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화 서고 대공자-277화 (277/460)

277화. 분명 주인님이 칭찬하시겠지?

파양대군의 분노는 절규에서 멈추지 않았다.

일이 틀어진다.

자꾸만 어그러진다.

벌써 두 번째다.

사천당가를 눈앞에서 놓쳤고, 청성이 사라져버렸다.

백혼곡에서 나온 후 내내 순탄했고, 또 앞으로도 마땅히 순탄해야 하건만 갑자기 어그러지고 틀어지기 시작하니,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이내 파양의 분노가 폭발했다. 파괴로 나타났다. 손이 가는 대로 청성의 전각들을 부수기 시작했다.

파사삭!

부스스스!

과격한 몸짓은 아니었다. 그저 소맷자락이 휘둘릴 때마다 놀랍게도 전각들은 먼지처럼 흩어졌다.

눈깜짝할 사이에 다섯 채의 전각이 잿더미가 된 광경에,

[꿀꺽.]

[그으…….]

청성의 창공에 떠 있는 색관조와 금섬은 조용해졌다. 이미 높이 떠 있어 들킬 염려는 없었음에도 간이 콩알만 해졌다.

손짓에 건물이 녹아버렸어…….

거의 그런 수준.

금섬이 탁탁 두드렸기에, 색관조가 알아들었다.

색관조는 슬금슬금 더 높이 올라갔다.

그 순간,

파양대군의 움직임이 멈췄다.

시선을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색관조와 금섬은 이미 구름 속으로 파고들었음에도 식은땀을 흘렸다.

‘아니야. 볼 수 없을 거야. 볼 수 없어야 해.’

‘으으으으…….’

청성의 하늘에 머문 건 주인님의 지시.

마두 중 누구라도 청성에 올 수 있으니 기다려 보라는 말을 따라 머물던 중 마두를 보게 되었는데,

‘무서워.’

당장이라도 뭔가가 날아올 것 같만 같았다.

주인님도 그렇지 않았던가.

자신의 능력을 시험하느라 주인님이 비수를 날렸을 때도 비수를 보지 못했다. 뭔가가 깃털을 스치고 지나간 뒤에야 인지해 창백해지고 말았다.

그러니 저 마두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색관조는 주인을 통해 이미 여섯 마두들의 향을 알고 있었기에 더 무서웠다. 구름 색과 동화해 깃털 색을 바꾸었음에도 향이 계속 풍겨오는 탓에, 동공은 하염없이 작아져 갔다.

하지만 아니다.

“설마 아미파로?”

파양마군은 그저 막연히 밤하늘에 시선을 두며 생각에 빠져 있을 뿐이었다.

“천화서고 대공자…… 만약 놈이…… 아미를 노리고 있는 것이라면.”

그건 안 된다.

아미는 가장 맛있는 요리!

그걸 놈에게 빼앗기는 건 말도 안 된다.

아미가 놈에게 당해선 안 돼!

그렇게 생각한 것도 잠시, 파양마군은 그만 너털거리고 말았다.

“허허허…….”

자신이 생각하고도 어이가 없었다.

지금 누가 누굴 걱정하는가.

그야말로 역설이다.

백혼곡에서 나온 후 이런 생각을 하게 될 줄은 상상조차 못 한 일이었다.

자신이 아미를 걱정하게 될 줄 이야.

아미가 무사하길 바라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파양마군은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고개를 절레거린 파양마군이 신형을 날리는 모습에, 금섬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윽거렸다.

[그러게. 아직일 텐데.]

색관조도 금섬처럼 근심했다.

주인님이 아미파로 향했지만, 아직 아미 전체가 대피하기엔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이다.

용기를 내야 할 때였다.

[따돌려 보자.]

[그윽!]

금섬도 두 눈에 힘을 주었다.

색관조가 날개를 펄럭여 반대 방향으로 신속하게 날았다.

얼마쯤 날았을까, 이쯤이면 되겠다 싶은 색관조가 노인의 목소리를 내며 크게 소리쳤다.

[천화서고 대공자가 온다! 모두 피해…… 크아아악!]

비록 멀지만…… 마두라면 들을 수 있겠지.

이 거리에서도.

들었다.

먼 거리, 아련하게 들려온 비명 속에서 파양마군은 ‘천화서고 대공자’라는 목소리를 잡아냈다.

파라락!

파양마군의 신형이 기이하게 뒤틀어지며 선회했다.

이미 그의 입가엔 미소가 한가득.

‘흐흐흐, 찾았구나.’

스스스스슷!

빛살처럼 내달리며 잔혹한 웃음을 흘렸다.

가장 맛있는 요리인 아미가 아직 무사해서, 이 부근에서 놈을 먼저 만나게 되어 파양은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어린 마두놈아, 기다려라!

내 너의 목을 잘라주마!

[청성은 흩어져라!]

[은신은 소용없다. 모여 있지 마라! 청성이여, 부디 살아남으라!]

[크아아아아악!]

목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청성의 제자들의 목소리.

슬픔과 울분과 두려움이 범벅이 된 목소리였고 중간 중간 비명도 있었다. 또 노인의 목소리에 젊은 목소리도 있다.

또 저쪽이었다가 앞이었다가 한둘이 아니었기에 파양은 계속해서 방향을 바꾸어 나아갔다.

“어린 놈의 새끼가 얼마나 처죽이고 있는 거냐!”

천화서고 대공자!

이놈, 생각보다 더 미친 놈이 아닌가.

그러다 결정적인 목소리를 잡아냈다.

[장문인! 먼저 피하십시오!]

[장문인, 저희가 주인님, 아니 놈을 막겠습니다!]

[그럴 수 없다. 너희를 두고 내가 어찌 간단 말이냐! 청성의 혼을 더럽히란 말이냐!]

이름 모를 산야에서 들려왔다.

중간에 이상한 말이 섞여 있었지만, 그만큼 경황이 없다는 뜻이겠지. 파양마군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나둘 다 죽어 나가는 마당에 청성이 제정신이겠는가.

청성의 장문인은 어떤 선택을 할까?

파양마군은 속도를 더 올렸다.

가히 바람과 같이 산을 타고 올라갔다. 어찌나 빠르고 거침없는지, 숲을 관통하는 중에 그가 지나간 자리에 새로운 길이 생겨날 지경이었다.

‘산봉우리.’

이제 목소리는 세 번째 산봉우리.

[크아아아아악!]

[크아아아아아아아악!]

[천화서고 대공자, 넌 어찌 이리 악독한 것이냐! 크헉!]

[하하하! 같잖구나, 청성이여! 내 손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니, 이보다 우스운 일이 어디있을까. 하하하하하!]

[으읍…….]

색관조가 주인의 목소리를 똑같이 따라 했기에, 색관조의 등 위에서 금섬은 웃음을 참느라 앞발로 입을 틀어막아야 했다.

파양마군은 방향을 전환했다.

어느샌가 목소리는 다른 봉우리.

그렇기에 파양마군의 미간은 깊게 파였다.

‘흐음…… 너무 빨라.’

빨라도 너무 빠르다.

위치가 변하는 속도를 생각할 때, 이 정도면 거의 봉우리에서 봉우리로 건너뛰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도대체 어느 정도의 경지이기에 거의 날다시피 움직이는 것인가?

하긴 청성이 누구 할 것 없이 모두 도주할 정도이니.

[크아아아아아악!]

[끄아아아아아아악!]

[천화서고 대공자, 죽어서도 널 잊지 않겠다! 크아아아악!]

다시 다른 봉우리.

[머, 멈춰라!]

[후후, 청성 장문! 멈추라니, 넌 재밌는 소리를 하는구나.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이유가 뭐냐? 대체 왜 이러는 것이냐?]

[죽이는 데 이유가 필요한가? 자, 그래서 넌 이제 어디로 도망칠 거지?]

[너에게 죽느니 차라리 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겠다.]

[이런 망할!]

멀리서 파양마군의 눈이 가늘어졌다.

대충 짐작이 된다. 청성의 장문인은 절벽에서 뛰어내린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들려왔다.

[흥! 뛰어내린다고 내 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으냐!]

스스스스슷!

잠시 후 파양마군은 마지막 목소리가 들려온 곳에 이르렀다.

절벽 끝자락.

아득히 깊은 낭떠러지를 내려다보았지만 볼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허어…….”

원래라면 이곳에 천화서고 대공자가 남아 있어야 하거늘.

파양마군은 고개를 절레거렸다.

대체 뭐하는 놈인가.

절벽에서 뛰어내린 놈을 직접 죽이겠다고 함께 뛰어내리다니, 이런 느낌, 이런 질리는 느낌은 오랜만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며 파양이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한 무리의 새 떼가 어디를 가는지 무리 지어 이동하고 있었다.

하얀 새들.

이 난리법석에도 새들의 날갯짓은 평온하기 이를 데 없어, 파양마군은 마치 방금의 소란이 환상처럼 느껴졌다.

그 새 떼의 무리.

화살표 모양으로 나아가는 새 떼의 뒤쪽에 하얀 깃털로 색을 바꾼 색관조가 함께하고 있었다.

마치 원래부터 같은 무리였던 것처럼,

계속 함께했던 것처럼.

하지만 옆에서 날고 있는 새 입장에선 처음 보는 새이고, 낯선 새였기에 날면서 계속 바라봤다.

누구?

누구야?

등에 타고 있는 작은 두꺼비는 뭐야?

눈동자로 물었기에 색관조는 식은땀을 흘렸다.

야, 그냥 앞에 봐!

앞을 보라고!

이러다 다 죽어!

이렇게는 말할 수 없어,

[꾸우우우…….]

불쌍한 척했다.

그사이, 파양마군의 신형은 절벽 아래로 향하고 있었다.

찾아낸다. 천화서고 대공자!

네놈의 의기양양한 입가의 미소를 찢어주마.

머리를 아래로 향한 채 빠른 속도로 하강하던 파양마군은 순식간에 지면에 가까워졌다.

그대로 나아간다면 지면에 폭사할 상황에서 그가 소맷자락을 휘둘렀다. 거대한 장력이 지면을 강타했고, 그 반동의 여파를 타고 부드럽게 신형을 회전해 땅에 내려섰다.

하지만 문제는,

“……?”

파양마군이 사방을 둘러보며 갸웃거렸다.

시체가 없다. 핏자국도 보이지 않았다.

떨어지는 청성 장문인을 붙잡아 지면에 내려선 후 어디론가 이동했다고?

그럴 순 있겠지만, 굳이 그럴 이유가 있나?

“뭔가? 내가 뭘 놓쳤지? 아…….”

그러고 보니 이상하다.

만약 떨어지는 청성 장문인을 허공에서 붙잡았다면, 그렇게 지면으로 내려섰다면 마땅히 의기양양한 웃음소리가 들릴 만도 한데, 이후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 것이다.

기감을 극대화해 사방을 탐지했다.

하지만 헛수고.

‘어떻게 된 거지? 어떻게 이럴 수 있지?’

파양마군의 눈이 가늘어졌다.

가히 귀신에라도 홀린 느낌이다.

그래, 다시 확인해보자.

파양은 곧바로 신형을 솟구쳐 절벽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절벽 위로 올라 그 자리에서부터 역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정확히는 중간 중간 비명소리가 들렸던 곳들, 방향을 전환하느라 건너 뛰었던 지점들을 중심으로 살펴야 했다. 그곳엔 흔적이 있겠지, 그곳엔 청성의 시체가 있겠지.

하지만,

“……무, 무슨?”

파양은 당혹을 금치 못했다.

시체가 한 구도 보이지 않는다.

혹시라도 놓쳤나 싶어 다시금 샅샅이 뒤져 보았지만, 어디에도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인가…… 여태 내가 들은 건 무엇이었지?’

그 각각의 수많은 목소리. 결코 한 사람이 낼 수 없는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들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하지만 분명 시체는 없다.

청성은 애초에 없었다.

결론은 농락.

어떻게?

알 수 없다.

누가?

떠오른 건 한 사람이었다.

이름을 모르고, 얼굴도 본 적이 없지만…….

천화서고 대공자.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었기에, 파양마군은 삼백 년 만에 소름이 돋았다.

이 시대의 강호를 하찮게 여기고, 우습게 보았는데,

파양마군은 처음으로 경각심이 돋았다.

그 생각의 끝에 파양마군이 신형을 끌어올렸다.

혼자는 위험할지도.

최소한 둘이어야 한다.

‘결코 홀로 나설 일이 아니다.’

신형을 쏘아가는 길,

파양마군은 기감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주변을 탐지했다.

마치 천화서고 대공자가 어디선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마음을 떨쳐낼 수 없었기에 그렇게 되고 말았다.

그의 탐지에 하늘은 배제되었다.

철저히 사람에 집중했다.

그럼에도 새 떼의 무리에서 빠져나와 뒤를 쫓는 색관조는 방심하지 않았다.

마두의 당황해하는 모습에 마음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의기양양했지만, 주인님이 말하지 않았던가.

언제 어느 때든 방심은 금물이라고.

멀리서도 볼 수 있으니 높이 날고 거리를 둔 채로 파양마군의 뒤를 밟았다.

[야, 벌써부터 기대된다. 주인님이 엄청 칭찬하시겠지?]

[그으으으으으으윽!]

***

그 밤,

색관조와 금섬의 주인은 아미파에 있었다.

사천당가의 가주도,

청성의 장문인도, 그리고 천공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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