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화. 그걸 모르겠습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 시발것들아아아아아~~~~~.”
추락하는 통천회주는 비명과 함께 욕을 내뱉었다.
욕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던져버릴 거면 그냥 자결하게 내버려뒀어야 하지 않냐! 이 상식 없는 새끼들아!
그런 마음.
도무지 이해도 안 되고 분통이 터져 미쳐버릴 것 같아, 차라리 싸우다 죽을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들 지경이었다.
그때 들려왔다.
“온다아아아아아!”
“떨어진다아아아아아!”
이건 또 뭐야?
통천회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온다니? 떨어진다니?
목소리가 들려온 건 아래쪽.
설마 나?
그 순간,
츠아악!
뭔가가 찢겨나가며 추락 속도가 줄었다. 떨어지며 바라보니, 찢고 나온 건 그물이었다.
츠아아악!
두 번째 그물이 찢어졌고, 세 번째 그물도 그대로 찢어졌다. 하지만 추락 속도는 현저히 줄었고, 네 번째는 달랐다. 네 번째 그물은 일곱 겹.
투우웅!
통천회주는 몸이 튕겨 오르다 누군가의 손길에 붙들렸다.
바라보니 허우대 멀쩡한 청년이었다. 아니, 허우대 멀쩡한 정도가 아니다. 헌앙한 외모에 두 눈에 정광이 흐르는 청년 검수였다.
통천회주의 머리는 한없이 복잡해졌다.
왜 절벽 아래 그물이 쳐져 있는가?
여기로 떨어질 걸 알고 있었다고?
그리고 이 청년은…….
‘누구?’
남궁연이었다.
튕겨오른 통천회주를 붙잡아 신형을 틀어 지면에 내려섰다. 그곳으로 은앙개와 언교운, 모용진, 무흔신투 등이 우르르 모여들었다.
남궁연이 통천회주를 내려놓고 미간을 찡그렸다.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이었고 그건 모용진, 언교운도 마찬가지였다.
은앙개는 이미 분통을 터뜨리고 있었다.
“이게 뭐야? 왜 멀쩡한데!”
“이야기가 다르잖아!”
“피 한 방울 없는 게 말이 돼?”
언교운과 모용진도 동조했다.
원래 계획은 이게 아니었다.
이번 작전은 소요파 때의 재현.
통천회주는 목령자처럼 피투성이가 되어 떨어져내려야 했다. 한데 그저 혈도만 점혈된 채로 던져졌기에 불만이 폭주했다.
“이게 뭡니까!”
“왜 계획대로 안 하는 거냐고!”
절벽을 달리듯 타고 내려오는 항마삼협 등을 향해 원성을 쏟아냈다.
항마삼협이 내려서며 항변했다.
“야! 우리라고 사정이 없었겠냐. 자결하려던 거 겨우 말렸어!”
“죽으려는 놈의 배에 칼을 어떻게 꽂냐고!”
“그래도 꽂았어야죠!”
“금섬이 있는데 뭔 걱정인가요!”
잠깐, 잠깐만.
이 새끼들이 지금 뭔 소리를 떠드는 거지?
통천회주만 알아듣지 못했다.
보아하니 한 패거리인 것 같은데, 던진 놈들도 이해가 안 되지만 더 이해가 안 가는 건 그물까지 쳐놓고 구한 놈들이었다.
구한 놈들이 왜 칼로 안 찔렀냐고 떠들고 있으면 머리가 어질거리는 건 당연했다.
통천회주의 어질거림은 이어졌다.
“처음부터 다시 해!”
“맞아! 이건 다시 가야지!”
“만나고 싸우고 던지고 받아내고!”
남궁연이 주장했고, 그렇게 하자는 동조가 이어졌다.
거기에 항마삼협 등이 반발했다.
“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이걸 어떻게 다시 해!”
“그물도 찢어진 마당에 어떻게 받아내려고 그러냐.”
“너희 놈들, 생각 같은 거 안 하기로 했냐! 우리야 그렇다 쳐도, 시킨다고 통천회주가 하겠냐?”
그럼에도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물은 다시 이으면 된다고 떠들고, 처음부터 하기 뭐하면 칼로 찌르고 던지는 것만 다시 하자는 절충 안이 나왔다.
그걸 또 삼협이며 쌍웅, 낭인왕이 수긍했다.
“흐음…….”
“그럴까?”
“뭐 그 정도야.”
그렇게 의견이 정리되어 다시 끌고 올라가려고 하니, 찔리고 던져질 당사자인 통천회주가 천불을 터뜨렸다.
“야이, 개새끼들아! 니들 도대체 뭐하는 거냐아아아!”
갑작스런 호통에 모두 놀라 움찔했다.
하지만 통천회주의 분노는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니들 단체로 미쳐버린 거냐! 죽는다는 걸 말리길래 말이 통하나 싶었더니 절벽으로 던져버리고, 은인인 줄 알았더니 칼로 왜 쑤시지 않았냐고 지랄을 해버리고! 그것도 모자라서 이젠 또 뭐라고? 다시 한다고? 다시 던진다고? 야이, 미친 새끼들아! 니들이 정녕 사람 새끼들이냐!”
퍼붓는 화살처럼 쏟아진 분노에 천공단이 조용해졌다.
적에게 훈계받고 있지만…….
틀린 말이 없는 것이다.
통천회주의 말이 이어졌다.
“내가 살다 살다 너희 같은 놈들은 처음이다! 비고를 털고 불을 지르고 납치한 것까지는 잘했어. 나도 솔직히 감탄했다. 근데 이 호로 상놈의 새끼들아, 지금 이건 아니지. 여기서 다시 절벽을 기어 올라간다고? 그냥 여기서 찌르면 되는 것 아니냐! 그래, 안 그래? 내 말이 틀리냐! 말을 해. 이 새끼들아아아아!”
“…….”
“…….”
“…….”
천공단은 고요.
이제야 좀 말귀를 알아듣나 싶은 통천회주도 애써 분노를 가라앉혔다.
그때,
터억!
뒷덜미가 잡혔다.
“……?”
뭐냐 싶은 통천회주가 바라볼 때, 낭인왕이 입을 열었다.
“말은 잘 들었다. 근데 말이야…… 우리 천공단이다.”
“그래서?”
“우린 말을 안 들어.”
“어째서?”
“천공단이니까.”
마지막 대답은 낭인왕이 아니라 은앙개가 했다.
그 말이 끝나는 동시에 천공단 모두가 깔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야, 그물 정비해라. 우리 올라간다.”
“서두르자고!”
“여러 방 찔러요! 피 많이 나게!”
“염려 붙들어 매라.”
통천회주가 다시 욕을 한 바가지 토해냈지만 소용이 없었다. 영차, 영차 안 내도 되는 소리까지 내면서 분주해졌다.
그런 통천회주를 살린 건 색관조였다.
[어! 주인님 오셔!]
[그윽, 그윽!]
금섬이 두 번째 그윽했을 때는 이미 당도했고, 모두가 단주를 향해 예를 갖췄다.
“형님!”
“형아!”
“두목!”
“대공자님!”
“여어~ 대공자!”
하오문 태평루주까지 인사를 마쳤다.
덕분에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통천회주가 눈동자를 또르르 굴려 바라봤다.
‘천화서고 대공자?’
명성이 자자하니 모를 수 없다.
하지만 보는 건 처음.
분위기가 묘해 통천회주는 한참이나 바라봤다.
무공을 익힌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들리는 소문과 천공단의 무위를 떠올려보면 천공단주는 드높은 경지일 터. 이미 반박귀진에 이르렀음인가. 게다가 검을 세 개나 갖고 다닌다. 등 뒤로 교차해서 둘, 하나는 허리에.
하지만 무엇보다 궁금한 건,
‘이놈은 정상일까?’
그렇게 바라보고 있을 때,
퍼어억!
통천회주는 실 끊어진 연처럼 날아가버렸다.
“크으으으…….”
투웅, 투웅, 촤아아악!
떨어져 땅을 두 번이나 튕기고 다시 주르륵 밀려났다.
천공단주의 발길질에 복부를 가격당해 날아간 통천회주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응?’
화를 내려다 말고 어리둥절해졌다.
자신이 스스로 일어선 것이다. 맞았을 뿐인데 혈도가 풀려 있었다.
‘이, 이게 무슨……?’
혈도를 왜 발로 걷어차면서 푸는 건가.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놀라움뿐.
이어 천공단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통천회주!”
“……?”
“지금까지 상황. 이 정도면 교훈을 얻었을 것 같은데, 어떠냐? 섣부른 내 짐작인가?”
지금까지의 상황.
그 말에 통천회주는 자신도 모르게 떠올렸다.
텅 비어 있던 비고.
지하 통로를 따라 추격하다 수맥을 건드려 물을 들이켰던 일. 불을 질러 난화서원을 공략하려 했지만 정작 불타고 있는 건 통천회였다.
그리고 실종, 납치.
날아든 서신.
그제야 알게 된 적의 실체.
아직도 모르는 아내와 아들의 행방.
천공단이 제정신이 아닌 것은 둘째치고 자신의 완패다.
그리고 천공단주가 말하고 있다.
적당히 하라고.
의미는 알고 있다.
시작은 두 달 전.
탄압이라고 해도 무방한 자신의 폭압과 갈취 때문이다.
힘의 증명이라고 해도,
과했다.
그렇기에 통천회주는 인정했다.
정중히 예를 취했다.
“내 과오이자, 내 잘못이다. 돌이키겠다.”
진심을 담았다.
그것이 진심이란 건 지켜보는 모두가 알 수 있었다.
단순히 인질을 구하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머리를 숙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건 모두 느끼는 바이나,
천공단이다.
“존댓말, 존댓말을 쓰란 말이다!”
“너 이 새끼, 우리한테 말하는 것처럼 말하면 어떡해!”
“왜 무릎을 안 꿇냐! 죽고 싶냐!”
폭풍처럼 쏟아지는 책망에 통천회주의 얼굴이 썩어들어갔다. 하지만 썩은 얼굴로는 통하지 않았기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제…… 과오입니다. 도…… 돌이키겠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무릎은 진짜 안 꿇을 것이냐, 진짜 이러기냐는 폭언이 쏟아졌다.
통천회주의 얼굴이 더 썩어가며 엉거주춤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할 때 구원의 손길이 건네졌다.
“조용.”
순식간에 사방이 고요해졌다.
역시 천공단주인가.
그렇게 내심 통천회주가 감탄할 때, 천공단주의 말이 이어졌다.
“이 정도면 됐고, 하던 것 마저 하도록 하죠.”
뭘? 뭔 소리야?
뭘 마저 해?
설마? 찌르고 던지는 것?
통천회주가 주춤 물러설 때, 항마삼협과 무산쌍웅 등이 휘파람을 불며 들이닥쳤다.
**
난화곡.
오후의 따사로운 햇살 속에서도 안개는 여전했다.
그리고 그 너머에 자리한 난화서원의 걱정도 여전했다.
“화공(火攻)은 어찌어찌 막는다 해도 그 뒤가 문제로구나. 화공이 먹히지 않는다면 그 뒤엔 더 험악한 시도가 이어질 것이 아니냐.”
가솔들이 둘러앉은 자리,
가주의 탄식이 터져나왔다.
간밤에 소란 속에서 통천회는 안개 너머를 볼 수 없었지만, 난화서원은 진법의 묘로 모든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난화서원이 걱정한 건 아니었다.
삼대 서고 중 하나다.
진법을 다룸에 있어 천화서고 못지않다고 자부하는 만큼, 뚫릴 염려는 없었다.
하지만 근심은 마지막에 찾아왔다.
산을 불태운다던 통천회주의 말.
물론 화공은 진법에 막힌다. 하지만 그 뒤 찾아올 것이 무엇인지는 불을 보듯 뻔했다.
진천뢰.
구하기 어렵겠지만 다량의 진천뢰를 구한다면 진법은 필시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형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통천회를 찾아가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그들이 진천뢰를 수중에 넣게 되면 타협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 그렇게 해야겠지.”
아우의 말에 가주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흔히 붓은 칼보다 강하다고 회자되지만 현실은 다르다.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았으면 칼도 들었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버지, 조금만 더 기다려보시죠.”
가주의 시선이 아들 묵영에게 향했다.
그가 고개를 저었다.
“영아, 그럴 여유가 없다. 천화서고가 아직까지 회신조차 없는 걸 보면 여력이 없거나 나설 자신이 없는 것일 테지. 통천회주의 무위는 천룡의 가문이라도 쉽게 상대할 수 없는 경지가 아니냐. 그들이 나서지 않는다고 탓할 것도 없고…….”
“…….”
묵영은 말을 아꼈다.
마음속으로는 반박하고 싶은 말이 한 수레였다.
천화서고 대공자는 다르다.
천룡의 가문을 넘어선 지 오래다.
하지만 대공자가 눈앞에 없으니, 주장한들 무슨 소용인가.
그렇게 모두가 다시금 침묵에 잠길 때였다.
밖에서 총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 가주님!”
들어오라는 말도 하지 않았는데 총관이 뛰쳐 들어왔다.
“무, 무슨 일인가?”
“가주님, 통천회주가 왔습니다.”
“뭐? 지금?”
“한데 이상합니다.”
“이상하다니?”
“통천회주가 피투성이입니다.”
“왜? 어째서?”
가주는 물론이고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함께 온 이들에게 당했다고 합니다. 그, 그게 이상합니다.”
“왕 총관!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겐가!”
“함께 온 이들이 통천회주와 웃고 떠들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피투성이인 것도 맞고, 통천회주인 것도 틀림이 없는데 왜 모두가 화기애애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함께 온 이들이 누구라고 하던가?”
총관이 숨을 크게 들이쉰 후 입을 열었다.
“천공단. 그리고 천화서고 대공자라 했습니다.”
“뭐? 천화서고 대공자? 근데 왜 웃고 떠들어? 통천회주가 피투성이라면서?”
“제 말이 그겁니다. 그걸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