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화 서고 대공자-270화 (270/460)

270화. 그 시절의 한때.

꿈틀꿈틀.

좌정하고 있는 당명의 눈썹은 쉴 새 없이 꿈틀거렸다.

들려오는 소리 때문이었다.

“이제 우리 천공단의 위상이 강호에서 어느 정도인 거야?”

“거의 최상급이지.”

“거의?”

“거의가 아니라 그냥 최상급인가?”

“당연하지. 당가주가 천공단의 신입이잖아. 거기다 북해빙궁까지 우리가 먹었으니까!”

“맞아. 원래 강호의 최고 계보는 후공과 그 아우들이었잖아. 제갈 선생, 풍제, 당가주. 그 순혈 중에서 이미 당가주와 제갈 선생의 딸인 제갈 군사가 천공단이니까, 후공의 계보를 천공단이 계승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지.”

“듣고 보니 그렇네.”

“이러다 풍제까지 천공단에 들어오는 거 아냐?”

“그건 너무 나갔잖아!”

“하하하, 그렇긴 해. 그래도 여하튼 우리가 최고 계보! 최고 계보!”

“맞아! 우리가 최고!”

“천공단이 최고!”

“하하하하하하!”

당명의 눈썹은 다시 꿈틀꿈틀.

무슨 말을 나누나 들어보려 귀기울이고 있었는데, 천공단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았다.

“근데 누가 신입 군기 좀 잡아야 하지 않겠어요?”

“맞아. 신입 주제에 모가지에 힘이 장난이 아니야.”

“그건 그렇지. 다같이 좋은 수를 생각해보자.”

“좋아, 머리를 맞대보자고!”

그러곤 고요해졌다.

생각해보자고 했지만 생각이 날 리 없어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고양이 목에 누가 방울을 매달 것이냐는 문제는, 쥐들로선 아무리 머리를 맞대도 답이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고양이의 심기는 여전히 불편했다.

천공단 때문은 아니었다.

다른 쪽의 대화가 문제였다.

“군사…….”

“언니…….”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제갈혜의 웃음소리.

천화서고 대공자와 따로 이야기를 나눈 후 돌아온 제갈혜의 상태가 가히 최악이었다.

화설난과 설영이 울먹이는데,

제갈혜가 웃고 있다.

얼마나 크게 상심한 건가.

대공자 놈은 얼마나 모질게 거절한 것인가.

혜는 도대체 얼마만큼이나 대공자놈을 좋아하고 있었던 것인가.

‘소소는 절대 가까이하지 못하게 해야겠어.’

당명은 외손녀인 은소소를 떠올렸다.

소소도 대공자를 흠모하고 있는 건 마찬가지. 결과는 같을 것이다. 혜가 까였는데, 소소가 안 까일 리가.

“하하하하, 저는 정말 괜찮아요. 기분이 최고예요. 아마 오늘 밤은 한숨도 못 잘 것 같아요. 하하하하, 혼자 조금 걸어야겠어요.”

제갈혜가 밖을 나서는 소리에 당명은 고개를 절레거리고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이 밤,

제갈혜에게 지금 필요한 건 위로.

결코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해선 안 된다.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이 함께해 주어야 한다. 마음껏 울어도 괜찮은 사람이 곁에 있어 주어야 한다.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

스스슷.

창문을 넘어 제갈혜의 뒤를 쫓던 당명의 눈이 가늘어졌다.

근처 지붕 위.

은밀한 그림자가 셋.

제갈혜를 쫓고 있는 건 자신만이 아니었다.

“쩝.”

당명은 입을 쓰게 다셨다.

은밀히 제갈혜를 쫓고 있는 건 항마삼협이었고, 목적은 분명하다. 제갈혜의 호위 임무.

누구의 지시인지는 너무나도 뻔하다.

천화서고 대공자. 천공단주의 지시가 있었겠지.

철두철미하고, 끔찍이도 신경 쓴다는 것이 느껴진다.

‘한데…….’

이렇게까지 마음을 쓰면서 왜 까버린 건가!

그렇게 항마들을 바라보자니, 눈이 마주친 항마들이 헤실헤실 웃고는 되돌아갔다.

당가주가 왔는데 굳이 우리가?

잘 부탁합니다.

이런 말이 들려온 것만 같아 당명은 다시금 눈썹을 꿈틀꿈틀거렸다.

‘천공단 놈들…… 거슬려…….’

고개를 절레거리곤 제갈혜에게 다가갔다.

“혜야.”

“어? 숙부님!”

돌아보는 제갈혜의 모습에 당명이 주춤했다.

제갈혜의 얼굴 상태가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한 탓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운 것인가.

퉁퉁 부어오른 눈과 얼룩져 있는 눈물 흔적을 보고 있자니 당명은 절로 탄식이 터져나왔다.

“하아…….”

동시에 그날이 떠올랐다.

이 모습이었다.

후공을 떠나보내던 날.

대형을 보내던 그때 그날 제갈혜의 모습이 오늘과 같았다.

‘사랑에 빠지면 이렇게 되는 건가?’

이해하기 어렵지만, 사랑은 이해의 범주가 아니겠지.

“대강 들었다. 까였…… 거절당했다고?”

“네, 거절당했어요. 하하하하, 이제 대공자와는 영영 연인이 될 수 없어요.”

근데 왜 웃어?

“너 괜찮은 거냐?”

“괜찮다마다요. 제게 오늘 밤은 최고의 밤이에요.”

“쯧쯧, 괜히 내 앞에서까지 괜찮은 척할 필요 없다.”

“하하하하, 숙부. 괜찮은 정도가 아니에요. 정말이지 끝내주는 하루라니까요.”

그러면서 제갈혜가 두 팔을 벌리고 빙글빙글 돌았기에, 당명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도…… 돌아버렸나?’

아픔을 웃음과 춤으로 승화시키는 거냐!

당명은 마음이 아파 눈가가 촉촉해졌다.

“놈이 네게 뭐라고 하더냐?”

“제가 좋대요. 너무 좋대요. 늘 제 곁에서 지켜주겠다고도 했어요.”

“응?”

당명이 갸웃했다.

좋다고? 좋아한다고?

이건 또 뭔 소린가?

“그렇게 말했다고?”

“말한 건 아니고, 그렇게 들렸어요. 저는 그냥 알 수 있어요.”

“뭔 소리야!”

“하하하하하하! 랄랄라~~~. 랄라라라~~~.”

당명의 동공이 더할 나위 없이 흔들렸다.

여기서 랄랄라가 왜 나오는가!

도대체 왜!

하지만 제갈혜는 그러거나 말거나였다.

도리어 이런 숙부의 반응이 웃겨 더 크게 웃음을 터뜨릴 뿐이었다.

다른 말은 해줄 수 없다.

먼저 진실에 닿았지만 말할 순 없다.

환혼.

환혼대법.

구름 위에서 백부에게 들었다.

모산의 이야기.

흑전이 영기를 탐지하는 묘용까지.

그리고 무림맹에서 맹주전의 서쪽 진법을 유지하던, 부서질 수 없는 흑주석이 바스러진 것에 대해서도 비로소 이해했다.

하지만 먼저 알았다고 숙부에게 말해줄 순 없는 일.

백부가 옳다.

환혼을 이해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천천히 마음이 적셔 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물론 숙부는 더 빠르겠지.

백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냈고, 더 많은 것을 보았을 테니.

조금 느려도, 천천히 가도 괜찮아.

서두를 건 없어.

어차피 맞이할 기쁨이니까.

“숙부.”

“…….”

“하하하, 저랑 같이 춤 춰요.”

제갈혜가 당명의 손을 잡고 이리 끌고 저리 끌었다.

당명은 지푸라기 인형처럼 끌려다니면서 점점 눈빛이 악독해졌다.

‘천공단주…… 너 기다려라.’

“숙부님, 혹시 대공자를 어떻게 할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니겠죠?”

“그럴 생각이다.”

“그러지 마요. 제발 부탁이에요.”

“왜 내가 잠자코 있어야 하지?”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니까요. 알겠죠?”

“끄응.”

당명이 앓는 소리를 냈다.

당장 쳐 죽이러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지만, 제갈혜의 눈을 보고 있자니 또 그럴 수 없다.

그저 나오느니 한숨뿐.

그런 당명을 향해 제갈혜가 입을 열었다.

“숙부!”

“말해.”

“오늘 밤을 꼭 기억해요.”

“흥! 잊을 수 있을 리가.”

“좋아요. 저는 그거면 됐어요.”

당명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는 없는 일.

제갈혜를 객방으로 돌려보낸 후, 당명은 자신의 객방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놈과 이야기를 해야겠어.

신형을 솟구쳐 삼 층 객방의 한 창가를 딛었다.

먼저 반긴 건 색관조와 금섬이었다.

[어이쿠, 깜짝이야.]

[그윽.]

주인이 행공 중이었기에 소곤대고는 창가로 나아가 다시 속삭였다.

[쉿! 다음에 오세요.]

[그윽.]

당명으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운기행공 중인데 이야기를 하자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쩝.”

입을 쓰게 다신 후 돌아갔다.

그런 가운데 괘씸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도대체 뭐하는 놈인가.

아름다운 미녀를 매몰차게 내쳐놓고 태평히 운기행공이라니. 희한한 놈이 아닐 수 없었다.

**

대화의 기회는 다음 날 찾아왔다.

“단주, 이야기 좀 하지.”

촉산을 향해 나아가는 길, 잠시 휴식 시간을 맞아 당명이 곁으로 다가갔다.

“편히 말씀하십시오.”

“무공은 어떻게 익혔나?”

“서책에서.”

“서책?”

“운이 좋았습니다.”

당명의 얼굴이 찡찡해졌기에 후공은 웃음을 참아야했다.

“혹시 환명이라고 들어봤나?”

“처음 들어봅니다만.”

“소소에게 들었네. 자네가 암기를 허공에 멈춰세웠다고 하더군. 투명한 아지랑이가 피어난 다음, 암기가 아지랑이 속에 허우적거렸다고 말이네.”

“그런 묘용이 특이합니까? 암기를 멈춰세우는 것이야 가주께서도 가능한 일일 텐데요.”

“가능하네. 하지만 방식은 다르지.”

“묻고 싶은 이야기가?”

“자네의 무공이 내가 아는 사람의 무공과 흡사하다 싶거든.”

“후공?”

그 말에 당명이 씨익 웃었다.

“그렇네.”

“신검을 다루니 그런 오해를 받긴 합니다만, 제가 후공의 제자는 아닙니다.”

후공이지.

“물론 해 아래 새것이 없긴 하네. 만류귀종이기도 하고. 뭐 그렇다 치고, 내게 한번 보여줄 수 있겠나.”

“그럴까요?”

“하하하! 좋네, 좋아!”

당명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거절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였고,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대공자가 시원시원한 것이다.

“가주, 함께 사냥을 하는 건 어떻습니까?”

“사냥?”

“멧돼지로.”

.

.

.

.

.

그냥 사냥은 아니고 내기였다.

천공단주와 거물 신입의 사냥 내기에 천공단이 우르르 뒤따랐다.

“승리는 누구?”

“천공단주!”

“더 크게! 승리는 누구?”

“천공단주우우우우우!”

“승리는 누구우우우우우우?”

“물어보나마나!”

“하하하하하하!”

“으하하하하하하하!”

천공단의 열렬한 응원은 일방적으로 천공단주에게 향했지만, 당명은 개의치 않았다.

당명으로선 그저 환명과 비슷한 수법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을 뿐. 그래, 만류귀종이고, 해 아래 새것은 없다. 천화서고 대공자가 대형의 제자일 가능성도 희박하긴 하다.

어떻게 봐도 대형과 천화서고는 접점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기대되었다.

만약 환명을 볼 수 있다면,

그것이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라 해도, 같은 형태라면 자신이 어떤 기분이 들지 가늠할 수 없었다.

“가주께서 먼저 하시겠습니까?”

“후후, 그래. 내가 졸개이니 먼저 하지.”

“좋은 자세입니다.”

숲속으로 들어간 후, 당명이 손을 스치듯 하며 나무 잎사귀 하나를 떼내 쥐었다.

손을 떨쳐낸 순간,

피이잉!

돼지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잎사귀가 숲을 관통하며 나아갔다.

“우와아아!”

“굉장해!”

“근데 돼지가 안 보이잖아?”

“막 던지는 거야?”

“뭔데…… 내기인데 왜 이렇게 성의가 없어!”

천공단이 잎사귀가 나무를 연이어 관통하는 신기에 놀라는 한편 불평을 토해냈다.

하지만,

꾸에에에에에에엑!

한순간 돼지의 비명소리가 저 멀리 언덕 너머에서 들려왔기에 천공단이 넋이 나가버렸다.

“뭐, 뭐야? 돼지가 있었어?”

“잎사귀가 어떻게 유도된 거야?”

“와아아, 쩔어. 우리 신입 엄청나!”

탄성과 함께 달려가 확인하니, 아니나 다를까 돼지의 머리에 잎사귀가 박혀 있었다.

후공도 바라보고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함께 하던 시절이 떠오른 것이다.

사냥을 해야 할 때면 그건 당명의 몫이었다.

손질을 하는 것도, 고기를 굽는 것도 늘 당명의 몫이었다.

막내는 원래 그런 것이다.

당명은 환명을 보고 싶었던 것이겠지만, 후공은 당명의 적엽비강을 보고 싶었던 터.

이제 후공의 차례였다.

당명, 그 시절의 한때로 돌아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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