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화. 흩날렸던 조각들이 하나둘 모여드니.
청랑.
후공에겐 그리움이자, 추억의 한 조각.
떠나버린 아우를 떠올리게 한다.
그 마음을 읽은 것일까.
[아우우우우우우우우우~~~~.]
청랑이 달을 보며 길게 울었다.
위로해주는 것 같기도 하고, 또 함께 떠올리고 있는 것도 같았기에 후공의 미소는 짙어졌다.
“어디 볼까?”
헥헥!
청랑이 알아듣고 똑바로 마주 보며 준비했다.
후공이 손가락 하나를 세워 좌측으로 두 바퀴 원을 그리며 돌렸다. 청랑이 그 방향으로 몸을 두 바퀴 굴렸다. 다시 손가락을 우측으로 두 바퀴 돌리자 청랑이 또 그 방향으로 굴렀다.
“이번엔 뛰어올라 보자!”
말이 떨어진 순간, 소맷자락 안에 머물던 친이 자줏빛 광채를 발하며 튀어나왔다.
크르르르르르릉!
친이 울며 머리 위를 맴돌자, 청랑이 멍해져 잠시 올려다봤다. 옛 생각이 난 건 후공만이 아니었다. 원래 자줏빛 검광은 세 개. 그중 하나가 보였기에 아련해졌다.
잡을 순 없었다.
어떻게 해도 닿을 수 없었다.
그렇게 놀았다.
뛰어올라 닿지 못해 시무룩해져 있으면 한 번씩 잡혀 주었던 자줏빛 단검.
과거 어느 때가 한꺼번에 몰려와 청랑이 뛰어올랐다.
거의 십여 장(약 30미터). 친이 미끄러지듯 벗어나 어른거리자,
크르릉!
청랑이 다시 솟구쳐올랐다.
이번엔 거의 이십여 장.
친이 선회하며 벗어나려다 청랑의 입에 물렸다.
청랑이 친을 물고 내려선 다음 이빨로 악물며 부숴버리겠다는 듯 머리를 흔들었다.
주인의 마음을 알고 있기에 친은 가만히 있을 뿐. 청랑도 그저 잡혀 준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부서지지 않는다는 것도.
이어 떠오른 건 환명.
허공의 한 지점에 몽실몽실 투명한 덫이 아른거렸기에 청랑이 환명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래, 이거야!
자신이 붙잡히게 된 투명한 덫으로 몸을 던진 청랑이 그 속에서 버둥거렸다. 그날은 당혹과 경악 속에서 두려움에 떨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주인이다. 그저 반가움과 확신이 더해진다.
외모가 달라진 건 상관없었다.
[까르르르르르르르! 야! 저기 저 늑대 녀석 좀 봐!]
[그으으으윽!]
그 광경에 곤륜의 밤하늘을 날고 있던 색관조가 금섬과 함께 빠르게 날아내렸다.
환명 곁에서, 그리고 주인 앞쪽에 떠오른 채 말했다.
[주인님, 이 늑대 녀석 웃긴 놈이네요? 왜 아는 척이죠? 이거 그거죠? 그거?]
“응?”
[주인님께 겁 먹은 거죠? 이놈의 새끼, 알아서 기는 거죠? 까르르르르르르!]
“하하하!”
[근데 이거 되게 재밌을 것 같아!]
[그윽, 그윽!]
색관조와 금섬이 환명 속으로 들어갔다.
환명에 갇혀 청랑과 함께 허우적대면서 소란을 떨었다.
[으아아아아아아, 몸이 흔들려! 빠져나갈 수가 없어어어어어. 까르르르르르르르!]
[그으으으으으으으으윽!]
[야, 너 늑대 아니지? 개지?]
[크르르르릉!]
[늑대네. 미안.]
고요하던 곤륜이 일순 시끌벅적해졌다.
곤륜이 동요한 건 당연한 일.
‘허어…….’
‘이, 이게 무슨……?’
밖에서 마교 소교주와 암향야의 대화 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곤륜 장문인 제금과 곤륜삼선은 황망함을 금할 길이 없었다.
잠깐 사이에 본 것이 너무 많다.
새가 말을 해? 금두꺼비?
그리고 왜 마교 소교주의 영물이 대공자를 따르는 것인가?
그런 놀라움도 놀라움이지만, 자줏빛 광채를 발하며 날아오른 검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 장문인,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소?
- 서, 설마…… 비슷한 것이겠지요.
곤륜삼선의 전음에 장문인이 더듬거렸다.
최근 일이다. 곤륜은 아직 맹주의 신검이 도난당한 것도 다시 찾은 것도, 그 신검이 천화서고 대공자의 손에 들어간 것도 알지 못했기에 얼떨떨함을 금할 길이 없었다.
- 장문인, 비슷한 정도가 아니외다. 저 단검은 후공의 신검 중 하나가 틀림없소이다.
- 한데 왜…… 대공자가?
- …….
답은 알 수 없다.
아닌가? 그런 생각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언뜻 떠오른 탓이었다. 후공의 신검은 그 누구도 다룰 수 없노라고. 그리고 암향야도 걸린다.
암향야가 용납할 리 만무했다.
후공의 신검을 누군가가 탈취했다면 암향야는 지옥 끝까지라도 쫓아가 찢어 죽일 사람인 것이다.
곤륜이 그렇게 혼란에 빠져있을 때, 그보다 더한 충격에 빠진 건 몽허와 음희였다.
몽허와 음희는 머리가 어떻게 되버릴 것 같았다.
‘청랑이…….’
‘청랑이 강아지처럼 꼬리를 흔들어?’
다른 건 보이지 않았다.
오직 청랑!
청랑의 꼬리!
우리 청랑이 저럴 리가 없는데!
주군의 영물인데!
주군 앞에서만 꼬리를 흔들어야 하는데, 청랑이 헥헥대면서 좋아하고 있다니.
무슨 재롱잔치인가.
새랑 두꺼비랑 어우러져 청랑이 허공에서 맴돌고 있는 광경은 그야말로 충격.
원래 청랑은 포악함이 말로 할 수 없다.
친해지기도 어렵다. 교 내에서 지존과 주군을 제외하면 안 물려본 사람이 없을 정도.
빠름은 현경의 고수와 견줄 만하고, 강철보다 단단한 이빨은 쇠도 뜯어낸다. 뜯어낸 쇠를 질겅질겅 씹고 뱉어낼 정도.
그런 청랑이 좌로 구르고, 우로 구르다니!
뛰어오르다니!
- 더 두고 볼 수 없다!
- 당연하지!
몽허와 음희가 눈을 악독하게 빛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단순하지 않다.
청랑도 소호탈마대의 일원.
소호탈마대가 주군을 제외한 누군가에게 꼬리를 흔드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주군의 존엄이 손상당하고 있는 광경 앞에 몽허와 음희가 살기를 줄기 줄기 뿜어냈다.
죽인다. 지금 당장 놈을 쳐죽인다!
크르르르르르르릉.
어느샌가 환명이 거둬져 땅을 딛고 선 청랑이 혈광을 뿌리며 돌아섰다. 시선은 몽허와 음희를 노려보며 포악하게 이빨을 드러냈다.
주인을 향해 살기를 드러내고 있으니 견딜 수 없었다.
청랑이 머리를 돌려 주인을 바라보았다.
후공은 그저 웃음.
그것이 허락인 양 청랑이 땅을 박찼다.
크아아악!
몽허와 음희에게 달려들었다.
“……?”
“……??”
몽허와 음희가 갸웃했을 땐, 물렸다.
몽허가 뭐여? 하는 사이 몽허의 머리통을 덥석 물고 흔들어댔다.
“으아아아아아악! 내 머리! 놔! 놓으라고 이 새끼야!”
“청랑! 왜 그래? 제발 정신 차려! 꺄아아아아아악!”
뜯어말리던 음희가 비명을 내질렀다.
청랑이 몽허를 버려두고 음희의 다리를 물어뜯었기 때문이었다.
“내 다리! 내 다리! 몽허, 이거 어떻게 좀 해 봐!”
“청랑아아아아아아아!”
몽허가 청랑을 부르며 몸을 붙들었다. 청랑이 요동치는 탓에 몽허의 몸이 딸려가 질질 끌렸다.
주인의 영물을 쳐죽일 수는 없어서였다.
물론 쳐죽이기도 쉽지 않고.
“캬아아아아아아아아! 아프다고! 그만 좀 해! 나야, 나라고!”
“으아아아악! 내 대가리이이이!”
고요하던 곤륜이 떠들썩해졌고, 곤륜 장문인 휘하 모두가 핼쑥해진 건 당연.
“…….”
“…….”
“…….”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그사이 색관조는 다시 밤하늘을 날아올랐다.
그리고…….
**
당명과 도운연의 대화는 끝을 향하고 있었다.
상황이 발발한 시작점과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공감을 마쳤다.
하지만 그다음이 문제였다.
“네?”
도운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백부의 신검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면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란스런 소리 따위는 들리지도 않았다.
신검의 새로운 주인.
도난당한 신검을 천화서고 대공자가 하나하나 추적해 찾았다는 이야기에는 내심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 대공자가 백부의 신검을 다룬다는 부분에선 말문이 턱 막혔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네??”
백혼곡에 대해서 듣게 되면서 도운연은 앉은 채로 몸을 휘청였다. 강호의 과거사와 현재에 대해 공부한 바가 있었기에 도운연은 백혼곡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천화서고 대공자다.
삼백 년 전 인물들이 살아있었다는 것도 놀랍지만, 대공자가 그들을 끝내버렸다는 말에는 넋이 나갈 지경.
이제 더는 놀랄 일이 없겠지 싶을 때,
들려왔다.
“네???”
도운연은 너무 황망해 몸을 들썩였다.
이건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이럴 순 없었다.
“너의 반응인즉 내가 대공자를 아버지라고 불렀어야 한다는 거냐?”
“숙부님, 저는 그런 뜻이 아니라…….”
도운연이 당황해 손을 내저었다.
한순간 솟아난 식은땀에 등줄기가 척척해졌다.
숙부가 대공자를 형님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아무리 내기를 했다고 해도, 이기는 쪽을 아버지라 부르기로 했다고 해도…….
‘그건 농담으로 넘겨야 하지 않나?’
안절부절 뺨을 만졌다가 입술을 만지고 콧잔등을 만져대는 운연을 바라보며 당명이 웃음을 머금었다.
“후후, 신경 쓰지 마라. 너까지 대공자를 백부라고 부르라고 할 생각은 없으니.”
“……네.”
도운연은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을 훔쳤다.
자신이 문제가 아니다.
아버지가 보이실 반응이 벌써부터 걱정이었다.
“저기 숙부님…….”
“그래.”
“……아닙니다. 잠시 쓸데없는 생각을 했습니다.”
“싱겁긴.”
도운연은 내심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이건 숙부의 일. 누구보다 아버지를 잘 아는 숙부가 결정한 일에 충고는 어리석다.
“운연아.”
“네.”
“대공자에 대한 호칭은 편하게 해도 좋다만, 예의는 지켜라. 이 숙부를 대하듯 하면 좋겠다.”
“……네.”
도운연의 머리로 스치듯 보았던 한 서생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젊은 서생이겠지? 천화서고 대공자.
**
곤륜을 떠났던 색관조가 다시 곤륜으로 향했다.
함께한 건 금섬만이 아니었다.
천공단이 밤을 뚫고 곤륜산을 올랐다.
이미 산을 오르기 전부터 시끄러웠기 때문에, 산의 중턱을 휘감고 경계하고 있던 소호탈마대가 예상 경로를 차단했다.
그렇게 근접한 순간,
“거기까지.”
혈령신마의 나직한 한마디에 천공단이 멈췄다.
잠시 주춤.
파란 머리카락에 핏빛 안광을 뿜어내는 이와 그 뒤로 부채처럼 펼쳐진 흑의 검수들을 보게 되면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누군지는 물을 것도 없었다.
이미 색관조에게 들었기에 주춤한 것도 잠깐뿐이었다.
“마, 마교!”
소천개가 더듬거렸다.
은앙개가 뒤를 이었다.
“마교야! 마교라고! 시발, 이거 믿어지냐?”
거의 환호였다.
“우와아아, 사형! 우리가 드디어 마교를 만났어! 사부님! 우리가 마교를 만났어요! 들리시나요오오오오?”
소천개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개방 방주를 찾았고, 모용진과 언교운 등이 바로 뒤이어 탄성을 발했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 멋져!”
“마교분들, 영광입니다!”
“하하하하, 흉악하다더니 진짜였어! 엄청 무서워!”
“캬아, 절도 있는 것 봐라!”
각이 제대로라면서 낭인왕이 껄껄거렸고, 뒤이어 항마삼협과 무산쌍웅도 한마디씩 던졌다.
“핏자국을 보니 형님에게 당했나 보구만!”
“내 그럴 줄 알았지!”
“나무~~~~~ 관세음보살~~~~~.”
삐리리리~~ 삐리리리리리 삑삑!
금적자의 피리 소리까지 요란하게 울려퍼졌다.
조용한 건 무흔신투와 지귀객뿐.
아니 조용한 건 아니었다. 딱딱딱딱! 몸이 떨려 치아가 자꾸만 부딪혀간다.
‘이 새끼들아, 그만 좀 떠들어!’
‘제발 그만!’
천공단이 미친 새끼들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마교를 상대로 이래도 되는 건가 싶어 오들오들 떨었다.
그런 환호에 혈령신마의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들이 누구인지는 알 수 있었다.
천공단.
제정신 아니라는 소문을 듣기도 했고, 제갈혜도 보였기 때문이었다.
천공단주가 유달리 정상인이었다.
이런 놈들을 주군 곁으로 올려보낼 순 없다.
예외는 암향야와 천공단주뿐.
“조용!”
나직한 한마디에 천공단이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꺼져라.”
천공단이 미적거렸다.
억지로 우기지도 않고, 또 내려가지도 않고 딴청을 부리는 모습 사이로 제갈혜가 걸음을 내디뎠다.
“올라가게 해주세요. 부탁드려요.”
“꺼져라. 다시한번 청하면 그땐 모두 죽인다. 제갈혜, 너라도.”
“저를 죽이면 운연 오라버니가 좋아하겠군요. 그리고 백부께서도 무척 기뻐하시겠죠?”
“…….”
혈령신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주군의 존함을 함부로 입에 올리는 자를 살려둔 적이 없었다. 하지만 혈육이라면…… 혈육과도 같다면……. 그리고 백부가 누굴 칭하는 것인지는 물을 것도 없다.
지존.
“후우…….”
혈령신마가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마가 끼었나?
이 밤, 되는 게 없다.
“올라가라. 하지만…….”
“와아아아아아!”
“가자아아아아아!”
“감사합니다아아아아아!”
“좋은 사람들이야!”
“마교 소교주 만나러 가자아아아아!”
혈령신마의 뒷말은 천공단의 환호성에 파묻혔다.
하지만…… 조용히 해야 한다는 말을 하려 했는데, 천공단은 이미 소리치며 뛰어올라가고 있었다. 피리 소리에 아미타불도 들려왔기에 혈령신마가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캬캬……………….”
그리고 그때쯤에는,
“대공자, 인사가 늦었습니다. 도운연입니다.”
도운연이 예를 갖췄다.
후공은 조카의 모습을 보며 미소.
‘운연, 넌 늦지 않았다. 늦은 건 나.’
또 한 조각.
흩날렸던 조각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하나하나 반짝이고 아름다운 조각들이기에 후공은 더할 나위없이 좋았다.