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화. 공포의 자줏빛 검광.
“와아! 신기해!”
“저게 후공의 신검이구나.”
“너무 멋지잖아.”
검령과 친이 솟구쳤다가 하강하는 모습은 천공단의 눈에도 들어왔다.
산 우측 끝단에 있던 남궁연 등이 탄성을 발했다.
그러자 곁에 있던 무흔신투가 흠흠, 헛기침을 한 다음 입을 열었다.
“남궁공자, 신기하고 멋지기만 한 줄 아나?”
“또 뭐가 있습니까?”
“놀라지 말게. 후공의 신검은 내력이 담기지 않는다네. 원래 다른 이가 다룰 수 없다는 거지. 근데 단주가 자신의 애검인 양 다루고 있으니 놀랍지 않나? 이상하지 않나?”
“뭐…… 그다지.”
“응?”
“신기하고 멋지긴 합니다만, 이상할 것까지야.”
“뭐여, 이상하지 않다고?”
무흔신투가 갸웃했지만 남궁연은 시큰둥했다.
“두목을 따라다니면서 워낙 희한한 걸 많이 봐서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이 못한다고 우리 두목이 못할 리가요. 흠, 혹시 신투께선 풍열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아니.”
“흠, 그럼 얌전히 계십시오.”
“…….”
무흔신투가 미간을 찡그리고 입을 부루퉁 내밀었다.
자신도 대공자가 대단한 건 안다.
하지만 이놈들 해도해도 너무한 것이다. 비단 남궁연만이 아니다. 이 정도 말했으면 충분히 여기저기서 의문을 제기하고 맞장구치고 그래야 말하는 맛이 나는데, 다들 그러려니 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그 전에 뭘 보았고, 무슨 일을 겪었단 말인가.
보고 겪은 일.
화산이 폭발하는 불길 속에서 솟구쳐 오른 한 사람을 보았고, 북해빙궁의 깨지지 않는 빙벽이 녹아내린 것을 보았다.
빙궁의 함성소리는 아직까지도 천공단에겐 잊을 수 없는 일. 여전히 귓가에 들려오는 듯하다.
그렇기에 천공단은 그러려니.
겪지 못한 모용진조차 이미 그 지경.
하지만 무흔신투가 알 수는 없는 일.
그리고 신투의 그런 뾰루퉁한 표정은 이내 화를 불러왔다.
“너 이 새끼, 입이 왜 나와있는데! 당장 안 집어넣냐!”
“도적놈의 새끼가 누굴 보고 이상하네 마네야! 찢어죽일 거야, 아주.”
무산쌍웅이 잡아죽일 듯이 눈을 부라렸기에, 무흔신투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시무룩하게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되었다.
그렇게 밤을 지샜다.
하루, 그리고.
.
.
.
.
.
이틀째 새벽,
“저 산인가?”
지천의 삼당주가 손을 들어, 멀리 보이는 한 산을 가리켰다.
수하 중 하나가 바로 답했다.
“네, 당주! 저 산을 지나야 합니다. 지상으로 가시겠습니까?”
삼당주는 새벽 하늘을 올려다봤다.
해가 뜨기까지는 반시진(1시간) 가량의 여유가 있다.
지상으로 간다 해도 충분한 시간.
금취객은 알고 있을까? 대비되어 있을까?
그럴 리가.
하지만 강호는 알 수 없는 일로 가득하다.
자신들도 누군가에겐 그런 존재가 아닌가.
그러니 신중을 기하는 것이 좋다.
비록 자신이 화경의 중에 이르렀고, 수하들 모두 화경 초기인 예에 이르렀다지만…….
“시간은 충분하다. 저 산 밑에서부터 지하로 이동한다. 해가 떠오르기 전까지 신검을 회수한다.”
“네!”
일곱 수하가 일제히 답했다.
왜 그래야하는지 물을 건 없다.
피의 섭취는 기운을 흩어지지 않게 붙들고,
산의 정기는 지천에겐 양분.
지하를 이동하는 것만으로 기운은 북돋아진다.
설령 금취객 곁에 생각지도 못한 고수들이 있다 해도 일거에 쓸어버릴 수 있다.
순식간에 나아간 신형은 어느덧 산에 근접.
모두가 검은 연기로 화해 땅속으로 파고들었다.
쿠르르르르르르.
깊이는 오 장여를 유지했다.
땅을 뚫고 나아가고 있으나 속도는 조금 줄어들었을 뿐이고, 기운은 차오른다.
쿠르르르르르르르르.
땅속에서 암석을 만나면 부쉈고, 흙은 공기를 헤쳐나가는 것과 같았다.
빠른 속도로 나아가는 탓에 진동이 발생하나, 문제 될 건 없다. 그 누가 있어 이 진동이 땅속을 헤집고 나아가는 이들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인가.
- 더 깊이 들어가고, 속도를 높인다.
- 네!
삼당주의 전음에 모두가 답했다.
원래는 불가능한 일.
지하의 흙더미, 그것도 서로 간의 간격은 최소 삼 장여.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이들의 간격은 이십여 장이 넘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일곱 수하는 당주의 전음을 들을 수 있었다. 지천의 무학은 오행의 토(土)를 기반. 땅속에서는 칠십여 장까지 서로 간의 기운이 감응된다.
그런 탓에 그 영역 안에서는 서로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고, 생사 여부를 알 수 있으며, 땅속의 전음은 지천에겐 일상.
쿠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당주의 명에 일곱 수하가 깊이 들어갔고, 속도를 올렸다.
깊게 들어갈수록 땅의 정기가 스며들어 기운이 북돋워졌고, 나아감은 더 빨라졌다.
그러던 한순간,
- 뭐지? 뭔가가…….
삼당주의 전음에 진행하던 일곱 수하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그 무언가의 징조도 없거늘 왜?
하지만 곧바로 의문은 날아갔다.
좌우측 끝단에 있던 두 수하의 의식이 전음이 되어 모두에게 다급히 전해졌다.
- 뭔가…… 제, 제게 다가옵니다!
- 제, 제게도…….
두 수하의 전음에 삼당주의 안색이 급변했다.
‘누가? 어떻게?’
하지만 그도 이제 확연히 느꼈다.
좌우 끝단에서 수하들을 향해 짓쳐드는 건 둘.
맹렬함이 더해져 이제 소리마저 들려온다.
카르르르르르르르릉!
‘설마 지천 내부에서?’
지하를 돌파하는 이들이 강호에 자신들 말고 또 누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의심하게 된다. 하지만 괴이하다. 생사가 확인되지 않는다.
확인이 안 될 수준이면 지천의 각주들 정도.
-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다급히 전음을 보냈다.
대답은 없다.
그럴 수밖에.
검령과 친은 말을 못 한다.
크르릉거리만 할 뿐.
그저 주인의 의지를 따라서 죽음을 선사할 뿐이다.
- 당주! 자, 자줏빛 섬광이…… 자리를 벗어나겠습니다.
- 뭐, 뭐라고?
삼당주가 반문했지만, 이어 들려온 말은 절망적이었다.
- 당주! 거, 검입니다. 검의 속도가…… 크아아아아악!
- 여, 여기…… 크아아아아아악!
연달아 터져나온 비명과 함께 두 수하의 기운이 끊어졌다.
비로소 삼당주의 안색은 하얗게 질렸다.
검이라니?
지천은 검을 쓰지 않는다.
각주들이 아니다.
함정이었다.
금취객 곁에 누가 머물고 있었던 것인가? 무림맹이 알아차린 것인가? 맹의 천하십객인가? 그들이 전부 와 있는 것인가? 아니, 일부라 해도 문제다.
머리로 점멸되어 가는 의문과 경악 속에서 삼당주가 다급하게 외쳤다.
- 모두 최대한 흩어져 지상으로 올라간다.
제아무리 지천이라도 땅속을 헤집으며 다가오는 검을 파훼하는 건 쉽지 않다. 그것도 검강을 두른 검이면, 이기어검이라면 지상이 더 상대하기 낫다.
- 제, 제게 옵니…… 으어억, 피할 수가…… 크아아아아아아악!
친이 가슴을 뚫고 지나며 비명이 터졌다.
검령이라고 뒤처질 수 없다.
카르르르르르릉!
엄청난 속도로 나아가 쫓고 있던 자의 두 다리를 쓸어버렸다.
-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동료의 처절한 비명 소리가 연이어 터지자, 당주와 세 수하의 마음은 급박해졌다.
최대한 방향을 각기 달리해 지상으로 솟구쳐 올랐다.
하지만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건 천공단.
산의 좌측 끝단에서 치솟던 이를 항마삼협이 반겼다.
“어서 와라!”
“이 두더지 새끼!”
이미 땅의 울림은 천공단 모두가 인식했다.
치솟던 이가 짓쳐드는 장력에 반응하기에는 늦었고, 상대가 좋지 않았다.
항마들의 경지는 모두 화경 중기에 근접한 터.
장력으로 맞서 대응하며 둘의 장력을 막았다. 하지만 항마는 셋. 삼협 중 이열의 강기가 실린 장력까지는 무리였기에, 그대로 머리가 날아갔다.
함께 있는 은앙개 등이 손쓸 기회조차 없었다.
그런 상황은 산의 우측단에서도 비슷했다.
지천의 또 다른 하나가 솟구쳐오른 순간 무산쌍웅의 칼날과 낭인왕의 도에 썰려나갔다.
이제 지천에 살아남은 건 둘.
그중 한 명은 운이 없었다.
하필 지면을 뚫고 올라와서 마주한 이가 서생 차림의 청년.
하지만 그는 운이 좋다고 여겼다.
‘이놈을 잡는다.’
산 좌우 측에서 연이어 들려온 동료들의 비명 소리를 볼 때, 도대체 몇 명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맞서기엔 무리이니,
‘이놈을 인질로 잡는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계획은 세우자마자 무너져내렸다.
“…… 어헉?”
두 개의 자줏빛 섬광이 번쩍이며 지면을 뚫고 나온 순간 청년에게 나아가 그 주위를 빙글빙글 도는 것이다.
그러면 알게 된다.
‘이…… 이자였구나.’
공포 그 자체로 땅속을 헤집고 다니던 두 자루의 검.
이 서생이 검의 주인이었다.
볼 수도 없는 땅속으로 이기어검을 구사한 이.
가장 만나지 말아야 할 이가 눈앞에 있었다.
운이 좋았던 것이 아니라,
‘죽는다.’
화경이고 뭐고 자신 따위가 견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최소 각주, 아니 지천주가 나서야 할지도.
그로 인한 선택은 하나.
도주.
검은 연기로 화해 꺼지듯 지면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벗어날 수 있을 리가.
고작 삼 장여를 뚫고 들어갔을 때, 등 뒤로 뭔가가 쇄도했다. 돌아보기도 전 등이 뜨끔한 순간,
‘마혈이…….’
점혈당한 채 그대로 굳어버렸다.
설마 이대로 이 자리가 나의 무덤이 된다고?
그가 두려움에 질려 나갈 때, 능오침으로 점혈해 생매장시킨 후공의 시선은 오십여 장 너머로 향해 있었다.
“흐음…….”
그곳엔 마지막 한 놈이 막 튀어나온 터.
지천의 삼당주였다.
그도 바라봤다.
삼당주는 눈이 마주치자마자 바로 땅속으로 파고들었다. 맴도는 자줏빛 검을 보게 되었으니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쿠르르르르르르르.
전력으로 땅속을 헤치며 도주했다.
후공의 미간이 살짝 일그러졌다.
“귀찮게 하는구나.”
귀찮을 수밖에 없었다.
땅의 울림을 볼 때 다가온 지천 중 가장 속도가 빨랐다. 그것이라면 별일 아닐 수 있는데…….
신경 쓰인 건 이동 방향이 금원장 쪽.
후공이 신형을 날리니, 검령과 친이 호응했다.
바로 지면을 뚫고 들어가 추격에 나섰다.
*
번쩍.
동이 트기 전부터 일어나 좌정 중이던 청진자가 눈을 떴다.
쿠르르르르르…….
지면의 울림.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뭐지?’
의문도 잠시, 이내 곧바로 창밖으로 신형을 날렸다.
우수를 뒤로 뻗는 순간, 방 한쪽에 걸쳐두었던 자신의 검이 손아귀로 빨려들어왔다.
소리와 울림을 따라 나아가 그가 본 건 아무것도 없었다.
갸웃한 순간 감지했다.
‘지하?’
발밑 땅이 울렸다가 순식간에 울림이 저만치 멀어져갔다.
그러다 또 들려왔다.
이번엔 둘.
마치 지하에서 추격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대체 무슨?’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은 이어졌다.
엄청난 기세가 몰아쳐 바라보았다가 청진자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대, 대공자?”
천화서고 대공자였다.
분명 이틀 전 운남 방향으로 전력 질주했거늘, 왜 대공자가 이곳에 다시 나타난 것인가?
“함께 가시죠. 이야기는 나중에.”
대공자의 목소리가 들린 건 이미 한참이나 자신을 광풍처럼 지나쳐간 뒤였다.
‘이 정도였다고?’
청진자도 곧바로 신법을 전개해 뒤쫓았다.
속도가 자신의 예상 수준을 훌쩍 뛰어넘은 터라 머뭇거렸다간 따라갈 수도 없어 보였다.
“이보게!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