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화. 멍청이 무흔신투.
밤이 깊어가는 가운데 술잔이 오갔다.
장소는 처음 만난 곳이 아니었다.
한적한 외곽, 손님이 없는 허름한 객잔을 통째로 빌려 문을 걸어잠그고 마셨다.
오늘은 피곤하기도 하고 이쯤에서 정리하려던 객잔의 주인은 많은 선금을 받자 눈에 불을 뿜으며 술과 요리를 부지런히 가져가 날랐다.
물론 돈을 지불한 건 무흔신투.
- 선배, 돈은 무조건 선배가 내는 겁니까? 매번 이런 식으로 털리고 있었던 겁니까?
시무룩해져 있는 신투를 지귀객이 위로했다.
신투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 점쟁이가 내 말년운이 좋다고 했는데 이 모양이다. 그 점쟁이 새끼, 잡으면 아가리를 찢어버릴 거다.
- 같이 찢으러 갑시다.
- 그래.
그러거나 말거나 술자리는 무르익어갔다.
천공단은 세상 낙천적이고, 은소소도 밝은 성격인 탓에 죽이 잘 맞아 오가는 술잔 속에 웃음소리가 그칠 줄 몰랐다.
당초는 대화에 끼지는 못했지만, 천공단이 무슨 말만 하면 빵빵 터져나갔다.
“우리 당초! 술잔이 비었네. 자, 한잔 받아라.”
“네, 형님.”
당초의 나이는 이제 열일곱.
나이가 많다며 은앙개는 어느샌가 형님 행세를 하고 있었다.
“근데 너, 사천당가 맞는 거지?”
“물론이죠.”
“어릴 때 무슨 사고를 당한 거냐? 머리 다친 적 있어?”
“전혀요. 한데 왜 갑자기?”
“아니 사천당가하면 날카롭고 강렬한 느낌인데, 넌 어떻게 된 게 그냥 강아지새끼처럼 빌빌대잖아.”
“헤헤…… 제가 그런 이야기 자주 듣습니다.”
당초가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 모습이 어수룩하기 이를 데 없어 은앙개가 갸웃하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그건 천공단도 마찬가지.
다들 해괴한 생물체 보듯 당초를 바라봤다.
은앙개의 말은 의도된 도발.
제아무리 형, 동생하며 편하게 말하기로 했다 해도, 첫 만남인데 ‘강아지’와 ‘빌빌대다’라는 말은 선을 넘었다.
뒤집어 엎지는 않는다 해도, 최소한 ‘뭐 이 새끼야?’라는 반응 정도는 나와야 했다. 그게 천공단의 상식이었다. 그럼 또 투닥대면서 친해지는 것이고. 한데 명색이 독하기로 이름난 사천당가의 자제가…….
‘헤헤헤?’
‘저놈 뭐야?’
‘사천당가에 별종이 나왔네.’
상식 밖의 반응이라 도리어 천공단의 관심이 쏟아졌다.
대수롭지 않게 여긴 건 은소소뿐이었다.
뭣들 하냐며 그녀는 대체 천공단이 찾고 있는 보물이 뭐냐며 이쯤에서 털어놔 보라고 말하고, 왜 대공자는 검을 두 개나 가지고 다니냐 물었지만 누구에게서도 제대로 된 답을 듣지 못했다.
그렇게 하나둘 취기가 올라갈 때,
전음이 전해졌다.
- 이 시간부터 은 소저와 당 형의 호위는 삼협입니다.
- 네, 형님. 맡겨주십시오.
후공은 항마삼협이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뒤로 하고 소리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객잔 밖으로 나오자, 무흔신투가 따라 나왔다.
- 가자.
- ……네.
무흔신투로서는 뜬금없고 영문 모를 상황.
따라 나오라는 전음을 듣고 나온 터라 괜히 걱정이 앞섰다.
‘벌써 임무인가? 다들 술 처먹고 있는데 왜 나만…….’
멀리 가진 않았다.
후공의 신형은 부근 산야에 올라 숲 안에서 멈췄다.
‘아닌가?’
무흔신투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기감을 확장해 주변을 살펴봐도 특이점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부록처럼 색관조와 금섬이 따라왔을 뿐이었다.
“대공자님, 숲에는 왜……?”
“네놈이 불만이 많다는 걸 알고 있다.”
“네? 아, 아닌데요?”
시발, 혹시 전음도 듣는 건가?
그럴 수는 없을 텐데.
그래서도 안 되고!
그러면서도 불평을 늘어놓은 건 사실이어서 무흔신투는 내심 불안함을 감출 수 없었다.
‘산에 데려온 것이…… 조용히 패려는 거였어?
“다 알고 있다.”
“아닙니다. 대공자님! 믿어주십시오! 전 맹세코 불평한 적 없습니다. 지귀객에게 물어보십시오. 찬양을 하도 해서 지귀객이 듣기 싫다고 할…….”
“조용.”
“넵!”
“네가 날 오해한 모양인데, 난 불평하는 놈을 가만 내버려두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다고 술 마시다 말고 산에 데려와서 사람을 팬다고?
그래, 내가 오해했네. 오해했어!
내가 사람 잘못봐도 한참 잘못 봤구만. 아무리 그래도 이러는 건 아니잖아! 술값도 내가 내잖아. 안 그래!
무흔신투는 분한 마음을 견딜 수 없어 눈을 똑바로 마주보며 당당히 말했다.
“열 대만 맞겠습니다!”
바로 엎드렸다.
빨리 맞자, 빨리 맞고 들어가서 술 마시자.
“일어나라.”
“네? 안 때리시는 건가요? 제 마음을 알아주시는 건가요?”
“엎드려 맞는 수준이 아니다. 난 오늘 네게 금제를 가한다.”
“네에에에에? 왜요?”
속으로 욕했다고요?
그런다고 금제를 가한다고요?
황당하고 서러워진 무흔신투가 울상이 되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라.”
“…….”
울고 싶은 심정을 억누르고 무흔신투가 가부좌를 틀었다. 대공자가 품에서 작은 옥병을 하나 꺼내들었기에 무흔신투는 서러움에 복받쳐 울기 시작했다.
독이네, 시발…….
옥병이 열리면서 그윽한 향이 퍼져나왔다.
대체 어떤 독이기에 이렇게 향기로운가.
천연적인 독은 어떤 것이든 유혹의 향을 지니고 있다는 건 강호의 상식.
옥병의 한 방울 액체가 금섬의 입안으로 쏙 들어갔다.
[그으으으으으으으윽!]
“대공자님, 아니, 두목님! 앞으로는 마음속으로도 불평불만하지 않겠습니다! 절대로요, 맹세합니다요!”
“닥치고 움직이지 마라! 움직이면 죽인다!”
그 순간, 금섬이 폴짝 뛰어올라 목을 물었다.
물린 순간 벼락같은 충격이 전신을 강타했기에 무흔신투가 비명을 내질렀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하지만 비명은 오래가지 못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어라?”
이게 뭔가?
전신 경맥에 말로 할 수 없이 상쾌한 기운이 깃들고, 본래 자신의 기운이 정화되는 한편 새로 맞이한 기운과 동화되면서 활력이 솟아났다.
“저기, 대공자님?”
금제가 아닌데요?
천년삼산보다 좋은 것 같습니다만?
비교도 할 수 없이.
“금제다. 처음에만 상쾌하다. 이제 시작일 뿐이지. 바로 운기해라.”
“……?”
그렇게 운기하길 한시진.
콰앙, 콰앙, 쾅!
신투는 몸 안에서 폭발을 몇 차례나 경험했다.
‘이건 대체 무슨 영약인가?’
바보가 아니다.
강호 경험도 누구 못지 않다.
이쯤이면 알게 된다.
금제가 아니었고, 선물이었다.
금섬이 왜 입안에 머금고 이빨로 물어 흡수시켜야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건 엄청난 기연이었다.
대체 무슨 영약이길래.
번쩍.
신투가 눈을 뜨자 신광이 뿜어지며 강렬한 광채를 발했다. 신투는 자신의 눈빛이니 볼 수는 없었지만, 느낄 수는 있었다.
‘이게 대체…….’
기운뿐이 아니다.
안력조차 현격히 높아졌다.
원래도 그에게 밤은 낮과 같았지만, 세밀함이 달라졌다.
밤의 풀숲을 오가는 작은 곤충들의 형태와 질감까지도 들여다보일 지경이었다.
“대, 대공자님……. 이게 어떻게 된 건가요? 어찌…… 어째서 이 귀한 걸 제게.”
“금제다.”
물릴 때 울었는데, 이번엔 다른 의미로 신투는 눈물이 맺혀갔다. 퉁명스러운 대공자의 음성이 다르게 들려온다.
‘선물이다.’
그렇기에 망설일 수 없다.
바로 엎드려 머리를 쿵쿵 박아댔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무흔신투.”
“네!”
“명첩에 표기된 위치는 서창 부근 목양산이다. 색관조와 함께 그 부근을 탐색하고 돌아온다. 주변 천여 장을 훑어라. 흑전은 물론이고, 흑전의 경매에 참가하는 이들도 파악한다.”
그렇게 임무가 주어졌다.
무흔신투로서는 두 번째 임무.
첫 번째 임무보다는 쉬웠다.
하지만 의미는 가볍지 않다.
천공단주는 신검을 찾는 것만이 아니다.
흑전은 과거의 흑전이 아니고, 지천과 동맹. 그렇기에 이번 경매를 위험하게 보고 있었다.
흑전을 파악한다.
초대받은 이들을 파악한다.
천공단주는 그들의 안전을 확보하고자 한다.
색관조가 날고, 무흔신투가 신형을 날렸다.
원래도 경공에 조예가 깊던 무흔신투의 신형은 말로 할 수 없이 빨라져, 마치 연기가 흐르는 것 같았다.
밤을 내달리며 신투가 물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대공자님이 왜 나한테 잘해주는 거냐?”
[까르르르르르르. 멍청이 무흔신투.]
“뭐야, 넌 아는 거야?”
[당연히 알지. 천공단이니까 그렇잖아. 멍청이 무흔신투!]
“으잉? 그럼 천공단도 다 영약을 받은 거였어?”
[나도 받았는걸! 힘이 넘쳐난다아아아아아아! 까르르르르르르르!]
“뭐야? 그런 거였어? 난 또 나만 받은 줄 알았네.”
[까르르르르르, 멍청이 무흔신투! 둔해. 주인님을 몰라도 너무 몰라!]
“야, 멍청이는 좀 빼고 말하면 안 되냐!”
[멍청이, 멍청이, 멍청이!]
[그윽, 그윽, 그으으윽!]
색관조와 금섬이 쌍으로 놀려대니, 무흔신투가 입술을 깨물며 인상을 찡그렸다. 어째 이놈의 영물들도 하나같이 천공단스러운지 모를 일이다.
“야, 그럼 말해 봐. 아까 그거 뭐였냐?”
[공청석유.]
“응? 뭐라고?”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까르르르르르르, 그거 공청석유야!]
“으어어헉!”
쿠당당탕!
너무 놀라 신형이 무너진 무흔신투가 그대로 지면에 처박혔다가 데굴데굴 굴렀다.
나무에 부딪혀 멈춘 무흔신투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색관조가 머리 위를 날며 말했다.
[까르르르르르르르! 금제다! 무흔신투! 까르르르르르르! 주인님은 재밌으셔! 웃겨!]
“……………….”
무흔신투는 할 말을 잃었다.
너무 엄청난 상황이라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공청석유라니.
그걸 왜 내게?
단지 천공단이란 이유로 그걸 준다고?
‘말도 안 돼…….’
놀랄 일이 또 뭐가 있겠냐 싶었는데, 태연히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공청석유를 가지고 다닌 것도 놀랍지만, 그걸 자신에게 건넨 건 더욱 경악스러웠다.
[까르르르르르르르. 원래 금섬이 공청석유를 지키고 있었어! 그때부터 금섬도 따라다닌 거고. 금섬이 공청석유를 머금어 흡수한 다음 깨물어 흡수시키면 효과가 몇 배가 된답니다. 까르르르르르르르르.]
[그윽, 그윽!]
금섬도 좋다고 펄쩍거렸다.
신투는 비로소 상황을 이해했다.
“아…… 내가 진짜 멍청이였구나.”
천화서고 대공자.
천공단주.
천하제일인의 신검을 다루는 이.
공청석유를 그저 건넨 이.
사람이 너무 거대해 보여 감당이 되지 않는다.
그런 줄도 모르고 자신은…….
고작 술값, 밥값, 숙박비를 독박 쓴다며 투덜거리고 있었다. 자신이 여태 모은 보물을 다 털어도 공청석유를 살 수 없거늘. 아니, 그 전에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도 없다.
경지가 순식간에 상승한 것도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공청석유여서 그랬구나.
그리고 또 하나.
대공자의 금제라는 말.
금제를 당한 것이 맞았다.
‘금제였구나. 벗어날 수 없어…….’
아니, 아니다.
이젠 벗어나고 싶지 않아졌다.
그러자 환희가 차올랐다.
외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졌다.
“하하하하하하하하! 나, 말년에 금제당했다아아아아아아아! 으하하하하하하! 점쟁이 말이 맞았어! 말년 운이 좋았던 거야아아아아! 지귀객아, 이게 천공단이다! 내가 천공단이야, 멍청한 새끼야!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무흔신투의 외침이 밤하늘에 길게 울려퍼졌다.
[멍청이, 무흔신투!]
[큭큭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