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화 서고 대공자-279화 (279/460)

279화. 부처님을 불러보아라.

스스스스!

파양마군과 극진마군은 아미파로 향했다.

신법에 전력을 다했다.

날다시피 공간을 주파하는 두 사람의 눈에는 살기가 분분히 흘러나왔다.

맛있는 건 나중에.

지상 최고의 요리는 맨 마지막에.

사천에서 아미파보다 맛있는 건 없다.

아니, 아니다.

세상에서 아미보다 더 맛좋은 건 있을 수 없다.

그런 아미를 빼앗으려는 놈이 있다고?

아미를 먼저 쓸어버리려는 놈이 있다고?

죽인다.

죽여버린다. 찢어죽인다.

천화서고 대공자!

백혼곡에서 보낸 삼백 년 동안 내내 생각했다.

언젠가 나가게 된다면, 기회가 주어진다면 아미를 갈가리 찢어발기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 날이 온다면…….

그런 날이 온다면…….

수많은 날을 그 생각만 했다.

하지만…… 그런 날은 오지 않겠지.

그래, 올 리 없다.

매번 희망을 품었다가 매번 아프게 좌절했다.

청절사태의 진법은 손상되지도 않고 파훼할 수 없는 거대한 벽이었다. 부술 수도 없고, 생문도 없는 절대적인 감옥!

한데 기적이 찾아왔다. 생령과를 얻은 것이 절망의 깊이를 더해주었지만, 틈이 열렸다.

엄청난 지진.

길이 열렸다.

뚫린 구멍을 올려다보며 눈을 의심했다.

꿈인가?

한참이나 넋을 놓고 바라봤다.

그러다 말로 할 수 없는 전율에 몸을 떨었다. 어린아이처럼 환호했다.

그 모든 것.

생령과를 찾고 지진이 일어나 틈이 열린 것까지 하늘의 안배로 느껴졌다.

그래, 삼백 년이다.

이 정도면 하늘도 불쌍히 여길 만하다.

보상할 만도 하다. 우리는 보상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그렇게 여겼다.

이제 차려놓은 밥상에 앉기만 하면 되는데…….

그런데 누군가 밥상을 걷어차려고 한다

울분이 차오르고, 미쳐버릴 것 같아 파양마군이 크게 소리쳤다.

“천화서고 대공자! 아미파를 건드리면 넌 살아도 산 것이 아니게 될 것이다! 네놈에게 지옥을 보여주마!”

***

그 시각,

아미는 아직 그대로였다.

슬픔은 잦아들었지만 아미는 뜻밖의 태세를 갖추었다.

전의를 불태웠다.

아미의 결정은 맞서 싸우는 것.

물론 그와같은 결정을 내린 이는 아미 장문인 멸화사태였다.

그렇기에,

“아미 장문, 아직 이해가 안 되는 겁니까?”

아미의 멸화사태와 함께 자리한 사천당가주 당명과 청성 장문인 운학진인은 답답함에 목이 멜 정도였다.

상대가 백혼곡의 마두들이다.

삼백 년이 우스운가?

알아듣게 충분히 이야기했다 싶은데, 왜 아미의 결정이 맞서 싸우는 것이 되는가?

멸화사태가 무심히 고개를 저었다.

“당가주, 저 또한 충분히 말씀을 드렸다 싶습니다만.”

“물론 듣긴 했소. 정녕 그 결정이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오?”

당명의 얼굴이 상기되었다.

듣긴 했다.

문제는 그 말이 개소리라는 것.

과거의 유훈.

삼백 년 전 천하제일인.

당시 아미 장문인 청절사태가 남긴 말에 아미는 붙들려 있었다.

- 강호의 일은 알 수 없다. 아미는 백혼곡을 예의 주시하라. 늘 살펴 변고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백 년이 지나도, 또다시 백 년이 지나고, 또다시 백 년이 지나도.

그럴거면 죽였어야지.

좋다, 뭐 여기까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 혹여 변고가 발생해 백혼곡의 구십여 마두가 빠져나온다면 아미는 강호를 위해, 세상을 위해 마두들을 막는 데 앞장서야 한다. 아미의 모든 목숨으로 그들을 막아야 할 것이다.

이건 대체 뭔가?

왜 그래야 하는가?

과거의 유훈일 뿐이다.

백혼곡의 마두들이 현실이 되어 모습을 드러냈는데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혀 정면승부를 하겠다고?

각자의 길이 있고, 각자의 신념이 있다.

그걸 당명과 운학진인이 모르는 건 아니었다.

대적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이건 그저 어떤 방식을 선택하느냐의 문제였다.

“멸화사태, 사숙이 어떤 경지에 이른 분인지는 기억하고 있소?”

운학진인의 목소리가 높았다.

사숙은 구양진인.

화경의 극에 이르렀다.

그런 사숙이 속절없이 죽임을 당했다.

보란 듯이 머리가 잘려 탁자에 올려졌다.

그리고 끔찍한 글귀까지 남겨졌다.

그러는 동안, 적이 청성의 암자를 제집 드나들듯 다녀가는 동안에도 청성은 전혀 알지 못했다.

이 의미를 정녕 모른단 말인가?

알고 있었다.

무심한 눈빛을 유지하던 멸화사태가 길게 한숨을 뱉어냈다.

“운학진인, 말씀하시는 바를 내 어찌 모르겠소. 하지만 지금까지 아미가 존재할 수 있었던 건 선대의 길, 선대의 유훈을 따라 그 길을 어긋나지 않게 걸어왔기 때문입니다. 그저 부처님의 자비로움이 비추길 바랄 뿐입니다.”

순간,

당명이 두 눈에 분노를 드러냈다.

끓어오르는 노기에 기운이 일렁이니 그에 따라 옷자락이 펄럭이고 머릿결이 춤췄다.

“부처님?”

“…….”

멸화사태가 바라봤다.

나이가 들었음에도 그녀의 눈동자는 어린아이처럼 투명하고 맑았다.

당명은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녀가 억지를 부리고 있는 건 아니다.

그녀는 그저 유훈에 사로잡혀 있을 뿐.

“멸화사태, 적과 맞서지 말자는 뜻이 아니오. 우린 그저 전략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오. 그대는 검성과 소림의 교훈을 상기해야 할 것이오.”

검성의 마화 당시,

소림의 백팔나한이 소멸했다.

고작 일 년 반 전의 일이다.

“만약 그때 대형이…… 후공이 나서지 않았다면 소림은 백팔나한으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고, 막으려 다가오던 무당도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오. 지금의 아미가 소림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것이오?”

백혼곡의 마두들 하나하나가 검성과 같다면,

그 여섯이 그와 같은 경지에 이르렀다면 어떻게 할 생각인가? 그것이 정녕 부처님의 뜻이라고? 모두 허망하게 목숨을 갖다 바치는 것이 부처님의 뜻이란 말인가?

그런 물음이었다.

멸화사태는 답이 없었다.

설득이 이어졌다.

분위기를 바꿔보려 운학진인이 애써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미 장문, 그대도 강호의 승부에서 일개 제자들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지 않소이까. 그저 인질이 되고, 그들이 죽어 나간다면 마음만 뒤흔들릴 뿐이란 걸 말이오. 잘 생각해 보시오. 쉬운 길을 두고 굳이 진흙탕으로 걸어들어갈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여섯 노마를 한꺼번에 상대한다?

어리석은 일이다.

최선은 하나씩 제거해나가는 것.

만약 지금 놈들이 아미를 향해 오고 있다면 그것이 하나일지, 여섯일지 모르는 상황이 아닌가.

그렇게 설득했다.

지당하고 현명한 말이었다.

그래서 당가와 청성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천공단의 일부도 일반인들 사이로 스며들어 숨죽이고 있다.

과거의 유훈.

과거의 언약에서 멸화사태는 이제 벗어나야 한다.

멸화사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분의 말씀 이해합니다. 천화서고 대공자에게도 감사한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그가 노마들의 눈길을 돌려 스스로 노마들의 표적이 된 것도 이 빈승은 놀랍습니다. 그가 아니었다면 더 많은 희생이 있었을 테지요.”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당명과 운학진인이 눈을 빛냈다.

멸화사태의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백혼곡은 아미의 일입니다. 과거의 매듭이 풀려 이제 아미를 덮치려 하고 있으니, 다시 매듭지어야 하는 것도 아미입니다. 어찌 아미가 천화서고 대공자…… 그 한 사람에게 짐을 지울 수 있겠습니까.”

“하아…….”

운학진인이 탄식했다.

혹시나 하고 기대했거늘…….

어쩌다 아미는 이런 장문인을 얻은 것인가.

비겁해야 할 때 비겁할 줄 모르는 사람이 어찌 한 문파의 수장이 된 것인가.

당명은 아예 차갑게 식어버렸다.

이제 화도 나지 않았다.

마음이 가라앉는 가운데,

‘죽일까?’

죽여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죽이지는 않더라도 죽도록 패버리고 싶었다.

대형이라면 아마 그렇게 했을 것이다.

물론 그건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머뭇거리게 된다.

왜지? 난 왜 망설이고 있지?

무엇을 기다리고 있지?

그래, 알고 있다.

천화서고 대공자.

천공단주!

겁도 없이 백혼곡을 홀로 들어선 이.

스스로 노마들의 표적이 된 이.

분명 애송이인데, 그에게 먼저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이유는?

알 수 없다.

천공단주라는 지위 때문이 아니다.

진짜 당명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멸화사태…….”

다시금 청성 장문 운학진인이 입을 열었다.

.

.

.

.

.

‘글렀네, 글렀어.’

방장실 바깥에서 쪼그려 앉아 아미 장문인의 결단이 언제가 될지 귀 기울이던 무흔신투가 몸을 일으켰다.

글렀다.

대공자님이 결과를 전하라고 했던 터라 이내 신형을 날렸다.

방장실 앞을 지키는 아미의 호법, 사대연화의 눈길이 따라왔지만 무흔신투는 신경쓰지 않았다.

‘쯧쯧, 미련해도 정도가 있지.’

신투는 순식간에 나아갔다.

아미의 북쪽 산에 이르렀을 때 그는 바로 보고할 수 없었다. 순번이 밀렸다.

[주인님, 저 엄청 잘했죠? 굉장했죠?]

[그윽, 그윽, 그으으으윽!]

먼저 도착한 색관조와 금섬이 상황을 보고 있었다.

“놀랍구나. 과연 천공단인걸?”

후공이 미소를 지으며 칭찬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색관조는 거의 목숨을 건 것이다. 그로인해 많은 시간을 벌었다. 색관조의 속임수가 없었다면 적은 이미 들이닥쳤을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백혼곡의 여섯 노마들 중 셋까지 확인하고 왔으니, 새가슴이 아니라 용의 가슴을 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까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그으으으으으으!]

색관조가 하늘 높이 날아오르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다 뭔가를 발견하고 웃음을 뚝 그쳤다.

[어? 저 녀석!]

사천당가의 색황조가 날아오고 있었기에 곧바로 다가가 아는 척했다.

[야, 이제 왔어?]

끼이이이이…….

[어, 그래. 따라와.]

끼이이…….

색황조가 순순히 뒤따랐다.

처음 만남에서 크게 당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주인이 이 새의 주인을 친구로 대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후공은 팔을 들어 보였다.

색황조가 내려앉았고, 발목에 묶여 있는 서신을 풀어 살폈다.

내용은 단순했다.

휘파람 소리를 들었고, 당가는 무사히 도피.

거짓 서신을 남겼다는 내용이었다.

흡족히 여기며 후공은 무흔신투를 돌아봤다.

무흔신투가 바로 예를 취했다.

“대공자님, 아미파 장문인 멸화사태는…….”

신투의 말이 끝나자마자 천공단이 발작을 일으켰다.

금적자를 비롯 누구할 것 없었다.

생각이 있는 거냐, 없는 거냐! 시발, 미친 것 아니냐, 미련해도 정도가 있어야지, 같은 말들이 쏟아졌다.

그와 동시에,

카르르르릉!

크아아아아아앙!

적을 탐지하던 네 줄기 자줏빛 광채가 지면을 뚫고 튀어나와 밤하늘을 가로지르며 날아들었다.

처처척!

각각 주인의 검집으로, 소매로 빨려들어갔다.

그 의미를 모를 천공단이 아니었다.

이제 계획은 변경.

색관조의 보고를 생각할 때 백혼곡의 마두가 둘이 올지, 셋이 올지 모르는 상황.

반 시진 후일지, 한 시진 뒤일지도 알 수 없거늘,

아미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니,

단주가 아미로 신형을 날렸기에 곧바로 뒤따랐다.

하지만 따라가는 건 벅찼다.

무흔신투조차 한참이나 뒤처졌다.

그리고 느껴진다.

단주의 표정은 무심했는데,

내심은 얼마나 분노하고 있음인가.

그렇게 후공이 순식간에 아미의 방장실 앞에 이르니, 그 앞을 지키고 있던 아미의 사대연화가 갸웃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네 호법 모두 안색이 상기되었다.

“대공자!”

“혹시 백혼곡의 마두들이 온 것입니까?”

아니다.

너희는 마두를 걱정할 때가 아니다.

후공은 성큼 호법들을 향해 나아갔다.

네 줄기 하얀 광채가 일었다 싶은 순간, 호법들이 지푸라기 인형처럼 무너지며 혼절했다.

쓰러지면서도 호법들은 자신들이 왜 쓰러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예 보지 못했고, 그것이 능오침이라는 건 더더욱 알 수 없었다.

다음 차례는 아미 장문인.

후공은 문을 열고 들어가지 않았다.

사치다. 그럴 가치도 없었다.

벽을 향해 나아가며 소맷자락을 휘둘렀다.

파사삭!

벽이 먼지처럼 통째로 부서져내린 가운데 방 안의 풍경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놀란 눈의 세 사람.

“대, 대공자! 이게 무, 무슨……?”

아미 장문인 멸화사태가 놀라 더듬거렸다.

어린아이처럼 투명하고 맑은 눈.

하지만 투명하든 불투명하든 소용없다.

무슨 일이냐고?

스슷!

후공의 신형이 일순 사라졌다.

나타났을 땐, 이미 멸화사태의 목을 쥐고 들어올리고 있었다.

“크으으으으윽!”

예상치 못한 급습에 맥문이 틀어잡힌 멸화사태가 경악과 함께 고통에 몸부림쳤다.

후공의 무심한 시선이 그런 멸화에게 닿았다.

“무슨 일이냐고?”

“으으으으…….”

순간,

고통에 겨워하던 멸화사태는 시야가 흐릿해졌다. 엄청나게 빠르게 자신이 움직인다 싶을 때,

쿠웅!

그대로 바닥에 머리가 내리꽂혔다.

바닥에 반쯤 처박힌 채 멸화사태가 경악에 차 바라볼 때, 발바닥이 얼굴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후공이 그녀, 아미 장문인의 뺨을 발로 짓이겼다.

“멸화, 지금 부처님을 불러보아라. 어떻게 되나 궁금하구나.”

“………….”

“네가 내 손에 살아날지, 죽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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