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화. 천공단은 악당.
“우리 모용 공자께선 어쩌다 천공단이 되셨을까?”
그 밤, 절친이 마주했다.
천룡대전 이후 재회한 묵영과 모용진은 묻고 싶은 말도 많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다.
묵영의 물음에 모용진이 어깨를 으쓱했다.
“천공단에서 내게 요청이 왔지. 제발 천공단이 되어줄 수 없냐고 말이야.”
“여어~ 대단하네.”
묵영이 탄성을 내지르자, 모용진은 더욱 우쭐했다.
“후후, 나 모용진 님이야 늘 그렇지.”
“대단해. 놀랐어.”
“하하하, 뭐 그 정도 가지고.”
“아니야. 진심이야.”
묵영이 손사래를 치고는 말을 이었다.
“진짜야. 너 개소리가 늘었어. 지나가던 개도 안 믿을 소리를 태연히 하다니. 뻔뻔해진 걸 진심으로 축하한다.”
“하하하하하, 눈치챘어?”
묵영이 한심하다는 듯 바라봤다.
“널 모를까. 제발 천공단 들어가게 해달라고 질질 짜고 매달렸겠지. 대공자 성격상 짜증나서 거둬줬을 테고.”
“야, 그 정도는 아니야.”
“그럼?”
“내가 얻어낸 거야!”
“어떻게 했는데?”
“짖었어. 왈왈!”
“누가?”
“내가.”
“허얼…….”
기가 막힌지 묵영이 멍하니 입을 벌렸다.
모용진은 그러거나 말거나였다.
“그게 신의 한 수였지. 선배들 말 무시하고 그때 안 짖었다면 난 아마 평생 후회했을 거다.”
“왜?”
“그날 이후 모든 게 굉장했거든. 독왕의 독을 마시고, 동정용왕 머리를 내가 직접 의자로 찍어버리고, 사람도 납치하고, 죽이고, 땅을 파고 들어가 이동하고. 와아, 다시 떠올려보니 나 굉장했네.”
“그거 악당 아니냐?”
“악당이지.”
“진짜야?”
진짜일 리 없잖아, 라는 말을 기대했지만 묵영의 기대는 산산조각났다.
“나도 천공단에 들어오고 나서 알았다. 악당이야, 악당. 하하하하하!”
그러면서 모용진이 통천회를 어떻게 공략했는지 설명하자, 묵영은 완전히 얼이 나갔다.
더 이상 개소리로 들리지 않아서였다.
이야기 도중 천공단이 통천회주의 아들과 아내를 파묻었다는 설명을 할 때만큼은 모용진이 은밀히 전음으로 말했기 때문이었다.
“설마…… 아직도 묻혀 있어?”
묵영이 입을 뻐금대며 입모양만으로 물었다.
- 당연하지.
“허어…… 천공단은 대체 뭐하는 데야? 아니, 그보다 통천회주는 알고 있어?”
- 모르지. 말 안 했으니까.
“야, 지금 분위기 좋은데 앞으로 어쩌려고 그래?”
뻐끔대야 하는데 너무 당혹스러워 속삭이듯 물었다.
- 뭔 걱정이야. 또 싸우면 되지.
“미쳤구나.”
“흐흐, 응.”
“지금 웃음이 나오냐?”
쏘아붙이던 묵영은 그러다 불쑥 머릿속에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잠깐만. 독왕의 독을 먹었는데 너 왜 멀쩡한 거냐?”
- 공청석유.
“뭐?”
- 두목이 내게 공청석유를 줬어. 물론 나만 특별대우받은 건 아니고. 천공단 전부.
“미친! 그걸 찾았다고?”
“찾다니?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런 게 있어.”
“야, 말해 봐. 너도 알고 있었어?”
묵영은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육각망의 양분이 공청석유라는 사실을 알아내고 천화서고에 서신을 보낼 때만 해도 이걸 보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얼마나 고민했는지 모른다.
대공자, 이건 답이 없습니다.
이렇게 보내는 것이나 진배없었기 때문이었다.
한데 대공자가 찾아냈을 줄이야.
또 대공자는 그걸 천공단에 베풀기까지 했다는 말을 들으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때였다.
[둘이 뭐해?]
소리를 쫓아 창가로 시선을 돌린 묵영이 갸웃했다.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는데 파란 깃털의 새 한 마리만 보인 것이다.
색관조가 곧바로 의문을 풀어주었다.
[뭘 꼬나봐! 귓구멍이 막혔어? 뭐하냐고 이 새끼들아!]
“헉!”
묵영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러다 저기 좀 보라면서 모용진의 어깨를 때렸다.
“저기 좀 봐라. 세상에…… 새가 욕을 하고 있어!”
말을 하는 거도 모자라 욕을 하는 새라니. 묵영은 듣도 보도 못한 신비한 광경이었다.
그 반응에 모용진이 깔깔 웃고, 색관조도 따라서 까르르 웃으며 방 안으로 내려앉았다.
[묵 공자, 장난이었어요.]
“응?”
[실은 주인님 말씀을 전하러 왔답니다. 두 분 이야기 끝나면 주인님께서 찾아뵙는다고 하셨어요.]
“주인?”
[까르르르르르, 천재라면서 둔하네요. 누구겠어요? 이 세상에서 제 주인이 될 수 있는 분이.]
“아…….”
묵영도 그제야 알아들었다.
그리고…….
**
묵영이 찾아갔다.
누군데 오라가라 할 것인가.
그렇게 마주한 자리.
묵영은 감사의 말을 다시 꺼내기도 하고, 색관조에 대해 묻기도 했다. 그 외도 궁금한 것이 많아 입이 쉬지 않았다.
후공은 미소 지으며 가볍게 응하다 화제를 전환했다.
“묵 형, 영악초의 양분을 찾았나 보군요.”
“그걸 어찌 아셨습니까?”
어떻게 알긴.
못 찾았으면 첫 마디가 죄송합니다, 였을 것이다.
실컷 떠드는 데는 믿는 구석이 있어서가 아니고 무엇인가.
똑똑하다는 놈들이 왜 이리 허당인지.
“들어보죠.”
“네, 말씀하신 대로 찾았습니다. 영악초의 양분은 봉양목(鳳陽木)입니다.”
“봉양목?”
후공은 갸웃했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나무 이름이었다.
자신의 원래 지식은 물론이고, 범항의 지식에도 봉양목은 없었다.
“저도 약초와 식물에 대한 고서들을 파고들면서 알게 된 나무입니다. 영악초가 성장하려면 반드시 봉양목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봉양목이 알려지지 않은 이유라면, 영악초가 땅을 뚫고 나와 세상에 모습을 보이는 시점에 봉양목의 기운을 일시에 빨아들이는 탓에, 누군가 영악초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봉양목은 말라 부서진 상태가 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후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영악초의 성장에 필수요소가 되는 과정에서 봉양목은 사라진다. 이제 중요한 건 봉양목이 주로 어디에 자리하고 있느냐였다.
“그럼 봉양목은 어디에 주로 서식합니까?”
“모릅니다.”
“묵 형…….”
“네?”
“어째서 당당한가요?”
“하하, 공청석유를 찾아내신 분이 봉양목 따위를 못 찾으시려고요. 저는 아무 걱정 없습니다. 하하하하!”
이놈아, 내가 걱정이다!
후공은 미간을 찡그렸다.
공청석유는 운좋게도 색관조가 귀곡자와 음양노괴의 대화를 들은 걸 기억한 것이 행운으로 작용했을 뿐이었다.
“묵 형.”
“네.”
“찾아내세요. 봉양목의 서식지.”
“하하, 맡겨 주십시오.”
“묵 형?”
“네?”
“어째서 당당한가요?”
“하하, 그런 게 있습니다.”
묵영이 다시 웃었다.
물론 막막할 뿐 방법이 따로 있는 건 아니었다. 자신이 넘쳐서도 아니었다. 그저 묵영으로선 이렇게라도 도울 수 있다는 것이, 그리고 대공자와의 인연이 이어져가는 것이 좋을 뿐이었다.
“대공자, 찾아내는 즉시 천화서고로 전서를 띄우겠습니다.”
“혹시 모르니 한 곳을 추가하죠.”
“어디?”
“무림맹.”
**
그 대화를 통천회주가 들었다.
‘공청석유…… 봉양목……. 그리고 무림맹이라……. 허허허.’
천공단을 만나러 가는 길에 듣게 되었다.
그가 엿들으려한 것은 아니었다.
경지가 화경의 중이다.
그저 귀에 들리는 걸 어쩌란 말인가.
그렇기에 통천회주는 내심 너털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상한 친구야. 정말 이상해.’
정말 이상했다.
천공단에는 자신과 비슷한 경지에 이른 이들이 여럿이다.
그들을 아우르는 이가 천공단주.
당연히 드높은 경지일 것이다.
그런 자가 대화소리가 새어나간다는 걸 모를까.
그럴 리 없다.
그래서 통천회주는 기분이 이상해졌다.
‘날 언제 봤다고 믿는 거지?’
이런 감정.
공청석유를 지니고 있는 것을 들어도 상관없다는 태도를 드러낸 것이니, 살짝 현기증이 올 지경이었다.
이건 언제나 꺾을 수 있다는 자신감의 문제가 아니다.
신뢰다.
눈앞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동시에 대공자는 자신에게 말하고 있기도 했다.
“허허…….”
통천회주는 고개를 절레거렸다.
‘사람이 크기가 달라.’
크기만 다른가.
심계도 남다르다.
저 나이에 가능한가, 라는 생각도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심지어 무림맹과도 연관이 있는 듯 하니 노는 물도 차원이 다른 셈이었다.
자신이 두 달에 걸쳐 귀주 전역을 핍박해 얻은 결과는 엉뚱하게도 수많은 재물이 아니었다.
얻은 건 천공단.
그들과의 친분.
괴상한 방식이었지만 더 큰 걸 얻은 것 같았다.
이윽고 그의 시선에 천공단이 들어왔다.
별채 지붕 위에 둘러앉아 있었기에 통천회주는 신형을 솟구쳤다.
즉시 환영의 말이 쏟아졌다.
“아이고! 우리 통통통 회주님 어서 오세요!”
“토동통!”
“포동포동!”
인사말이 이어질수록 기괴해졌지만 통천회주는 그러려니 했다.
이제 그도 안다.
이놈들 미친 놈들인 것이다.
“우리 통통 회주님, 왜 안 주무시고 여길 오셨나요? 여기에서 같이 자려는 걸 아니실 테고?”
은앙개가 물었다.
통천회주는 주변을 둘러보고 절반 가까이 보이지 않는 걸 확인했다. 먼저 자러 들어갔겠거니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
“크게 걱정하는 건 아닌데, 물어는 봐야 할 것 같아서.”
“무엇이든.”
항마삼협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내 아내와 아들은 무사히 잘 있겠지?”
“아! 난 또 뭐라고. 걱정할 게 따로 있지. 우리가 죽이기라도 했을까봐.”
“어.”
통천회주가 장단을 맞춰주었다.
그러자 천공단이 깔깔대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통천회주가 따라서 미소지으며 다시 물었다.
“어디에 있지?”
“안전한 곳에 모셔뒀지. 공기도 잘 통하고, 아마 세상에서 그보다 안락한 곳은 없을걸.”
“어딘데?”
“이제 그건 의미없어.”
“왜?”
“아마 지금쯤 귀가했을테니까. 쌍웅과 낭인왕이 돌려보내주러 갔어.”
“아, 그런가.”
통천회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몇몇이 안 보였던 이유도 비로소 이해되었다.
“그나저나 통통통?”
“응?”
“돈은 어떻게 할 거야?”
“모두 돌려줘야지.”
“이자까지 쳐서?”
“물론.”
“우리 통통회주 화끈하네. 좋아, 돈도 모두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 있을 거야.”
통천회주가 피식 웃었다.
화끈한 건 자신이 아니라 천공단이었다.
***
난화서원을 나선 건 다음날.
고작 하룻밤을 묶었을 뿐이라 난화서원 측은 크게 아쉬움을 드러냈지만, 후공으로선 굳이 머물러야 할 이유가 없었다.
작별의 말이 오가고,
통천회주와도 작별을 고했다.
“대공자, 무림맹으로 간다고 들었네.”
“들으셨군요.”
상황이 종료된 터라 후공은 다시 존칭을 붙여주었다.
하지만 존칭이든 뭐든 통천회주로서는 코웃음이 나는 상황.
“흥! 들려주어 놓고 한다는 소리가 ‘들으셨군’인가?”
“하하, 전 그래도 못 들은 척하실 줄 알았습니다.”
“뭐 됐네. 어쨌든 고맙네. 칼도 맞고, 절벽에서 두 번이나 추락도 해보았네. 모두 자네 덕분일세.”
“과찬이십니다.”
“하하하하!”
통천회주가 웃음을 터뜨렸다.
나이는 한참 어리지만 멋진 친구가 아닌가.
재밌는 친구이기도 하고.
그렇게 작별을 고하고 통천회주가 통천회로 돌아갔을 때, 장로들과 호법들이 득달같이 달려왔다.
“회주님!”
“괜찮으십니까?”
“어떻게 되신 겁니까?”
그러면서 아내와 아들의 소식도 전해왔다.
간밤에 돌아왔다는 보고에 회주가 그랬냐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장로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회주님, 놈들이 무슨 짓을 한 줄 아십니까!”
“놈들은 잔혹하기가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글쎄 놈늘이 두 분을 땅에 파묻어 두었답니다. 갈대잎으로 겨우 숨을 쉬게 했답니다.”
“당장 놈들을 쫓아가 처절한 보복을 해야 합니다.”
무슨 말을 들어도 그러려니 하려고 했던 통천회주의 표정은,
“……………………………….”
이렇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실실거리며 웃음을 흘렸다.
지난 밤 천공단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안전한 곳에 모셔뒀지. 공기도 잘 통하고, 아마 세상에서 그보다 안락한 곳은 없을걸.’
공기가 잘 통해?
안락해?
“흐흐, 미친 악당 새끼들.”
그리고,
재밌는 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