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화. 최고의 보물.
“그럼 지금부터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토끼가 경매 시작을 알렸다.
환호와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나왔다.
그와 동시에 첫 번째 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관장치를 통해서였다.
바닥이 열리며 원형의 탁자가 빙글빙글 회전하며 천천히 올라오는 광경에 환호와 박수 소리는 더욱 커졌다.
그와 함께 모두의 마음에 떠오른 건 기대감. 누구 할 것 없이 가면 너머 눈빛이 반짝였다.
원형 탁자 위 보물은 붉은 비단포에 덮여 있는 터.
토끼가 탁자에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첫 번째 경매품은…….”
그가 비단포를 걷어냈다.
“천년자패입니다.”
“오오오오!”
“와아아아아!”
“정말?”
“첫 번째 보물이?”
첫 번째부터 엄청난 보물이 나왔기에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물론 천년자패가 무엇인지 모르는 이들은 작은 소리로 무엇이냐고 묻기도 하여 웅성거림이 커졌다.
“만 선생, 천년자패가 그렇게 대단한 겁니까?”
“일단 보물에 ‘천년’이 들어가면 좋은 거네. 그냥 오오오오오, 하면 되는 거야.”
“그걸 누가 모릅니까. 천년을 산 조개가 품은 진주가 어떤 효능이 있는지 궁금해서 물은 것 아닙니까. 설마 천하의 만박선생께서 모르시는 건?”
“모르면 내가 만박자가 아니라 백박자라고 불렸겠지. 저 정도 연한의 진주는 영성을 띠게 되어있네. 사람으로 치면 천년을 수행했다고 할 수 있지. 몸에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 의식이 또렷해지고 만독을 흡수해 정화해낸다네. 어쩌면 우리가 먹은 신선폐조차 가능할지도.”
“오오오오오오!”
주양이 비로소 탄성을 발했다.
하지만 경매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11개의 보물 중 손에 넣을 수 있는 보물은 둘.
신검을 제외하면 하나밖에 선택할 수 없는 것이다.
경매의 첫 보물이 이 정도이니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일부 가문들은 생각이 달랐다.
다들 대부호인 만큼 독을 정화해내는 보물을 원하는 가문은 제법 되어, 천년자패의 경매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근자에 섭혼의 공능자가 강호를 뒤흔든 사건을 다들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천년자패의 영기는 그와 같은 섭혼에도 대항할 수단이 되며, 마기와 귀기 앞에서도 마음의 심지를 유지할 수 있게 합니다. 또한 만독을 정화하니, 천년자패를 취하게 되는 가문은 대대로 수호영석을 얻은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토끼의 설명이 불을 붙인 것도 한몫했다.
최종적인 경합은 11번과 23번이었다가 결국 천년자패는 11번 호랑이에게 낙찰되었다.
낙찰받은 가문은 아래로 내려가 천년자패를 눈으로 볼 수 있었고, 동행인과 함께 진품 여부까지 확인한 후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곧바로 두 번째 경매품이 등장했다.
비단이 열리며 나타난 건 만년설삼이었다.
백 년, 이백 년 되는 산삼 정도는 도라지 보듯 하는 가문들이라도 만년설삼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특히 설삼은 그 효능이 더욱 탁월하다고 알려져있고, 다수의 가문이 하나는 영약류, 다른 하나는 신병이기를 취하려 했기에 경쟁이 치열했다.
최종 낙찰은 38번 가문이었다.
환호성을 내질렀지만, 부러워하거나 아쉬워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이제 겨우 두 번째인 것이다.
“세 번째 보물을 소개하겠습니다. 세 번째는 구엽구화초입니다. 구엽구화초의 효능에 대해 먼저 말씀을…….”
토끼가 효능에 대한 설명을 길게 늘어놓았다.
아홉 개의 입사귀와 아홉 개의 꽃이 맺히는 영초. 효능은 잎과 꽃이 아닌 뿌리. 무림인이 복용할 경우 큰 내력 증진을 맛보게 되고, 일반인이라도 간과 심장에 특효를 발휘한다는 내용이었다.
워낙 명성 높은 영초인 탓에 열두 가문이 격돌했다.
- 대공자, 놀랍지 않나요?
은소소가 손글씨로 뜻을 전했다.
- 동감입니다. 보물을 찾는 재주가 실로 놀랍군요.
후공은 전음으로 답했다.
그저 공감해주는 의미로 말한 건 아니었다.
이제 세 개가 공개되었을 뿐인데 어느 것 하나 간단히 볼 수 없는 보물인 것이다.
- 맹주의 신검이 경매품으로 나올까요?
- 나올 겁니다.
-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후공이 빙긋 미소 지었다.
- 소저께서도 지금 이 모든 게 흑전의 장난이란 건 알고 있지 않습니까.
- 하지만 신검은 특별하잖아요.
그녀가 왜 모르겠는가.
경매물품이 놀랍긴 해도 언제 상황이 돌변할지 모른다. 하지만 신검은 천하제일인의 유품이자, 최고의 보물. 굳이 그렇게까지 할까 싶은 것이 은소소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후공은 이미 쾌와 연결되었다.
쾌는 지하 통로로 옮겨졌고,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흑전이 본색을 드러내는 건 쾌를 선보인 다음일 것이다.
모두의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부릅떠질 때,
모두가 갖고 싶어 두 눈에 열망이 차오를 때, 찬물이 쏟아져 내릴 것이다.
- 어쩌면 흑전주…… 상관월은 상처가 많은…… 연약한 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은소소는 내심 탄성을 발했다.
지금의 상황, 그리고 이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흑전의 계책을 알고 있기에 무슨 뜻인지 이해되었다.
참가한 이들은 모두 부유한 가문.
세상에 대한 원망, 자격지심의 극단, 이상한 복수. 이런 문장들이 그녀의 마음에 떠올랐다.
최고의 환희를 주고, 그 순간 추락시킨다.
그렇다면 신검이 등장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 소저께서도 경매에 참여하는 게 좋겠습니다.
- 그럴까요?
은소소의 눈이 웃었다.
그 눈매가 귀여워 후공도 그만 따라 웃고 말았다.
그렇게 참여하려고 했지만, 네 번째 보물에는 시큰둥해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장내는 잠시 소란이 일다가 깊은 침묵에 빠졌다.
“이번 경매에 참여하실 분이 아무도 없습니까? 영악초는 섭취가 난해할 뿐 그 효능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고대 문헌에는 육각망, 독양충과 함께할 경우 삼악을 이루게 된다고 쓰여 있습니다. 삼악의 공능은 이루 말로 할 수 없다고 알려졌…….”
“누굴 바보로 아는 거요!”
“헛소리 말고 빨리 지나갑시다!”
“삼악이고 나발이고 먹을 수도 없는 걸 구해다 어디에 쓴다는 말이오!”
“독양충이랑 육각망까지 구해오든가!”
가문들과 동행한 이들 중 성격이 불같은 이들이 신경질을 부렸다. 몇몇 가문은 오래 전에 구해놓고도 아직까지 그걸 못 먹고 있다고도 소리쳤다.
토끼가 헛기침을 연신 토해내고는 이내 크게 외쳤다.
“자, 그럼 다섯 번째 보물을 소개하겠습니다! 기대해 주십시오. 이번에는 모두가 갈망할 만한 보물입니다.”
그렇게 소개된 다섯 번째 보물은,
명청령수(明淸靈水).
주안과라고 불리는 과실의 액.
반달 형태의 과실로, 오백 년에 한 번 하나의 열매가 맺히는데 앵두보다 작다. 그 과실의 액을 복용한 경우 눈은 밝아지며 피부는 젊어진다. 또한 젊은 사람은 피부가 늙지 않으니, 나이가 들어도 젊음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영악초로 차가워졌던 분위기는 반전되었다.
뜨거운 반응 아래 경매에 불이 붙었다.
그건 은소소도 마찬가지였다.
이 상황이 단지 유희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그녀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선우 공자, 이건 꼭 제가 가져야 해요!”
“………………네.”
후공이 얼떨떨할 정도.
연신 번호판을 들어 보이며 값을 올려 경매에 참여하는 은소소를 보며 헛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아야 했다.
나쁠 건 없었다.
덕분에 꽤나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우러난 것이다.
낙찰은 17번 가문.
은소소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아쉽네요.”
“하하하하하!”
경매는 여섯 번째로 넘어갔다.
“자, 이번엔 깜짝 놀라게 할 보물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다름 아닌, 오백 년 된 금구의 내단입니다.”
“오오오오오!”
“금구의 내단이라고?”
“허어…… 오백 년이라니.”
금거북이의 내단.
흔히 천년금구가 대단하다지만, 오백 년도 희귀한 건 마찬가지였다. 연수를 정확히 오백 년이라 표현한 점도 신뢰를 높였다.
명청령수로 달구어진 분위기는 금구의 내단의 등장으로 더욱 뜨거워졌다.
금구의 내단은 1번 참가자에게 돌아갔다.
오늘 경매 중 최고가가 나왔고, 그 장본인은 주양.
그럼에도 시큰둥했다.
“이게 뭐 대단한 거라고.”
“지랄하고 있네. 그럼 나 줘.”
만박자가 인상을 쓰자, 주양이 실실 웃었다.
그러는 사이,
일곱 번째 보물이 등장했다.
이번엔 신병이기였다.
“이번 보물은 ‘화섬비’라 칭하는 한 쌍의 비수입니다. 과거 칠백여 년 전 화섬존자가 다루던 독문병기입니다. 화섬존자는 이 한 쌍의 비수로 천하를 진동시켰고, 그 당시 강호의 십대 고수 중 한 명으로…….”
손가락 끝에서 손목까지 오는 정도의 비수는 유난히 하얗게 빛났다. 이것을 제외하면 남은 보물은 넷으로 줄어든 상황인 터라 경쟁이 심화되었다.
경매는 빠르게 이어졌다.
여덟 번째 보물은 삼백 년 전 도왕의 도.
청강도.
도면에 떠오른 푸른 빛이 인상적이었고, 토끼가 직접 시연하기도 했다. 도에 내력을 불어넣자, 푸른빛이 시릴 정도로 뿜어져나왔다.
아홉 번째는
여의갑.
쉽게 말해 장갑이었다.
하지만 보물이라 칭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얇고 투명하여 존재 여부를 알 수 없고, 강기로도 손상시킬 수 없을 정도의 강도를 지녔다.
그러한 설명과 시연에 모두가 열렬한 반응을 보였지만 후공은 아니었다.
흑전이 유희를 즐기고 있지만,
그건 후공도 마찬가지.
들떠있는 오십여 가문을 보며 흑전이 토끼 가면 안쪽에서 비웃고 있었지만, 그런 흑전도 후공에게 비웃음을 사고 있을 뿐이었다.
서두를 필요는 없다.
상관월은 아직 멀리 있다.
부근에 있는 흑전의 병력은 총 마흔다섯.
경매를 진행하는 토끼는 두 번째 만나는 토끼다.
첫 만남 때 상관월 곁에 있던 터라, 천향사주의 무향의 선이 선명히 드러나 있다.
지하에서 기관장치를 움직이는 이들이 다섯.
그리고 경매장 외곽을 두르고 있는 이들이 마흔.
대수로울 건 없다.
문제는 변수.
가문들의 동행인 중 누가 산공독을 극복해냈는가.
그 내부 변수를 선조치할 필요가 있다.
열 번째 보물이 지났다.
하나의 화폭이었다.
미인도.
신비로운 분위기의 미인이 시냇가 바위 위에 앉아 시선을 하늘로 향하고 있는 그림이었다.
그리고,
“어느덧 마지막 하나의 보물만 남겨둔 상황이 되었군요.”
토끼의 목소리가 격정적으로 변했다.
최후의 보물인 만큼 모두의 주목도가 남달랐다.
숨소리조차 잦아든 가운데 토끼의 말이 이어졌다.
“열한 번째 마지막 보물은 역대 본 전의 경매 중에서도 최고의 보물이라 할 만합니다.”
비단 보자기가 벗겨진 순간 검 한 자루가 모습을 드러냈다.
장검과 단검의 중간 길이.
토끼가 검집 채 두 손으로 잡고 위로 들어 올렸다.
승천하는 용이 양각된 검집.
검이 뽑혀나오며 야명주의 빛에 찬란히 빛났다.
‘역대 흑전의 보물 중 최고의 보물이라고?’
‘저 검이?’
‘어떤 검이기에?’
모두의 시선이 검에 닿았다.
토끼가 말을 이었다.
“이 검은 천하제일인의 신검! 무림맹주 후공의 검입니다!”
순간, 사방이 그야말로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아무도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더 큰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각자가 저마다 내면에서 부르짖는 소리.
‘저걸 어떻게……?’
‘말도 안 돼……!’
‘저건 내 거야!’
‘전설!’
‘갖고 싶어!’
‘무, 무서워…….’
그런 소리에 스스로 귓청이 떠나갈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