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5화. 영광입니다, 부단주!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가장 아름답지?
거울이 말해 온다.
“화설난!”
“천하제일미녀!”
“꽃보다 아름답고 별빛보다 빛나는 여인!”
그렇게 천공단이 소리 높여 외치니 화설난은 멍해졌다.
“꿈이…….”
꿈이 아니다.
귀가 먹먹해지는 외침, 천공단의 활짝 웃는 얼굴들.
꿈일 수가 없다.
그런 화설난에게 천공단이 화답했다.
이건 꿈이 아니라고, 현실이라며,
짜악!
소천개가 은앙개의 뺨을 후려갈겼다.
“이 거지 새끼야, 아파!”
“사형, 그럼 뭐지?”
“하하하, 아프니까 꿈이 아니지.”
그 모습에 화설난은 결국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어떻게 이런 사람들을 내가 만날 수 있게 된 거지?
아홉 살 때부터 늙기 시작해 할머니가 되었는데, 그래서 늘 자신은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모든 날이 이 순간의 행복을 위한 것이었을까.
꿈이 아닌데,
화설난은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자, 가자!”
그런 화설난에게 천공단이 달려들었다.
이제 화설난은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화설난을 연신 높이 올렸다 받았다 하는 동안, 천공단의 외침은 더 커졌다.
“천하제일미녀!”
“하늘 높이, 더 높이!”
“제갈 군사보다 더 아름답고, 사천제일미녀보다 더 아름다워!”
그럴 리가.
그렇지 않다는 건 화설난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저 그 마음이 고마워 눈물이 흐를 뿐.
“비 온다!”
“하늘에서 비가 와!”
“천하제일미녀가 구름이 되었네!”
천공단이 너스레를 떨며 높이 높이 던져 올렸다.
“나랑 혼인해줘! 안 그러면 울어버릴 거야!”
“금적 선생, 그건 화 소저에게 너무 가혹하지 않습니까!”
“사랑은 원래 가혹한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에 화설난은 울면서 자신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그렇게 솟구쳤다 내려왔다 하면서 보이는 면면. 화설난은 한 사람 한 사람을 눈에 담았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건 천화서고 대공자.
무심한 듯하면서도 옅게 미소 짓고 있는 모습이 보였기에,
“고ㅁ…….”
고맙다는 말을 꺼내려 했지만 목이 메였다.
“감…….”
잘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화설난은 마음 속으로 크게 외쳤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광경을 모두가 지켜봤다.
잠들지 못한 밤.
가주의 매 타작과 호통소리에 잠들었던 이들도 깨어난 밤.
당가의 모두가 나와 지켜봤다.
무림맹 암부의 부주. 천재 노파가 젊어진 걸 보았고, 축하해주는 천공단의 모습을 바라보며 누구 할 것 없이 미소를 지었다.
한쪽 멀찌감치에서는 감회에 젖은 이도 있었다.
‘젠장.’
요로선인이었다.
화설난의 백발이 흑발이 되고, 고운 할머니에서 고운 아가씨가 된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자꾸만 눈이 시큰거려 눈에 손이 갔다.
이 나이면 원래 눈물이 마르지 않나?
더 이상 나오지 않아야 하는데, 자꾸만 왜 젖어드는지 모를 일이었다.
암부의 부주. 암부의 천재.
노파의 모습인 화설난을 대할 때면 얼마나 대하기 어려웠는지 모른다.
그런 모습일 때마다 더 다가와 준 건 화설난이었다.
- 우리 늙어가는 사람들끼리 사귀지 않을래요?
- 이 할망구와 맛있는 것 먹으러 갑시다.
- 아이구, 할아범. 삭신이 쑤시니 같이 산책이나 갑시다.
그렇게 너스레를 떨며 다가와주었다.
편해지면서는,
- 콜록, 콜록. 할망구가 귀찮게 하는구만.
언젠가부터 농담을 할 정도가 되었음에도 괜히 미안해졌다. 그러고 나면 맹주에게 찾아가 왜 방법을 찾지 않느냐며 심통을 부리곤 했다.
그런데 후공도 하지 못한 일을,
천화서고 대공자가 해냈다.
‘대체 뭐하는 놈이야? 어떻게 그걸 줄 수 있느냐고…….’
“말도 안돼. 콜록, 콜록. 이건 정말 말도 안 돼.”
“선인, 많이 놀라셨나 봅니다.”
곁에서 청성 장문인 운학이 물어왔다.
요로는 고개를 절레거렸다.
“놀랄 수밖에. 콜록, 콜록! 그걸 왜 화설난에게 주냐고……. 나나 주지.”
“하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
운학진인과 멸화사태가 웃음을 터뜨렸다.
말과는 달리 요로선인이 눈물을 찔끔거리고 있는 모습이니 웃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다른 한편에선,
“어떠냐. 이제 어떤 사람인지 보이느냐?”
당명이 두 아들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당무와 당운이 힘차게 답했다.
“거대한 태산이 보입니다!”
“아득한 거인이 보입니다.”
두 아들의 대답에 당명이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럼 이제 누구지?”
“대공자는 저희의 백부님이십니다!”
당명의 미소는 더 짙어졌다.
이제야 모든 게 제자리를 찾아간다.
그래, 대형은 원래 너희들의 백부.
“알았으면 꺼져라.”
“넵!”
당무와 당운이 꺼졌다.
이내 나타난 건 천화서고 대공자 앞이었다.
면전에서 공손히 예를 취했다.
배분 정리는 끝났다.
아버지가 대공자를 형님이라 부르게 되었으니,
이제 자신들에게 대공자는 백부.
하지만 그럼에도 새파랗게 젊은 청년 서생의 모습인 것만은 틀림없었기에,
“백…… 백…… 백부님께 당무가 인사 올립니다.”
“배배배배…… 백부님, 당운이 인사 올립니다.”
엄청나게 더듬거렸다.
둘을 바라보는 후공은 그저 웃음.
원래 백부였기에 새삼스러울 건 없었다.
‘후후, 귀여운 놈들.’
하지만 그런 광경은 또 다른 누군가에겐 한숨이 되었다.
“휴우우우…….”
은소소만큼은 한숨 속에 눈빛이 아련해졌다.
눈앞에서 자신의 첫사랑이 떠나가는 것이다. 두 숙부가 백부라 칭하며 머리를 조아리면서 완전히 끝나버렸다.
- 초야.
- 네, 누님.
- 내 첫사랑 멋지지 않니?
- 멋진죠. 두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로요. 누님, 근데…….
- 응?
- 이제 족보가 꼬여서 어려울 거 같은데요.
꼬여도 너무 꼬였다.
대공자 형님이 이제 할아버지가 된 상황.
- 원래 첫사랑은 이루어지 않는 법이야. 첫사랑은 짝사랑이지.
- 아하!
- 너무 빨리 이해하지 마.
- 근데 이제 어떡하죠? 대공자 형님을 이제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 할아버지?
“하하하하하하!”
**
그로부터 이틀.
머물던 손님들이 작별을 고했다.
“대공자, 언젠가 꼭 다시 아미파를 찾아주세요. 이 빈승은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리겠습니다.”
아미파 장문인 멸화사태가 예를 갖추었고,
“대공자, 청성도 잊지 말게.”
청성 장문인 운학 진인도 껄껄 웃으며 작별 인사를 건넸다.
“콜록, 콜록! 대공자, 이제 어디로 가나?”
“아직 정하지 못했습니다.”
“어려운 일 생기면…… 콜록, 콜록! 연락하게. 아니, 아니지. 어려운 일 생기면 연락하겠네.”
“하하하하!”
오랜 친구의 농담에 후공은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리고 마지막은 화설난.
화설난은 누구보다 작별을 아쉬워했다.
은혜를 갚을 길은 아득하고, 또 한편으로 대공자와 천공단과 헤어진다는 사실이 그녀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그래서 다시 한번 청했다.
“대공자, 저도 함께하면 안 되나요?”
“사양합니다.”
화설난이 웃었다.
안 된다는 건 알고 있다. 처음으로 경험한 강호는 경이롭고 신비했고 즐거움도 컸지만 무서운 곳이기도 했다.
그러니 각자가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한다.
이번 강호행만으로 충분하기도 하고, 말로 할 수 없는 큰 선물도 받았다.
함께한다면 자신은 걸리적거리기만 할 뿐이다.
‘그렇죠?’
화설난은 말 대신 눈빛으로 물었다.
마주보는 눈길에서 후공은 화설난의 마음 속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걸리적거릴 리가.’
한동안은 거울만 들여다보기에도 너에겐 시간이 부족해서 그런 것뿐이다. 무림맹으로 돌아가 예뻐진 모습을 자랑도 해야 할 테고. 모두가 놀라는 모습도 봐야 할 테니.
그리고 무엇보다 곁에 두기엔…….
‘눈이 부셔서?’
후공이 미소를 머금고 그런 마음을 전했다.
분명 들리지 않았을 텐데 화설난이 배시시 웃음을 터뜨렸다.
*
떠나야 할 이들이 떠난 그날.
후공은 찻잔을 사이에 두고 당명과 마주앉았다.
오가는 전음 속에 당명은 싱글벙글이었고, 후공은 그 모습이 못마땅했다.
“크흠.”
- 표정 좀 신경 쓰지?
- 뭐 어떻습니까. 아무도 없는 걸.
- 밖에서도 그러니까 하는 말이 아니냐!
“흐흐흐.”
- 그나저나 대형, 이제 우리 일정이 어떻게 되는 겁니까?
- 잠시 이곳에서 수행을 점검할 생각이다. 대략 보름에서 이십여 일 정도.
- 석실을 준비하겠습니다.
- 그다음, 풍제에게 간다.
당명이 순간 멍해졌다.
너무나도 간절히 기다렸던 말을 듣게 되면 넋이 나가버리는 건 당연한 일.
하지만 그것도 잠시,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하하, 간다아아아아아아!”
- 정신 안 차리냐!
미친 새끼야!
후공이 나무랐지만 당명은 그러거나 말거나였다.
“간다아아아아! 이게 대체 얼마 만이냐!”
**
후공이 수행에 들어간 그 밤.
천공단은 사천당가의 대 연무장으로 나와 있었다.
천공단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기에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나왔다.
“왜 우리뿐이야?”
“시발, 사람을 불러냈으면 먼저 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뭔데 사람을 오라가라야! 그래, 안 그래?”
“야식 먹는데 불러내는 건 강호의 도리가 아니지!”
소식을 전한 건 총관이었다.
가주께서 따로 할 이야기가 있다는 말에 야식도 팽개치고 달려나왔는데 암향야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나무관세음보살~~~. 시ㅂ…….”
소림의 무광이 욕을 내뱉으려다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눈 앞으로 하나의 형체가 조각 조각 귀신의 모습인 양 맺혀갔기 때문이었다.
암향야의 신법임을 모두가 알아봤기에, 소란을 떨던 천공단이 고요해졌다.
당명이 뒷짐을 진 채 천공단을 둘러보다 이내 나직히 입을 열었다.
“모두 온 것 같군.”
“신입님, 무슨 일인데 무게 잡고 그래요?”
소천개가 불만에 찬 표정으로 물었다.
이럴 시간이 없었다. 야식이 식는다.
얼른 야식 먹어야 한다는 열망이 두 눈에 가득했다.
“천공단의 서열을 정리한다.”
“응?”
“서열?”
“서열이라고?”
누구 할 것 없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당명의 말이 이어졌다.
“오늘부로 내가 천공단의 부단주다.”
“…….”
“…….”
갑작스런 선포에 모두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말이 쏟아져나왔다.
“천공단에 부단주가 있었어?”
“나 처음 들어.”
“내가 천공단 장로인데 그런 게 있는 줄 몰랐네.”
당혹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당명의 말이 이어졌다.
“이 서열에 불만이 있는 놈은 앞으로 나와라. 나를 꺾으면 그가 부단주가 된다.”
쿠웅!
천공단이 주춤했다.
현경의 고수를 무슨 수로 싸워 이긴단 말인가.
하지만 여기서 고분고분 물러날 천공단이 아니었다.
그리고 알아차리기도 했다.
“신입 주제에 건방지네.”
은앙개가 주먹을 불끈 쥐고 눈을 부라렸다.
소천개도 그 곁에서 함께 눈을 부리부리하게 떴다.
“신입! 오늘 죽음을 보여줘?”
스릉, 스릉, 스릉!
남궁연과 언교운, 모용진도 검을 빼들었다.
“후후, 몸에 칼 구멍을 내줘야 정신 차리려나?”
“우습구만.”
“천공단을 너무 만만하게 보면 곤란하지.”
항마삼협과 무산쌍웅이 급격히 기운을 끌어올렸고, 낭인왕은 비웃음을 머금고 천천히 도를 뽑아냈다.
무흔신투와 지귀객도 눈빛을 빛냈다.
처음엔 얼떨떨해하던 무광도 비로소 상황을 이해하고 불호를 나직이 외운 다음 금강신권을 준비했다.
“형! 대결은 이틀 동안 하는 건 어떻습니까?”
금적자가 제안했다.
당명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사흘로 하지.”
그 말에 천공단은 누구 할 것 없이 눈매를 꿈틀했다.
마음은 진탕 되어 간다.
‘와아아.’
‘사흘.’
‘엄청나.’
‘하아…… 이렇게까지?’
마음에선 이미 환호.
결과는 뻔하다.
현경의 고수를 어찌 이길 수 있을 것인가.
천공단이 백 명이어도 의미 없다.
그리고 환호이자, 두근거림이다.
이건 그저 엄청난 기회요, 축복.
현경의 고수가 천공단에 가르침을 내리려 한다.
그것도 사흘 내내.
금적선생이 가르침의 시간을 이틀 요청했는데, 도리어 하루가 늘었다.
얼마나 많은 배움을 얻어갈 것인가.
그렇기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리고, 암향야가 천공단의 부단주라니!
이런 날을 맞이할 줄이야.
그렇기에 눈빛을 빛내는 한편,
마음으로 외치게 된다.
‘영광입니다, 부단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