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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화 서고 대공자-225화 (225/460)

225화. 도대체 누굴 상대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해냈어. 내가 해냈다고오오오오!’

군보, 아니 무흔신투는 미친 듯이 신형을 질주했다.

희열이 들끓었다.

이걸 내가 해냈다고?

진짜냐?

사실이냐고!

스스로도 믿을 수 없어, 꿈이면 어떡하나 싶어 연신 마음 속으로 외쳐댔다.

성공에 대한 확신은 없었다.

두려움이 컸다.

몇 번이나 중도에 포기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상대는 지천주.

무려 화경의 극에 이른 고수.

그 아들을 복제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럴 때마다 대공자는 용기를 불어넣어주었다.

‘무흔신투, 안 하면 내 손에 죽는다.’

어찌나 용기나 솟아나던지.

넌 할 수 있다, 너 자신을 믿어라 따위의 말이었다면 도저히 못하겠다고 몇 번이고 찾아가 빌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선택의 여지 따위 사라지니 용기도 솟아났다.

피를 뽑았고, 호리병에 담아 군보와의 면담.

거짓 배신.

한 시진이 넘는 진지한 대화 속에 군보의 말투와 억양을 습득했고, 체형을 파악했으며, 특유의 표정을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대화의 수면 아래로 이어진 것들은 머릿결과 머리카락의 길이, 눈동자 색상과 얼굴에 난 점의 위치, 그 외 모든 것을 외우고 되짚어보던 시간.

복제한 뒤, 천공단이 완벽하다고 확인해준 다음에는 신법의 특성을 익혔다. 이건 쉬웠다. 사신으로 온 지천의 각주 뒤쪽에서 따라 올라가면서 그들이 지닌 신법의 특징을 잡아냈다.

그럼에도 두려움은 남았다.

교환될 당시에는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마음이 진정된 건 교환된 후, 욕을 내뱉고 나서였다.

그리고 지금이다.

아침 햇살이 쏟아진다. 아침 햇살이 원래 이렇게 눈부시고 아름다웠던가. 오늘따라 유난히도 찬란해보이는 건 왜인가.

알고 있다.

목숨을 걸어야 했던 일이었기에, 성공의 확신이 없는 도전이었기에 성취감이 이루 말로 할 수 없이 차올랐다.

그 어떤 보물을 훔쳐 손에 넣었을 때도 이런 기분은 느껴본 적이 없었다. 가히 신세계.

‘시이이발……. 흐흐흐흐…….’

절로 웃음이 터졌다.

‘성장해버렸어.’

이 나이에 성장하고 싶지 않았고, 성장할 일이 뭐가 있겠냐 싶었는데, 성장해버렸다.

잡혀본 건 이번이 두 번째.

첫 번째는 후공에게 잡혀 인간 비둘기로 활동하며 소식이나 전하러 다닌 탓에 성취감 따위 느낄 수 없었는데, 두 번째인 대공자는 달랐다. 사람을 성장시킨다. 죽여버린다고 협박하면서 성장시킨다.

물론 후공이야 당시 그 곁에 워낙 쟁쟁한 인물이 많아서였기도 했지만, 대공자의 천공단은 뭔가 재밌기도 하고 짜릿하기도 한 것이 그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천공단 놈들, 이 맛에 대공자를 따르는 건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할 때, 뭔가가 앞쪽에서 쇄도해왔다.

안력을 돋워 바라보니, 천화서고 대공자.

미친 속도로 질주해오고 있었기에 반가운 마음이 솟구친 무흔신투가 신형을 멈추고 불렀다.

“대공자님! 제가…….”

쐐앵.

무심히, 그러면서도 너무도 빠르게 그대로 스쳐지나가 버린 탓에 무흔신투는 시무룩해졌다.

‘아는 척 좀…….’

지천주의 울부짖는 소리가 이어 들려왔다.

그리고 이내 눈에 띤 건 천공단과 점창파의 장문인과 장로들.

“여어~~~!”

손을 들어 반가움을 표했다.

하지만,

쐐앵, 쐐앵, 쐐애앵.

이번에도 같았다.

인사를 건넸지만, 다들 없는 취급하며 그대로 지나쳐갔다.

그래도 한 사람은 달랐다.

“신투 할아버지! 멍청한 얼굴로 뭐하고 있어요. 뛰어요!”

가장 뒤처진 소천개가 한마디 던지고 순식간에 멀어졌다.

무흔신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니 시발, 왜 아무도 칭찬 안 해주냐고!”

왜 이 업적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천공단 문화, 원래 이런 식이었냐!

**

그때 지천주는 얼어붙어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뭐하는 놈인가.’

찾아가 씹어먹겠다고 외쳤지만, 정작 천화서고 대공자가 눈 앞에 보이니 넋이 나가버렸다.

따로 들을 것도 없다.

상황은 명백해졌다.

지천이 세웠던 모든 계획은 물거품.

서로 암수를 남겼지만 비교조차 할 수 없다.

둘째는 뭉쳐져 작은 항아리 크기로 쪼그라들어 신음을 발하고 있고, 첫째는 아직 그들 손에 잡혀있다.

상대는 지천보다 빨랐고, 손속은 더할 나위 없이 악독하다.

그리고, 왜 허공에 떠 있는 것인가.

어떤 경지인가.

그리고 이제…….

어찌 대응해야 하는가.

머리가 꽉 막힌 듯 막막했다.

창 너머는 햇살이 쏟아져내리고 있고, 큰아들은 적의 손에 있다.

해 아래 뛰쳐나가는 것은 자살 행위이고, 여기에서 후일을 도모하려 몸을 빼낼 수도 없다. 아들을 두고 갈 수 없다.

그때 신형들이 담장을 넘어 속속들이 내려섰다.

지난 밤 교환 당시 보았던 그 면면들.

점창의 고수들과 천공단. 그중 하나가 첫째의 얼굴을 하고 있었기에, 지천주의 눈은 다시금 분노로 이글거렸다.

아직까지 역용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자신의 마음을 흔들기 위함이란 걸 알지만, 알아도 진정되지 않는다.

검은 보자기도 보였다.

정작 첫째는 저 안에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나타난 면면, 그리고 나타난 지금 시간을 통해 해결책을 떠올렸다. 점창 장문인의 딸은 점창으로 보냈을 터. 놈들은 아직 독에 대해 알지 못한다.

이미 발작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놓였을 테지만 이곳에서는 알 수 없는 일.

지천주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애써 가라앉히며 입을 열었다.

“기고만장할 것 없다. 암수는 너희들만 남긴 것이 아니다. 점창 장문인!”

시선을 옮겨 장문인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네 딸의 몸에 독을 남겼다. 아직은 발현 전. 해독제를 넘길 테니 너희는 첫째를 넘겨라. 그 이후…….”

지천주는 말을 잇지 못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독을 남겼다는데도 모두가 무심하면 깨닫게 된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장문인이 아무 반응이 없으면 알게 된다.

‘독을 이미…… 해결했구나. 하지만 어떻게…… 누가……?’

흑전의 독이거늘, 어찌.

하지만 물을 일은 아니다.

중요한 건 놈들을 더 이상 압박할 수단이 사라졌다는 것.

그럼 이제 남은 건 무엇인가?

무엇으로 거래해야 하는가?

그러자 퍼뜩 떠올랐다.

‘신검!’

각주 목광이 점창에서 나눴다는 대화.

천화서고 놈은 신검의 회수자.

놈이 신검이 하나뿐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는 여전한 의문이지만,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할 물건인 건 틀림없었다.

“용케도 암수를 파훼했나 보구나. 좋다. 그럼 다시 제안하지. 너희가 천하제일인의 신검을 찾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신검을 건네겠다. 어떠냐, 천화서고 대공자!”

“신검을 주겠다고?”

대답없이 고개만 옅게 끄덕이는 지천주를 보며 후공은 가소로움을 금치 못했다.

“지천주, 착각이 심하구나.”

“무슨 뜻이냐?”

“넌 한 번도 신검을 가져본 적이 없다.”

“뭐, 뭐라고?”

가짜였다고?

그럴 리가.

내력이 담기지 않으니 가짜일 수 없다. 어디 그뿐인가, 신검이 하나임을 놈은 알아차리지 않았던가.

하지만 후공의 뜻은 그런 것이 아니다.

지천주로서는 알 수 없는 일.

곁에 있다고 가진 것이 아니다.

그저 잠시 머물러 있던 것뿐.

지천주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번’은 이미 들떴다. 주인이 비로소 자신을 부르기에, 드디어 때가 되었기에 ‘번’은 폭주했다.

카르르르르르르릉!

기쁨의 외침과도 같이 울부짖으며 검집에서 빠져나와 자줏빛 광채를 발하며 천장을 뚫고 튀어나왔다.

콰앙!

갑작스러운 굉음에 지천주와 각주들이 놀라고, 점창과 천공단의 시선도 하늘로 향했다.

자줏빛 광채가 길게 이어지며 하늘로 끝도 없이 솟구쳐 오르는 광경에 저마다 탄성을 터뜨렸다.

“뭐, 뭐야? 뭔 일이야?”

“무, 무슨? 왜 갑자기?”

“저게 왜 그래?”

“서, 설마…… 신검인 거야?”

“왜……?”

장검이 자줏빛 광채를 두른 채 하늘을 질주하며 빛을 뿌리는 광경은 누가 보아도 장관이었다.

점창 장문인과 장로들이 멍해졌고, 천공단도 다를 바 없었다.

이미 지천을 상대할 때 단주가 신검을 운용할 수 있다는 걸 본 천공단이었지만, 지금의 광경은 그와는 전혀 다른 의미.

신검을 손에 쥐고 있을 때야 그런가 보다 하지만, 지금처럼 불러내 운용할 수 있는가는 아예 다른 영역, 다른 차원인 터.

그런 놀라움은 지천주와 지천의 각주들도 마찬가지였다.

‘저게 왜……?’

‘어째서…….’

신검에는 내력이 담기지 않는다. 그렇건만 지금은 카르릉대며 난폭하기 이를 데 없이 하늘을 휘젓고 있으니,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놀라움은 이어졌다.

하늘을 유영하던 신검이 한순간 선회하며 지상으로 쏘아졌다. 엄청난 기세였고, 무엇이든 그대로 뚫어버릴 것 같은 속도를 유지하며 나아가는 지점은 천화서고 대공자.

“대, 대공자! 위험하네!”

점창 장문인 초광이 위험을 경고했다.

하지만 위험할 리가.

후공은 그저 우수를 내밀 뿐.

번은 광채를 머금은 채 그대로 휘말리듯 그 손아귀로 빨려들어가,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울었다.

주인을 다시 만난 것이, 주인의 기운과 다시 감응한 것이 얼마 만인가.

그렇게 기뻐하니, 후공이 번을 지그시 내려다봤다.

번쾌친 중 번은 제일 처음 얻은 녀석이었고, 그만큼 오래되었으며, 검연의 감응 또한 남다르다. 그 의미는 더없이 친근하다는 의미도 되지만, 쾌와 친, 검령보다 더 강력하다는 뜻.

번을 다시 만난 건,

기연을 얻은 것과 같다.

후공은 시선을 들어 지천주를 바라봤다.

“지천주, 답이 되었겠지?”

“…….”

답은 되었다.

그렇기에 지천주는 말을 잃었다.

답이 없어지기도 한 것이다.

이제 더 이상 거래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것이다.

“지천주, 그럼 이제 내가 제안하마.”

“……?”

“이대로만 하면 네 아들들은 살 수 있다.”

“들어보지.”

희망이 보여 지천주가 바로 호응했다.

하지만 후공은 갸웃.

시선을 땅으로 향하고는 침음성을 흘렸다.

“흐음…….”

땅 밑 지천의 당주들과 그 휘하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의 목적은 또 다른 인질.

지상의 대화를 들으며 경황이 없는 지천주와 각주들과는 달리 나름 해결책을 찾아 움직인다.

피를 보충하기 위해 잡아 감금해둔 백여 명의 평범한 이들을 볼모 삼으려 하는 상황이었기에, 발출했다.

검령과 친이 쇄도하고, 번을 날려보냈다.

그렇게 거의 동시에 세 줄기 자줏빛이 그대로 땅을 뚫고 지하로 파고들었다.

이미 지하의 규모와 구조는 지천 중 하나를 고문할 때 세밀히 파악했던 터.

어디에 누가 갇혀 있고, 또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해당 지점에서 몇 걸음을 디뎌야 초유가 갇힌 곳이 나오고, 그곳에서 또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움직여야 지귀객이 갇힌 곳인지, 백여 명의 일반인들이 어느 지점에 있는지도 이미 머릿속에 담겨 있었다.

거기에 더해 지금은 거리가 가깝다.

의식의 영역 안.

적과 보호해야 할 이들의 분별은 명확하다.

“대공자!”

“형님!”

점창 장문인과 항마삼협이 참전을 원했기에 후공은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 즉시 장문인 초광이 발을 굴렸다.

쾅! 바닥이 뚫렸고, 그 구멍 안으로 점창과 천공단의 일부가 뛰어내렸다.

까르릉 거리는 소리를 따라 연이어 지하에서 비명이 터져나오는 상황에 각주들과 지천주가 동요했지만, 나직한 협박이 그들을 붙들었다.

“움직이면 죽어. 한 명만 사라져도 죽어.”

남궁연이 검은 보자기에 검을 들이대니 모두 얼어붙었다.

이윽고, 들어갔던 구멍을 통해 점창과 천공단의 일부가 돌아왔다.

번과 친, 검령은 그곳에 머물렀다.

갇혀 있는 백여 명의 사람들 앞을 어슬렁거리며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했다.

그리고, 은밀한 제안.

대공자의 전음이 지천주의 귓가에 날아들었다.

- 지천주.

- …….

- 각주들을 죽여라. 그럼 너와 네 아들들은 살려준다.

“허어…….”

지천주가 탄식했다.

그의 동공은 거의 지진.

도대체 자신은 누굴 상대하고 있는 것인가.

어찌 이리 악독한가.

정녕 천화서고의 서생이 맞긴 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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