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화 서고 대공자-242화 (242/460)

242화. 언젠가부터 강호의 별.

‘천공단주?’

‘천화서고 대공자라고?’

만박자와 불평진인의 외침에 장내가 술렁였다.

강호에 몸담고 있는 이들 중 누가 있어 천공단주를 모르겠는가.

천공단주는 천화서고 대공자.

천룡의 가문들이 그를 비호하고,

소요와 종남의 은인.

강호 세력 절반이 그의 뒤를 받치고 있다는 말까지 흘러나오고 있을 정도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신뢰의 이름.

언젠가부터 강호의 별.

‘정녕…… 그 천화서고 대공자란 말인가?’

그랬으면…….

그런 것이면 좋겠다…….

다른 누구도 아닌 천화서고 대공자였으면.

모두가 그런 바람을 갖고 한 사람을 바라봤다.

확인하고 싶어하고, 안심하고 싶어하는 눈빛.

그 마음을 후공이 모를 리가.

즉시 두건을 젖히고, 개구리 가면을 벗었다.

그렇게 드러나니,

“으하하하, 맞잖아!”

“와아아, 대공자!”

만박자와 불평진인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뒤이어 주양도 기쁨에 차 소리쳤다.

“여러분, 천화서고 대공자입니다! 저와는 죽마고우입니다!”

얼굴이 드러났고, 세 사람이 확인.

그것이면 증명으로 충분했지만, 그곳엔 안휘의 대륙전장도 있었다. 부장주와 그의 조카 왕소한도 웃음을 터뜨렸다.

“대공자!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하하하하, 범 형!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확인이 넘쳐나니,

비로소 모두가 안도했다.

하지만 후공으로선 이제 시작일 뿐.

한가하게 인사나 나누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외곽의 사십여 검수는 번과 쾌, 검령에 꿰뚫려가며 초토화되고 있지만 흑전의 핵심 전력은 남아있다.

“모두 무대 쪽으로!”

내력을 실어 말했다.

왜 그래야하는지는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한순간,

카르르르릉!

무대 지면을 뚫고 자줏빛 광채 하나가 솟구쳐올랐다.

“헉!”

“뭐, 뭐지?”

뭐가 아니라 친.

친은 허공을 한차례 선회하다 방향을 틀어 다시 지하를 파고들었다. 땅을 헤집고 나아가 무대 아래쪽 기관장치를 다루던 흑전의 무리를 쓸어갔다.

옅은 비명이 지하에서 터져나오고,

그와 동시에,

구르르르르르르르르!

지귀객이 먼저 땅을 뚫고 나왔고, 그 뒤를 이어 천공단이 솟구치며 연달아 튀어나왔다.

모두 영문을 몰라 바라볼 때, 천공단이 소리쳤다.

“모두 두건과 가면을 벗어요!”

“이제부터 지하의 통로를 따라 피신합니다!”

“뛰어요, 뛰어!”

누가 되었든 농부.

그런 모두를 대피시켜야 할 시간.

천공단은 말로만 재촉하지 않고, 신형을 날려 뒤쪽에서 무대로 달려오는 이들을 안아들고 빠르게 이동시켰다.

천공단이 이동을 돕는 가운데 지귀객은 지하로 진입할 수 있는 입구를 연속해서 만들어갔다.

움직임은 거침없다.

모두 사전에 계획된 일이다. 예행연습까지 충분히 행했기 때문에 머뭇거림 따윈 없었다.

후공도 무대로 신형을 옮겼다.

쾌에 의해 사지가 잘려나간 토끼 앞.

바닥에 떨어진 토끼의 왼팔이 쾌의 검집을 아직 쥐고 있기에 허공섭물로 검집만 끌어와 손에 쥐었다.

그런 다음 토끼를 바라보자니,

“커허헉…… 너, 너는…….”

왜 이렇게 된 건지 아직까지 영문을 알 수 없는 토끼가 널브러진 채 컥컥거리며 말을 걸어왔다.

후공으로선 걸리적거릴 뿐.

퍼억! 대답 대신 발길로 날려버렸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토끼가 비명과 함께 떠올라 날아갔다.

그런 가운데 외곽의 사십여 검수들을 모조리 도륙한 번과 쾌, 검령이 되돌아왔다.

척, 척!

번과 검령은 검집으로 들어갔고, 쾌는 날아들며 솟구쳐 날아가는 토끼의 목을 한차례 휘감아 목숨을 거둔 다음, 번개같이 검집으로 돌아갔다.

뒤를 이은 건 친.

지하를 쓸어버린 친도 카르르르릉, 소리를 내며 날아들어 주인의 소매자락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모두 돌아왔기에,

우우우우우우우웅!

번.쾌.친이 울었다.

비로소 모두가 주인을 다시 만난 것이다.

비로소 서로가 만난 것이다.

우우우우우우우우웅!

덩달아 검령도 가만히 있기 뭐해서 함께 울었다.

원래 없던 녀석이 함께 소리를 냈지만, 번쾌친은 환영했다. 동류. 주인의 의식이 깊이 스며들어 있기에 어떤 이질감도 없이 검령을 반겼다.

후공은 그저 미소.

검연에 의해 이어진 탓에 번쾌친의 격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으므로 그대로 두었다.

그 광경이 신비롭고 경이로워 모두 놀란 눈으로 대공자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신비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왜인지 대공자가 자신들을 지키는 방패처럼 서 있는 느낌.

그 짐작대로였다.

후공의 시선은 멀리 한 사람에게 닿아있었다.

흑전의 진정한 힘.

진정한 어둠.

밤의 어둠에 잠긴 산야이고 거리는 멀었지만, 후공은 바로 눈앞에 있는 것처럼 상관월을 볼 수 있었다.

그건 상관월도 마찬가지.

서로가 그렇게 바라봤다.

후공은 무심했고,

상관월은 웃고 있었다.

**

“흐흐흐흐흐흐…….”

상관월은 웃을 수 밖에 없다.

자신의 계획이, 그려놓은 그림이 찢겨나간 것이다.

모든 의문도 비로소 풀렸다.

그래, 이제야 모든 것이 이해된다.

천금서고의 서생이 아니었다.

천화서고 대공자.

강호의 뒤흔드는 명성을 생각해보면 이해된다.

직접 겪으니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 놈인가.

적수라 해도 감탄이 나올 지경.

첫 만남의 병신같은 모습이 연기였다니.

그 연장 선상에서 경매 참여를 망설인 모습도 연기.

드러난 무위로 보건대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잠입을 위해 서슴지 않고 개처럼 납작 엎드렸다. 그러기가 쉬운가. 그저 놀라울 따름. 그래서 자꾸 웃음이 난다.

대사부도 놈이 빼돌렸을 테지.

어떤 수단을 쓴 것인가?

그 주변은 샅샅이 살폈거늘,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거늘.

알 수 없다.

하지만 놈은 대사부를 통해 모든 상황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래, 그래서였겠지.

두 영물의 존재.

새와 두꺼비.

두 영물이 누구의 명을 받고 자신을 추적했는지도 이해했다.

놈의 영물이다.

주인이 대단하니 영물들의 대단함도 이해된다.

그렇게 놈은 속속들이 정보를 수집하고, 지금 이 순간을 준비하고 있었다.

놀라움은 그것만이 아니다.

단계를 둔 신선폐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극복해냈고, 천하제일인의 신검을 자유자재로 다룬다.

놈은 신검의 회수자인가?

지천을 지나, 지천을 이미 훓고 흑전에 닿은 것인가?

어떻게?

지천이 이미 놈에게 당했다고?

아니, 지천이 놈의 편으로 돌아선 건가?

천공단이 땅을 파고 나왔으니 그런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떻게?

지천은 점창파 장문인의 딸을 인질로 삼고 있어 건드릴 수 없었을 텐데?

하지만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이 결과를 말해주고 있다.

그래서 경이롭다.

도대체 어떤 식으로 지천을 파훼한 건가?

상관월로서는 당연한 의문.

지천에 사로잡힌 지귀객이 천공단과 함께하게 되었음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노릇.

“흐흐흐…….”

뭐가 됐든 어떠한가.

상관월은 웃음을 흘렸다.

노래를 흥얼거렸다.

“흐흐흐흐…… 나의 송아지……. 나의 보물 송아지…….”

노래는 최근 떠올랐다.

누구의 노래인지는 모른다.

어디서 들은 노래인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문득 자신도 모르게 이 음률과 노래가 떠올랐고, 한번씩 흥얼거리고 있었다.

“나의 천재 송아지~~. 네가 있어 내가 있고, 너는 내 생애 최고의 보물.”

잔잔한 음률.

이 노래가 좋다.

이 노래를 부르면 기분이 좋아진다.

이 노래를 부르면 왜인지 눈물이 날 것 같다.

무엇이든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이상한 일이다.

“나의 송아지……. 나의 보물 송아지……. 흐흐흐흐……. 인정하마. 천화서고 대공자.”

그래 인정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는 너무도 훌륭했다.

지금까지는…….

후후, 그러나 너의 약점은 너무 크고 명확하구나.

놈은 사람들을 지키려 한다.

지켜야 할 이가 있는 자를 상대하는 것만큼 쉬운 일이 없다. 그런 오만을 품고 있는 놈은 쉽게 무너진다.

“흐흐흐…….”

상관월이 신형을 쏘아갔다.

그 뒤를 좌호법과 다섯 장로, 그리고 십이각주가 질주했다.

너의 마음을 뒤흔들어주마!

너의 계획에도 균열을 내주마!

네가 지키려는 이들을 잃게 해주마!

상관월의 등 뒤에서 두 개의 초승달이 떠올랐다.

월적하!

상관월이 우수를 앞으로 내뻗은 순간, 초승달이 경매장을 향해 쏘아져갔다.

*

흑전의 남은 핵심 전력은 열아홉.

이미 후공도 대응하고 있었다.

천공단엔 도둑놈이 있다.

그것도 대도.

무흔신투가 경매품으로 나온 보물들을 싹 쓸어왔고, 그중 활용된 건 천년자패.

“대공자님!”

후공이 받아들고 몇 사람을 지목했다.

지목된 이는 다섯.

관허법사, 설응자, 일지노괴.

거기에 더해 만박자와 불평진인이 불렸다.

누구 할 것 없이 강호 경험이 풍부한 터라 바로 의미를 이해했고, 이 상황에서 딴 마음을 품는 이들도 아니었다.

먼저 나선 관허법사가 신선폐에서 빠르게 벗어났다.

천년 진주의 효용은 놀라워, 손에 잠시 쥐고 있는 것만으로 독기를 흡수해 소멸시켰다.

관허법사의 두 눈에 신광이 돌아왔고, 뒤를 이은 건 설응자.

“서둘러야겠구려!”

설응자는 시선을 든 채로 천년자패를 쥐었다.

스아아아아아아앙!

난폭한 기음을 내며 두 개의 초승달이 무서운 속도로 쏘아져오고 있는 것이다.

두두두둑!

초승달이 지나는 곳마다 나무가 속절없이 잘려나간다.

그 광경은 여러 가문들의 눈에도 들어왔다.

이백여 명 중 절반이 땅 속으로 대피해 이동 중이었지만, 아직 백여 명은 남은 상황.

천공단이 돕고 있다 해도 무공을 모르는 이가 태반이고, 무공을 지닌 동행인들도 농부나 다름없으니 민첩한 움직임을 발휘할 수 없었다.

스아아아아아아아앙!

멀리 있던 초승달이 맹렬히 가까워지자, 사람들의 눈이 커지고 몸이 굳었다.

“어, 어떡해……?”

“죽, 죽어!”

“으으으으…….”

냉정을 유지하고 있는 건 천공단과 지목당한 이들뿐.

천공단은 더한 일도 겪었다. 그렇기에 이 와중에도 안심시키는 말을 하며 대피시키는 데 주력했고, 지목당한 관허법사며 설응자 등은 막연하지만 대공자에 대한 믿음을 가졌다.

초승달이 짓쳐듦에도 대공자가 너무 태연한 것이다.

그저 물끄머리 바라볼 뿐인 모습에서 태산을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토끼를 순식간에 썰어버린 이.

천하제일인의 신검을 다루는 이.

그런 이를 앞에 두고 무엇을 주장할 것인가.

이제 초승달은 거의 지척.

스아아아아아아아앙!

더불어 다섯 개의 검이 초승달을 뒤따라 쏘아졌다.

이는 다섯 장로의 이기어검.

다섯 자루의 검은 우회.

경매에 참석한 가문의 목숨줄을 노리고 포물선을 그리며 짓쳐들었다.

그 순간, 후공도 발출했다.

네 줄기 찬란한 자줏빛이 뿜어져나오며 흩어졌다.

검령과 친이 두 개의 초승달을 향해 나아갔고, 번과 쾌는 우회하는 다섯 자루의 검을 쫓아 질주했다.

‘흐흐흐…….’

상관월은 그저 웃을 뿐.

신검의 운용을 이미 보았기에 그로선 예상 범주.

절망은 희생에서 나온다.

누군가를 지키려는 자에게 절망이 찾아드는 순간은 지키내지 못했을 때이다.

그러니 굳이 부딪혀줄 이유가 없다.

그의 손길에 따라 월적하가 기묘하게 방향을 틀어 검령과 친을 빗겨나갔다.

검령과 친이 황급히 선회했다.

하지만 초승달은 이미 지척.

사람들이 놀라 비명을 내지르고, 관허법사와 설응자를 비롯 이제 막 천년자패를 통해 신선폐에서 벗어난 일지노괴와 불평진인이 출수를 준비했다.

그 순간, 떠올랐다.

파파파파파팡!

떠오른 건 서른 두 개의 환명.

환명이 빼곡이 넓게 퍼져 원형으로 모두를 두르니 사방이 아지랑이처럼 일렁거렸다.

맹렬히 날아든 두 개의 초승달이 환명에 닿자,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환명의 아지랑이는 마치 엿가락이 늘어져 가는 듯한 모습. 감싸듯 두 개의 초승달을 붙든 채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도록 뒤에서 당기는 듯한 형태로 잡아끌었다.

“어……?”

“아!”

“이, 이게 무슨?”

모두가 이 기이한 광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누구보다 놀란 건 상관월이었다.

“……!”

한순간 튕겨나오는 월적하를 바라보는 상관월의 눈동자에는 더 이상 웃음기가 남아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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