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8화. 후공도 웃었다.
풍제는 마교 교주.
마제라 불리는 이.
이 강호에 누가 있어 마교 교주를 걱정할 것인가.
하지만 후공은 신경이 쓰였다.
마교가 곤륜파를 포위했다?
이는 풍제의 해결 방식이 아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아우는 그런 너저분한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
직선적이고, 파괴적이다.
또한 전략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을 때면 쥐도 새도 모르게 조용히 상황을 마무리할 정도로 뛰어난 귀계도 지니고 있다.
그걸 직접 수행할 필요도 없다.
풍제에겐 유능한 수하도 많다.
한데 포위라니?
시간을 주다니?
그러니 풍제의 부재를 의심하게 된다.
마교가 풍제의 통제 아래 있지 않다는 생각을 떨쳐내기 어렵다.
‘별일 아닐 수도 있겠지만…….’
직접 눈으로 봐야겠지.
확인이 필요하다.
*
목적지는 청해성 곤륜산.
신형을 날리는 천공단 사이로 전음이 오갔다.
어떤 두근거림.
어떤 기대감.
넘치는 흥분.
- 으아아아, 마교라니! 사형, 나 꿈꾸고 있는 것 아니지?
- 꿈이다. 이 거지 새끼야!
- 하하하, 개 사형 새끼.
- 야, 이러다 우리 풍제 만나면 어떻게 되는 거냐?
- 어떻긴. 그저 영광이지. 난 풍제 보자마자 머리부터 박을 거야. 천천세 만만세 외치면서.
곤륜이 마교에 포위당했다곤 해도 딱히 걱정은 없었다.
함께 하는 이가 과거 천하제일인 패거리 중 한 명인 사천당가주, 암향야인 것이다.
그리고 풍제는 그 패거리 중 두 번째 서열.
그걸 모르는 강호인은 없다.
그러니 별문제 있겠는가.
다들 들뜬 마음이 컸지만, 우려가 없는 건 아니었다.
- 남궁 형님, 풍제가 미쳐버린 건 아니겠죠?
- 모르지.
검성도 마화했다.
가능성만 놓고 보면 마공을 익힌 풍제가 미치지 않으리라 단언할 수 없었다.
- 풍제가 잘못된 거면 어떻게 되는 걸까요?
- 진아, 넌 뭘 놓고 온 거냐?
남궁연의 말에 모용진이 갸웃했다.
- 놓고 오다뇨?
- 머릿속에 뇌 들어 있는 것 맞냐고.
모용진이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 들어있는데요.
- 그럼 이제 생각이란 걸 했으면 싶네.
모용진이 뭔 소리냐는 듯 찡찡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모용진이 이내 헤실거리며 웃었다.
- 생각났습니다!
- 그냥 죽어, 이 멍청한 놈아.
- 헤헤.
두목이 함께 있다.
삼백 년 묵은 백혼곡 마두들을 끝내버린 두목.
일이 어그러지고 잘못되었다 해도 바로잡을 수 있는 이가 있는 걸 잠시 잊고 있었기에, 멍청한 놈이란 말을 들어도 모용진은 할 말이 없었다.
- 허허, 나무관세음보살. 쌍웅, 이 소승은 기대가 큽니다. 풍제까지 보게 되면 저는 다 보는 것이 되는군요.
- 전부? 너 설마 후공도 본 거냐?
- 허허, 설마 쌍웅께선 만난 적이 없는 것입니까?
- ……어.
- 쯧쯧, 저는 다섯 번이나 봤습니다. 한 번은 후공이 제 머리까지 쓰다듬어 주셨습니다. 쌍웅께선 불쌍한 중생이셨군요.
소림의 무광이 가여운 눈길까지 보냈기에 쌍웅의 얼굴이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 근데 넌 왜 자꾸 따라오냐. 촉산에서 약초 캔다며?
- 약초 따위 천천히 캐도 됩니다.
- 그냥 지금 꺼졌으면 좋겠는데?
- 나무관세음보살, 잘생기신 분들이 왜 말을 그리 모질게 하십니까.
- 지랄 염병을 하네.
- 흐흐흐.
그 한편,
심기가 불편한 이도 있었다.
- 암향야, 대체 왜 천공단이 함께 가는 거요?
곤륜의 장로 제광은 불편 정도가 아니라 불만이 가득했다. 천공단주가 대단하다는 건 알게 되었지만, 이번 일은 마교다. 그저 풍제를 설득할 사람이 필요할 뿐.
그러니 암향야 혼자 가면 될 일이었다.
한 사람을 추가한다면 제갈혜 정도.
한데 천공단 전부다.
소란스러움이 말로 할 수 없는 천공단이 무슨 도움이 된다고 함께 동행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당명은 귀찮을 뿐.
- 대광, 그 이야긴 이미 끝난 걸로 아는데?
- 아니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잖소!
- 지극히 상식적이야.
당명에게 상식의 기준은 대형.
대형의 생각이 곧 답이고 상식이다.
그리고 자신도 대형과 같은 생각이었다.
풍제가 포위? 기다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또 누군가 이간질을 했다고 해도 이를 풍제가 놓칠 리 없다.
하지만 그런 당명의 태연한 대답은 제광의 불만을 폭발시켰을 따름이었다.
- 암향야, 정말 이렇게 나오기요?
- …….
- 어떻게 생각해도 이건 아니지 않소! 왜 귀를 닫고 사람 말을 듣지 않으려는 거요!
그런 제광을 당명이 뚱하니 바라봤다.
그러다 전음을 발했다.
- 대형…….
그렇게 후공을 향해 전음을 발한 후, 제광을 향해 소매를 떨쳤다. 제광이 알아차렸을 때는,
“헉!”
늦었다. 바로 곁에서 쏟아져오는 세 가닥 금빛 광채를 보았을 때는 이미 전신이 마비되었다.
“으어어어어억!”
신형을 날리던 중에 마혈이 점혈당하면 그대로 고꾸라지는 건 당연한 일. 제광이 지면에 처박히고도 한참이나 굴렀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천공단이 멈춰 굴러가는 제광을 놀란 눈으로 바라볼 때, 후공이 짧게 한마디를 던졌다.
“매장.”
“뭐라고? 뭐, 뭔 소리야? 갑자기 매장이라니? 누굴?”
누구긴 누구인가.
널브러진 제광이 발작적으로 소리쳤지만, 천공단은 이미 알아들었다. 묻으라면 묻을 뿐. 또한 이쪽 방면으로는 이미 전문가들. 가타부타 이유도 묻지 않고 땅부터 파기 시작했다.
그러곤,
“이 정도면 됐어!”
“깊다 깊어.”
“얼른 묻자고!”
제광은 던져졌고, 빠르게 파묻혀갔다.
몸이 반쯤 덮이고 얼굴에도 흙이 덮쳐왔다.
“퉤, 퉤! 아니, 곤륜을 도우러 간다면서 곤륜에서 온 나를 묻어버리는 경우가 세상에 어디…… 우으으읍!”
말은 거기까지.
땅땅!
천공단은 순식간에 흙을 덮고 지면을 단단히 다졌다.
낙엽도 모아 덮어두니 완벽했다.
“캬아, 감쪽같네.”
“무슨 일 있었어?”
“하하하하하!”
천공단이 희희낙락 웃음을 터뜨렸다.
그 틈바구니에 왜 소림의 무광이 깔깔거리고 있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
열흘 후.
천공단은 사천을 넘어, 청해성 서남단에 이르렀다.
이 추세면 이제 곤륜은 하루 거리.
그런 가운데 멀리 있는 산 하나가 후공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건 당명도 마찬가지였다.
- 대형,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 가보자.
- 네.
산이 괴이했다.
산 전체는 아니었다. 그저 산의 특정 부분이 온통 하얀색이었다. 그리고 당명이 말한 대로 이번이 두 번째.
처음엔 곤륜으로 향하는 것이 급선무였기에 지나쳤지만, 두 번째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와아, 저기만 눈이 온 건가?”
“눈싸움 한번 가자고!”
점점 다가가면서 천공단도 뒤늦게 산의 기이함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더 가까워지면서 눈이 아니란 것도 인지했다.
산의 봉우리 중 하나.
그 아래 나무들과 풀들이 모두 하얗게 백화(白化)되어 있었다.
“나무들이 왜 이렇게 된 거지?”
해당 지역에 도착해 발을 딛고 주변을 둘러보던 낭인왕이 나무를 만져갔다.
“만지지 마!”
“이미 만졌는데?”
부스스스.
손이 닿았을 뿐인데 나무가 먼지처럼 부서졌다.
“응?”
“뭐, 뭔데?”
“왜 부서져?”
“이런 나무는 처음 보는데?”
“이거 모양만 보면 소나무잖아?”
이상한 나무가 아니란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솔방울이 달려 있는 것까지. 소나무가 하얗게 변한 것뿐이었다. 괴이한 건 나무만은 아니었다. 바닥에 있는 풀들도 발길에 닿고 스칠 때마다 먼지처럼 스러져나갔다.
- 대형, 누군가 식물의 생기를 취한 것 같습니다. 마교 쪽 인물일까요?
후공은 그저 무심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오행 중 목(木)의 기운.
오행이 서로 돕지 않고 한쪽 기운에 치우치는 건 좋지 않다.
지천이 토(土)의 기운을 무궁히 받아들일 방도를 찾았다 하나 그로 인해 도리어 큰 약점을 얻게 된 걸 생각하면, 목의 기운이라고 다를까.
대개 마공이 그렇다.
한쪽으로 극단적으로 치우치고, 해결 방법은 나중에 강구한다. 답을 찾지 못하면 자멸. 한편 오랫동안 이어진 마공들은 보완되고 단점이 메꾸어진 것들.
그런 점에서 목의 기운을 취한 자는?
마교일 가능성은 낮다.
그렇다고 아예 마교를 배제할 수도 없다. 마교는 제정신 아닌 놈들이 셀 수 없이 많은 것이다.
그곳에 머문 것도 잠시,
천공단은 다시금 곤륜을 향해 신형을 내달렸다.
밤이 될 즈음 부근에 도착했고, 객방을 잡았다.
밤을 도와 객방을 빠져나온 건 두 사람.
후공은 당명만을 대동한 채 곤륜산으로 향했다.
반기는가?
두웅, 두웅, 두웅~~~~.
멀리 곤륜산에서 종소리가 들려왔다.
**
두웅~ 두웅~ 두우우웅~~.
곤륜산 아랫자락,
느닷없는 종소리에 곤륜의 장로 제헌의 눈은 커졌고, 몸은 경직되었다.
종소리는 산 위 곤륜이 아니다.
멀리서 울리는 것도 아니었다.
자신이 방금 지나쳐 온 곳에서 종소리가 크게 울려오고 있었기에,
‘음진(音陣)?’
몸은 굳고 등줄기로 식은땀이 솟았다.
음진은 적을 탐지하는 진법.
적이 진법을 지나쳐올 때, 소리를 울려 적의 위치를 알린다.
‘어떻게 하지?’
크게 울리는 종소리에 머리가 하얗게 되어 제헌은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다시 곤륜으로 돌아가야 하나?
아니면 이대로 산을 벗어나야 하나?
그저 양자택일의 기로에서 이도 저도 못 하고 주춤거렸다.
사천당가에 도움을 청하려, 암향야를 청하기 위해 보낸 전서매들은 곤륜산을 벗어나지 못하고 모두 죽음을 맞이했다.
거의 사십여 마리.
그중에 하나 정도는 마교의 천라지망을 벗어났을까?
그런 기대를 하긴 했지만 장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누군가는 나와야 했고, 나선 건 자신이었다.
한데 음진.
두웅, 두웅, 두우웅~~~~.
끝도 없이 울리는 종소리에 제헌이 마음의 결정을 내렸을 때는, 늦었다.
“크크크크크!”
“캬캬캬캬캬캬!”
“히히히히히!”
기괴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싶을 때, 경력이 휘몰아쳤다.
좌측에 하나, 우측에 하나.
그리고 머리 위.
제헌이 천기신보로 신형을 틀었다.
좌측과 우측에서 쏟아지는 장력을 벗어나 사선으로 신형을 벗어나려 할 때, 위쪽의 그림자도 급격히 방향을 전환했다.
“캬캬캬, 어디 가냐!”
파라락!
제헌이 고개를 돌리는 그 순간, 파랗게 물든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뻗어오는 손길에 터무니없이 붙잡혔다.
늦어서가 아니었다.
애초에 상대가 잘못되었다.
화경 급이 아니다.
“커걱!”
가볍게 훑고 지나가는 장력에 몸이 출렁이며 기운이 흩어졌고, 이어 거대한 손아귀에 머리가 잡혔다.
머리가 붙잡힌 채로 제헌이 몸을 떨었다.
상대의 눈이 핏빛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그리고 웃는다.
“캬캬캬캬캬캬캬!”
“크크크크크크!”
“히히히히히히!”
웃음소리는 셋.
하지만 눈에 보이는 건 하나.
다른 둘은 좌우에서 흐릿하게 유령처럼 하얗게 일렁이고 있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캬캬캬! 넌 벌써 잊은 거냐? 누구도 곤륜을 벗어날 수 없다고 말했을 텐데.”
“하, 하지만…….”
“하하하하하하하하하지만……?”
“으으…….”
머리가 당장이라도 터져나갈 같았기에 제헌이 붙들린 채 몸부림쳤다.
“캬캬캬, 그리고 또 하나. 벗어나려 한다면 어떻게 된다고 했지?”
제헌의 눈동자가 미친 듯이 흔들렸다.
알고 있다.
죽음. 누구라도 죽는다고 했다.
“캬캬캬, 그럼 넌 이제 어떻게 될까?”
파란 머리카락.
그리고 붉게 타오르는 핏빛 안광.
죽음의 사신처럼 머릿결이 펄럭이는 가운데 혈령신마가 손아귀에 힘을 불어넣었다.
“네놈 머리를 터뜨…….”
혈령신마의 말이 멈췄다.
시선은 우측으로 돌아가고, 동공은 급격히 축소되었다. 본 순간 위험을 직감했다.
“모두 피해!”
하얀 다섯 줄기의 빛이 쏘아져오고 있었다.
찰나 간에 신형을 흩었다.
다섯 줄기 백광이 그들을 관통했을 때는 그 자리에서 모두가 이미 연기처럼 흩어졌다.
그 덕분에,
제헌은 일시적으로 놓였고,
그 덕분에,
능오침을 발출했던 후공은 곤륜의 제헌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제헌이 놀란 눈으로 후공 쪽을 바라봤다가 눈이 더 커졌다.
‘누구?’
그 의문이 채 끝나기도 전,
그 의문을 발하기도 전,
주변이 물결쳤다.
수백 겹의 아지랑이가 겹쳐진 것처럼 투명하게 일렁였다.
그리고 그 너머로 세 사람이 어쩐지 갸웃하는 것 같은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착각이 아니었다.
혈령신마, 건곤신마, 청와신마는 눈으로 보고도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들이 쏟아낸 장력이 모두 물에 빠진 것처럼 종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캬캬캬캬캬캬캬캬캬!”
“크크크크크, 재밌는 놈이네?”
“히히히히히히!”
후공도 웃었다.
환명 너머 세놈의 얼굴은 흐릴지라도 후공은 알아보았다.
‘다행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