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화 서고 대공자-219화 (219/460)

219화. 너희도 같아진다.

장문인과 장로들의 신형이 쏘아졌다.

그 광경에 점창의 제자들은 ,하나같이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너무도 빠른 탓에 몇몇은 알아보지도 못해, 방금 지나친 이들이 누구냐고 묻기도 했다.

그렇게 산문으로 향하던 장문인은 두 줄기 자줏빛 광채가 하늘로 솟구치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

의문을 품었을 때는 두 광채가 좌우로 나뉘어 비행하다 땅속으로 파고든 뒤였다.

검령과 친이었다. 맡은 임무는 탐색.

살격이 아니다.

그저 점창산 밑바닥을 휘저으며 주인에게 적의 유무를 전달한다. 주인은 그저 확인하고 싶어 할 뿐이었다. 주인은 늘 확인한다.

부근에는 없는 걸 알기에 신속하게 좌우로 멀어졌다.

그쯤 장문인은 한 청년 앞에 멈춰 섰다.

청년의 뒤쪽으로 여럿이 도열해있었기에, 장문인은 누구에게 말해야 하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대가 천화서고 대공자인가?”

“네, 장문인.”

예를 갖춘다.

장문인은 상대가 자신을 어찌 바로 알아본 건지는 중요치 않았다. 그저 짐작했겠거니 여기고 바로 물었다.

“딸의 행방을 알고 있다고?”

“장문인, 이곳에서 이야기 나누길 원하십니까?”

“아! 아니네. 내가 결례를 범했네.”

장문인은 황급히 사과했다.

대공자의 말이 당돌하게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듣기 좋았다.

대공자의 말은 어떤 대답보다 큰 확신이었다.

*

그렇게 두 사람은 마주했다.

탁자 위에 차는 생략되었다.

후공이 사양했다.

장문인이 아닌 아버지의 다급한 마음을 아는 탓이었다.

‘넌 마음고생이 많았구나.’

점창 장문인의 이름은 초광.

후공이 초광을 마지막으로 본 건 이 년 전. 한데 그때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너무 달랐다. 낯설게 느껴질 정도였다.

눈은 쏙 들어갔고, 볼도 움푹 파였다. 피부는 거칠고 생기가 없었다.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는 그렇게 된다. 제대로 먹지도, 잠도 청하지 못하게 된다. 잃으면 계속 생각한다. 영원히 잊지 못한다.

그렇기에 머뭇거릴 수 없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장문인, 지천에 대해서는 잘 아시겠지요?”

“지천? 설마…… 지천의 소행이란 말인가?”

초광이 갸웃했다가 이내 눈이 커졌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의 기억 속 지천은 어릴 적에 사라졌다. 무엇보다 그들의 무위는 대단할 것도 없어, 운남의 같은 하늘 아래 있었어도 점창에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도대체 언제적 지천인가?

그만한 능력도 갖추지 못했거늘.

지천의 이런 도발은 파멸을 부를 뿐이었다.

“장문인, 지천은 예전의 지천이 아닙니다. 그들은…….”

그렇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초광의 안색은 시시각각 변했다.

지천의 달라진 무위와 치명적인 약점을 들으면서는 입이 벌어졌고, 맹주의 신검이 탈취된 이야기에서는 놀라 말을 더듬었다.

그 와중 많은 내용이 변형되고 생략되었지만, 그럼에도 세밀한 데다 앞뒤가 명확해 초광은 전혀 눈치챌 수 없었다.

그저,

“하아…….”

지천 중 하나를 잡아 심문한 결과에 이르자, 초광은 깊게 탄식을 토해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너무 충격적이었지만 비로소 딸의 행방을 듣게 된 것이다.

운남의 패권을 위해.

점창을 무너뜨리기 위해 지천이 딸을 납치했다니.

그들의 달라진 면모가 사실이라면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사실일 것이다.

산문으로 나아갈 때 보았던 광경도 이해되었다. 대공자의 몸에서 발출되어 뻗어나간 두 개의 자줏빛 검광이 왜 땅으로 파고들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자넨 점창산 아래 지천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건가?”

질문은 하나였지만 실상은 둘.

검으로 산 지하를 탐색하는 것이 가능하냐는 물음이 내재되어 있었다.

“네. 한데 없는 듯하군요. 최소한 지금은.”

“…….”

대답이 너무도 태연해 초광은 말을 잃었다.

거기까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점이 놀라웠고, 그걸 실현해낸 듯 보이니 경악스러웠다.

어떻게 검과의 연계를 여전히 유지할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의 경지로는 짐작조차 어려웠다.

이 정도면 화산의 검선이나 무당의 검존에 근접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천룡의 가문들, 그리고 소요파와 종남파가 천화서고 대공자의 뒤에 든든히 버티고 있어 누구도 그를 건드릴 수 없다고 들었는데, 소문이 잘못되었다.

도리어 대공자가 그들에게 닿을 수 없게 앞에 서 있을 뿐이었다.

그런 탓에, 묻게 된다.

“대공자, 이제 어떻게 하면 되겠나?”

지천의 본거지와 규모까지 모든 정보를 들었음에도, 자신이 점창의 장문인임에도 초광은 의견을 구했다. 자존심을 내세울 이유도, 그런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러자 들려온 말,

“점창이 상황을 인지했는데 무서울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어…….”

초광은 잠시 멍해졌다.

점창을 띄워주는 말임에도 왜 이 말이 격려로 들리는지 모를 일이었다.

목소리만으로 자신의 등이 토닥여지는 듯했다. 그래서 잠시 젊은이가 아니라 나이 많은 선배처럼 느껴진 탓에,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를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렇게 바라보고 있자니 대공자가 미소 짓고 있기에,

방금 말의 의미가 또 새롭게 다가왔다.

- 내가 인지했는데, 걱정할 일이 무엇인가.

그렇게 들려왔다.

그리고 말이 이어졌다.

“장문인, 이렇게 해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향후 계획이 논해지며 두 사람의 시간은 길어졌다.

*

그러는 사이 천공단은 귀빈 대접을 받고 있었다.

고급스러운 잔에 향기로운 차, 다과를 들면서 시간을 보냈다. 상황이 상황이고, 분위기가 분위기인지라 소란스러움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응대하고 있는 이들이 점창의 두 장로들인 것도 한몫했다.

장로들은 궁금한 것이 많아 넌지시 돌려 물었지만, 소득은 없었다.

“저희는 잘 몰라서요.”

“저희는 졸개들이라…….”

“우린 그냥 형님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들이라서…….”

뭘 물어도 얼버무리니 대화는 이내 단절되었다.

언제나 그렇듯 이런 식이면 자리는 금방 어색해진다. 서로 말이 없어지고 뻘쭘하니 서로 눈치만 살피는 시간이 이어진다.

분위기가 불편해지니,

어떤 식으로라도 돌려보려 장로 중 하나가 헛기침과 함께 입을 뗐다.

“험험, 강호의 소문은 믿을 게 못 되나 봅니다. 알려지고 들은 바와 항마삼협은 사뭇 다르구려.”

“어떤 소문을 들으셨기에…….”

이열이 반응했다.

“허허허, 이 노부가 듣기로 포악하고 사람을 죽이지 못해서 안달이 난 이들이라고 들었소이다.”

“그것참. 저희 개과천선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래요? 계기가 있었소이까?”

“후공이 까불거리고 다니면 죽여버리겠다고 해서 그랬고, 그다음에는 형님을 만나서 더 얌전해졌습니다.”

전혀 얌전해지지 않았으면서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거짓말했다.

“허허, 그래요? 대공자가 그렇게 무서운 사람입니까?”

“좋은 분입니다. 존경하고 있지요.”

이번에는 진심이었다.

“어떤 면이 그렇습니까?”

“모두. 하나부터 열까지.”

“허허, 그렇소이까.”

다시금 말이 없어졌다.

하지만 모두의 머릿속에는 ‘하나부터 열까지’라는 말이 좀처럼 떠나지 않았다.

점창의 두 장로는 천화서고 대공자가 더욱 궁금해졌고, 천공단은 이열의 말을 곱씹었다.

‘그래, 그렇지.’

하나부터 열까지, 라는 대답보다 더 나은 답을 찾아보려 했지만 더 좋은 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침묵이 길어진 가운데 무산쌍웅이 몸을 일으켰다.

“저흰 잠시…….”

“어, 나도.”

낭인왕도 따라 몸을 일으켰다.

그뿐 아니라 항마삼협이며 남궁연, 언교운, 모용진까지 줄줄이 몸을 일으켰다.

그러라며 허허거리던 장로들 앞에 남은 건 두 거지뿐이었다.

역시 말은 없었다.

두 거지는 바쁜 것이다. 탁자 위에 놓인 다과를 야금야금 거덜내고 있었다.

“야, 이거 먹어봐라. 겁나 맛있어.”

“점창파가 난 너무 좋아. 여기 살까 봐.”

“나도.”

장로들의 눈이 퀭해졌을 때, 밖으로 나간 천공단은 멀리 가지 않았다. 그저 답답해서 나온 것뿐이라 부근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 분위기 무거워 숨막히는구만.

- 내 말이. 웃지를 못하겠으니.

- 우리 언제쯤 깔깔거리나.

- 그놈을 잡을 때까진.

- 사흘 안에는 잡을 수 있겠지? 그럼 딱인데.

- 최고지.

그렇게 밖으로 나온 천공단이 전음을 나누고 있을 때였다.

멀리서 한 사람이 날듯 달려왔다.

이내 당도해 눈에 불을 켰다.

“너희들! 너희가 왜 여기에 있는 것이냐?”

반점에서 겁박했던 청년검수였다.

이번에도 제일 험악하게 생긴 무산쌍웅을 바라보며 말했기에, 쌍웅 중 하나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게……. 잠깐 들렀습니다.”

“잠깐 들르다니, 네놈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줄은 알고 말하는 거냐!”

“저기…… 뒤에.”

무산쌍웅이 뒤쪽을 가리켰다.

“뒤에 뭐?”

청년이 돌아본 순간, 눈이 커졌다.

대사형이 어느샌가 뒤에 있었다.

“대사형, 이자들이…….”

“진평, 따라와라.”

“네?”

잠시 후,

청년은 다시 돌아왔다.

갈 때와는 달랐다. 얼굴색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다가와서는 깍듯이 예를 갖추며 머리를 숙였다.

“장문인의 셋째 제자인 진평이 천공단분들께 인사드립니다. 몰라뵙고 크게 무례를 범했습니다. 반점에서도 이곳에서도 너그럽게 아량을 베풀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진평은 대사형에게 경솔함에 대해 크게 책망받은 터. 이들이 천공단이며, 심지어 천공단주는 스승과 이번 일을 논의하며 독대 중이라는 말까지 들었기에 몸가짐과 말투가 말로 할 수 없이 단정해졌다.

“뭘 그런 걸로…….”

천공단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저 애송이.

그저 귀여울 뿐.

그저 이해할 뿐.

점창이 미쳐 돌아가니 이해했다.

하지만 조만간 웃게 될지도.

*

그로부터 두 시진.

어둠이 내려앉은 시간, 점창의 이백여 검수들이 대연무장에 도열했다.

연단에 선 장문인의 목소리가 나직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새로운 임무가 하달되었다.

수색은 오늘로 중단.

대신 운남 곳곳 전역에 방을 붙인다.

이유는 듣지 못했다.

하지만 듣지 않아도 들은 것과 같았다.

이제 수습의 시간일 뿐.

무엇을 수습해야 하는지 떠올린 탓에 점창은 울분을 토했다. 몇몇은 눈물을 보였다.

그러는 사이, 후공도 떠날 채비를 갖췄다.

이미 계획을 알고 있는 천공단도 준비를 마쳤다.

산 밑을 들쑤시며 탐색하던 검령과 친도, 주인의 부름에 지면을 뚫고 밤의 허공을 가로질렀다.

자줏빛 광채가 눈부시게 밤하늘을 수놓으면서 멀리서부터 날아와 대연무장을 가로질렀다.

점창의 모든 시선이 광채를 좇았다.

두 줄기 빛은 길게 나아갔다가 한순간 종적을 감췄다.

그곳에 천화서고 대공자가 서 있음을 아는 건 오직 장문인과 장로들뿐.

*

해를 쏘아 떨어뜨리는 점창의 검수들이 달빛 아래 사방으로 흩어졌다.

천공단도 나아갔다.

운남의 신평과 원강 사이에 위치한 지천의 본거지로 향했다.

이제 시작.

지천에도 똑같이 갚아준다.

잃은 자의 슬픔을 지천주에게도 던져준다.

지천주의 아들을 사로잡는다.

너도 슬픔에 잠겨라!

너도 울부짖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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