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화. 저축의 중요성.
후공은 금원장으로 향했다.
나아가는 길은 고요하지 않았다.
궁금한 것이 많아진 청진자의 입이 쉬지 않은 탓이었다.
맹주의 검을 지천이 훔쳤단 말인가?
관을 열었다고?
무림맹도 이 사실을 알고 있나?
왜 무림맹이 나서지 않고 자네가 지천을 쫓게 된 건가?
청진자가 의문을 쏟아냈다.
후공은 대부분의 답변을 둘러대고, 알려주어도 상관없는 이야기만 추려 들려주었다. 훗날 이야기를 듣더라도 혼선이 나게끔 여러 이야기를 생략하거나 지어냈고, 금취객의 이야기도 빠뜨렸다.
“대체 그 정보는 어디서 얻은 건가?”
“강호의 친구가 알려주었습니다. 강호에 제 친구들이 많습니다.”
“흥, 자넨 마치 강호를 수십 년쯤 활보한 것처럼 말하는군.”
두루뭉술한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은 청진자가 심통을 부렸다. 그러면서 또 물었다.
“그런데 말이네. 자네 무공은 어떻게 된 건가? 어디에서 무슨 기연을 얻은 것인가?”
“신선을 만났습니다.”
“시, 신선을? 어디서?”
청진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모습엔 평정을 유지하던 후공도 그만 웃고 말았다. 그냥 하는 말이란 건 누구라도 알 텐데 청진자가 세상 진지하게 되물어오니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제야 청진자는 농담이란 걸 깨닫고 미간을 좁혔다.
“자넨 그렇게 안 봤는데 사람을 놀리는 재주가 있구만.”
청진자가 어리석어 신선의 이야기를 믿은 건 아니었다.
오늘 직접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그가 먼저 웃었을 것이다. 그만큼 그가 목격한 광경은 충격적이었다.
고작 스무 살 남짓한 청년.
그것도 무학을 다루는 구대문파나 천룡의 후손도 아니다. 먹물에 파묻혀 사는 천화서고의 젊은 서생이 어찌 이러한 경지에 도달한 건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니 다시 되돌아온다.
말도 안 되지만 다시 생각하게 된다.
‘정말 신선을 만난 건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
“사부님! 어? 대공자?”
금원장에 도착하니 운학이 달려나왔다. 운학은 반기면서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틀 전 작별을 고한 대공자를 이리도 빨리 다시 볼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터.
하지만 후공에겐 오늘이 진정한 작별의 날.
금원장에 겨누어진 지천의 칼날은 소멸되었다.
이제 지천의 후속대가 금원장으로 향하기 전 지천을 끝내면 그만이었다. 물론 그 전에 금원장도 대비한다. 이름을 바꾸고 거주지를 옮길 것이다.
지천은 금원장을 찾지 못한다.
강유에게 닿을 수 없다.
청진자와 운학은 알 수 없었지만, 뒤따라 달려나온 강유는 알고 있었다.
대공자의 미소가 자신을 향하고 있었기에…….
대공자가 말했던 변수까지 모두 끝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처음 느껴지는 감정.
사내의 미소를 보며 단 한 번도 눈부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강유는 대공자의 미소가 눈부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혹독한 고문과 생매장까지 당했지만 그건 아주 먼 옛날 일처럼 느껴진다. 마음에 남아 머무는 감정은 그저 감사의 마음뿐.
그때 대공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주, 여러모로 폐를 끼치게 되어 죄송합니다. 운학 도장과의 짧은 인연만으로 저와 천공단을 환대해주셨는데, 제게 적수가 있다는 걸 내내 숨겼습니다. 적수들이 금원장 쪽으로 향하여 당황했습니다만 지나쳐 다행이었고, 이제 적수들은 모두 정리되었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닿는다면 이번 일을 보답하겠습니다.”
“뭐…… 그, 그게…… 마음에…… 담아두지…….”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했 기에 강유는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대공자가 자신에게 존대를 하는 것은 감당하기 어렵고, 대공자가 지천을 ‘자신의 적수’라고 말하는 순간부터는 코끝이 시큰해졌다.
그런 모습을 청진자와 운학은 그저 당황한 것으로 여겼다.
오고 갔던 상황을 모르니 당연한 일.
청진자가 입을 열었다.
“대공자, 이제 어쩔 참인가?”
“지천의 본거지로 갑니다.”
“그들의 위치는 알고 있는 건가?”
“이제부터 알아내야 합니다. 친구들의 도움을 받을 생각입니다.”
“나도 돕겠네. 함께 가세.”
맹주의 신검을 찾는 일이다.
무당이 과거 맹주에게 은혜를 입은 것도 적지 않으니 청진자는 도움이 되고 싶었다.
“자네의 강호 인맥이 넓다 해도 본도만 하겠는가.”
그렇게 말을 맺자, 운학도 기대되는지 덩달아 눈을 빛냈다.
하지만,
“사양하겠습니다.”
“응?”
청진자가 갸웃했다.
도움이 되면 되었지, 짐이 될 리 없거늘 왜 거절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대공자가 빙긋 웃는다.
“장주께 미움받고 싶지 않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부자의 상봉이 아닙니까. 다른 한편으로는 현재 상황이 너무 막연하기도 합니다. 지천의 무리 중 누구 하나 살려두지 않아, 정보를 취하기까지 꽤 긴 시간을 허비하게 될 것입니다.”
마음만 받겠다며 정중히 거절해오니, 청진자도 바로 반박하기가 어려웠다.
듣고 보니 막연하다는 말이 와닿은 탓이었다.
땅속을 신법을 펼치는 양 내달리는 지천을 직접 뒤쫓아보았기에, 종적을 찾기 쉽지 않다는 말이 이해된다.
“흐음, 그렇긴 하네.”
청진자가 아쉬움을 표하고, 운학도 서운한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강유는 안다.
대공자가 청진자를 거절한 진짜 이유는 그게 아니다.
지천을 만나는 과정에서 금취객이라는 별호와 금원장의 연관성이 청진자에게 노출될 것을 대공자는 우려하는 것이다.
그래서,
‘…….’
먹먹해져 바라보자니,
대공자의 작별의 말이 들려왔다.
“그럼 전 이만.”
마지막 인사를 마친 대공자가 신형을 돌려 허공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또 들려온다.
- 강유.
- …….
이번엔 전음.
- 또 보자.
- …….
강유는 답할 수 없다.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어서였고, 또 보자는 말이 뭐라고…… 눈물이 맺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저 마음 속으로 답했다.
‘언젠가 다시 뵐 수 있길…….’
**
후공은 멀리 가지 않았다.
지천의 정보를 얻으려 친구를 찾아갈 필요가 없었다. 멀리 돌아갈 이유가 없었다.
지천을 기다렸던 산에서 그저 때가 되길 기다렸다.
천공단은 내내 초조해했다가, 해가 저물어가자 조금씩 소란스러워졌다.
“해가 왜 이렇게 안 떨어지냐. 오늘 무슨 날인가?”
“빨리 어둠, 빨리 좀!”
“해야 가라! 달아 와라아아아아아아!”
지천은 해 아래 타버린다.
두목에게 지천의 약점을 들은 터.
모두가 해가 사라지길 기다린 건, 두목이 점혈해 땅속에 생매장시킨 놈을 빨리 꺼내고 싶어서였다.
“해 슬슬 내려간다. 슬슬 어두워져!”
하늘이 석양으로 붉게 물들어가자 요란함이 커졌다.
“이래서 저축, 저축 하는 거구만. 캬아, 우리 형님은 그 와중에 저축까지 해놓으셨으니 이건 뭐 너무 완벽하시지.”
무산쌍웅이 너스레를 떨고는 은앙개를 향해 말을 이었다.
“너희 거지들도 보고 배워. 틈틈이 저축도 하고.”
“하하하, 거지한테 저축하라는 사람은 처음 보네.”
은앙개가 웃음을 터뜨렸다.
소천개도 가담했다.
“아마 우리 저축하면 사부님한테 맞아죽을 거야. 틀림없어.”
“아, 너희들 사부가 개방 방주였지? 깜박했네.”
그러는 사이 어둠이 찾아왔다.
천공단이 누구 할 것 없이 달려들어 땅을 파헤쳤다.
“오늘 저금통 깹니다!”
“얼마나 실하려나.”
“이놈의 새끼, 어딨냐아아아!”
보물이라도 캐내듯 열과 성의를 다해 파내니 금방 드러났다.
천공단이 화색을 발했다.
“하하, 요깄네!”
“운도 좋지.”
“잘 살아있었구나.”
점혈되어 묻혀 있던 지천은 오들오들 떨었다.
땅에 묻혀 있는 중에도 이미 땅 위의 소리는 듣고 있었다. 생매장인 줄 알았는데, 저축이었다니…….
그리고 해가 떨어져내리길, 어둠이 임하길 바라며 소란스럽던 외침들.
이러면 알게 된다. 짐작건대 당주나 누군가가 도주하다 타버린 것이 틀림없었다. 그걸 눈으로 확인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제 남은 건 자신 하나.
행운이라고 할 순 없다.
생매장되어 죽는 것은 면했을지언정, 이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건 고문과 자백인 것이다.
이제 해야 할 선택이라면?
고민거리도 아니다.
이들 외 자줏빛 검광의 주인이 있다.
가장 두려운 이.
경악스러운 무위의 젊은 서생.
무공 경지만큼이나 고문의 수준도 남다를 것이다.
그럼 결국 자백하게 된다. 고통을 당한 후 자백하느냐, 그냥 자백하느냐의 선택. 어리석음을 택할 이유는 없다.
“영차!”
항마삼협 중 이열이 끌어올렸다.
지천이 입을 열었다.
“다 말하겠다.”
“오호, 똑똑한 친구네.”
이열이 칭찬한 다음, 씨익 웃었다.
“근데 문제는 우리가 똑똑하지 않아.”
“……?”
지천이 무슨 뜻인지 몰라 멍해졌다.
이열이 답변 대신 손을 뻗었다.
어깨를 잡았다.
그러자 나머지 삼협 중 둘도 다가와 손을 가져다댔다.
“무, 무슨?”
“자백하지 마.”
“……?”
지천의 눈이 커졌을 때는 시작되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삼협이 몸을 주무르며 분근착골수를 펼쳐 뼈와 살을 분리시켰다. 뼈에 붙어 있어야 할 살이 떨어져나가는 고통은 끔찍하기 이를 데 없어, 마혈이 점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천은 몸부림쳤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만아아안! 제바아아알, 크아아아아아아악! 말한다고오오오오오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렇게 일각.
급기야 귀와 코, 입에서 피를 흘리는 지경에 이를 때쯤 고문이 멈췄다.
“그만.”
형님의 말이 떨어졌기에 항마들은 실실 웃으며 지천을 끌고 갔다.
바위에 앉은 채 후공이 무심히 바라봤다.
자백에도 단계가 있다.
처음에는 머리를 굴리게 된다. 진실과 거짓이 섞이기도 하고, 어떤 건 누락되기도 한다. 분근착골수 정도면 머리를 비워내기에 좋다.
“지천의 위치?”
“운남…… 중부…… 신평과…… 원강 사이…… 거대한…… 장원이 있습니다. 명칭은…….”
후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질문을 이어갔다.
지천의 세력 규모와 각각의 경지를 물었다.
고분고분, 더듬더듬 대답이 들려왔다.
“너희가 지귀객을 손에 넣은 것이겠지?”
“……네.”
“두 자루의 검도 너희에게 있겠지?”
“물…… 물론입니다.”
“좋군.”
흡족히 여긴 후 말을 이었다.
“너희의 약점이 햇빛이란 건 알고 있다. 그 외 또 다른 약점이 있는지 들어보자.”
“피……. 인혈(人血)입니다. 주기적으로 살아있는 자의 피를 마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몸이…… 굳어집니다.”
“그렇군.”
후공은 이해했다.
결국 지천이 찾은 길은 마(魔). 오행 중 토의 기운을 비약적으로 흡수하게 되었지만 잃은 것이 많았다.
언제나 그렇듯 마공은 지름길이 되지만, 크게 잃게 되고 그건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치명적인 해악이 된다.
“지금까지 물은 것 외에 내가 알아두면 좋을 것이 있는지 떠올려봐라.”
“특이사항은 이제 더는…….”
“그래?”
“네.”
“좋다. 확인해보자.”
지천의 눈이 두려움으로 젖어갔다.
뭘 어떻게 확인한단 말인가?
답은 삼협이 했다.
말이 아닌, 손길.
다시금 분근착골수가 펼쳐졌기에 찢어질 듯한 비명이 산에 울려퍼졌다.
이윽고,
거의 너덜너덜한 상태로 처음부터 다시 똑같은 질문이 던져졌다. 지천의 대답은 처음보다 느려졌지만, 조금 더 상세해졌다. 그렇게 다시 마지막 질문에 이르렀다.
“이쯤이면 내가 알아두면 좋을 내용이 떠올랐을 것 같은데.”
“새, 생각…… 났습니다.”
“그래.”
“운남의…… 패권을 위해…… 인질 하나를 잡아두었습니다. 그건 다름아닌…….”
그 말이 끝난 후에는 후공뿐 아니라 천공단도 웃음기가 가셨다.
전혀 예상 밖의 이야기였기에 다시금 확인이 필요해졌다. 고문이 가해졌고, 답은 달라지지 않았다.
“점창파…… 장문인의…… 딸……. 그 외는…… 제 선에서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지천은 신검을 회수한 후 점창파를 무너뜨린다.
그 계획은 지천만의 비밀이었지만,
이제 아니었다.
천공단주가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