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화. 이상한 부처님 그리고…….
식사 자리에는 예절이 있다.
쩝쩝거린다든지, 음식을 입에 넣은 채로 말을 한다든지, 젓가락을 탁탁 소리내어 내려놓는다든지 하는 행위는 삼가야 한다.
뭐 그렇다 해도 반점이든 주루에서 타인의 습관을 지적할 수는 없는 일.
천공단도 그 정도의 상식은 갖추고 있었다.
물론 천공단의 식사 예절도 개판이라서, 누군가에게 지적질을 할 자격 따위는 없는 것도 당연하고.
하지만 이 경우는 달랐다.
무려 ‘고기’다.
고기한테 이러면 안 되는 것이었다.
다른 건 다 참을 수 있어도, 고기를 골라내는 건 견디기 힘들었다.
참을성 없는 천공단 내에서도 상위권에 속하는 무산쌍웅이 그걸 가만히 보고 있을 리 만무했다.
‘상놈의 새끼가 형님 밥맛 떨어지게 무슨 짓이야!’
도로 입에 고기를 쑤셔넣어 주마!
그런 마음으로 벌떡 몸을 일으켜 갈 때, 한줄기 전음이 쌍웅을 붙들었다.
- 쌍웅, 진정해. 소림이야. 그리고…….
항마삼협의 이열이었다.
강호를 무섭게 싸돌아다니며 사람을 쳐 죽이고 다녔던 항마삼협의 견문은 넓어 소림의 무광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이열은 눈짓으로 한곳을 보라고 가리켰다.
시선을 따라간 무산쌍웅이 갸웃했다.
‘어?’
‘응?’
왜인지 형님이 소림사 놈을 다정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문도 잠시다. 이유는 몰라도 형님이 다정하게 바라보는 이에게 시비를 털 수는 없는 일.
“으으으차아아아!”
“어어어~~~.”
크게 기지개를 켰다.
원래 그러려고 했던 사람처럼 허리도 한번 돌렸다가 다시 자리에 얌전히 앉았다.
- 왜? 왜? 누군데?
- 아는 사람인가?
눈치 빠른 천공단 사이로 바쁘게 전음이 오갔다.
소림승이란 말이 오갔고, 왜 단주가 빙긋 웃고 있느냐는 의문도 튀어나왔다.
후공의 미소는 여전했다.
미소는 분명 다정했지만 그것만은 아니었다.
그 눈빛에는 애틋함도 섞여 있었다.
소림의 슬픔 때문.
검성의 마화 당시, 소림은 백팔나한을 잃었다.
수많은 별들을 잃었다.
모두 찢겨나가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
그것이 일 년 반 전의 일.
그날 이후 소림은 봉문에 들었다.
소림에겐 별들을 기억하는 시간. 별들을 잃은 슬픔을 달래는 시간이 필요했다.
무광을 보고 있자니, 소림이 그 슬픔에서 서서히 벗어나는 것 같아 애틋해졌고 다정하게 바라보게 된다.
‘마치 이 녀석처럼.’
후공은 옆자리에 앉은 제갈혜를 바라봤다.
시선을 받은 제갈혜가 영문을 몰라 눈동자를 위로 올렸다 옆으로 돌렸다 하며 갸웃거렸다.
그 모습에 후공의 미소는 더 짙어졌다.
‘후후, 귀여운 녀석.’
그때였다.
“너 뭐하는 새끼야!”
“보자 보자 하니까 끝이 없네!”
이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건달들이었다.
밥맛이 떨어진 건 천공단만은 아니었던 모양.
건달들은 내내 힐끗거리고 있었는데, 결국 참지 못하고 우르르 몰려가 소림의 무광 앞에 섰다.
“왜……?”
무광이 멀뚱히 바라봤다.
그것이 건달들의 화를 북돋웠다.
“야, 미친 새끼야! 고기를 먹지 않으려면 고기국밥을 시키지 말았어야 할 것 아니냐! 손님도 많은데 밥맛 떨어지게 뭐하는 짓이냐!”
천공단은 그 말에 적극 공감해 고개를 끄덕였다.
소림이고 나발이고, 이건 건달들의 말이 백번 옳았다.
고기만 건져내는 걸 보면 국물은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천공단 입장에선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소스…… 소인은 국물만 마시려고 그런 겁니다.”
하마터면 소승이라고 말할 뻔한 무광이 쩔쩔매며 변명했다.
“그럼 처음 주문할 때부터 고기를 빼달라고 말했어야지! 그러냐, 안 그러냐?”
건달이 또 옳은 소리를 했다.
천공단은 또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 저놈 말 잘하네. 거의 천공단인데?
- 어, 반박의 여지가 없어.
- 흥미진진하구만.
“…….”
무광도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싶은지, 이번엔 변명의 말을 하지 못하고 입을 꾹 닫았다.
“먹어. 당장 도로 집어넣고 먹어!”
건달들이 윽박질렀다.
무광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왜?”
왜긴, 소림승이니까 그렇지.
근데 국물은 괜찮은 건가? 푹 고아져서 국물이 진짠데? 그렇게 천공단이 눈을 반짝이며 바라볼 때, 무광의 입이 열렸다.
“고기는 안 됩니다. 제…… 신념 같은 겁니다.”
“그래? 그럼 따라 나와.”
건달들은 결국 폭력을 선택했다.
천공단의 눈빛은 더욱더 초롱초롱해졌다.
잘한다, 잘해.
말을 안 들으면 패야지!
보고 있기만 해도 재밌어 건달들을 응원했다.
걱정은 없다.
따라오라고 해봤자 건달들 아닌가. 무광의 손끝 하나 건드릴 수 없을 테고, 소림이 건달들을 팰 리도 없다. 천공단으로선 그저 낄낄거리며 바라보면 그만이었다.
“이 새끼야, 따라오라고!”
머뭇대던 무광이 시무룩하니 일어났다.
건달들은 괜찮은 놈들이었다.
앞서는 한편, 두 놈은 여러 손님들을 향해 소란을 피워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다.
그렇게 나선 건 반점의 뒤뜰.
이 구경을 바라보려 천공단이 우르르 뒤쪽 편이 보이는 창가로 몰려갔다.
심지어 화설난까지 따라갔다.
서재에 파묻혀 살던 그녀에겐 처음 보는 강호의 풍경.
‘소림이라고 했지? 어떻게 할까?’
천공단도 본격적으로 응원을 보내기 시작했다.
“건달 형들! 힘내! 잘하자!”
소천개를 시작으로,
“살살 패라고!”
“뭔 소리야! 세게 패! 몽둥이로 후려갈겨!”
“금강불괴! 금강불괴! 우리의 금강불괴!”
낭인왕이 주먹을 쥐고 금강불괴를 외치며 응원하자, 내내 신경 쓰지 않던 무광이 창가를 올려다봤다.
그것이 천공단의 환호를 불러왔다.
“우릴 봤어! 우릴 봤다고!”
“부처님 잘하자!”
“몽둥이를 부서뜨리는 우리의 금강불괴!”
소란스럽기가 말로 할 수 없어 건달들이 노려봤다.
천공단은 장단을 맞춰 주었다. 이내 입을 다물자, 건달들이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어이~ 네놈의 신념이 그렇게 대단해?”
“사람이 예절이라는 게 있지 않냔 말이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마지막 기회야. 올라가서 고기 처먹을래, 처맞을래?”
순간,
번쩍!
무광이 눈을 빛냈다.
그러곤 이내 두 팔을 벌렸다가 손바닥을 마주쳤다.
짜악!
손을 부딪쳐 합장한 채로 무광이 진중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맞겠습니다.”
그러면서 그 자세 그대로 바닥에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그 모습에 천공단이 소곤대기 시작했다. 금강불괴를 외치기 시작했다.
건달들이 폭발해버린 건 당연한 일.
“이 새끼가!”
“사람을 뭘로 보고!”
“죽어, 이 새끼야!”
발로 짓밟고 주먹으로 가격하며 폭행해갔다.
건달들의 주먹이 으깨지고, 발이 부러져나가겠지, 라는 천공단의 기대는 무참히 무너졌다.
그냥 무광은 말그대로 짓밟혔다.
그 와중 가발까지 벗겨지자, 폭행이 더 심해졌다.
“뭐야, 중이었어?”
“땡중 새끼야, 죽어라!”
“국물이 더 맛있어!”
무광은 몸을 새우처럼 말고는 처맞았고, 건달들은 폭력과 훈계를 퍼붓다가 떠나버렸다.
무광이 비로소 대자로 누워 하늘을 멍하니 바라볼 때는, 천공단도 이미 넋이 나가버렸다.
심지어 지켜보지 않고 탁자에 홀로 앉아 있던 후공도 멍해진 상황.
‘크흐으으으음…… 저런 놈이었나…….’
소림의 미래라 불리는 무광이었다.
부처님의 마음을 닮았다는 것까지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대책 없이 맞을 줄이야.
겉모습만으로는 이십 대 초중반으로 보이나 실상은 삼십 대 초반.
천재적인 재능으로 소림의 칠십이 절예 중 사십여 절예를 이십 대 초반에 돌파해, 지금의 경지는 어느덧 화경 초기인 예에 들어섰을 터인 소림의 미래가…… 저 모양이라고?
‘저놈은 어디서부터 손을 봐야 하는 건가?’
그런 사이 천공단은 이미 창문을 타고 뛰어내려 무광을 향해 씩씩대고 있었다.
“야! 너 왜 처맞고만 있었냐?”
“누구……?”
드러누운 채로 무광이 물었다.
“시발, 누구고 뭐고 금강불괴를 왜 시전하지 않은 거냐고! 우리가 응원하는 소리 들었을 것 아니냐!”
“말을 해, 이 새끼야! 니가 금강불괴냐, 금간불괴냐!”
“스님 형아, 무척 실망이야. 왜 처맞고 있는 건데?”
쏟아지는 비난에 무광이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바로 합창하고는 입을 열었다.
“아미타불.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랐을 따름입니다.”
“고기 국물은 어떡할 건데?”
“그 많은 고기 기름은 어쩔거냐고!”
“그, 그건…….”
무광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아무래도 상대가 자신의 출신을 알고 있는 듯하니 당장 할 말이 떠오르지 않은 탓이었다.
천공단의 타박이 이어졌다.
“고기는 제발 그냥 먹으라고!”
“시비가 털리면 싸워야 할 것 아니냐고! 시발놈아!”
“패지는 않더라도 맞지는 않아야 할 것 아니냐! 그러냐, 안 그러냐!”
그 속에서 무광이 천공단을 한명 한명 둘러봤다.
어린 거지부터 나이 든 노인까지 연령이 다양하고, 여인도 셋이나 된다. 심지어 그중에는 할머니까지 있으니 도무지 이들이 누구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속세를 나온 것이 드문 탓이었다.
항마삼협 쪽을 바라보다 어디서 본 것 같긴 했지만, 막상 기억해 내려니 잘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같이 무공 수준이 높아 보이니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소승, 정녕 궁금합니다. 여러분은 누구십니까?”
“악당들.”
목소리가 들려온 건 위쪽.
답한 이가 천공단주였기에 천공단이 깔깔대며 웃었다.
무광도 따라 웃었다.
“허허허, 그럴 리가요.”
왜 맞았냐고 타박한 이들이 악당일 리가.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 모두의 눈빛에 정기가 어른거리니 알게 된다. 정종심법에 닿아 있는 이들이다. 그중 단연 독보적인 존재는 창가에 서 있는 이.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빛에 분위기가 묘하다.
전혀 무공을 익힌 흔적을 찾아볼 수 없으나 강한 자라는 느낌을 받게 되니 그 점도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때 위에서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다면 자리를 함께하시겠습니까?”
무광이 마다할 리 만무했다.
“나무관세음보살, 악당이라 하시니 무섭지만 용기를 내보겠습니다.”
**
한편,
지귀객은 무림맹의 뇌옥에서 울고 있었다.
이런 데는 처음이었다.
쇠창살도 없고, 사람도 없다.
그저 텅 빈 무저갱.
끝도 없이 밑으로 내려가 덩그러니 놓였다.
왜 갇혀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가.
갇힐 때만 해도 먼저 와 있는 수감자들의 텃세를 어떻게 견뎌야 하나 근심했는데,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사람이 없다.
다행이다 싶었는데, 열흘을 지내보니 그게 아니었다.
하루가 백년, 하루가 천년 같다.
그리고…….
‘외로워. 너무 외로워…… 정말 미칠 것 같아.’
이렇게 혼자 백 년이라니.
말동무도 없이 쓸쓸히 백 년을 어떻게 보낸단 말인가.
하하하하, 백 년이나 살려고?
어쩐지 천공단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 울다 울화가 치밀었다. 니들이 정녕 사람새끼들이냐! 정이라는 게 있는 건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냐!
이건 다 천공단주 때문이었다.
만악의 근원. 조롱의 왕.
사람을 쥐락펴락 농락하는 나쁜 새끼!
금구의 내단까지 주고는 맹에 백 년을 요구하다니!
“천공단주, 이 나쁜 새끼야아아아아아아아! 훔친 검은 후공의 것인데 왜 니가 더 성질을 내냐고오오오오오!”
답은 없다.
무저갱 같은 이 뇌옥에 웅웅 메아리만 울려 퍼질 뿐.
“왜 나한테만 그러냐고! 금취객은 봐주고 왜 나한테만 그래! 그리고 내가 검을 안 훔쳤어 봐. 신검이 네놈 손에 쥐어졌겠냐고. 그래, 안 그래? 뭐라고 대답 좀 해 봐!”
“조용히 해라.”
“허억!”
지귀객이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황급히 몸을 틀었다.
그러다 더 놀라버렸다.
아무도 없는 것이다.
“누, 누구세요?”
“콜록, 콜록…….”
대답은 기침 소리.
‘아…… 여기 나 말고 또 누가 갇혀 있었던 것이로구나.’
누군가.
그리고 어떤 경지인가?
전혀 위치를 잡아낼 수 없었다.
이럴 땐 인사다.
“선배님, 인사드립니다. 저 이제 막 들어온 신참입니다. 저는 지귀객이라고 합니다.”
“콜록, 콜록, 크에에에에엑! 알고 있어. 콜록, 콜록.”
그러다 보았다.
석벽에서 천천히 사람이 빠져나오는 광경에 지귀객의 눈은 거의 지진을 일으켰다.
해괴한 광경도 광경이지만, 더 놀란 건 상대의 정체 때문.
콜록거려서 설마 했는데…….
“요로선인님? 어째서?”
은신에서 빠져나온 요로선인이 몇 번 더 콜록이고는 답했다.
“뭐 심심하기도 하고, 할 말도 있어서 아까 들어왔었지.”
“네?”
할 말이라니?
그것도 임시라곤 해도 명실상부 맹주직을 맡고 있는 요로선인이 직접?
“콜록, 콜록. 백 년이 되었거든.”
“네? 벌써요?”
“어…… 그렇지. 콜록, 콜록. 대공자가 내게 청했다. 백 년이 좋겠다고 말이야. 그리고 덧붙여 말했다. 아마 하루가 백 년 같을 것이라고 말이지. 그거면 되지 않겠냐고 해서…… 콜록, 콜록. 내가 수락했지. 흐흐, 재밌는 친구야.”
지귀객의 눈동자는 이제 다른 의미로 요동쳤다.
감격하고, 감탄하고 또 고마움이 솟구쳤다.
삼 년도 아니고, 일 년도 아니고, 열흘이라니.
‘대공자님……. 저는 그런 줄도 모르고……. 제가 죽일 놈입니다.’
“저, 정말이죠?”
“콜록, 콜록. 한데 대공자가 또 남긴 말이 있어. 혹시 쌍욕을 하는 걸 들으면 없던 일로 해달라고 했는데…… 아까 듣자 하니…….”
“아까 들으셨습니까?”
“어…….”
“대공자님, 존경합니다. 이 말을 들으셨던 거죠?”
“하하하하! 콜록, 콜록…….”
요로선인이 웃음을 터뜨렸다.
“너도 영락없이 천공단이로구나.”
“만세!”
지귀객이 만세를 외쳤다.
만세를 외칠 수 밖에 없다.
열흘이 백년이었고,
무림맹은 천공단주를 존중하고 있다.
그리고 방금 들었다.
너도 천공단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