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화 서고 대공자-232화 (232/460)

232화. 숙녀들은 청혼을 자주한다.

황금빛으로 물든 구름.

은소소는 그 구름 위에 떠있기에 믿을 수 없으면서도,

‘아름다워…….’

온전히 매료되었다.

정녕 꿈에서도 본 적이 없는 광경이었다. 구름은 늘 올려다봐야 하는 것이었는데, 오늘은 달랐다. 하늘 위에서 구름을 내려다보고 있다.

구름과 구름 사이로 아스라이 멀리 마을의 불빛도 보였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대공자는 뭘 딛고 있는 걸까?

그리고…….

두근, 두근, 두근.

은소소의 심장은 멋대로 뛰었다.

그녀가 마음을 진정시키려 크게 소리쳤다.

“너무 멋져요! 최고의 선물이에요!”

그 어떤 진귀한 보물이라도 이 순간과 비교할 수 없다.

보물은 지금 이 시간.

또 보물은 이 순간을 선사한 천화서고 대공자였다.

“대공자.”

그녀가 미소를 띠며 바라봤다.

대공자도 바라본다.

그렇게 서로의 시선이 마주했다.

은소소의 미소는 눈부시게 아름다웠고, 대공자의 미소는 따스했다.

“당신, 멋지군요.”

“그럴 리가요. 소저가 훨씬 더 멋지고, 아름답습니다.”

은소소는 자신이 건넨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걸 돌려받았다. 은소소의 미소가 짙어졌다.

어떤 날, 어떤 밤.

상상만 하던 신비로운 강호가 오늘 찾아왔다.

이 밤의 모든 것이 처음 맞이하는 신비로움.

까마득히 높은 하늘로 솟구쳐 올라온 것도, 자신의 허리를 휘감은 사내의 손길도, 닿을 듯 달과 가까워진 것도 모두 처음이었다.

젊은 나이에 절세고수의 반열에 오른 이를 마주한 것도 처음이다. 강호에 회자되는 천화서고 대공자의 소문이 사실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상이었다.

갖고 싶어.

이 사람이 내 것이면 좋겠어.

“대공자.”

“…….”

“나 어때요?”

“아름답습니다.”

“그럼 나랑 혼인해요.”

만난 지 고작 일다경.

은소소가 눈동자에 보석을 담은 채 말했다.

“……?”

후공은 바로 이해하지 못해 갸웃.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터져버렸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

뭔 소리를 하나 했더니만…….

이 밤, 꼬마 숙녀가 청혼을 해온다. 풍광은 더없이 운취 넘치고 아름답지만, 맹랑하기 짝이 없어 웃음을 멈추기 힘들었다.

또 생각하게 된다.

꼬마 숙녀들은 왜 이렇게 청혼을 자주 하는가.

왜 이렇게 금방 사랑에 빠지는지 모를 일이다.

꼬마 제갈혜도 그랬다.

난 커서 백부와 살 거야. 백부와 혼인할 거야.

그래 놓고 어느 날 보면 다른 사람에게 청혼하고 있었다.

고작 맛 좋은 당과 하나에 넘어갔다.

내가 크면 있잖아요, 로 시작된 똑같은 말.

황급히 달려가 나와 혼인한다고 했지 않냐고 따지면 당과를 입에 문 채 배시시 웃으며 도망가버렸다. 처신 똑바로 하라고 몇 번이고 말해도 소용이 없었다.

“대공자, 농담처럼 들리나 보네요?”

은소소가 새침해졌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또 다른 매력으로 빛났다.

그녀는 자신했고, 그런 자신감은 반짝이는 눈동자에 고스란히 담겼다.

친조부가 태왕전장의 장주요, 외조부가 사천당가의 가주.

미모는 활짝 핀 꽃과 같다.

이 세상에서 갖지 못할 건 없다.

하지만 세상에는 예외가 있는 법.

상대가 나쁘다.

후공이 미소지었다.

“소저.”

“대공자, 제 고백이 마음에 드나요?”

“내려갈 때는 혼자 내려가십시오.”

“…….”

은소소가 아래를 내려다봤다.

지면은 까마득하고, 전각들은 마치 작은 장난감 집 같다.

“으흐흐…….”

이곳까지 올라올 수도 없지만, 내려갈 능력은 더더욱 없다. 그렇기에 이내 배시시 웃었다.

“대공자, 농담인 거 알죠? 없던 일로…….”

“저도 농담입니다. 없던 일로.”

“하하하하하!”

은소소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밤하늘에 울려퍼졌다.

대공자와의 대화가 즐거워 그녀는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그때 들려왔다.

“이제 내려가죠. 머리를 아래로.”

그와 동시에 하강했다.

까마득한 지면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하강해갔다. 그럼에도 은소소는 이제 두렵지 않았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올라올 때와 비명소리는 같았지만, 의미는 달랐다.

“신나아아아아아!”

파라라라라라락!

옷자락이 나부끼고 머리가 너풀거리는 가운데, 이제 은소소의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맺혀 있었다.

대공자의 선물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멈추는 걸까? 상관없다. 그저 그녀는 이 순간을 만끽했다.

지면은 빠르게 가까워졌다.

순식간에 백여 장, 오십여 장, 삼십여 장.

그때, 휘릭 선회해 똑바로 섰다. 그와 동시에 낙하 속도가 서서히 줄어들었다.

‘어?’

은소소가 놀라 눈이 커졌다.

왜 이렇게 되는 건가?

엄청난 속도로 떨어져내리고 있었는데, 대공자가 한 것이라곤 그저 공중을 반바퀴 선회해 바로 선 것뿐인데, 왜 속도가 현격히 줄고 점점 더 느려지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후공은 지무(地無)를 운용한 터.

지무는 지력을 상쇄한다.

하나 은소소가 알 수는 없는 일.

지무의 공능은 비록 겨우 시작에 불과해 잠시 잠깐 운용할 수 있는 것이 전부였지만, 지금은 그 정도만으로 충분했다. 그로 인해 마치 솜털이 된 것처럼 천천히 하강해갔다.

“대공자…… 이건 어떻게 한 거죠?”

“소저가 너무 가벼워서 그렇습니다. 크흠, 원래는 멋지게 착지하려고 했는데, 소저 때문에 저까지 나뭇잎처럼 살랑이게 되니 전혀 멋지지 않아 속상하군요.”

“하하하하, 말도 안 돼요.”

은소소가 웃음을 터뜨렸다.

도대체 그녀는 몇 번째 웃고 있는지 모른다.

대공자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냥 웃음이 터져나오니, 은소소는 마치 자신이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내려선 곳은 낮은 산야.

은소소는 주변을 둘러봤다. 어둠에 잠긴 산. 그리고 탁 트인 시야 너머로 저만치 번화가의 주루와 객잔들이 보였다.

저곳에서 날아올랐다.

은소소는 다시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저곳까지.

방금까지 구름 곁에 있었는데, 이제 구름은 닿을 수 없는 높이에 떠 있었다.

꿈은 아니겠지?

꿈은 아니다. 미소 짓는 대공자. 그리고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저, 어떻습니까? 제가 초대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자격을 갖추었는지 모르겠군요.”

“하하, 물론이에요. 그대는 차고 넘쳐요.”

은소소가 품에서 명첩을 꺼냈다.

직사각형으로 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크기였고, 고급스러운 검은 빛깔이었다.

“한데 문제가 있어요. 물론 저에겐 문제가 아니지만요.”

그렇게 말하며 은소소가 명첩을 건넸다.

후공은 받아들고 명첩을 펼쳤다.

기록된 내용은 단순했다.

간략한 초대의 말과 초대자의 이름들, 그리고 장소와 날짜가 기입되어 있었다.

모두 읽고 나니 후공은 그녀의 말뜻이 이해되었다.

명첩에는 초대자의 이름이 명시되어 있다.

이름은 여럿.

하지만 모두가 태왕전장의 직계.

“초대장은 양도가 되지 않는군요.”

“네.”

은소소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미소 지었다.

“그래서 전 기분이 너~~무 좋아요.”

빼앗길 염려가 없어서?

아니다. 양도가 되지 않으니 그녀는 대공자와 동행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함께 가요.”

“당연한 말씀을.”

“야호오오오~~~.”

은소소가 두 팔을 번쩍 들고 펄쩍거리며 환호했다.

그 모습에 후공은 피식 웃고 말았다.

부유한 가문의 자제들은 난관이란 걸 모르고 자라서인지 시원시원한 면모가 있다.

대륙전장의 왕소한도 그랬고, 은하전장의 주양도 어떤 일이든 거침이 없는데, 눈앞의 은소소도 성향이 비슷했다.

표현은 직설적이고, 실행력이 남다르다.

왕소한은 입에 거름망이 없었고, 주양은 무극살부를 멸하겠다면서 멸살단과 천공단을 조직했다. 그 둘에 비하면 은소소는 그나마 양호한 편.

“소저, 또 다른 제약이나 제가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으면 듣고 싶군요.”

“명첩에 딸려온 서신이 있었어요. 거기에는…….”

은소소가 말을 이어갔다.

그 안에는 여러 제약과 비밀스럽고 까다로운 절차가 있었다.

초대장 한 장에 동행 가능한 인원은 네 명까지.

후공에게 다행스러운 점이라면 동행에는 외부인도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명첩에 표기된 도착 장소는 초대장마다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즉 해당 지점에서 흑전의 확인을 받은 다음 다시 이동하는 방식이었다.

“각지에서 초대받은 이들이 각자가 초대된 지점에서 흑전의 확인을 받는 것이 일차. 그때부터는 두건과 가면을 착용하게 된다고 해요. 경매장에서 사용할 이름도 새로 부여받게 되고요.”

“재밌군요.”

초대된 이들은 서로를 모르게 된다.

신분은 철저히 감춰진다.

경매품이 낙찰된 뒤 보물을 손에 넣은 이들의 신변 안전은 흑전이 책임진다.

“여태 문제가 생긴 전례가 없었다고 하니 흑전은 철두철미하다고 봐야겠죠?”

“그렇군요.”

후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철두철미한 것만이 아니다.

철두철미에는 그걸 수행할 능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는 그만큼 흑전이 강한 무력을 지녔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래서 후공은 의아하기도 했다.

십 년에 한 번 치러지는 경매에 내놓을 보물을 어떤 경로로 수집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차지하고라도, 여태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던 흑전이 왜 지금에 와서 지천과 동맹 관계가 되어 있는가.

유유상종이란 말은 흔하게 쓰이는 말이면서도,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는 말이다.

그렇기에 지천을 보면 흑전도 알 수 있다.

지천도 달라졌지만, 흑전도 달라진 것이 틀림없었다.

어떤 계기로 내부에 변화가 생긴 것이리라.

“대공자, 그대는 혹시 찾고 있는 보물이 있나요?”

“네.”

“천화서고에서 찾고 있는 보물이라면 필시 대단한 것이겠군요. 궁금해지네요. 어떤 보물인가요?”

“비밀입니다.”

“…….”

은소소가 짐짓 삐친 척 입술을 부루퉁 내밀었다.

후공은 그러거나 말거나였다.

못 본 척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오는군요.”

“네?”

“천공단.”

“아!”

은소소의 눈에 다시금 생기가 돌았다.

기대감에 차 두리번거릴 때, 먼저 온 건 색관조와 금섬이었다.

“까르르르르르르! 주인님, 저희가 일 등이에요!”

“그윽!”

은소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소리가 들려 위로 시선을 들어 바라보니 검은 깃털의 새가 하얀 새로 변하며 말을 해온 것이다. 자세히 보다가 새의 등에 금빛 두꺼비도 보여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렇게 하나둘 다가왔다.

“내가 이 등!”

무흔신투가 먼저 도착하고, 이어 항마삼협이며 낭인왕과 무산쌍웅이 뒤를 이었다. 남궁연과 언교운, 모용진, 은앙개도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마지막을 장식한 건 지귀객과 소천개였다.

“하하하, 내가 꼴등이야!”

소천개가 깔깔대고는 은소소 앞으로 나아갔다.

“소소 누나! 반가워, 난 소천개라고 해.”

“어머! 하하하하하하!”

은소소가 손으로 입을 가렸다가 이내 깔깔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천공단에 거지들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막상 보니 너무 어린 데다 이렇게까지 귀여울 줄 몰랐던 것이다.

“누나, 거지 처음 봐?”

“아, 미안! 미안!”

“난 처음 봐.”

“응?”

“사천 제일 미녀가 이렇게까지 예쁠 줄 몰랐어. 하하하하!”

은소소도 따라 웃었다.

한 명씩 소개하고 인사를 나누었다.

천공단.

강호를 진동하고 있는 또 하나의 이름.

은소소는 개성 넘치는 천공단의 면면과 인사를 나누는 중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천공단과 마주하니 정녕 자신이 강호와 마주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 것이다.

그런 후에야 당초가 헉헉거리며 도착했다.

“누님…… 괜찮으십니까?”

“괜찮다마다.”

“이 아우…… 걱정이 많았습니다. 한데 천공단분들이…… 설명해주어 조금은 안심하고 있었는데…… 괜찮으시다니 다행입니다.”

“초야, 말 그만하고 숨쉬어! 숨!”

“네, 그럼!”

당초가 가슴에 손을 얹고 숨을 골랐다.

그런 당초의 모습에 천공단이 실실거리며 웃었다.

조금 모자라 보이는 탓에 당초는 친근하게 느껴졌고, 묘하게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는 것이다.

그렇게 동행은 성립.

“만난 기념으로 이 밤 술잔을 기울이는 건 어떤가요?”

은소소의 제안에 대공자가 미소를 지었기에,

천공단이 환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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