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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화 서고 대공자-230화 (230/460)

230화. 찾았어!

흑전은 암시장의 주체.

암시장이라고 하여 특정 장소에 좌판을 여는 건 아니다.

암시장은 경매장을 의미할 뿐.

활동은 드물다.

경매는 매년, 매해 열리는 건 아니다.

그 주기는 십 년.

경매장에서 다루는 보물은 매우 진귀한 것들이어서 참여를 원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원한다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절차의 까다로움을 떠나 기본적으로 흑전의 초대장이 필요했다.

초대장은 언제나 은밀히 전해졌다.

전달자는 온데간데없고, 초대장만 남는다.

그 은밀한 초대장에 표기된 경매장의 위치와 시간을 따라 사람들은 모여들고, 경매는 진행된다.

여기까지가 후공이 기존에 알고 있던 바였다.

은밀한 장사꾼들.

희한한 놈들.

신출귀몰하기에 제법 실력도 갖췄겠군, 정도로 인지하고 있었다.

마주한 적은 없었다.

흑전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

혹은 문제를 일으켰다는 소식을 접하지 못해,

만날 기회가 없었다.

무림맹주는 한가하지 않고,

강호는 시시비비가 끊이지 않는다.

조용히 물건을 사고파는 놈들 따위는 관심 밖이었다.

하지만 이제 사정은 달라졌다.

놈들이 취급하는 것이 어떤 영약이든, 어떤 보물이든 상관없었지만 이제 그 보물 중 하나가 ‘쾌’가 되었으니 달라질 수밖에 없다.

달라진 건 그뿐이 아니다.

지천을 심문하여 새롭게 얻어낸 사실들.

흑전은 지천과 동맹.

지천이 토기를 무궁히 받아들일 수 있는 길을 안내한 것이 흑전이었다. 그 후유증으로 지천은 낮을 잃었고, 피를 마셔야만 했다.

안내자인가, 파멸자인가.

그 선택에 강요가 없었다 해도 지천은 나아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유혹이란 그런 것이다. 알면서도 뿌리치기 힘들다. 그렇기에 흑전은 파멸자인 셈이다.

알아낸 사실은 그뿐만 아니다.

흑전의 본거지도 알아냈다.

사천 중서부.

스스슷.

짙은 안개로 뒤덮인 밤,

후공은 태림각의 지붕에서 신형을 멈췄다.

그 뒤로 천공단이 도착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지귀객도 어느덧 업히는 신세에서 벗어나 있었다.

안개에 덮힌 장원의 밤은 을씨년스럽고, 깊은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둘.’

사람이 없다.

장원에 머물고 있는 이는 고작 둘뿐.

이곳이 아니라고?

확인해 보자.

후공이 전각의 한 지점을 손으로 가리켰다.

이내 무산쌍웅이 신형을 날렸다.

지면에 발을 딛는 순간, 다시 튕겨져 나아갔다.

그렇게 한 처소의 문을 열어젖혔을 때, 다섯 줄기 빛이 쏟아졌다.

쌍웅은 우습다.

날아드는 비도를 하나하나 잡아채 손에 거머쥐었다.

“뭐하는 새끼들인데 갑자기 칼을 날려!”

“개새끼들아, 손님이 왔으면 인사도 하고, 물이라도 마시라고 건네야 하는 거 아니냐!”

인사도 없이 문을 벌컥 연 주제에 당당하기가 말로 할 수 없었다.

방 안에 있던 두 중년 사내의 낯빛이 하얗게 질렸다.

자신들이 날린 비도가 상대의 손아귀에 모조리 들어가있는 것이다.

어쩔줄 몰라하는 모습은 다시금 호통을 불러왔다.

“당장 안 튀어나오냐!”

두 중년 사내가 서로를 마주보다 쭈뼛거리며 걸어나왔다.

“다 어디 가고 너희들뿐이냐?”

“어……. 어…….”

“응?”

무산쌍웅이 갸웃하며 미간을 좁혔다.

두 놈 다 대답은 하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어눌한게 아니라 말을 손으로 한다.

둘 다 말을 못한다.

이 커다란 장원에 두 사람만 있는 것도 놀라운데,

둘 다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다.

“듕듕! 듕듕듕! 듕듕듕?”

어느새 뒤쪽에 내려서 있던 소천개가 상황을 간파하고 대화를 시도했다.

약왕문에서 만났던 천잠육도의 막내 태미를 떠올리고 말을 걸었다. 하지만 상대는 태미가 아니다. 두 사내가 왜 갑자기 듕듕거리나 하고 바라보고, 천공단도 신경질을 부렸다.

“뭐하냐, 미친 새끼야!”

“뭔 말인지는 알고 말하는 거냐!”

“그만 하라고!”

“듕듕, 듕듀…… 으읍!”

그래도 듕듕거려서 은앙개가 소천개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면서 천공단 대부분의 시선은 두목에게로 향했다. 두목은 못하는 것이 없다. 이미 약왕문에서 수화도 선보였던 터.

- 이곳이 흑전이란 걸 알고 있다.

후공이 물었다.

사내 중 하나가 손을 놀렸다.

- 흑전이라뇨? 여긴 태림각입니다. 누구신지?

- 다시 묻는다. 흑전이란 걸 알고 있다. 대답이 틀리면 눈을 뽑는다.

두 사내가 몸을 떨며 주춤 물러났다.

그러다 겁먹은 얼굴로 서로를 바라봤다. 한 명이 고개를 끄덕이고, 이어 다른 한 명도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머뭇거리며 손을 놀렸다.

- 마, 맞습니다.

- 모두 어디 갔지?

- 그, 그건 저희도 모릅니다. 믿어주십시오. 제발…….

상대의 나이가 어려도 무심한 눈길을 마주하면 알게 된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눈빛이고, 수행의 깊이도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덜덜 떨며 빌었다.

그 모습에 꾸밈이 보이지 않는다. 사실일 테지만 후공은 한 번 더 확인했다.

- 누구부터 할까?

- 사, 살려주십시오.

두 사내가 엎드려 머리를 쿵쿵 찧어댔다.

쿠웅, 후공이 발을 가볍게 굴려 땅을 진동시켜 고개를 들게 한 후 수화로 말했다.

- 일어나라.

확인은 끝.

짐작컨대 이들은 하인이다.

처음부터 말을 못하고, 귀가 들리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귀를 멀게 하고, 말을 못하게 만들었을 터. 비밀 유지, 정보의 차단을 위해.

그런 거냐고 묻자, 둘 다 울먹였다.

후공은 안개가 자욱한 밤을 둘러봤다.

돌아올 기약은?

기대하기 어렵다.

은신처가 이곳만이 아닐 수도 있다.

강호의 은밀한 조직이 여러 은신처를 두고 순회하는 것은 기본. 이곳도 그중 한 곳일 가능성이 크다.

한편으로 경매가 시작되는 것일지도.

- 언제 떠났지?

- 열흘 전입니다.

나쁘지 않다.

열흘이면 체취는 아직 남아있을 터.

일단은,

- 움직임이 많은, 실질적인 활동이 많은 자가 머문 처소로 안내해라. 셋 정도면 된다.

- 네.

천향사주로 남겨진 머리카락과 의복에서 향을 채취해 색관조에게 맡게 했다.

[까르르르르르르. 주인님, 지금 출동할까요?]

세 개의 향을 기억한 색관조가 당장이라도 날아오를 기세를 보였다.

“아니.”

지역이 너무 넓다.

지역이 특정된 상태가 아니라 드넓은 사천 전체를 살펴야 하는 일이다. 사천은 특히 산세가 험하고 안개가 자주 출몰하는 탓에 제아무리 색관조라도 놓칠 수 있다. 조금만 빗겨나가도 틈이 생긴다.

그러니 시간이 걸리더라도 분할해서 탐지할 필요가 있다.

현재 위치는 사천 중서부 이당.

남쪽을 시작으로 동쪽 방향으로 외곽을 훑어 한 바퀴, 그럼에도 찾지 못하면 사천의 중심으로 들어간다.

남쪽이라도 범위는 넓다.

흩어졌다가 모이고를 반복해야 한다.

그렇게 천공단에게 지시를 내렸다.

“1차 합류 지점은 구룡입니다.”

천공단의 신형이 솟구쳐올랐다.

“가자아아아아아!”

“흑전 놈들 잡으로 가자!”

“우리가 잡아!”

[까르르르르르르르르르! 우리가 들을 거야!]

둘씩, 셋씩, 짝을 맺고 밤의 안개를 가로질렀다.

이제 천공단은 밤의 소리를 듣는다.

흑전, 경매, 혹은 신검에 대해 나누는 이야기.

내가 찾아.

내가 들어!

남은 건 후공뿐.

후공은 두 사내에게 해야 할 말이 있었다.

- 너희는 떠나도 좋다. 향후 흑전이 너희를 찾을 수 없게 하겠다.

- …….

대답이 나오지 않은 건 두려움 때문.

후공은 짐작할 수 있어 고개를 끄덕였다.

장담한다고 믿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강요할 수 없다.

- 알겠다. 너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를 만난 적이 없다.

안심시킨 후, 신형을 날렸다.

흐릿해졌다 싶은 순간 어느 방향으로 갔는지조차 찾을 수 없었기에 두 사내는 한참이나 멍해졌다.

눈을 뽑는다는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흑전이나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가 남긴 말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너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를 만난 적이 없다.

지켜주는 마음.

흑전에 잡혀 소리를 잃고 평생을 두려움 속에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포기했는데, 처음 들었다. 반짝이는 빛이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그랬으면…….’

흑전이 돌아오지 않았으면…….

저 젊은 두목이 원하는 결과를 얻었으면…….

마음으로 빌었다.

***

‘없다.’

‘없어.’

‘들리지 않아.’

‘어디에 있는 거야!’

[향이 없네.]

[그윽.]

어느덧 사흘째 밤.

2차 합류 지점까지도 소득은 없었다.

이제 쓸어가듯 향해 가는 지점은 사천 남부.

3차 합류지점인 남부 감락을 향해 갈 때, 들려왔다.

“누님, 꼭 가셔야 하나요?”

“초야, 넌 또 답답한 소리를 하는구나.”

“위험해서 그런 거지요. 이 아우는 걱정됩니다.”

“강호는 원래 위험해. 그런 걱정이라면 집 밖으로 나설 수도 없지.”

“그래도…….”

“경매는 십 년에 한 번이야. 이번에 안 가면 십 년을 더 기다려야 해.”

주루의 창가에 앉은 젊은 남녀의 대화는 천공단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찾았어~~~~~! 시발, 우리가 찾았다고!”

은앙개가 환호하는 소리가 밤을 울렸다.

뭘 찾았다는 거야, 어떤 새끼가 야밤에 시끄럽게 소리치는 거냐, 따위의 말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주루에서 대화를 나누던 당초와 은소소도 잠시 대화를 멈추고 밖을 바라봤다.

“뭔 소리야?”

하지만 더 이상의 외침은 없었기에 이내 대화를 이어갔다.

“초야, 이번에 흑전의 경매를 못 가면 이 누님의 나이는 서른이 넘게 된단다. 아마도 그때쯤이면 아이를 낳았을 수도 있지. 그럼 영영 갈 수 없게 되지 않겠니?”

“차라리 그때가 낫습니다. 누님의 무위가 지금보다 나아져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누님은 지금 누굴 만날 생각도 없으시고 혼인 생각도 없으시면서 꼭 아이를 가질 것처럼 말씀하시니, 이 아우는 웃깁니다.”

“생각해둔 사람은 있어.”

“네? 정말인가요? 누구인가요?”

당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은소소가 사촌 동생의 반응에 피식 웃으며 빈잔에 술을 채웠다.

“넌 알 것 없어.”

“누님, 만나는 사람이 있었던 건가요?”

“만난 적은 없어.”

그 말을 하며 은소소의 시선이 천장으로 향했다.

“누님, 천장에 뭐가 있는 건가요?”

“글쎄다. 고양이인가?”

고양이가 아니다.

항마삼협이 주루의 지붕 위에 내려앉았다.

그와 함께 스스스슷!

속속들이 천공단이 주루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검은 깃털의 새와 금두꺼비도 주루 위를 날았지만 당초와 은소소가 알 수는 없었다.

“딴청 피우지 마시고 말씀해보십시오. 이 아우, 너무 궁금합니다.”

“너도 알 걸?”

“제가요? 제가 본 사람인가요?”

“그건 아니야.”

“외할아버지도 아시나요?”

“아실 걸.”

“대체 누구인가요? 어서 말씀해보십시오.”

답답해진 당초가 가슴을 두드렸다.

“천화서고 대공자.”

“…….”

“하하하하하!”

사촌 동생의 표정이 뚱해졌기에 은소소가 깔깔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미모는 원래도 빛났지만, 밝게 웃으니 햇살처럼 눈부셔졌다.

“놀랐니?”

“뭐 조금요……. 한데 이 아우 듣고 보니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소문대로 그의 명성이 사실이라면 누님과 제법 어울릴 테죠.”

“사실일 리 없잖니.”

“그렇겠죠?”

“흐음…… 그래도 궁금하긴 해. 들려온 이야기마다 너무 멋지거든. 그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마주하면 알 수 있을 텐데.”

그때 주루 안으로 한 청년이 들어섰다.

청년은 머뭇거림 없이 나아가 당초의 옆, 은소소의 맞은편 자리 의자에 앉았다.

“……!”

“……?”

그 태도가 너무도 자연스러운 탓에 당초와 은소소는 그저 눈만 연신 깜박거렸다.

청년이 미소를 머금었다.

“소저, 제가 술 한잔 사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누구시죠?”

청년의 미소가 더 짙어졌다.

“천화서고 대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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