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7화. 왜…… 눈물이 날 것 같지?
쿠웅!
이런 소리는 없었다.
하지만 천공단은 그런 굉음을 들은 것만 같았다.
그것은 각자가 들은 소리!
각자의 심장이 내려앉는 소리였다.
모두가 멍해져 천공단주를 바라봤다.
심지어 소림의 무광도 마찬가지였다.
완전히 얼어붙어버렸다.
무광은 내내 사천 당가의 가주가 등장하건 말건 천공단이 먹다 남긴 뼈다귀에 붙은 살코기를 발라먹으며 중생을 구제하던 중이었는데, 너무 놀란 나머지 뼈를 문 채로 굳어버렸다.
천공단에 들어오십시오???
부처님, 이게 대체 뭔 소리일까요?
분위기가 분위기인지라 색관조와 금섬도 목을 움츠리고 눈동자만 바쁘게 돌려가며 눈치를 봤다.
태연한 건 오직 후공뿐.
미소를 머금고 말을 이었다.
“가주, 어려운 일은 아닐 테지요? 두 손주의 목숨값이 가주의 자존심보다 수천수만 배는 더 가치있으니, 그냥 제 밑으로 들어오면 됩니다.”
쿠웅! 쿠웅! 쿠웅!
천공단의 심장이 더 내려앉았다.
머리에선 방금 전 단주의 한마디가 천둥이 되어 울렸다.
내 밑으로…….
내 밑으로…….
내 밑으로…….
후공은 그러거나 말거나였다.
“천공단에 들어오신 다음 저에 대한 호칭은 편한 대로 하십시오. 형님이라 불러도 좋고, 단주라 불러도 괜찮습니다. 물론 저는 형님이란 호칭을 추천합니다.”
쿠우우우우우우우우웅!
천공단의 심장은 이제 내려갈 곳도 없을 지경.
아득하게 심장이 배꼽 밑으로 내려간 건 아닌가 싶어졌다.
말이 더해질수록 점입가경이었기에,
여기서 말려야 해!
천공단이 우르르르 단주 앞으로 몰려가 에워쌌다. 소림의 무광조차 뼈다귀를 팽개치고 한자리를 차지했다.
누구도 말을 내뱉지 않았지만, 소리는 크다.
말은 많았다. 수면 아래 폭풍같이 전음을 쏟아냈다.
- 형아, 어쩌려고 그래?
- 두목, 천공단이 위대한 건 맞지만 상대가 안 좋아.
거지들을 시작으로,
- 형님, 그냥 농담이었다고 하십시오. 저희가 지금보다 더 잘하겠습니다.
- 형님, 당가주는 천룡의 세가들과는 근본부터 다릅니다.
- 두목, 다른 뜻이 있으시겠죠? 숨겨진 의도가 무엇이신지요?
- 두목께서 싸우자는 뜻이면 맞서 싸우겠습니다!
- 대공자님, 제가 바로 땅으로 파고들 수 있게 준비하겠습니다.
누구는 싸우자는 뜻으로 받아들여 전의를 불태웠고, 지귀객은 무공이 약한 이들을 대피시킬 궁리부터 하고 있었다.
- 단주, 재고해주게! 자네가 강호를 몰라서 그러는 것 같은데, 당가주는 맹주의 세 아우 중 하나일세. 천하제일인의 의형제 중 한 명이란 말이네. 어? 알겠나? 후공의 패거리 중 하나가 무슨 의미인지 자넨 당장 이해해야 해!
후공은 고개를 들어 금적자를 바라봤다.
금적자의 말이 상념을 키웠다.
패거리.
그래, ‘패거리’라는 말이 적절하다.
처음에는 제갈유였고, 그다음이 풍제.
그리고 한참 뒤에 당명이 무리에 들어왔다.
당명은 유쾌한 성격이어서 꺼지라고 해도 잘 달라붙었다. 덕분에 풍제에게 많이 맞았다. 그러다 무리에 들어왔을 땐 원래부터 셋이 아니라 넷이었던 것처럼 죽이 잘 맞았다.
그래서 그렇다.
그때는 한참을 내쳤기에 이번엔 먼저 손을 내밀고 싶었다.
- 단주, 그렇게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을 텐가? 그러면 안 돼! 후공의 아우 중 무섭기로는 풍제가 제일 무섭지만, 당가주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사람이란 말이네. 알겠나? 그 패거리들과 그 패거리의 졸개들인 맹의 천하십객이 강호를 쓸고 다녔단 말이네!
- 대공자…….
제갈혜까지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대공자는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하는 건가.
당 숙부는 누구 밑으로 들어갈 사람이 아니었다. 은인이란 명분으로 우기기엔 무리가 있다.
강호의 배분, 지위란 게 있다.
고작 약관의 청년을 두목으로 모실 수는 없는 일이다.
대공자가 그걸 모를까?
아니, 알 것이다.
한데 왜?
그렇게 바라봤지만, 후공은 그저 웃음을 머금었다.
당명의 선택, 당명의 반응은 뻔하다.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방식.
“하하하하하하하하하!”
호탕한 웃음소리에 천공단이 돌아섰다.
당가주가 끝없이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천공단은 누구도 웃을 수 없었다.
당가주의 마음이 이해된다.
얼마나 어이가 없을 것인가.
내 밑으로 들어와라, 형님으로 불러라 하는 말을 들으면 저렇게 웃게 되는 건 당연했다.
그리고 시작되겠지.
이제 파국이다.
금적자가 피리를 매만졌고, 항마삼협이 기운을 은밀히 끌어올렸다. 무산쌍웅은 비도를 발출할 준비를 마쳤다. 낭인왕이 히죽대며 도를 톡톡 건드리면서 격전을 대비했다.
지귀객은 화설난과 소천개를 뒤로 살며시 끌었다.
손가락 하나만 움직여도 이 둘을 데리고 땅속으로 파고든다.
한순간, 웃음이 뚝 그쳤다.
당가주가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대공자!”
척, 척, 척!
남궁연과 언교운, 모용진이 검을 쥐었다.
맞서 싸운다.
물러나지 않는다.
두목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어도 상관없다.
두목에 대항하는 이는 그게 누가 되었든 적.
당가주의 비웃음이 더 짙어졌다.
천천히 손이 올라왔기에 여기저기서 마른침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귀객은 등이 흥건해졌다.
지금 파고들어야 하나?
아직인가?
지귀객은 눈도 깜박일 수 없어 눈이 따가울 지경.
그때 당가주의 입술이 열렸다.
“그렇게 하지.”
뭐라고?
천공단은 완전히 굳어버렸다.
방금 이상한 말을 들은 것 같은데?
그렇게, 라는 게 뭐지?
“……?”
“……?”
“……?”
어안이 벙벙해진 천공단을 향해 당가주가 친절을 베풀었다.
“오늘부터 천공단의 일원이 되도록 하지. 자네가 형님이란 칭호를 추천했지만 그건 어렵겠군. 단주로 부르겠네.”
천공단에 환호성은 없었다.
무려 사천 당가의 가주가 천공단의 일원이 된다고?
그러면 안 되는 것 아닌가?
그저 어안이 벙벙해졌다.
유일하게 상황을 이해한 건 제갈혜뿐이었다.
‘거짓말.’
당 숙부가 천공단이 될 리가.
그저 숙부는 생각을 바꿨을 뿐이다.
당장 답을 얻기보단 곁에서 지켜본다.
영원히 천공단이 되겠다는 뜻은 아니다.
은인인 건 틀림없으니 목적을 위해 잠시 머물겠다는 의미였다.
목적을 이루면 훌훌 털고 떠날 것이다.
그것이 백부의 방식이고, 당 숙부는 그런 백부의 방식에 익숙할 뿐이다.
제갈혜의 생각대로였다.
당명은 패거리의 방식에 충실할 따름.
강호에서 약속은 어기라고 있는 것이다.
후공에게 배웠다.
천변만화.
무공만 변화가 심한 것이 아니라, 일상이 그랬다.
적에게 사흘 뒤에 찾아가겠다고 서신을 보낸 후에는 그날 밤에 찾아갔다. 이틀 뒤에 쓸어버리겠다고 하고는 아예 찾아가지 않기도 했다.
그렇게 안 찾아가다 보니,
오늘 오는 건가, 내일 오는 건가 하면서 일 년 내내 움츠리고 있던 놈들도 있었다.
그런 식이다.
본질에 닿으면 그만이었다.
약속? 신뢰?
그런 건 의미 없다.
필요하다면 뭐가 됐든 그까짓것이다.
그렇게 부수고 다녔다.
그러니 지금은 천공단이 되어 주마.
그러한 결정에 후공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우우우우우웅!
주인이 기뻐하기에, 감응한 검령과 번쾌친이 검신을 흔들며 소리를 냈다.
후공은 천공단을 헤치고 나왔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아우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가주, 환영합니다.”
당명이 뻗어오는 손을 바라보고, 다시 눈을 마주봤다.
어떤 긴장감도 없다.
그저 빙긋 웃고 있는 약관의 서생.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내 앞에서?
아니, 이런 여유 있는 모습보다…….
왜 날 반가워하지?
그리고 나는 왜……
왜…….
‘눈물이 날 것 같지?’
.
.
.
.
.
.
알 수 없다.
당명은 손을 맞잡았다.
그 순간, 비로소 천공단의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와아아아아아아!”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
“사천 당가주가 천공단이다아아아아아아!”
“시발,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신입이 당가주야아아아아아!”
“이거 꿈 아니지? 꿈이라고 하면 죽여버릴 거야!”
“나무관세음보사아아아아아아알!”
얼어붙었던 천공단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일제히 모여들어서는 늘 하던 걸 했다.
소림의 무광이 왜 거기에 있는지는 모를 일.
“신입을 환영합니다아아아아아아!”
“하늘 높이! 더 높이!”
“날아올라! 구름까지!”
“높이 올리기만 하자고!”
“그래, 두드리는 건 하지 말자고!”
“나무관세음보사아아아아아아알!”
천공단이 달려들어 당가주를 높이 들어올렸다가 받았다가 또 하늘로 던지길 반복했다.
그래도 두들겨 패는 걸 안 하겠다는 건 천공단에겐 나름 큰 배려였다.
덕분에 당명은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았다.
대공자와 마주할 때의 기묘한 기분, 알 수 없는 감흥이 깊어질 새도 없이 하늘로 계속해서 솟구쳐버렸다.
이게 그 천공단인가!
이런 놈들이었나!
두드리는 건 안 한다는 것이 배려로 느껴지지도 않는다.
거한 환영식이 끝났다.
당명이 찡찡해져 있었기에 천공단은 하나둘 눈치를 보며 멀어졌다.
하지만 몇은 남았다.
제갈혜, 소림의 무광, 그리고 금적자였다.
- 숙부, 환영해요.
- 어…….
제갈혜가 전음을 보내왔기에 당명이 떨떠름하게 답했다.
- 저도 궁금해요. 제 마음 아시죠?
누가, 무엇이 궁금한지는 말할 것도 없다.
당명이 물끄러미 바라보다 미소를 지었다.
- 그래. 내가 알아내 알려주마.
- 네.
제갈혜가 물러난 자리에 소림의 무광이 섰다.
당명이 갸웃했다.
이놈은 또 뭔가? 줄 서 있던 건가?
머리가 없고 아까 던져올릴 때 불호를 외치는 소리가 들렸던 걸 떠올렸다.
아니 그 전에 뼈다귀를 핥고 있었던 놈인데…….
“나무관세음보살. 인사가 늦었습니다. 소림의 무광이 당가주를 뵙습니다.”
“너도 천공단이냐?”
“나무관세음보살, 아닙니다. 저는 천공단을 구제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어떻게?”
“남긴 음식을 처리…….”
“가라.”
“……네.”
무광이 시무룩하니 돌아섰다.
욕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 나무아미 ㅆㅂ.”
“야, 소림! 너 방금 욕했지?”
“허허허허, 그럴리가요. 나무관세음보살.”
그러면서 무광이 호다닥 빠르게 멀어졌다.
대체 뭐하는 새끼들인가.
당명이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하지만 쫓아갈 순 없었다.
“흠흠, 흠흠!”
남은 한 사람, 금적자가 가로막은 것이다.
“금적자, 할 말이 있으면 빨리.”
“험험, 당가주! 뭐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오만 궁금한 것이 있어서…….”
“궁금한 것?”
당명이 갸웃했다.
금적자를 알고 지낸 것이 어디 하루 이틀인가.
사람이 조금 달라진 것 같아 조금 묘하긴 해도, 금적자는 금적자다. 말수가 없고, 극도로 점잖은 인물.
금적자가 입을 열었다.
“당가주, 천공단이 되었으니 서열을 정해야 하지 않겠소?”
“서열이라니?”
“나이가 어떻게 되오?”
“지금 나이를 따지자고?”
빠직!
당명의 이마에 핏줄이 돋아났다.
“금적자, 못 보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요?”
“아무 일도. 나이가?”
“아니,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고!”
“서열을 정해야 하니까!”
곱게 말하던 금적자도 맞서 눈을 부라렸다.
아무래도 자신이 나이가 많은 것 같은데 왜 자꾸 반말을 하는 건가. 명성이 드높다고 그러면 안 되는 것이다.
당명이 금적자를 한심하게 바라봤다.
금적자는 그나마 정상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제일 상태가 심각한 게 금적자였다.
하는 수 없었다.
일단은 적응하자. 일단은…….
며칠만 고생하자.
그런 생각으로 당명이 입을 열었다.
“예순넷.”
금적자의 동공이 흔들렸다.
“형!”
당명의 동공은 더 흔들려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