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화 서고 대공자-278화 (278/460)

278화. 대공자님, 감사합니다!

색관조의 칭찬은 예약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미파는 아직 머물고 있었고, 주검이 되어 돌아온 제자로 인해 슬픔에 젖었기 때문이었다. 또 아미에겐 백혼곡의 충격도 소화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마음을 추스른 후에야 세 사람은 함께 자리했다.

“당가주, 장문인…… 고맙습니다.”

아미의 수장 멸화사태가 감사를 표했다.

당명과 청성 장문인 운학진인은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고마울 게 뭔가.

위험은 이제 시작이다.

감성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다.

더 큰 희생을 맞기 전에, 당가와 청성이 그랬던 것처럼 아미도 빠르게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 자리에 후공은 없었다.

아미의 북쪽 산 위에 천공단과 함께 있었다.

백혼곡의 노마들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기에 대비했다.

‘탐향(探香).’

천향사주를 극한으로 운용해 마두들의 향을 기다렸다.

동시에,

카르르르릉!

카르르르르르릉!

크아아아아아앙!

네 줄기 자줏빛이 솟구쳐올랐다가 지면으로 폭사해 들어갔다. 땅 밑에서 각각 방위를 달리해 흩어져 멀리 나아갔고, 어느 지점에서 멈춰 숨죽이며 기운을 탐지했다.

찾아낸다.

결코 적은 지나갈 수 없다.

***

추양루.

주루의 뒤편 별실 이 층.

그곳은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술잔이 오갔다.

준수한 외모의 두 청년과 다섯 기녀가 어우러져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던 자리는, 서늘한 악귀처럼 파양마군이 들어서면서 끝이 났다.

기녀들이 물러났고,

파양마군의 전음이 소리 없이 전해졌다.

전음이 마쳐졌을 때,

- 흐음…….

- 천화서고 대공자?

극진마군과 독마군의 눈이 가늘어졌다.

다른 때 같았으면 농담이라고 여겼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파양마군은 농담에 소질이 없고, 파양의 지금 모습을 보아서도 그랬다. 눈빛에 살기가 줄기줄기 뿜어져 나오고 있지 않는가.

사천당가 가주의 목을 가지러 갔던 파양마군이다.

한데 가주는 없었다.

그뿐 아니라 잠시의 틈 사이에 모두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그건 청성도 마찬가지.

모든 걸 버리고 황급히 몸을 빼냈다.

한 사람을 무서워했다.

그것이 왜 타인인가?

왜 파양마군이 아닌가?

왜 천화서고의 서생인가?

심지어 놈은 파양을 지켜보고 있었다.

농락했다.

그 상황이 처참할 지경이다.

문제는 파양마군이 농락당할 인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런 까닭에 극진마군과 독마군은 진지해질 수밖에 없었다.

‘내내 파양마군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인데…… 그러고 보니?’

극진마군이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왜소한 체구여서 더 어려 보이는 극진마군이었지만, 밤하늘을 바라보는 안광만큼은 칼날처럼 날카롭기 짝이 없었다.

삐질.

그 안광에 닿은 색관조가 식은땀을 흘렸다.

멀리 눈길이 스친 것뿐임에도 깃털이 곤두설 정도였다.

금섬은 색관조의 깃털과 같은 검은색으로 몸의 색깔을 바꿨으면서도 바짝 엎드렸다.

색관조가 곁눈질로만 겨우 보며 힘겹게 날갯짓했다.

빠른 새가 아닌 것처럼,

잘 날지 못하는 새처럼.

‘흐음…… 착각인가?’

극진마군이 갸웃하며 시선을 거둬들였다.

분명 어떤 시선이 하늘에서 느껴졌는데, 바라본 밤하늘엔 별 볼 일 없는 새가 쉴 곳을 찾아 날고 있을 뿐이었다.

‘으으…… 여기까지야.’

색관조가 내심 진저리를 치고는, 시선이 닿지 않는 지점에 이르자 엄청난 속도로 아미를 향해 날았다.

[그윽.]

비로소 긴장이 풀린 금섬도 그제야 대자로 누워버렸다.

- 극진, 뭘 본 건가?

- 아니, 아무것도. 그나저나 이제 어떻게 할 거지?

- 놈에 대해 알아봐야지.

- 아미는?

- 확인이 필요해.

파양마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침을 기다릴 건 아니었다.

그는 언짢음이 가시지 않았고, 되도록 이 밤에 매듭짓고 싶었다.

극진마군과 독마군이 따라 일어났다.

세 신형이 창밖으로 쏘아져 나갔다가 잠시 후 둘로 나뉘었다.

파양과 극진이 함께했고,

독마군은 동행하지 않았다. 다른 방향으로 빛처럼 나아갔다.

둘이면 충분하다.

상대가 얼마나 대단하든 둘이면 못 할 것이 없다.

단순한 자부심이 아니다. 확신이다.

*

술이 문제다.

술자리가 문제다.

시간을 잊게 되고, 어떨 땐 기다린 적이 없는 불행도 찾아온다.

태천문의 장문인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한 목소리가 귓가로 파고드는데, 사람의 모습은 어떻게도 찾아낼 수 없는 것이다.

- 묻는 말에 아는 대로 답해라.

꿀꺽.

어둠에 잠긴 밤의 길가에서 태천문의 장문인의 동공은 하염없이 작아져갔다. 이 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네, 말씀하십시오.”

- 천화서고 대공자는 누구냐?

“어?”

태천문 장문인이 갸웃하며 의문을 발했다.

질문이 뜻밖이었다.

현 강호에서 천화서고 대공자가 누구냐고 묻는다고?

이만한 고수가? 모를 수가 있나?

하지만 머뭇거릴 수 없다.

곧바로 입을 열었다.

“천화서고 대공자는 최근 강호에 영웅으로 떠오르고 있는 인물입니다.”

- 영웅?

“네,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천룡의 가문들의 은인이라 알려져있고, 신주 십삼파 중 하나인 소요파에게도 큰 은혜를 끼쳤다고 전해집니다. 유령곡의 혈난에서는 종남을 비롯 여러 문파를 구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찬란히 떠오르는 별입니다.”

- 개소리!

“네?”

개소리라니?

태천문 장문인이 영문을 몰라 하며 눈이 커졌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었다.

서걱.

목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낀 태천문 장문인이 자신의 목을 매만지려는 순간,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돌아가는 세상 속에 서 있는 자신의 몸이 보이고, 목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고 있는 것도 보였기에 비명을 내지르다 지면에 처박혀 입이 틀어막혔다.

진실을 말했지만,

듣는 이가 좋지 않았다.

삼백 년이 지나 밖으로 나온 마두는 세상 물정을 모른다. 그저 자신이 겪고 본 것만이 진실일 뿐.

천화서고 대공자가 영웅이라니!

사천당가에서 서신을 보았고, 청성의 벽에 남겨진 글귀를 보기 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의 파양마군에겐 그저 개소리일 뿐이었다.

곧바로 두 번째 인물을 찾았다.

이름은 모른다. 누구인지도 중요치 않다.

그저 충분히 강해 보이는 인물, 이 강호에서 한가락 실력을 가졌다 싶은 인물이었다.

같은 질문을 던졌다.

태천문 장문인이 그랬던 것처럼 검객 벽력신검도 당혹했다.

그는 생각이 많아져 밤길을 잠시 거닐다가 뜻밖의 질문을 받았고, 공포를 느꼈다.

“천화서고 대공자는…… 천재로 알려져 있습니다. 두문불출하던 그가 모습을 드러낸 건 일 년 전쯤입니다. 하지만 그에 관해서는 너무 많은 말이 도는지라, 일 년이 아니라 십 년은 된 것과 같은 착각을 하곤 합니다. 그만큼 그의 행적은 경악스럽고, 탄성을 자내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 탄성?

“네, 그야말로 감탄입니다. 모두가 말합니다. 천화서고 대공자는 향후 이 강호의 위대한 별이 될 것…….”

서걱.

더 들을 것도 없었다.

파양마군은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었다.

이놈들 도대체 무슨 소리를 떠드는 건가.

이해할 수 없는 건 극진마군도 마찬가지였다.

누구 말을 믿을 것인가?

믿어야 한다면 당연히 파양마군이다.

하지만 첫 번째는 그렇다 쳐도, 두 번째도 대답이 같았다는 점에 있어서는 신경이 쓰였다.

만약 세 번째도 같은 말이 나온다면?

- 놈은 섭혼술을 펼치는 것인가?

- 그럴지도.

놈이 사천을 공략하는 와중,

무작위로 잘못된 정보를 진실인 양 주입시켰을 가능성도 크다.

세 번째 인물은 신중히 찾았다.

단순히 무공이 강해 보이는 자보다는 진실을 말할 사람.

오래 걸리진 않았다.

어둠을 훑는 중에 은신을 발견했다.

골목 어귀였고, 어린 거지들이었다.

- 일어나라.

귓가를 파고든 전음에 두 거지가 튕기듯 몸을 일으켰다.

- 너희는 개방도인가?

이 시대에도 개방은 건재할 테지?

어린 나이임에도 은신이 제법이었기에, 파양마군과 극진마군은 제대로 된 답을 들을 수 있으리라는 한가락 기대를 품었다.

“누, 누구?”

“사형, 무서워.”

은앙개와 소천개가 오들오들 떨며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지붕에서 잘걸.

아니, 그냥 객방에서 잘걸.

밤의 소리를 듣겠다고 괜히 객기를 부려 길바닥에 나왔다가, 전음만으로 은신을 깨뜨리는 자를 만났다.

- 난 아직 질문에 답을 듣지 못했다.

“네! 저희는 개, 개방도입니다요.”

은앙개가 바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소천개가 얼이 나가 아직 멍청하니 서 있었기에 빨리 꿇으라고 다리를 두드렸다.

- 묻는 말에 답해라.

“말씀만 하십시오!”

- 허허허…….

파양마군이 너털거렸다.

어린놈들의 처세가 훌륭해 뜻밖이었다.

- 천화서고 대공자는 누구냐? 어떤 자이냐?

쿠웅!

머리를 처박은 채 은앙개와 소천개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두근, 두근, 두근!

심장 박동도 미친 듯이 빨라졌다.

‘시발, 백혼곡의 마두!’

‘염병…… 딱 걸렸네!’

이 강호에서 두목을 모르는 자가 누가 있겠는가.

어딘가에 오랜 시간 갇혀 있다 나온 마두들이 아니라면 모를 수 없다.

백혼곡에서 삼백 년을 보낸 마두!

그리고 무엇보다 은앙개와 소천개는 두목의 계획을 알고 있었다.

두목은 표적을 바꿨다. 자신에게로!

스스로 악(惡)이 되어 백혼곡의 여섯 마두가 자신을 쫓도록 했다.

그렇기에,

‘이미 청성을 다녀왔구나.’

‘청성에 남긴 글을 보았어!’

상황을 알아차렸다.

그와 함께 죽음을 직감했다.

‘오늘…… 여기서 내가 죽는구나. 사제도.’

은앙개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이미 소천개도 흐느끼고 있었다.

소천개의 울음소리에 은앙개가 정신을 차렸다.

‘죽는 건 나 혼자.’

소천개는 살린다.

그리고 다른 이들도.

남궁연, 모용진, 언교운…….

그리고 제갈 군사, 설영, 화설난, 무광까지.

- 왜 울지? 대답은?

서늘한 전음에 은앙개가 고개를 들었다.

이미 얼굴은 눈물 범벅이었다.

“헤헤헤, 죄송합니다. 무서워서 울었습니다. 천화서고 대공자가 누구냐고 물으셨지요?”

큰 소리를 냈다.

모두가 들을 수 있게.

덕분에 들었다.

주변 객잔에서 밤귀가 밝은 이들 몇몇이 창문을 살짝만 열고 밖을 내려다봤다.

그중에는 당연히 천공단도 있었다.

은앙개와 소천개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울고 있는 모습에 저마다 입을 틀어막았다.

일반 손님들은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천공단은 보는 순간 이해했다. 듣는 순간 모골이 송연해졌다.

‘아!’

‘안 돼!’

‘제발…….’

제갈헤와 설영은 이미 눈물을 글썽였다.

다른 객방에 있는 남궁연, 언교운, 모용진도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나무관세음보살…… 제발 아니길…… 아니어야 해! 제발!’

소림의 무광도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그 소망이 부질없다는 건 알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어둠 속에서 은앙개와 소천개를 겁박하는 이는 천화서고 대공자를 모르는 것이다.

은앙개의 큰 외침이 말하고 있다.

백혼곡의 마두를 만났노라고.

그러니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아무도 나서지 말라고.

죽음은 나 혼자면 충분하다고.

“천화서고 대공자는 매우 뛰어난 자입니다. 그는 천재이며 그의 무공도 드높아, 그의 경지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 흐으음…….

개방도 별수 없나?

다를 것이 없는 대답에 파양마군이 실망했다.

“하지만 그의 본색은 실로 악한 자입니다. 강호에 알려진 이야기는 모두 조작된 것이며 실제로는 피에 굶주린 한 마리 늑대입니다. 현재 본 개방은…… 암암리에 그를 추적하고 있는 중입니다.”

- 후후후…….

웃음소리에 은앙개가 두리번거렸다.

웃음이 그치고 전음이 들려왔다.

- 넌 헛소리를 잘도 떠드는구나.

“네?”

- 너의 말은 틀렸다. 거짓을 고한 죄로 먼저 네 사제를 죽여주마.

허억!

은앙개의 눈이 커졌다.

바로 머리를 처박고 크게 소리쳤다.

“사, 살려주십시오! 용서하십시오! 몰라봤습니다! 천화서고 대공자시여!”

- …….

어둠 속 파양마군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건 극진마군도 마찬가지였다.

비로소 원하는 답,

제대로 된 답을 들은 것이다.

개방도들이 오해하고 있다.

자신을 천화서고 대공자로 여기고 있었다.

시험 혹은 유희로 생각하고 있다.

그 생생한 두려움이 전해져 흡족하기 짝이 없었다.

- 후후, 귀여운 놈.

그 전음을 끝으로 파양마군과 극진마군은 사라졌다.

확인은 끝.

이제 또 다른 확인이 남았다.

- 이제 아미로.

그로부터 일각 후,

은앙개와 소천개는 비로소 안심했다.

“시발, 살았다아아아아아아!”

“으허어어엉, 살았어! 살았다고!”

서로 부둥켜 안고 웃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살려준 것에 대한 감사도 잊지 않았다.

“천화서고 대공자님, 감사합니다아아아아아아!”

“대공자님, 살려주신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요오오오오오! 다시는 누구에게도 악당이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요!”

혹시 마두가 들을지도 모르니까!

웃으며 우는 건 둘만이 아니었다.

창틈으로 바라보고 있는 천공단도 웃으면서 흐르는 눈물을 훔치기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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