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화.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지귀객이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눈물을 흘리는 그의 모습은 애처롭기 그지없었기에, 곁에서 천공단이 위로했다.
“하하하하, 꼴좋다!”
“두더지 새끼, 얼른 회복해라. 돌아가면서 고문해줄 테니까!”
“눈물이 눈물이 흘러넘쳐, 영원히~~~. 죽을 때까지~~~.”
“두더지가 울면~~ 땅속에 빗방울이 방울방울~~~.”
웃음과 노래로 위로했다.
위로가 될 리 없어 지귀객의 흐느낌은 더 커졌다. 아무래도 잘못 걸린 것 같았다. 다들 미친 새끼들 같았기에 서러움이 복받쳤다.
“대공자.”
장문인의 목소리에 후공이 돌아봤다.
장문인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지만, 후공은 알 수 있었다.
“그렇게 하십시오.”
아까부터 장문인의 시선은 전각으로 향해 있던 터. 의미는 명확하다. 장문인은 군보를 직접 처리하고 싶어 한다.
“고맙네.”
처리는 빨랐다.
단말마의 비명조차 없이 전각 내에 빛이 번쩍인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정리는 끝나갔다.
천공단은 최종적으로 지하 석실들을 다시 한번 샅샅이 확인했고, 이어 올라와서는 보물들을 큰 보자기에 쓸어담아 열두 개로 나눠 담았다.
그쯤에 하오문이 도착했다.
“천공단이여어어어어~~ 하오문이 왔다네에에에에~~~.”
루주인 노파가 사자후를 토해내며 유림원에 들어섰고, 그 뒤로 이백여 명의 하오문도들이 줄을 이었는데 점소이며 기녀며 각양각색이었다.
때가 되었다.
떠나야 할 시간.
후공은 점창에 작별을 고했다.
“장문인, 보물 중 넷은 점창의 것입니다.”
네 개의 큰 보따리가 곁에 놓였지만, 장문인 초광은 관심이 없었다.
“보물은 됐네. 작별도 아직 이르네. 사천으로 함께 가세.”
보물을 무슨 염치로 받는단 말인가.
점창은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었다.
그저 지켜본 것이 전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막연히 넋을 놓고 있던 시간, 슬픔에 잠겨 있던 시간, 가끔씩 울었던 시간.
그 시간의 틈으로 대공자는 혜성처럼 찾아와 모든 걸 날려버렸다. 막연함은 선명함이 되었고, 슬픔은 환희로 바뀌었으며, 눈물의 의미는 달라졌다.
대공자는 하얀 광채와 같이 빛났고,
점창의 별이 되어 주었다.
그러니 함께한다.
흑전을 함께 상대해야 했다.
“장문인의 말씀을 들으니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습니다.”
후공은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마음만 받겠습니다. 장문인께선 장문인이기 이전에 아버지. 지금은 따님 곁에 계시는 것이 맞습니다. 아버지가 딸을 걱정했던 시간이 얼마 전인데, 곧바로 따님이 아버지를 걱정하는 시간을 보내는 건 가혹합니다.”
“하지만…….”
장문인이 서운함을 내비쳤다.
하지만 대답은 확고하다.
“보물도 꼭 가져가십시오. 점창에 보내는 것이 아니라 따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장문인은 몇 차례 고집을 피웠지만, 후공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어 하오문 루주를 불렀다.
보물의 분배에 대해 말한 뒤, 작별을 고했다.
천공단의 신형이 서쪽으로 날아갔다.
덩그러니 남은 점창과 하오문은, 대공자와 천공단의 신형이 사라졌음에도 한참이나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점창은 꿈을 꾼 것 같았다.
빛이 왔다가 빛이 떠난 것만 같았다.
하지만 꿈은 아니다.
유림원에 서 있다.
곁에 남은 건 보물이 담긴 보따리.
“하아…….”
점창의 진한 아쉬움은 탄식이 되어 흘러나왔다.
그건 하오문도 마찬가지.
왜 엄청난 크기의 보물 보따리 하나가 하오문의 몫이 되는 것인가.
그저 사람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는 일이 전부인데…….
그들에게 보물을 나눠주는 것이 전부인데…….
그리고 뭘 믿고.
이것이 친구인가.
그런 생각이 들어 하오문도 하염없이 허공을 바라봤다.
***
그로부터 이틀.
금원장에 색관조가 날아들었다.
“다 끝났어요. 주인님이 지천을 끝내버리셨어요오오오오! 지귀객도 살았어요. 근데 앞으로 내내 주인님께 고문당할 거에요. 까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우린 바빠서 이만 돌아가요~~.”
그 말에 무당의 청진자가 달려나왔을 때는, 형형색색 아름다운 빛깔의 색관조는 어느덧 멀어져가고 있었다.
“허허허…….”
나오느니 헛웃음.
그 지천을 끝내버렸다고? 내내 걱정했던 것이 뭐였나 싶을 정도여서 청진자는 허탈함을 금할 길이 없었다.
이어 떠오르는 건,
대체 어떻게 한 걸까?
어떤 수단을 쓴 걸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당장이라도 쫓아가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솟아나는 건 왜인가. 자신은 도사인데 천공단이 부러워지는 건 왜인지 모를 일이었다.
한편 강유는 눈물을 글썽였다.
창가에서 멀어져가는 색관조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지귀객…… 살았구나.’
전달받은 내용은 단순했지만, 색관조의 밝은 목소리에서 많은 이야기를 들은 것만 같다.
대공자와 천공단은 무사하다.
그리고…….
강유, 이제 넌 안전하다.
금취객이 아니라, 강유로 살아라.
아버지로 살아라.
그렇게 대공자가 말하는 것 같았기에, 강유는 마음속으로 나직이 감사의 말을 건넸다.
***
- 너 이 새끼, 왜 그렇게 잠을 자!
- 그게…… 잠이 계속 와.
- 운기를 하라고, 시발놈아! 내가 마차냐!
천공단의 행보는 어느덧 운남과 사천의 경계를 돌파해갔다. 신법을 제대로 펼치기 어려운 지귀객을 업고 달리는 건 무흔신투.
이전에는 천공단을 업고,
이번에는 지귀객이었기에 무흔신투는 분통이 터졌다. 난 왜 맨날 사람을 업냐고! 내가 마차냐고! 말이냐고!
- 근데 선배!
- 뭐 상놈의 새끼야!
- 이제 선배도 천공단입니까?
- 끄응, 그건 아니야. 나도 잡힌 거라서.
- 거의 분위기가 천공단이던데…….
- 니 걱정이나 해. 병신아.
- 끄응.
이번엔 지귀객이 앓는 소리를 냈다.
맞는 말이었다.
몸이 회복되면 고문당한다. 대공자는 병 주고 약 주는 것이 아니라, 약 주고 병 준다.
- 그래도 너무 걱정할 건 없다.
- 왜?
- 이걸로 지나간 거야. 대공자는 뒤끝이 없어. 강유도 처음에만 아작냈을 뿐이야. 넌 강유에 비하면 오히려 운이 좋은 거야. 몇 대 처맞은 게 뭐 대수라고.
- 진짜 뒤틀리고 오그라들고 그런다고?
- 말도 마라. 난 낚지인 줄 알았어. 그리고 오그라들기만 하는 게 아니야. 대공자는 사람을 묻어.
- …….
지귀객이 부르르 떠는 걸 느낀 무흔신투가 위로의 말을 건넸다.
- 너무 걱정할 건 없다.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대공자는 허허거리고 만다. 사람이 커.
- 하긴 보물 다 나눠주는 걸 보니까…….
- 멍청아, 천공단 재산이 엄청 나. 무극살부 멸살하고 다 털었다더라. 그리고 보물이 대수냐. 천하제일인의 신검이 대공자의 손에 들어갔는데 그깟 보물이지.
- 대공자가 신검을 가진다고?
- 분위기가 그렇잖아. 대공자가 신검을 운용하는 걸 보면 모르겠냐? 아참, 넌 못 봤지. 어쨌든 보고 있으면 입이 쩍 벌어져. 아주 애검이여, 애검. 너도 시도는 해봤지?
- 당연하지. 그게 될 리가 없는데.
- 대공자는 그냥 차원이 달라. 딴 세상 사람이야. 분위기도 그렇고.
둘의 대화는 거기에서 그쳤다.
휴식 시간이었다.
숲속의 그늘 안에서 한낮의 열기를 피해 모두 숨을 골랐다.
“신투.”
부르는 소리에 무흔신투가 황급히 달려갔다.
“네, 대공자님.”
“수고했다. 이번 지천의 일에 너의 공로가 컸다.”
칭찬을 이제야 받는다.
그래도 무흔신투는 괜히 뿌듯해졌다.
“감사합니다.”
“어려운 일이었고, 위험한 일이었다. 또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지.”
“헤헤…….”
칭찬이 이어지자 무흔신투가 머리를 긁적였다.
인정받는 것이 이런 기분인가.
인정해주는 이가 워낙 대단한 사람이라서, 무흔신투는 겸연쩍으면서도 싱글벙글이 되었다.
“자, 그래서 너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겠다.”
“네?”
“네가 결정해라. 천공단이 되고 싶다면 그렇게 하고, 떠나고 싶다면 떠나도 좋다.”
“어…….”
생각지도 못한 말이어서 무흔신투는 절로 눈이 커졌다.
떠날 수 있다고?
이게 되는 거였어?
그러면서 신투는 주변을 둘러봤다.
천공단이 누구할 것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도둑 할아버지, 이대로 떠나는 거야? 아쉽네.”
“가지 마! 우리랑 지내자고!”
거지들이 말하고,
“이제 가면 언제 보나.”
“딱 천공단인데 아무래도 떠나겠지?”
“정들었는데 말씀이야.”
“형님이 먼저 제안한 건 처음이야. 잘 생각해.”
아쉬워하는 목소리들.
재밌는 놈들.
무흔신투는 바로 말을 꺼내지 못했다.
내내 떠나는 것이 목표였는데, 정작 기회가 온 지금 고민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당혹스러웠다.
천공단이 되는 것도 괜찮다 싶은 생각이 들다니.
물론 꽤 재밌다. 짜릿함이 있었다. 임무를 완수했을 당시, 지천을 남겨두고 아침 햇살 속으로 질주할 때의 쾌감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어떤 보물을 취했을 때보다,
어떤 곳을 갔을 때보다 더한 쾌감.
그리고 나에게도 동료가 생긴다.
후공을 따라다녔을 때는 그냥 비둘기였는데, 이제 제대로 된 하나의 인격체로서 동등한 대우를 받게 된다.
하지만 그래도…….
무흔신투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잎사귀 사이로 부서져내리는 햇살, 그리고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
‘아니야. 그래도 자유로움이 낫다. 훨훨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자유가 훨씬 낫다. 위험하기도 하고…….’
아쉬움이 남지만,
무흔신투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했다.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영원히?”
무흔신투가 갸웃하며 대공자를 바라봤다.
뭔 갑자기 영원히, 인가.
나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뭐가 영원하다는 건가?
“신투, 넌 재밌는 말을 하는구나. 영원히 천공단이 되고 싶다니 그 정도였나.”
“……?”
저기, 대공자님?
저 아무 말도 안했거든요.
“좋다. 네 소원이 그렇다면야. 넌 오늘부터 천공단이다.”
“……???”
저기요?
마음을 읽으려면 제대로 읽으셔야 합니다!
왜 막 지어내는 건가요?
이럴거면 물어보질 말았어야죠!
무흔신투가 눈동자를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 때, 천공단의 환호성이 터졌다.
“우와아아아, 그럴 줄 알았다고!”
“신투 할아버지, 쑥스러워서 전음으로 한 거였어?”
“천공단에 역용 능력자가 생겼어!”
“좋다, 좋아!”
“하하하하, 거지 출신 천공단에, 도둑 출신 천공단까지. 천공단 품격 올라가는 것 보라고!”
품격이 떨어지는 게 아니고?
항변하고 싶지만 무흔신투는 그럴 수 없었다.
어느샌가 천공단이 달려들어 몸을 들어 허공으로 던졌다가 받았다가 하면서 깔깔거리고 있는 터.
“울어? 울기까지 하는 거야? 그렇게 좋아?”
“얼마나 천공단이 되고 싶었던 거야!”
“더 높이!”
“하늘 높이!”
“구름 위로!”
거의 나무 끝까지 던져져 찬란한 햇살을 받으며 추락했다가 또 햇살과 만나면서 신투는 눈물을 뿌렸다.
‘시발…… 나 말한 적 없다고오오오오! 나 싫다고오오오오!’
대공자가 이런 사람이었던 건가!
어째 후공과 비슷한 것 같은데!
후공도 그랬었다.
‘크흠, 내 비둘기가 되겠다고?’
말한 적 없었다.
그 말로 마치 간절히 원했던 것처럼 비둘기가 되고 말았다.
무흔신투의 마음을 헤아린 건 지귀객뿐.
좋아서 울 리가 없지 않는가.
바라보고 있자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하아…… 저게 미래의 내 모습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