귀객을 믿는다고?”

“네, 지귀객뿐 아니라 무흔신투도 믿고 있습니다. 한데 신투가 잡힐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고, 지귀객이 제게 만리향을 남길 것이란 것도 예상치 못했습니다.”

“쯧쯧, 순진한 건지 미련한 건지.”

한심하다는 듯 혀를 끌끌 차는 모습에 지귀객이 뺨을 붉혔다.

어떻게 된 게, 대공자 앞에 있자니 자신이 나이가 한참 많음에도 스스로 애송이처럼 느껴진 탓이었다.

“추적매가 널 찾은 뒤에도 돌아가지 않고 머물렀다. 그 의미는 적에게 이미 너의 신변이 확보되었다는 뜻이다. 곧 누가 오든 널 찾아오겠지.”

“네.”

그건 강유도 인지하고 있는 바.

“온다면 가능성은 둘. 첫째, 지귀객이 네게 만리향을 남겼으니 친구들과 함께 올 수 있다. 네게 검 하나를 순순히 건네준 의미는 방심을 유도한 것일 테지.”

“네.”

“두 번째는 누군가에게 잡힌 경우다. 이 경우, 땅속을 뒤져야 하니 평범할 리 없다. 어쩌면 지천이 깨어난 것일 수도 있다. 지천이 만약 극복해냈다면 지귀객은 지천에 잡힌 상황이겠지. 그럼 그들이 검을 찾기 위해 네게 온다.”

“…….”

강유는 대답 대신 마른침을 삼켰다.

지천이 올 것이라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는데, 말을 듣고 보니 아예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농담하듯 지귀객이 자주 했던 말도 떠올랐다.

만약 자신이 잡힌다면 그건 지천일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 지천에게 난 배신자니까.

그때마다 언제적 지천이냐고 콧방귀를 뀌곤 했는데, 대공자가 말하니 불쑥 두려움이 솟아났다.

무엇보다 신경 쓰이는 건 대공자의 ‘지천이 극복했다면’이라는 말. 지천이 토의 기운을 끝없이 받아들일 방법을 찾았다면 얼마나 강해져 있을 것인가.

“대공자님……. 그럼 저는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요?”

“넌 걱정할 것 없다. 내가 널 살려두었는데 죽게 둘 리가.”

강유가 멍해졌다.

대공자의 말이 이어졌다.

“누가 오든 널 해칠 수 없다.”

강유는 멍한 표정을 떨쳐내지 못했다.

대공자가 생략한 말이 들리는 듯했다.

‘내가 너의 곁에 있다.’

도대체 이게 뭔가.

뭔데…….

이렇게 든든한 건가.

죽음의 사신으로 온 이가, 이제 거대한 방패가 되어 있었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