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화 서고 대공자-241화 (241/460)

241화. 쾌는 빠르다.

천하제일인의 신검.

신검은 세 자루.

장검, 중검, 단검.

그건 천하가 다 아는 사실.

본 적은 없어도 들은 바가 있다.

그중 하나가 눈앞에 나타났기에,

‘갖고 싶어!’

‘저건 내 거야!’

대다수는 이런 열망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그 열망의 유효기간은 짧았다.

마냥 이성을 상실하고 있기엔 신물이 너무나도 엄청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저걸 손에 넣었단 말인가?’

‘무림맹에 있어야 할 신검이 왜?’

‘사고 팔 수 있는 물건이 아니잖은가.’

‘훔쳤다고? 그걸 왜 우리 눈앞에 드러내는가……?’

분위기는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보물이 선을 넘은 것이다.

제아무리 눈치가 둔한 사람이라도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건 주양도 마찬가지.

“선생, 진인…….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죽음.”

만박자가 짧게 답했다.

주양은 이해했기에 말문이 막혔다.

과거의 경매와 다른 참가 조건.

복용한 산공독에 생각이 이르면, 이해하고 싶지 않아도 이해가 되고 만다.

이걸 왜 공개하는가?

산공독으로 모두가 농부 같아진 지금, 누가 흑전에 대항할 수 있을 것인가?

보물에 들떴던 모두의 마음은 절망으로 물들어갔다.

그 모습에,

토끼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하! 모두 놀라셨을 테지요.”

모두가 간절히 마음으로 외쳤다.

농담이길.

농담이어야 해.

아니라고 해!

좌중은 그런 간절한 눈빛이 되어 다음 말을 기다렸다.

토끼의 말이 이어졌다.

“네, 농담이 아닙니다. 말씀드린 대로 이 검은 천하제일인의 세 자루 신검 중 하나입니다.”

“…….”

“…….”

“하아…….”

깊은 탄식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신검의 이름은 모릅니다. 들은 바가 없습니다. 흑전은 동맹을 통해 우연히 신검을 얻게 되었고, 진품임은 너무나도 명확합니다. 천하제일인이 연성한 신검은 놀랍게도 내력이 깃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뭇잎사귀에도 내력이 깃들건만, 천하제일인의 신검은 예외입니다. 신검이 자체적으로 영성을 지녔다고 볼 수 있으니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놀라는 이는 없었다.

그저,

꿀꺽…….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만 여기저기서 들려올 뿐.

하지만 용기 있는 자는 있기 마련.

“지금 뭐 하자는 건가? 흑전은 무림맹과 대적할 생각인가?”

호랑이 가면 쪽에서 목소리가 나왔다.

토끼가 고개를 저었다.

“오해십니다. 안심하세요. 무림맹은 신검이 사라진 걸 모릅니다. 아마도 영원히 모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들었는데?”

“하하, 그래서 산공독을 복용하게 한 겁니다.”

“여기 있는 모두를 죽이겠다는 건가?”

“그렇게 되지 않겠습니까? 하하하하하하!”

토끼의 웃음소리와 함께 분지 외곽을 수비 형태로 두르고 있던 40여 검수가 장내를 향해 돌아섰다. 절도 있는 동작에 처억, 하는 소리가 무겁게 들려왔기에 몇몇은 벌써부터 눈물을 터뜨렸다.

“하지만 너무 염려 마십시오.”

토끼가 검을 검집에 집어넣으며 좌로 우로 천천히 거닐며 말을 이었다.

“여러분께 기회가 아주 없는 건 아닙니다. 지금부터 이 신물을 놓고 시합을 벌이게 됩니다. 승리를 쟁취하는 이는 삶을 이어가게 되겠죠. 새로운 방식의 경매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각 가문을 대표해 한 사람이 출전. 가장 나이가 어린 쪽이 나서게 됩니다. 자, 지금부터 하는 말은 중요하니 귀를 열고 잘 들어주십시오.”

모두가 주목하고 있는 걸 확인한 토끼가 말을 이었다.

“출전자들은 왼팔과 두 다리가 잘립니다. 오른팔만 남습니다. 그 상태로 서역의 길가에 버려지게 됩니다. 기간은 2년. 2년이 지났을 때, 어떤 원망도 좌절도 없이 해맑은 웃음을 지을 수 있다면 승리의 요건을 갖춘 것으로 봅니다. 우승자는 여러 명이 될 수도 있고, 아예 없을 수도 있겠군요.”

우승자를 배출한 가문은 모두 살게 된다.

그러니 출전자는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말을 맺으며 토끼가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누가 따라 웃을 수 있을까.

울음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말을 듣는 중에 그 비참한 상황이 머리에 떠오른 탓이었다. 서역의 길바닥에서 보낼 참혹한 2년.

아들과 딸과 함께 참석한 가주들이 울부짖기 시작했지만, 토끼의 내력이 실린 잔혹한 웃음소리가 울음소리를 덮어버렸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하지만 웃은 건 토끼만이 아니었다.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

“하하하, 이 새끼들 아주 재밌는 새끼들이네!”

좌중에서 세 사람의 웃음이 흘러나왔기에 토끼가 웃음을 뚝 그치고 갸웃했다.

모두의 시선도 세 사람에게 향했다.

개구리 가면을 쓰고 있어 염라삼살이라는 걸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희망을 갖기에 충분했다.

세 사람이 낸 웃음소리에 내력이 실려 있는 것이다.

쩌렁쩌렁 울리는 것이 귀청이 떠나갈 정도였다.

그로 인해 한 줄기 희망이 떠올랐다.

해독해냈구나!

어쩌면…….

산공독을 해독해낼 정도면…….

제발……. 부디…….

그런 소망에 답하듯 염라삼살이 걸음을 뗐다.

쿠웅! 쿠웅! 쿠웅!

딛는 걸음 걸음마다 계단에 금이 갔다.

비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우리도 꽤나 잔혹하다 자부하고 있었건만, 네놈들은 해도 해도 너무하는구나. 뭐 서역? 2년? 팔다리? 하하하하하, 웃음을 참느라 얼마나 곤혹스럽던지.”

“허어…… 놀랍군.”

토끼가 반응했다.

말로는 놀랍다고 했지만 어투는 아니었다. 대신 검을 들고 있지 않은 손을 들어올려 펼쳐보였다.

펼친 다섯 손가락에서 엄지가 접혔지만,

염라삼살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흐흐흐, 우리가 만독불침을 이룬 지가 언제인데 한낱 신선폐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검지까지 접혔다.

“흐흐, 너희 덕분에 일이 쉬워졌으니 고맙다고 해야겠군.”

중지가 접히고,

“흐흐흐, 이곳에 여기 있는 모두를 상대하기는 버거웠거든. 그렇지 않나, 관허법사, 일지노괴? 아! 설응자와 불평진인도 있었지? 흐흐흐흐…….”

별호가 불려진 이들은 눈을 빛냈다.

염라삼살임을 알아봤다.

하지만,

과연 해독해냈는가?

그런 의문이 남는다.

돈을 걸어야 한다면 ‘아니다’ 쪽이었다.

흑전의 신선폐는 단계가 있다.

그리고 신경 쓰이는 건 토끼의 접히고 있는 손가락.

손가락은 이제 하나가 남았다.

접혀간다.

그와 동시에,

염라삼살의 신형이 토끼를 향해 짓쳐들었다.

강대한 장력을 머금고 일격에 으깨버릴 듯한 기세 속에 토끼의 마지막 손가락이 접혔다.

그 순간,

“으윽!”

“크어어억!”

“커헉!”

염라삼살이 허공에서 피를 토하며 신형이 무너졌다.

짓쳐들던 속도에 따라 처박혀 사납게 앞으로 굴러갔다.

토끼는 바로 앞까지 굴러와 가슴을 움켜쥔 채 연신 선혈을 토해내는 염라삼살을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곤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작게 중얼거렸다.

“쯧쯧, 당신들은 답답하군요. 사람이 갑자기 손가락을 세고 있으면 위화감을 느껴야 하지 않습니까?”

“이, 이게…… 어떻게……?”

“우, 우린…… 만독불침이거늘.”

“무, 무슨 독이기에…….”

토끼는 무시했다. 곧 죽는 놈들 따위.

이내 좌중을 향해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께선 이쯤이면 이해하셨을 것이라 믿습니다. 여러분, 경매에 나온 보물 중 어느 것 하나 진귀하지 않은 것이 있었습니까?”

“…….”

“…….”

“…….”

이해했기에 어느 누구도 의미를 되묻지 않았다.

희귀한 보물을 경매품으로 내놓을 수 있는 흑전.

그 흑전이 독을 쓴다면 그 독이 간단하겠는가.

“여러분들 중 만독불침에 이르렀다는 자부심을 가진 이가 있다면 서둘러 잊어버리도록 하세요. 저는 또 염라삼살이 공청석유라도 복용한 줄 알았지 뭡니까. 뭐 그렇다 해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만.”

토끼의 말은 희망을 말살하는 것이었다.

신선폐의 작용이 두 단계를 지녔다는 걸 간파한 고수들조차 엄두를 내지 못했다.

“커억!”

“컥컥!”

“크어어억!”

고통에 겨워하던 염라삼살이 마지막 비명과 함께 축 늘어졌다. 그것을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울음소리가 커졌고, 살려달라는 비명과 흐느낌이 이어졌다.

토끼가 검지손가락을 입에 가져갔다.

“쉿!”

그 소리조차 내력이 실린 탓에 크게 울려 퍼져, 절규와 울음이 잦아들었다.

토끼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여러분, 진정하세요. 좌절은 언제나 환영입니다만, 좌절에도 순서가 있습니다. 첫 희생양이 되고 싶다면 계속 울부짖어도 좋습니다만, 굳이 그러실 필요는 없겠지요?”

그 말에는 나직이 흐느끼던 소리조차 사라졌다.

토끼의 말이 이어졌다.

“사실 첫 번째 희생양은 정해져 있습니다. 아, 아니 희생양은 아니군요. 실언했습니다. 팔다리만 자르는 건데 제가 죽이는 것처럼 말했습니다. 자, 그럼 영광의 첫 번째 인물은…….”

토끼의 시선이 우측편 중간 계단으로 향했다.

개구리 가면.

정확히는 후공.

“……천금서고 선우진. 자리에서 일어나라.”

후공은 갸웃.

그때 은소소가 손을 잡아왔기에 돌아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개구리 가면 탓에 은소소는 그 미소를 다 볼 수 없었지만, 웃는 눈매는 볼 수 있었다.

그제야 은소소가 손을 놓았다.

후공은 다시 시선을 앞으로 옮기며 미소를 머금은 채 입을 열었다.

“내 팔다리를 자르겠다고?”

“천금서고는 천재 가문이라 들었건만, 의외로 말귀를 못 알아듣는군.”

“후후, 넌 재밌는 말을 하는구나.”

토끼가 정지 상태인 듯 굳었다.

그러다 갸웃.

바라보고 있던 모두도 같았다.

토끼처럼 의문을 떠올렸지만, 여유있는 목소리에 한 줄기 기대감을 떠올렸다.

그중에는 눈이 휘둥그레진 이들도 있었다.

‘으잉?’

‘대공자?’

‘천공단주?’

왜 천금서고 선우진의 목소리가 친구 같은가.

그렇게 주양의 눈이 커졌고, 만박자와 불평진인도 가면 속에서 어안이 벙벙해졌다.

대공자만의 특유의 목소리가 있다.

나직하면서도 거만한 음성.

부드러움으로 두르고 있어도 그 특유의 거만함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누군가 따라 한다고 따라 할 수 없는 기묘한 분위기.

그렇게 바라보자니 체형이며 태도까지 같아 보였다.

‘대공자……!’

안휘 대륙전장의 왕소한과 부장주도 ‘설마?’라는 말을 떠올렸다.

놀란 건 그들뿐만은 아니었다.

후공 뒤편에 앉아 있던 중원칠괴 중 일지노괴도 소름이 돋아나며 머리털이 곤두섰다.

‘이게…… 왜…… 똑같지?’

여태 왜 몰라봤을까.

경매에 취하고, 신검의 등장에 놀라기 바빠 미쳐 알아보지 못했다.

검집의 문양이 같다.

토끼가 들고 있는 신검의 문양과 천금서고 선우진이란 이가 등에 메고 있는 검집의 문양이 같다.

‘승천하는 용의 모양이……. 설마?’

신검의 회수자라고?

경악스러운 상황에 놀라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영문을 모르는 이들과 경악에 찬 이들이 그렇게 바라볼 때, 토끼가 입을 열었다.

“재밌긴 하지. 지금도 재밌지만, 팔다리를 잃은 널 바라보면 더 재밌을 것 같구나.”

“네가 자르는 건가?”

“당연히.”

“좋군. 이해했다.”

후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변수는 제거되었다.

이쯤이면 염라삼살 외 다른 변수는 없다.

그건 곧 거칠 것이 없다는 뜻.

그런 주인의 의식에 쾌가 반응했다.

쾌의 기다림은 길었고, 분노는 이미 극에 달했다.

오랜만에 만난 주인.

번과 친이 돌아온 것도 알고 있다.

그리고 감히 주인을 겁박하는 이.

그가 검집을 쥐고 있으니,

스아아악!

자줏빛 광채와 함께 빠져나와 휘저었다.

번쩍이는 빛이 세 차례.

모두가 보았다.

번개가 치듯 자줏빛이 토끼를 휘감아버리곤 날아갔다.

후공이 손을 내미니,

처억!

쾌가 돌아왔다.

너무 놀라면 말을 잊는다.

좌중이 그랬다.

내력이 깃들지 않는다는 신검이 왜 멋대로 날아가는가?

그것도 천금서고의 서생에게?

놀란 건 좌중만은 아니다.

토끼도 어안이 벙벙해 눈이 커졌다.

‘왜……?’

의문은 이어지지 못했다.

‘으으으으……. 내 팔…… 내 다리가…….’

토끼는 뒤늦게 알아차렸다.

빛이 번쩍였던 것이…….

틀림없었다.

팔이 그리고 다리가 시큰거린다.

“으으으으으…… 안돼…….”

너무 빨라 토끼는 팔다리가 잘려나간 걸 이제야 깨달았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다리가 무너지며 토끼가 비명을 내질렀고, 그 비명과 함께 두 팔도 스륵 떨어져나갔다.

피가 뿜어지는 광경에 모두가 놀라 입을 틀어막은 순간,

세 줄기 자줏빛 광채가 외곽으로 뻗어 나갔다.

빛이 번쩍일 때마다 검수들의 비명이 터져나왔다.

“이, 이게 무슨……?”

“대체…… 누, 누구야?”

누구인가?

왜 모두 자줏빛인가?

누구할 것 없이 의문을 발할 때,

“천공단주!”

“대공자!”

자줏빛 광채로 인해 확신하게 된 만박자와 불평진인이 크게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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