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화. 없어졌다.
후공의 이동 방향은 동남쪽.
귀주로 향해 갔다.
그 가운데 후공의 마음에 피어나는 건 기대감.
‘묵영은 찾았을까?’
독양충의 양분인 풍열.
육각망의 양분은 공청석유.
남은 건 영악초의 양분뿐.
삼악의 마지막 조각이 맞춰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분명 비약적인 경지 상승을 맛보게 될 것이다. 어쩌면 단번에 구성의 경지를 돌파할지도.
그런 기대감에 후공의 신형은 가볍기 그지없었다.
*
그로부터 이십여 일.
귀주의 성도 귀양.
별채에 있던 태평루주는 갸웃하며 미간을 찡그렸다. 이상한 말이 들린 것이다.
“누가 왔다고?”
“들으셨잖습아요.”
“야, 듣긴 했지. 근데 말이 안되잖아. 귀주 촌구석에 왜 천화서고 대공자가 오냐고!”
“제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뾰족한 목소리로 짜증을 내는 수하의 말에 루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래.”
“호재죠?”
“아냐.”
“왜요?”
“이건 호재가 아니라 호호호호호호재야.”
“호호호호호호호호호호호호호!”
웃겼는지 수하인 중년 여인이 한참이나 웃었다.
“야! 그만 웃어.”
“넵!”
“당장 만나러 가야겠다.”
“그래도 되요?”
“원래는 안 되는 거지. 근데 친구 좋다는 게 뭐냐. 어려울 때 돕는 게 친구잖아. 안 그래?”
“맞습니다.”
“자리는?”
“제가 누굽니까. 특실로 안내했습죠.”
“잘했다.”
“가시죠.”
“그래, 가자. 통천회주 개새끼 딱 기다려라. 우리 하오문의 친구가 왔다.”
그렇게 하오문 루주와 천공단이 특실에서 마주했다.
식사는 이미 마친 터라 술잔만 오가는 가운데 루주의 덕담이 한참이나 이어졌다.
모두 쓸데없고 반복되는 말들.
기다리다 지친 후공이 먼저 말을 꺼냈다.
“루주. 언제 이야기를 꺼낼 생각입니까?”
오늘 같은 상황은 처음이었다.
본래 주루며 반점이며 하오문이 운영하는 곳을 방문하더라도 하오문이 먼저 다가오는 일은 없었다. 서로 간에 암묵적인 인사가 오갈 뿐, 표면으로는 늘 타인이었다.
한데 오늘은 특실을 내주었고, 직접 찾아오기까지 했으니 이는 하오문에 문제가 생긴 것이며 도움이 필요한 상황.
“하하하하하! 이거 이거, 눈치챘나 보구만.”
루주가 쑥스러워하며 크게 웃었다.
그것이 화를 불러왔다.
천공단이 발작했다.
“이거 이거 하지 말고 제대로 말을 하라고 시발놈아!”
“도대체 언제까지 지랄만 떨고 있을 거냐!”
“그냥 우리 손에 죽을래! 아니면 도와달라고 말할래!”
천공단의 폭언에 루주가 목을 움츠렸다.
‘시발놈들.’
천공단이 괴상한 놈들이라는 이야기는 숱하게 들었지만 직접 겪으니 실감했다. 도와달라는 말을 빨리 안 한다고 살기등등 이 난리를 칠 줄이야.
그런 생각도 잠시.
루주는 서둘러 입을 열었다.
“대공자, 귀주에는 통천회가 있네. 혹시 들어봤나?”
“있다 치죠.”
“귀주제일파일세. 귀주에서 통천회라면 한낱 그들의 하인이라도 건드릴 수 없지. 뭐 그거야 서로 건드리지 않으면 되는 문제라 그동안은 별문제가 없었다네.”
루주는 목이 타는지 술잔을 한잔 빠르게 비우고는 말을 이었다.
“변화가 생긴 건 통천회주가 폐관을 마치고 나온 두어 달 전부터였네. 약을 얼마나 거하게 빨았는지 이 개새끼가 경지가 급상승한 거네. 이기어검을 구사한다나 뭐라나. 뭐, 거기까지도 좋네. 경지가 높아지면 잘됐네 하면 그만이니까. 한데 이 새끼가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하기 시작한 걸세.”
설명이 이어졌다.
설명이 끝났을 때, 천공단도 함께 욕을 퍼부어댔다.
“와아, 개새끼네.”
“시발, 건달이여!”
“상놈의 새끼들이 뭔 보호비 명목으로 수입의 절반을 뜯어 가!”
“우리보다 더한데?”
“그러게.”
심지어 대도인 무흔신투와 지귀객도 혀를 내둘렀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보호비 명목으로 뜯어 가는 곳이 귀주 전역이고, 각 상인들과 가문에까지 적용한다고 하니 그 금액이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그렇다니까. 내가 괜히 천공단을 찾아왔을까.”
“그럼 지금 모두가 보호비를 내고 있는 겁니까?”
“나도 두 달 냈어.”
“반발은 없었습니까?”
“반발 안 했지. 우리 하오문이잖아.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더 약한 하오문. 거기다 이기어검을 구사한다는 건 화경의 중에 이르렀다는 건데 어떻게 반발하겠나. 그래도 귀주에서 버티는 곳이 아주 없진 않네.”
“오호! 거긴 어딥니까?”
“난화서원이네. 자네도 들어봤을 테지?”
어디 후공에게 난화서원이 들어본 정도인가.
약왕문에서부터 천룡대전까지 묵영과의 만남은 이어졌고, 삼악의 해답을 찾으라 의뢰한 상황.
루주의 말이 이어졌다.
“난화서원이 진법으로 두르고 있어 당장은 통천회가 내버려두고 있지만 오래 걸리진 않을 걸세. 난화서원을 본보기로 삼겠노라며 단단히 벼르고 있거든. 그리고 난화서원도 언제까지 안에만 갇혀 있을 순 없을 테니까 말이네. 하지만!”
루주가 씨익 웃고는 말을 이었다.
“천화서고 대공자가 와버렸네?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
“으하하하하하하하하!”
천공단이 루주를 따라 웃음을 터뜨렸다.
*
그 밤.
후공은 객방을 잡아 머물렀다.
통천회는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도리어 난화서원에 빈손으로 갈 수 없어 뭘 들고 가야 하나 고민했는데, 그 부분이 해결되었다.
- 형님, 다녀오겠습니다.
항마삼협의 전음이 들려왔다.
이어 지붕에 머물던 천공단의 기척이 하나둘 멀어져갔다.
통천회 정도는 천공단 선에서 정리.
각자의 성취도 드높고, 도둑놈도 둘이나 된다.
통천회가 보호비 명목으로 골수까지 뽑아내고 있지만, 천공단 정도면 통천회가 골수가 뽑혀 나간다.
따로 지시한 건 없었다.
계획도 천공단이 세우고, 실행하는 것도 천공단.
그저 결과만 보고 받으면 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홀로 된 후공은 미녀도를 펼쳤다.
*
귀양의 동쪽 외곽.
거대한 장원에 몸담은 통천회주의 밤은 길었다.
그는 근자에 들어 새로운 습관이 생긴 터.
반드시 비고에 들어갔다 나온 후에야 잠을 청할 수 있었다.
백발에 근엄함이 묻어나는 그가 비고 앞에 이르자, 어둠 속에서 두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회주님을 뵙습니다!”
“비고를 열어라.”
“네!”
그르르르르릉.
열린 석문 안으로 들어간 통천회주는 이내 수북하게 쌓인 금전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고작 두 달.
화경의 중에 이르게 되면서 최근 두 달 동안 거둬들인 재산이 여태 모은 재산보다 많았다.
하지만 마냥 돈이 좋은 건 아니다.
돈 자체보단, 힘.
돈을 보고 있지만, 힘이 느껴져서 좋았다.
돈이 힘이 될 순 없다.
힘이 곧 돈이다.
돈을 보아 좋은 것이 아니라, 돈을 보고 있으면 자신의 얼마나 강한 힘을 지녔는지 체감할 수 있어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모두가 자신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모두가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는 삶.
그런 힘을 느낄 수 있으니 돈이 좋았다.
‘후후, 더 쌓이겠지. 난화서원까지 수중에 들어온다면.’
*
통천회주가 비고를 나와 처소로 든 시각.
천공단의 시선은 거대한 장원에 머물렀다.
이내 장원 밖으로 한 젊은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 저기 저놈이야?
- 맞아.
낭인왕의 전음에 하오문 태평루주가 답했다.
통천회주의 아들 심이평. 천공단의 목표물이었다. 한편으로 루주는 이해가 되지 않기도 했다.
- 근데 진짜 납치하는 거야? 농담이지?
- 진짜야. 납치에 농담이 어딨어.
- 워어…… 천공단 무섭네.
- 우리 원래 납치 전문이야.
- 그런 것 같기도.
- 나쁜 놈 같다는 뜻은 아니지?
- 아니, 나쁜 놈들 같아.
- 제대로 봤어.
- 흐흐흐…….
젊은 사내가 신형을 날려 이동할 때, 천공단이 그 뒤를 쫓았다.
오래 걸리진 않았다.
고작 일다경.
인적이 드문 곳에서 심이평은 점혈되어 나뒹굴었다.
“당, 당신들 뭐야?”
빙 둘러싼 천공단이 깔깔거렸다.
“에베베!”
“다, 당신을 뭐야아아아아. 하하하하하!”
“멍청한 새끼야, 누군지 알면 뭐가 달라지냐?”
심이평의 안색은 더없이 창백해졌다.
“내가 누구인지 알고 이러는 거냐!”
“알아, 이 새끼야! 그리고 질문은 여기까지. 넌 대답만 해.”
삼협이 윽박지르곤 남궁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야, 일단 땅 파자.”
“네.”
남궁연과 언교운, 모용진이 함께 움직여 부근에 땅을 파기 시작했다.
태평루주가 놀라 눈을 깜박이다가 옆에 있는 낭인왕에게 물었다.
“땅을 왜 파는데?”
“우린 사람을 묻어.”
“뭔 소리야! 사람을 왜 묻어. 납치까진 이해해도 이건 아니잖아! 진짜 생매장을 한다고?”
“응, 배운 게 그거야.”
그 대화에 루주보다 더 당황한 건 심이평이었다. 지진이 난 것처럼 눈동자를 흔들었고, 말투도 달라졌다.
“선, 선생님들! 왜들 그러십니까? 제, 제가 잘못했습니다. 부, 부디 살려주십시오!”
“그러게 평소에 똑바로 살았어야지. 이게 뭐냐?”
“선생님, 저, 저는 통천회주의 아들입니다.”
“안다고! 그리고 내가 뭐랬지? 대답만 하라고 했냐, 안했냐?”
“…….”
심이평은 말문이 콱 막혔다.
이내 질문이 쏟아졌다.
평소 습관, 가족 간의 호칭, 취미 등등 심이평이 생각하기에는 전혀 중요한 내용이 아니었다.
그나마 의미 있는 질문은 장원 내 비고의 위치였다.
“저기 선생님들, 근데 비고는 못 들어가십니다. 기관장치를 작동하지 않고는 열 수 없고, 저도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비고입니다.”
“그건 네 생각이고. 뭐 이 정도면 됐다.”
“사, 살려주시는 겁니까?”
“널 왜 살려줘! 화나게 할래! 확 그냥 죽여버릴까 보다!”
그리곤 이내 옷이 벗겨졌다.
“오, 옷은 왜?”
“비싼 옷 같아서 그래.”
“야, 이 개새끼들아! 니들이 정말 사람이냐!”
급기야 절망한 심이평이 울부짖었지만,
파묻혔다.
마혈이 점혈된 탓에 몸부림은 없었고, 그저 입에 갈대 하나가 주어졌다.
“이걸로 숨 쉬어.”
탕탕탕!
땅을 굳건히 다진 후 땅 위로 삐져나온 건 갈대잎 끝부분뿐.
그렇게 심이평이 묻혔고,
무덤 곁에는 또 다른 심이평이 서 있었다.
“나 어때?”
역용한 무흔신투가 심이평의 목소리를 내자, 소천개가 엄지를 들어 올렸다.
“부활한 줄.”
“흐흐, 진짜 감쪽같네.”
“점 위치까지 완벽해!”
천공단이 하나같이 보내는 찬사에 우쭐한 무흔신투가 이내 통천회 방향으로 신형을 날렸다. 이제 아들은 무흔신투.
그 광경을 기함하며 지켜보던 태평루주가 더듬거렸다.
“뭐, 뭔데! 천공단 이런 식으로 하는 거였어? 그리고 대체 저 사람 누구야?”
“누구긴 누구야. 천공단 신입이지. 우리도 가자고.”
“돌아가는 거야?”
“아니.”
그 순간,
구르르르르르르르르.
지귀객이 꺼지듯 땅을 파고 들어갔다. 그 뒤를 줄줄이 천공단이 따랐다.
멍해진 건 태평루주.
아니, 그는 아예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그런 루주를 낭인왕이 어깨로 툭 건드렸다.
“뭐해? 얼른 들어가.”
“땅으로?”
“그래. 특별한 여행. 땅속 여행이지.”
**
다음 날 밤.
이 밤도 통천회주의 밤은 길었다.
새로운 습관.
반드시 비고에 들어갔다 나온 후에야 잠을 청할 수 있는 그였기에 이 밤도 비고에 들었다.
그르르르르릉.
열린 석문 안으로 들어간 통천회주는 이내 수북하게 쌓인 금전을…….
“다 어디 갔어?”
눈이 휘둥그레졌다.
고작 두 달.
화경의 중에 이르게 되면서 여태 모은 재산보다 최근 두 달 동안 거둬들인 재산이 더 많았는데…….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