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화. 오고 있다.
착, 착, 착!
밤에 잠긴 마을마다 방이 나붙기 시작했다.
방의 내용은 단순하다.
점창이 이십 대 여인의 시신을 찾고 있으며, 점창이 찾고 있는 여인이 맞다면 신고자에게 큰 포상금을 지급하겠다는 것.
방을 붙이는 점창검수들의 얼굴은 어두웠다.
방의 내용이 살아있는 여인을 찾는 것이면 얼마나 좋을까.
보지 않으려 해도 ‘시신’이라는 글자가 계속 눈에 들어오기에, 여인의 얼굴이 선명히 떠오르기에, 점창은 자신들이 방을 붙이는 게 아니라 절망을 붙이고 다니는 것 같았다. 슬픔을 붙이고 다니는 것 같았다.
사흘째 밤에는 어느덧 운남 중부에도 방이 붙기 시작했다.
착!
신평현의 담벼락에 방을 붙인 진평이 지친 얼굴을 들어 주변을 둘러봤다.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고, 지나는 이도 없다. 부근 전각들과 가옥들도 깊이 잠들어 사방이 고요했다.
고개를 들어 달을 바라봤다.
‘부디 이것이 절망이 아닌 희망이길…….’
달을 보고 있노라니 천공단주와 천공단이 머리에 떠올랐다.
방을 붙이는 건, 원래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갑작스럽게 이루어졌다.
그 결정이 장문인과 천공단주의 독대 직후에 급하게 발표되었기에 도리어 기대하게 된다. 우연히 만난 첫 만남에서는 보잘것없어 보였던 천공단이었는데, 이제 기대게 된다.
강호를 떠들썩하게 뒤흔들었던 천공단주가 점창에게도 희망이 되길 바랐다.
“그대들은 뭘 하려는 건가.”
떠오른 달이 천공단인 것처럼 말을 건넸다.
대답은 없다.
스윽!
진평이 신형을 날려 멀어져갈 때, 후공은 소맷자락을 쓸었다. 진평이 내려다보이는 전각의 지붕 위였다.
지붕의 외곽에 꽂혀 있던 다섯 개의 작은 깃발이 일제히 손으로 빨려들어왔다.
다섯 깃발은,
모산이 선물한 오행기.
오행기는 영역 안에 있는 모든 것을 감춘다. 절대적인 은신을 제공한다. 화경의 극에 이른 고수라 해도 단번에 은신을 꿰뚫어 보기 어렵다.
오행기가 회수되면서 지붕 위 천공단의 모습이 비로소 드러났다. 알아보고 깜짝 놀란 건 오직 둥그런 달뿐.
후공은 오행기를 항마삼협에게 건넸다.
항마삼협이 받아들고 신형을 날렸다.
그 뒤를 낭인왕이 뒤따랐다.
남은 건 여덟.
우리가 무얼 하려 하냐고?
천공단이 마음으로 답했다.
‘지천이 비웃길, 지천이 조롱하길 기다리는 중.’
**
“점창파가 젊은 여인의 시신을 찾는다니, 도대체 누구일까?”
“모르긴 몰라도 점창이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겠지.”
“설마 점창의 제자라고?”
“그게 아니면 시신의 유무만으로 점창이 거액의 포상금을 걸 리 없잖나.”
“그렇긴 한데 운남에서 누가 점창파를 건드린단 말인가.”
닷새도 채 되지 않아 운남은 나붙은 방의 이야기로 들끓었다. 어딜 가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여인’이 누구냐로 떠들썩하게 말이 오갔다.
나붙은 방에는 여인이 누구이며, 시신의 특징도 기록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점창의 어린 제자가 죽음을 맞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의 추측은 이어져 간다.
마을에서도, 주루에서도.
“누굴까? 누가 점창의 제자를 죽인 걸까?”
“뻔하지. 겁이 없는 자.”
“겁이 없다고 그게 되는 일이야?”
“점창파에 겁먹지 않아도 될 만큼 강한 자거나 어떤 세력이라는 뜻이잖아.”
“흠, 그럼 이제 우린 뭘 해야 하지?”
“우린 술을 마셔야지.”
“하하, 그거 멋지군. 그런 의미에서 안주도 더 시키자고.”
그 외 여러 억측도 돌았다.
여인이 치정에 얽힌 것이라며 떠들기도 하고, 죽은 여인이 점창의 보물을 훔쳐 달아났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어떤 이들은 이런 일에는 발을 들이는 것이 아니라며 혹여 시신을 보았다 해도 눈을 감고 입을 다물어야 한다고 주변을 단속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시신을 찾아 포상금을 차지하겠노라 큰소리쳤다.
누군가의 억측, 누군가의 포부.
점창이 맞이한 현실과는 다른 이야기들도 그렇게 떠돌았다.
이렇듯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그 일을 주제로 삼아 이야기를 나눴지만, 누구도 점창이 찾는 여인이 점창 장문인의 딸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명확히 아는 이들이 있다.
지천은 모를 수 없다.
지천은 누구 할 것 없이 조소를 머금었다.
*
유림원.
특별할 것 없는 이름을 가진 거대한 장원의 집무실.
쪼르르.
오십 대 후반, 검푸른 시체 같은 얼굴로 지천주가 술잔을 채웠다. 술잔이 채워지는 소리가 오늘따라 흥겹게 들린 건 그의 마음이 춤추고 있어서였다.
“점창검수들의 표정은?”
“슬픔에 젖어있지 않은 이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각주의 대답을 안주 삼아 지천주가 술을 입에 털어넣었다. 입가에 비웃음이 가득 번져갔다.
“후후, 알 수 없는 답답함은 사람을 미치게 하지. 소중한 이를 잃은 자들은 서 있는 자리가 나락이 되는 법이고.”
“그렇습니다. 그들의 모습이 곧 점창 장문인의 모습일 것입니다.”
“후후, 그래.”
지천주의 미소가 짙어졌다.
기쁨은 가끔 상대적이다.
타인의 불행이 기쁨을 안겨주기도 한다.
나는 아니야. 나는 괜찮아, 라며 찾아드는 안도감.
자신의 쌍둥이 아들을 떠올리며 지천주도 그런 묘한 통쾌함에 젖어들었다.
지천주가 다시 술잔을 기울였기에 각주는 잠시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다.
“조금 더 기다리실 생각이십니까?”
“점창의 일은 서두를 것 없다. 더 애를 태우는 것이 좋다. 점창의 마음이 무너지면 무너질수록 일은 쉬워지는 법. 순서대로 가고, 안전하게 간다.”
“네.”
구체적인 언급이 없었지만 각주는 알아들었다.
순서는 마지막 신검을 회수한 후 점창을 친다는 의미이며, 안전하게 간다는 뜻은 동맹에게 소식을 전하라는 뜻.
“네, 모두에게 그리 전하고, 흑전에도 전서를 띄우겠습니다.”
각주가 예를 갖추고 나갔다.
혼자가 된 지천주는 술잔을 조금 더 기울였다.
술이 달았다.
그런 날이 있다. 안주가 없이도 술이 술을 부르는 날.
오늘이 그랬다. 점창의 슬픔보다 더한 안주가 있을까.
병은 비어도, 흥취는 여전했다.
몸을 일으켰다.
집무실을 나와 처소로 들었다. 벽으로 향해 걸어둔 장검을 쥐었다.
용이 승천하듯 길게 양각된 검집의 문양을 한참 내려다보다가 검을 천천히 뽑았다.
스르릉.
서슬 퍼런 검날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찌된 일인지 이 검은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다.
천하제일인의 신검이어서겠지.
천하제일인의 신검임을 확신하는 이유는…….
지천주는 기운을 불어넣었다.
언제나 그렇듯 내력이 담기지 않고 흩어져버린다.
이것이 천하제일인의 신검이라는 증명.
그래서 놀랍다.
그래서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다.
도대체 어떻게 제련된 것인가.
제련의 방식을 안다면 좋을 텐데, 너무 아득해 닿을 수 없다.
손에 넣었지만 가졌다고 할 수 없다. 그래서겠지. 그런 기이함 때문에 더 끌리고, 자꾸 보게 된다.
그렇게 지천주가 아쉬움과 선망 속에서 검을 검집에 다시 집어넣으려 할 때였다.
우우우우우우우우웅!
갑자기 검이 부르르 떨었다. 그뿐 아니라 찬연한 자줏빛 광채까지 뿜어냈기에 지천주가 눈을 부릅떴다.
“……?”
놀람도 잠시,
‘되는 것인가?’
하지만 그 생각은 틀렸다. 자신의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지천주는 자신의 생각을 부정했다. 자신은 도로 집어넣으려 했던 터라 기운을 불어넣지 않았던 터.
이는 검이 스스로 소리를 내고, 광채를 발하고 있음이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조화인가?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소리는 커져 갔고, 광채도 더욱 찬란하게 뿜어져나왔다.
붙들고 있는 손이 흔들릴 정도여서 지천주는 귀신에라도 홀린 기분이었다.
“대체 왜……?”
지천주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번’은 알았다.
주인이 부근에 온 것을 알 수 있었다.
주인이 아닐 수 없다.
그렇기에,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울었다.
주인이 돌아왔다.
주인은 날 떠나지 않았다.
주인이 살아있었다.
주인과 다시 이어졌다.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아쉬움은 남는다.
당장이라도 날아가고 싶지만, 주인이 다독인다.
- 기다려라.
하지만 조만간. 이제 곧.
기다림은 얼마 남지 않은 듯하고, 주인이 돌아온 것이 분명하기에 번은 그것이면 충분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누가 주인을 곤란하게 한 건가?
상관없다.
이제 누구든, 무엇이든 쓸어버린다.
주인은 언제나 승리자.
주인의 의식이 멀어졌기에 번은 아쉬움 속에 고요해졌다.
울음은 사라졌고, 광채도 사그라들었다.
의문에 차 갸웃하던 지천주가 다시금 내력을 불어넣었지만, 번은 흩어버렸다.
*
그 시간.
유림원 지하.
유림원의 지하는 깊었고, 지상보다 넓었다.
지상을 받치는 굳건한 굵은 기둥이 군데군데 보이는 가운데, 여러 갈래의 통로와 많은 석실이 자리했다.
어떤 석실에서는 비명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나오고, 또 어떤 철장 안에는 사람들이 떼로 갇혀 있기도 했다.
누군가는 고문에 시달리고 있었고, 누군가는 지천의 식량으로 비축되어 있었다. 식량이기에 끌려나가면 그걸로 끝이었다. 한번 끌려간 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철장 안에는 묘령의 여인이 홀로 갇혀 있었다.
철장 안에 가둬져 있으니 따로 묶어둘 이유가 없음에도 여인의 목에는 개줄이 채워져 있었다.
그 철장 앞에서 청년이 낄낄거렸다.
청년의 웃음이 끝나가도 철장 안에 있는 묘령의 여인은 엎드려 꼼짝도 하지 않았다.
“개같은 년, 잠든 척하긴. 어설프기 짝이 없구만.”
여인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후후, 그래 자면서 들어라. 오늘은 네게 들려줄 기쁜 소식이 있거든. 듣고 있지?”
“…….”
“넌 죽었더라. 점창이 널 포기했다. 운남 각지에 너의 시체를 찾는다는 방이 나붙었지. 하긴, 시간이 많이 지나긴 했어. 자, 버려진 소감이 어때?”
“…….”
“클클, 그래 슬프겠지. 이건 순전히 네 잘못이다. 그러게 잘 태어났어야지. 안 그래? 쯧쯧, 점창 장문인의 딸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이런 일도 겪지 않았을 것 아니냐.”
“…….”
“클클클, 아직 끝이 아니란 건 알고 있지? 이제 시작일 뿐이다. 넌 아직 살아있잖아? 아직 안 죽었잖아? 넌 언제 죽게 될까? 누가 보는 앞에서 너의 양팔이 뜯겨나갈까? 누가 그 모습을 보면서 피를 토할까? 답은? 클클클클…….”
그 말에는 결국 여인이 반응하고 말았다.
그러한 광경이 머릿속에 떠올라버렸기에, 엎드려 있는 채로 여인은 눈물을 흘렸다.
들키고 싶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숨기고 싶었지만 흐느낌도 옅게 흘리고 말았다.
그 모습에 청년이 광소를 터뜨렸다.
“하하하하하하하! 더 크게! 더 크게 울부짖어라! 그러면 한쪽 팔은 남겨주마! 한쪽 눈알은 남겨두마! 한쪽 다리로 껑충껑충 뛰게 해주마! 으하하하하하하하하!”
이쯤이면 더는 편히 잠들 수 없다.
희망을 무참히 짓밟은 청년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돌아섰다.
그러자 뒤쪽에 시립하고 있던 호위가 예를 취했다.
“소주, 그곳으로 가시겠습니까?”
“당연하다. 오늘 같은 날은 그녀에게 가주어야지. 군호는?”
“이공자께서는 늘 가시던 호수로 가셨습니다.”
“쯧쯧, 한심한 놈 같으니. 나이도 어린 놈이 늙은이처럼 무슨 짓인지.”
그 말과 함께 청년의 몸이 꺼지듯 사라졌다.
청년이 서 있던 자리에 남은 건 작은 구멍뿐.
*
“오늘은 오시려나.”
어두운 방 안에서 여인은 잠을 청하지 못하고 청년을 기다렸다. 못 본 지도 벌써 사흘.
그녀는 이제 그가 없이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이 밤, 침상 밑에서 그가 나오길, 그의 검푸른 얼굴을 볼 수 있길 바랐다.
“오시겠죠?”
그녀가 마음의 바람을 담아 중얼거렸다.
대답을 바라고 하는 말이 아니란 건 알고 있지만,
‘오고 있다.’
방 안 어둠 속에서,
후공이 내심 답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