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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화 서고 대공자-257화 (257/460)

257화. 한 사람의 경이로운 행적.

천공단을 향한 무림맹의 대접은 융숭했다.

저녁 식사는 거의 산해진미.

신검의 거취를 두고 무림맹과 한판 승부도 불사하려던 천공단의 분노는 산해진미 앞에서 눈 녹듯 사라졌다.

무림맹 마음에 드네.

좋은 곳이야.

사람들이 다 좋아.

이딴 소리를 떠들며 배를 두드렸고, 그건 색관조와 금섬도 마찬가지였다.

얼마나 먹었는지 몸이 두 배는 커진 것 같아서 소화도 시킬 겸,

[날아가자아아아아아!]

[그으으으으으윽!]

무림맹의 밤하늘을 날아올랐다.

슈슈슈!

산의 뒤편 북현산을 순식간에 지나 굉장한 속도로 날아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현에서 현을 돌파했는데, 원래도 빨랐지만 지금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공청석유에 이어 금구의 내단까지 흡수한 덕분.

그리고 무엇보다 주인의 은덕이었다.

[저기 봐.]

[그윽?]

금섬이 바라보니 앞쪽으로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오고 있었다.

슝, 날아간 색관조가 비둘기를 멈춰 세웠다.

[여어~ 어디서 오신 누구실까?]

무산쌍웅의 말투를 흉내내며 색관조가 시비를 털자 비둘기가 겁먹은 눈으로 파닥거렸다.

[야, 쫄지 마. 그냥 뭐라고 썼는지 궁금해서 그래.]

색관조가 비둘기의 다리에 매달린 서신을 가리켰다가 이내 까르르르 웃었다.

[아, 맞다. 나 글자 모르지.]

[큭큭큭!]

비둘기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대체 뭐하는 새끼들인가, 오늘 죽는 건가, 그런 눈으로 바라봤지만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색관조와 금섬이 시비를 털지언정 막 죽이고 그런 영물들은 아닌 터.

[야, 쉬엄 쉬엄해. 밤에는 자야지. 따라 내려와.]

그렇게 숲으로 인도해 나무에 앉히고 취침을 강요했다.

[꼭 자! 몸 챙겨가면서 일해야 해!]

비둘기가 눈을 꼭 감았지만 잠이 올 리 없었다.

말하는 이상한 새와 금빛 두꺼비가 사라졌지만 비둘기는 날아오르지도 못하고, 잠도 청하지 못했다.

색관조 입장에선 나름 선행.

계속 날면서 늦은 밤까지 일하는 전서매와 전서구들을 마주칠 때마다 취침하라고 닦달했다.

[근데 오늘따라 전서매와 전서구가 많은 것 같네.]

[그으윽, 그윽, 그으으윽.]

[너무 멀리 오고 빨리 날아서 많이 보이는 거라고? 까르르르르, 그럴 수도 있겠다. 슬슬 돌아가 볼까요?]

[그으으으으윽!]

색관조가 무림맹 쪽으로 방향을 선회할 때,

후공은 천년자패에 글자를 새기고 있었다.

슥슥.

능오침이 지날 때마다 정교하고 힘이 넘치는 글자가 새겨져 갔다.

그리고…….

**

“콜록, 콜록, 콜록, 크어어어억, 콜록!”

요로선인은 쉽게 잠들지 못했다.

어쩌면 밤을 꼬박 지새울지도.

한 사람 때문이었다.

‘천화서고 대공자…….’

분노 때문은 아니었다.

옷이 너덜너덜 찢어져서도 아니었다.

아니, 아니다. 옷이 문제다.

요로는 손을 들어올렸다. 손에 들린 옷은 더 이상 옷이라 부를 수 없는 상태. 하지만 버리지 못했다. 처음에는 그냥 찢어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알고 보니 옷에는 문양이 남겨졌다. 어떤 건 삼각형, 어떤 건 네모, 어떤 건 별 문양.

그 와중에 바라본 대공자는 차를 들어 입에 가져가기도 하고, 시선을 돌려 창밖을 바라보기도 했다.

이는 이기어검이 아니다.

검이 멋대로 움직인 것이었다.

이게 가능한가?

불가능이다. 누구라도.

하지만 가능한 이를 요로는 알고 있었다.

친구라면. 후공이라면.

친구가 말했었다. 의식의 연동이라고.

제련이 깊어지면 검은 주인의 감정까지 읽는다고 했다.

그래서 여태 천재 중의 천재요, 무학의 극한에 도달한 후공만이 가능한 걸로 알고 있었다.

한데 오늘 또 다른 천재가 재현했다.

천화서고 대공자는 정신이 피폐해져 폐인이나 다를 바 없다고 했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알 수 없다. 그저 천재들은 그런 존재들인 걸까.

“콜록, 콜록!”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그건 알고 있다.

요로는 친구의 음성이 생생히 떠올랐다.

- 요로, 만약 내 사후에 누군가 내 검을…… 번쾌친을 나와 같이 다룰 수 있다면 그에게 주어라. 그가 새로운 주인이다. 그가 악인이든 선한 자이든 상관없이. 악인이라면 실상은 악인이 아닐 것이고, 선한 이라면 명성도 드높을 테니 더욱 상관없겠지.

다룰 수 있어서 주인이 아니라, 번쾌친이 인정한다면 그가 바로 주인이라는 말이 따라왔다.

물론 이어지는 말에는 뚱해졌다.

- 이런…… 괜한 말을 했군.

- 응?

- 나보다 일찍 죽을 게 분명한 너를 두고 내가 무슨 소리를 한 건지. 쯧쯧, 나도 늙었군.

그렇게 악담을 하고는 껄껄 웃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것이 유언이 될 줄은.

너무도 허망하게 떠나게 될 것이라곤 몰랐다.

그러니 유언대로 신검의 주인은 천화서고 대공자.

신검들이 주인으로 따르니,

자신도 따르는 수밖에.

그때,

“들어가겠습니다.”

불쑥 여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하지만 요로는 태연히 응했다.

자신이 불렀고 기다리고 있던 터.

“콜록, 콜록. 들어와라.”

방문이 열리며 제갈혜가 들어섰다.

안색이 환하고 옅은 미소까지 띄고 있어 요로는 콧방귀를 뀌었다.

“흥! 콜록, 콜록. 넌 이제야 웃는구나.”

맹주 사후 표정을 잃었던 제갈혜였다.

그렇게 맹을 떠났다가 최근 신검의 실종 탓에 돌아왔지만 냉랭한 건 여전했는데, 어찌된 게 천공단주와 천공단이 오고나니 미소를 짓고 있었다.

“콜록, 콜록, 앉거라.”

“무슨 일이세요?”

자리에 앉으며 제갈혜가 새침하게 물었다.

새침할 수밖에 없다.

요로선인의 콜록이는 기침소리를 듣고 나니, 이야기가 어쩌면 밤을 지새울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른 터.

요로선인이 그 마음을 읽고 너털거렸다.

“허허허, 콜록, 콜록! 기침은 최대한 자제하마.”

그렇게 마주해 요로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오늘 있었던 일.

그리고 친구가 남긴 말.

친구에게 제갈혜는 특별하고, 제갈혜에게도 친구는 큰아버지라 할 수 있으니 신검의 주인이 바뀌게 된다는 것에 동의를 구할 필요가 있었다.

신검은 유품.

유품이란 본시 자식의 소유가 되며, 처분의 결정권도 가지는 것이 아닌가.

“콜록, 콜록, 어떠냐?”

“답은 아시잖아요.”

제갈혜가 진중한 목소리로 답했다.

요로의 눈빛은 깊어졌다.

그리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고 있다. 콜록, 콜록.”

누구보다 후공의 사랑을 받았던 제갈혜다.

요로는 많은 날을 봐왔고, 제갈혜의 상심도 이해했다.

그래서 알고 있다.

친구의 유언.

제갈혜로서는 백부의 유언.

그 뜻을 제갈혜가 거스를 리가.

“콜록, 콜록. 서운하진 않느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

“네, 다른 사람이 아닌 천화서고 대공자가 신검의 주인이 되어 기뻐요.”

북교산에서 날아온 여우.

가면을 쓰고 있어 그가 분노하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을 때는 왜인지 눈물이 맺혔다.

화산 폭발 때는 홀로 대자연의 재앙에 맞서 폭발을 늦추었고, 북해빙궁의 90년 숙원을 녹여낸 이.

그리고…….

백부를 떠올리게 하는 이.

그렇기에 제갈혜는 그라서 다행이었다.

신검의 이름은 번.쾌.친.

어릴 적 백부가 알려주었다.

- 백부님, 검이 세 개야?

- 많을수록 좋지.

- 이름도 있어요?

- 번.쾌.친.

- 이름이 왜 한 글자씩이지?

- 그래야 멋지거든.

- 하하, 맞아. 나도 내 이름도 ‘혜’ 한 글자야. 백부님도.

- 우리 둘 다 멋지구나.

- 근데 왜일까. 부르기 귀찮아서 대충 지은 것 같기도.

- 어허! 그런 거 아니라니까 그러네.

깔깔 웃고 친을 꺼내 만지려 할 때, 친이 스륵 손에서 빠져나갔다. 베이지 않게 친이 스스로 물러난 것이었지만 어렸던 세 살 때는 몰랐다.

- 백부님, 검이 움직이는데?

- 그럴 리가.

- 아냐, 진짜야! 봐봐, 또 물러나! 야, 일루 와! 어디 가! 백부님, 잡아요!

어린 날을 떠올리며 제갈혜는 미소지었다.

어린 날 도망치던 친. 그리고 번과 쾌가 새로운 주인을 찾았다. 그 주인이 좋은 사람이어서 다행이었다.

**

제갈혜가 밖으로 나왔을 땐, 색관조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가씨.]

“응?”

[주인님이 찾아요.]

“이 시간에?”

[네, 이 야심한 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두근두근두근.]

“하하하하!”

색관조의 너스레에 제갈혜는 다시금 실감했다.

천공단을 만났음을.

천공단은 새도 이상한 것이다.

**

“대공자…… 이게 뭔가요?”

제갈혜가 탁자에 놓인 보석을 바라보며 물었다.

둥글고 작은 은빛 보석은 군데군데 비취빛이 감돌아 신비했고 맑은 기운마저 느껴져 예사로운 물건이 아니었다.

또한 목에 걸고 다니기 좋게 천잠사로 줄을 만들어 두었다.

“천년자패입니다. 그리고 선물입니다.”

“이걸 제게요?”

제갈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미 천공단을 통해 운남이며 사천에서의 일을 들었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흑전의 음모 속 천년자패가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신선폐의 독마저 날려버리는 효능까지 들었던 터라 선물이라기엔 너무 엄청난 것이었다.

그렇기에,

“대공자, 마음만 받을게요.”

제갈헤는 받을 수 없었다. 어찌된 게 자신은 대공자를 만난 뒤로 늘 받기만 하는 것이다.

“이미 주인은 정해졌습니다. 소저의 이름도 새긴 터라 다른 이에게 줄 수도 없으니, 받지 않으시면 정녕 낭패입니다.”

이름까지?

제갈혜가 손을 내밀어 진주를 잡았다.

진주를 돌리자 이름이 보였다.

혜.

한 글자가 정교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한참을 내려다보며 제갈혜는 입술을 깨물었다.

내게 왜 이렇게 잘해주는 거야?

좋아하는 것도 아니면서.

좋아하는 것보다 보호에 가깝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천년자패도 비슷한 의미로 보였다.

어떤 독에도 다치지 않게, 뿜어지는 자패의 영기에 강건하길 바라는 것 같아서 더욱 알 수 없어졌다.

받아야겠지. 이렇게까지 준비하고 호의를 베푸는 마음을 받지 않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또 대공자가 거절한다고 물러설 것 같지도 않았다.

“고마워요.”

“천만의 말씀.”

“근데 왜 한 글자만 새겼나요?”

“그래야 멋지거든요.”

“…….”

제갈혜가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런 대화를 나눴었다. 백부를 떠올리며 제갈혜는 이내 입을 열었다.

“맞아요. 그러고 보니 제 이름도 ‘혜’ 한 글자네요. 대공자도 그렇고요.”

이제 나와야 할 말은,

후후, 우리 둘 다 멋진 걸로 해두죠, 겠지?

“제 이름은 별로고, 소저의 이름은 어울립니다.”

뭐야? 왜 그대로 하지 않아?

제갈혜가 실망해 그 표정이 고스란히 떠올랐다.

그 모습에 후공은 뚱한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후후, 귀여운 녀석.’

내심은 웃고 있었다.

조금 늦었지만 이야기 도중 어린 제갈혜와 나누었던 당시 대화가 기억났기 때문이었다.

하마터면 우리 둘 다 멋진 걸로 하자고 할 뻔했다.

제갈혜가 새침한 얼굴로 천년자패를 내밀었다.

“대공자, 걸어 주세요.”

“어…… 그건 좀…….”

“그럼 안 받겠어요.”

“뭐…… 그렇다면야.”

귀찮구만. 알아서 좀 하지.

이런 생각을 하며 후공은 제갈혜의 목에 천년자패를 걸어주었다.

“어울리나요?”

“크흠,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 말이 왜 그런가요?”

“소저 잘못입니다. 미모가 워낙 뛰어나니 보석이 평범해 보이지 않습니까.”

“칭찬이죠?”

“물론입니다.”

칭찬은 아니다.

진실일 뿐.

후공의 눈에는 세상 누구보다, 그 어떤 보석보다 예뻐 보였다.

“소저, 선물에 대한 보답으로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별을 따다 주는 건 무리예요.”

“하하, 쉬운 일입니다. 무림맹이 처음이라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입니다. 소저께서 안내를 해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겠군요.”

“흐음, 생각해 볼게요.”

“천년자패 다시 돌려주십…….”

“하하, 절대로 돌려주지 않아요!”

**

다음 날 오전.

요로선인의 주재 하에 맹의 수뇌부가 자리했다.

장로들은 물론 대주와 단주, 그리고 각주들이 한자리에 착석했다.

분위기는 그리 좋지 못했다.

안건이 맹주의 신검에 관해서였고, 그 신검을 천화서고 대공자에게 건네야 한다는 내용인 탓이었다.

“선인의 말씀을 의심하는 것은 아닙니다. 맹주께서 필시 생전에 그리 말씀을 남기셨을 테지요.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검증이 필요합니다.”

검증? 검증이라고?

대답 대신 요로선인의 콜록임이 끝없이 이어졌다.

검증은 어제 자신이 몸소 마친 터.

옷에 구멍이 숭숭 뚫리고, 별 모양, 달 모양, 사각형, 네모, 온갖 형태를 만들어냈는데 또 무슨 검증이란 말인가.

“선인, 무덤을 파헤쳐 신검을 훔친 이가 누구입니까? 금취객과 지귀객입니다. 한데 천공단과 함께 지귀객이 오지 않았습니까. 그자가 멀쩡한 것이 실로 의심스럽습니다.”

“같은 생각입니다. 운남과 사천에서의 일이 놀랍긴 하나, 그 이야기는 모두 들려준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철저히 검증을 한 다음 신검의 새로운 주인에 대해 논해도 늦지 않겠지요.”

다수가 그리 주장했고, 그 나름 무시할 수도 없는 의견이 쏟아졌다.

‘어찌할꼬.’

그냥 묵살하자니 깔끔한 처리가 아니고,

또 한편 지귀객을 건드리고 천공단을 한 명씩 캐묻자니 그건 또 그것대로 대공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기에, 요로선인은 기침이 멈추질 않았다.

기침 속에서 검증론이 연거푸 쏟아져나올 때였다.

“선인, 전서가 도착했습니다.”

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콜록, 콜록. 들어오라.”

회의 중인 걸 모를 리 없는데, 중요하지 않다면 전서가 왔다는 소식을 전할 리 만무했다.

“으응?”

건네오는 전서를 받으며 요로선인이 갸웃했다.

한 통인 줄 알았는데, 십여 통이 넘었다.

발신지는 제각각.

그중 요로는 점창파의 전서를 먼저 확인했다.

그리곤,

“하하하하하! 콜록, 콜록! 검증이…… 콜록, 콜록. 크에에에에엑!”

점창 장문인의 친필과 점창의 인장이 찍힌 걸 확인한 후, 차례대로 다른 전서들도 확인했다.

은하전장, 대륙전장, 태왕전장…… 그리고 수많은 부유한 가문들이 보내 온 전서는 모두 비슷한 내용이었고, ‘한 사람’의 경이로운 행적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천화서고 대공자!

급기야 모든 전서를 확인한 요로선인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하! 콜록, 콜록. 다들 전서를 돌려보도록 해라. 쿨럭, 콜록! 네놈들이 좋아하는 검증이 여기에 있구나.”

지난 밤 도착했어야 할 전서들은 조금 늦게 도착했다.

이상한 새와 금빛 두꺼비를 만나,

강제로 취침에 들어야 했기에 지금에야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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