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화 서고 대공자-297화 (297/460)

297화. 풍제는.

‘암향야가 왜 이곳에? 그것도 이 아침에?’

곤륜 장로 제광은 갸웃하며 신형을 날렸다.

마음에 이어지는 건 반가움과 또 다른 의문.

‘허허, 제갈 군사를 여기서 보는군. 한데 젊은 서생은 누구지? 아니, 서생이 아닌가?’

암향야 곁에 제갈혜가 있는 건 특별할 것이 없었다. 제갈혜에게 암향야는 숙부. 두 사람의 관계는 혈육과 같다. 그러니 그저 이해되고 반가울 뿐인데…….

문제는 젊은 서생이었다.

옷차림이나 분위기, 그리고 드러난 기운은 영락없이 내공 한 줌 없는 백면서생인데 검을 세 자루나 차고 있으니 기이할 따름이었다.

이내 앞에 이르러 인사를 건넸다.

“암향야, 제갈 군사! 반갑소이다. 한데 여기 청년분은?”

후공이 바로 예를 갖췄다.

“천공단주가 곤륜의 장로님을 뵙습니다.”

“……?”

제광이 멍하니 눈을 깜박였다.

그것도 잠시,

“오오오오오오오오오! 누구인가 했더니 천공단주였구만. 반갑네, 반가워! 하하하하하하!”

이 강호에 천공단주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곤륜이 중원의 서쪽 끝자락 청해성에 자리하고 있긴 해도 강호의 소식은 듣고 있었다.

문제라면 정보가 조금 느리다는 점 정도.

“섬서에서 유령곡을 멸살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네. 그곳에서 자네가 하늘을 날았다는 식으로 과장된 소문이 들려오기까지 하더군. 하지만 뭐 그 정도로 자네의 활약이 대단했다는 뜻일 테지.”

제갈혜가 미소를 머금었다.

과장된 소문일 리가.

자신이 날아온 걸 목격한 당사자다.

그리고 언제적 유령곡인가.

그날 이후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

북해빙궁, 그리고 신검의 도난, 그리고 지천이며 흑전. 백혼곡까지.

그 모든 날을 백부 곁에 있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유령곡의 일은 십 년 전의 일처럼 아득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제광의 말이 이어졌다.

“그러고 보니 제갈 군사와 천공단주는 사귀는 사이인가 보구려. 잘 어울리는…….”

“아니, 제가 차였어요.”

“어…….”

제광이 멍해졌다.

“허허, 이 노도가 괜한 말을 꺼냈구려.”

그러면서 천공단주를 바라봤다.

이상한 사람 다 본다는 눈길에 당명이 입을 열었다.

“무슨 일로?”

“암향야, 여기서 이야기하자는 거요?”

“문제될 게 있나?”

“아니, 그래도 그렇지.”

숨겨진 말의 의미는 명백하다.

곤륜의 제광이 천공단주를 신경 쓰고 있다는 건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흥!”

당명은 같잖아져 콧방귀를 뀌었지만, 후공은 아니었다. 바로 당명을 향해 입을 열었다.

“가주, 돌아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 말에 제광이 옅게 미소 지었다.

‘후후, 천재라더니 눈치도 빠르군.’

어린 친구가 그래도 낄 데 안 낄 데 구분은 할 줄 안다 싶어 내심 고개를 끄덕이던 제광은, 그다음 들려온 말에 와닷 놀라 몸을 휘청이고 말았다.

“네, 형님!”

“으어어엇!”

**

장로 제광의 놀라움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사천당가에 들어선 후,

당가의 대연무장을 지나치다 소스라치고 말았다.

“헉! 뭐, 뭐여?”

대연무장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십여 명이 옹기종기 돼지를 구워 먹고 있었다.

거지도 보이고, 노인도 보이고…….

‘금적자네?’

그리고 청년 검수들도 보인다.

아름다운 여인도 있고, 얼굴이 흉신악살인 놈들도 둘이나 되고.

너희들 뭐냐?

아침부터 고개를 구워먹는다고?

아니, 아니다.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사천당가의 연무장에서 버젓이 돼지를 구워먹고 있는 놈들이 있다는 것.

도대체 목숨이 몇 개인가?

뭔데 현경의 고수가 가주로 있는 사천당가에서 돼지를 잡아먹고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암향야…… 저들은 도대체…….”

“천공단.”

“천공단인 건 알고 있소. 내 말은 대연무장에서 고기를 구워먹어도 되냐는 말이오! 왜 가만 내버려두냐는 것이오!”

그때 천공단이 소리 높여 인사를 보내왔다.

“형님, 나오셨군요!”

“두목, 오래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여어~ 부단주님~~.”

“부단주님, 같이 고기 먹어요!”

“후후.”

당명은 그저 웃어 보였다.

하지만 제광은 갸웃.

“암향야, 부단주는 누구요?”

“나.”

**

두 사람만 마주한 자리.

제광은 폭풍같이 질문을 쏟아냈다.

천공단주가 왜 형님이 된 것이며, 천공단의 부단주는 또 뭐냐고 따지듯 물었다.

제대로 된 답은 듣지 못했다.

그저 내기에서 졌다는 말이 돌아왔다.

원래는 아버지라고 부르기로 한 내기였는데 차마 아버지라고 부를 순 없어 형님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말.

“그럼 천공단 부단주는 어떻게 된 상황이오?”

“아우가 되었는데 부단주는 당연하지. 그리고 백혼곡.”

“응? 백혼곡? 으억, 잠깐만! 설마?”

제광이 기함했다.

“아미파…… 그 백혼곡이 튀어나왔단 말이오?”

“후후, 난리도 아니었지. 재밌기도 했고, 한편으로 뜻깊기도 하고.”

그러면서 당명이 대강의 상황을 전해주었다.

여섯 마두, 아미파와 청성, 그리고 무림맹까지 몰려와 떠들썩했다는 이야기들 속에서 제광은 연신 탄성을 터뜨렸다.

무엇보다 천화서고 대공자가 백혼곡의 우두머리를 끝내버렸다는 말에는 한참이나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쯤이면 제광도 납득할 수 밖에 없었다.

“허허, 이해했소. 아버지라 부를 만하오.”

그리고 천공단의 부단주가 된 것도.

“내 이야기는 여기까지. 대광, 이제 무슨 일인지 들어봅시다.”

“제광이라니까!”

“하하, 그대의 머리가 더 커진 것 같아서.”

“아니, 후공은 왜 날 그렇게 불러가지곤.”

투덜대던 제광이 이내 전음을 발했다.

**

그 시각,

후공은 천공단과 함께 있었다.

“아까 봤어? 곤륜 장로님 머리가 엄청 커! 하하하하하!”

“그러게. 그러고도 걸어다닐 수 있다니 신기하구만.”

“나라면 죽었어.”

“아무렴.”

“쌍웅이 할 말은 아니지 않나?”

“신투, 무슨 뜻이야?”

“몰라서 묻는 거여?”

“맞아, 자기 얼굴 정도는 한 번씩 확인하면서 살자고요.”

“다들 뭐라고 떠드는 거야. 화공신타보다는 우리가 더 잘생겼잖아!”

“하하하, 그건 맞아.”

“하하하하하!”

언제나처럼 왁자지껄 떠드는 천공단의 소란 속에 후공은 생각을 정리했다.

이제 가야 할 곳은 마교.

만나야 할 이는 풍제.

사사로운 길이고, 오랜만에 다시 보는 아우와의 재회이기에 천공단과 동행할 이유는 없다.

동행하는 이는 한 사람.

당명.

천공단은 섬서의 안강으로 돌아간다.

그와 같은 뜻을 전하니,

“네, 형님!”

“네, 두목!”

천공단은 군소리가 없었다.

내심 떠오른 서운한 마음을 감추고 드러내지 않았다.

“아, 우리 천공단의 본거지를 잊고 있었네. 안강도 오랜만이다. 우리의 친구 하오문이 잘 관리하고 있겠지?”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건 좋구만.”

처음 천공단이 결성될 때와는 가히 천지차이.

어디로 가냐고도 묻지 않으니, 후공은 천공단이 대견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 사람만은 달랐다.

“나무관세음보살…… 대공자는 어디로 가십니까?”

소림의 무광이 물었다.

“알 것 없습니다.”

“아니, 이야기 좀 해주면 안됩니까?”

버럭 소리친 순간, 주변 공기가 달라졌기에 무광이 흠칫 몸을 떨었다. 둘러보니 천공단이 누구 할 것 없이 살기등등 노려보고 있었다.

위험해!

파묻힌다!

무광이 이내 두 팔을 번쩍 치켜들었다.

“취소, 취소! 묻히기 싫어!”

“야, 소림! 한 번만 더 헛소리하면 머리를 갈아버린다.”

“뾰족하게 갈아버릴 거야!”

“세모 머리 되는 거야! 아마 죽고 싶을걸.”

“나무관세음보살…… 다들 말씀을 곱게 하십시오오오오!”

**

잠시 후.

후공은 당명과 자리를 함께 했다.

- 들어보자.

- 대형, 일이 좀 묘합니다.

- 응?

후공이 갸웃했다.

당명의 미간은 한껏 좁혀졌다.

- 대광이 말하길, 곤륜과 마교 사이에 충돌이 벌어진 상황이라고 합니다. 현재 대치 중이라곤 하는데, 실상 곤륜은 마교에 포위되어 갇혀 있는 형국입니다.

“흐음…….”

- 누구도 곤륜산 너머로 벗어날 수 없고, 누구의 도움도 청하지 못하도록 하늘도 차단했다고 합니다. 전서매는 날아올라 곤륜산을 벗어나는 즉시 사살당해 추락하는 상태입니다.

후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 제광은 외부에 나와 있었나 보구나.

- 네, 곤륜 속가를 살피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또한 모든 전서매가 추락한 것은 아닐 터.

수많은 전서매 중 하나가 마교의 천라지망을 돌파했고, 제광에게 소식이 닿은 상황.

그런 제광이 도움을 청하려 찾은 건 사천당가.

무림맹으로 향하지 않고 사천당가로 온 건 현명한 선택이자 당연한 선택.

- 시작은?

- 이게 묘합니다. 곤륜이 마교 쪽을 해한 것이 원인이라고 합니다. 죽음을 맞이한 마교도의 몸에 남겨진 흔적이 곤륜의 검로이기 때문입니다.

- 곤륜은 당혹스럽고?

- 네, 흔적이야 얼마든지 비슷하게 낼 수 있으니까요.

당명의 말대로다.

검격의 흔적은 얼마든지 같은 형태를 남길 수 있다.

그런 모함과 계략은 어렵지도 않고,

강호에는 흔한 일.

제삼자가 양쪽을 이간질하기 좋다.

그리고 잘 먹히기도 한다.

흔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사람조차 그 흔적을 눈으로 보게 되면 일단 이성을 잃게 되는 탓.

처음 받은 인상이 각인되듯,

상대 문파를 적으로 인식한다.

다른 것이 보이지 않게 된다.

그것이 일반적인 범주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말 그대로 일반적인 범주.

그렇기에,

- 묘하구나.

후공은 당명이 처음으로 꺼낸 말 뜻을 이해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마교는 결코 일반적인 범주가 아닌 탓.

마교는 제삼자의 이간질에 넘어갈 정도로 단순하지 않다.

무모하게 곤륜을 몰아세울 리가 없다.

그럼 무엇인가?

정말로 곤륜이 마교를 먼저 건드렸다고?

그럴 리가.

마교는 단일 세력만으로 전 강호를 상대할 만한 역량을 지닌 곳이다.

곤륜이 멸문을 자처하지 않는 이상,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곤륜에 곤륜삼선(崑崙三仙)이 버티고 있다곤 하나 마교를 상대할 수는 없다.

- 대형, 아무래도 마교에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후공은 아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당명의 말이 다르게 들리기도 했다.

- 대형, 풍제에게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그렇게 들린다.

만약 그런 것이라면 이 일은 간단치 않다.

- 믿고 싶지 않지만 대비는 해야겠지.

곤륜은 시작에 불과할 수도 있다.

이 일의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지 모르기에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

계획은 변경.

천공단은 곁에 두는 것이 안전하다.

후공은 색관조와 연결된 천향의 선을 끊었다가 이었다.

두 번 반복했을 때, 색관조가 창가에 모습을 드러냈다.

[까르르르르르! 주인님, 부르셨을까요?]

[그윽, 그윽.]

“천공단에 전해라. 모두 나와 함께 간다고.”

[야호!]

색관조가 날아가 소식을 전한 탓에 밖에서 천공단의 환호가 터져 나왔다.

“우와아아아아! 운수대통이야!”

“하하하하, 두목과 함께 간다아아아아아아!”

“형님이 가시는 길! 언제까지나, 영원히 함께!”

“진짜지? 이거 농담 아니지?”

“농담이면 색관조 너 기름에 튀겨버린다!”

[까르르르르르! 멍청이, 낭인왕! 주인님에게 튀겨지고 싶어!]

색관조의 그 말이 확정.

모두가 튀겨진 것처럼 펄쩍펄쩍 뛰었다.

‘이 일이 좋아할 일인가?’

후공은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풍제는 풍혼마제(風魂魔帝)!

이 시대 마의 지존.

염혼을 다루는,

마교 교주!

부디…….

내 아우에게 아무 일이 없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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